강촌역사에서 사진을 찍는 여행객들.
1970~2000년대 음악인들이 추억하는 경춘선의 낭만
197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나 2000년대에 다녔던 세대나 마찬가지다. 경춘선은 청춘을 나르는 철도였다. 또한 음악이 울려퍼지는 기차이기도 했다. 떼 지어 춘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은 친구들은 겁도 없이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 경부선, 호남선, 대한민국 철도 어디에도 허용되지 않을 무질서가 경춘선 안에서는 낭만이었다. 여러 세대의 음악인 및 관계자들에게 경춘선에 얽힌 추억을 들어봤다.
70년대 학번인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는 김민기와 더불어 한국 노래 운동 1세대다. 엄혹한 시절이었으니만큼 사뭇 남다른 이야기를 들려줬다. “70년대 말, 즉 유신 정권 후기에는 청량리역에서 경찰들이 기타를 빼앗았죠. 유원지 가서 춤추고 노래하는 거 꼴 보기 싫다는 거였지. 퇴폐풍조 단속이었어요. 청량리부터 춘천까지 2시간40분 동안 조그만 역들을 다 들르면서 다니던 완행열차 시절 얘깁니다.”
화가이자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인 백현진은 경춘선 하면 산과 강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길거리에서 개처럼 떠돌아다닐 때 친구랑 처음 갔었어요. 제일 싼 비둘기호를 탈 수밖에 없었지. 설령 돈이 있었다 해도 그래야 할 것 같은 청년 때의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고나 할까. 비둘기니까 이름도 예뻤고. 통일보다는 비둘기가 청춘에게 편했나 보네. 매일 한강만 보다가 북한강을 보는 게 유니크한 경험이었어요. 닭갈비랑 막국수, 소주를 진탕 먹었는데. 춘천 갔으니 이외수 선생 얘기도 했었을 거고. 그 양반 주변에는 도인들이 많다는데 우리도 한번 언제 놀러가자고 친구와 작당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기타 빼앗겨도 흥겨운 춤·노래 이어졌고
백현진과 동갑(1972년생)인 허클베리핀의 이기용도 비슷한 방황의 시기에 첫 경춘선 여행을 했다. “고등학교 중퇴하고 방황할 때 같이 알바하던 형, 누나들이 나를 다독여 준다고 강촌에 갔었어요. 열여덟살 때였는데. 청량리에 가는 것부터가 설레었죠. 드디어 기차 여행이란 걸 하는구나, 하는 설렘이 있었어요. 풍경들도 새로웠고. 강촌에 내려서 강가 큰 바위에 앉아서 삼겹살 구워 먹으면서 소주 한잔 했었더랬죠. 그때 형들이 삼호니 세광이니 하는 출판사에서 나온 포켓가요 펼쳐놓고 기타 치면서 노래도 하고. 그 뒤로도 여러 번 갔었지만, 계곡 위에 서 있던 강촌 역사의 첫 모습이 기억에 강렬히 남아 있어요.”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밴드 못(M.O.T)의 이언은 음악인 중에서는 많지 않은 공대 출신이다. 남자투성이인 공대 엠티보다는 다른 모임에서의 그것이 기억에 남을 터. “공대였지만 시문학회가 있어서 기차 타고 배 타고 예닐곱명이 춘천 중도에 갔었습니다. 자전거도 타고 강을 보면서 술을 마시고. 나름 명색이 시문학 동아리인데다가 대학교 1~2학년 때였으니 감성이 오죽 돋았겠어? 우리가 비록 공대생이지만 세상과의 감성적 소통에 대해서 닫아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둥, 대단치 않았던 얘기들을 대단하게 했던 것 같네요. 그중 나를 짝사랑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때 살갑게 굴더니만 나중에 아니나 다를까, 고백하더라고.”
과방 잡기장에 가득하던 춘천의 나날 언니네 이발관에서 기타를 치는 이능룡은 참으로 ‘안습’한 얘기를 들려줬다. “아직 기타를 못 칠 때여서 애들 치는 것만 구경했죠. 아웃사이더였던 편이라 말도 안 하고 창밖만 바라보며 강촌까지 갔었지. 좋아하던 동기가 있었는데 거기서 술 먹고 고백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걔한테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고백하려고 둘이 있다가 걔 남자친구 얘기만 듣고 왔던…. 자기 남자친구 때문에 힘들다고 울더라고. 강도 있고 하니 물수제비를 했는데 잘못 던져서 여자애들한테 확 던졌어요. 빗맞아서 다행이지 큰일 날 뻔했어요.”
서른을 목전에 두고 있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윤덕원은 엠티 대격변의 현장 증인임을 자처했다. “고향이 창원이라 대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경춘선을 탔어요. 늘 무궁화 타고 다니다가 통일호를 타니 헐렁한 느낌이었는데. 그때는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어서 과방 잡기장에 붙여놓기도 했고, 핸드폰이 막 보급될 때라 학교 앞 서점에 메모나 삐삐번호 남겨서 연락했었는데 군대 다녀오니 그런 문화가 싹 사라지고 없었죠. 시위나 학생회도 마찬가지고. 경춘선이 없어지는 걸 몰라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역시 같은 연배인 장기하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춘천에 엠티 가보니) 대학교 온 것 같았고, 이게 대학가의 낭만이라는 거구나 싶었어요.”
글 김작가 noisepop@hanmail.net,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왼쪽)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경인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
(오른쪽) 폴라로이드카메라는 여행의 친구.
(오른쪽) 폴라로이드카메라는 여행의 친구.
떠들썩한 춘천행 열차 안.
휴가 내고 경춘선 여행길에 오른 친구들.
과방 잡기장에 가득하던 춘천의 나날 언니네 이발관에서 기타를 치는 이능룡은 참으로 ‘안습’한 얘기를 들려줬다. “아직 기타를 못 칠 때여서 애들 치는 것만 구경했죠. 아웃사이더였던 편이라 말도 안 하고 창밖만 바라보며 강촌까지 갔었지. 좋아하던 동기가 있었는데 거기서 술 먹고 고백하기로 마음먹었어요. 걔한테는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고백하려고 둘이 있다가 걔 남자친구 얘기만 듣고 왔던…. 자기 남자친구 때문에 힘들다고 울더라고. 강도 있고 하니 물수제비를 했는데 잘못 던져서 여자애들한테 확 던졌어요. 빗맞아서 다행이지 큰일 날 뻔했어요.”
경춘선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청춘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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