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호텔 ‘콘티넨탈’의 한우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왼쪽). ‘더 스테이크 하우스’의 ‘립아이 스테이크’ 400g(가운데). ‘더 반’의 ‘립아이 스테이크, 본리스(뼈 없는 꽃등심 스테이크)’ 400g(오른쪽).
[매거진 esc] 예종석 교수와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 레스토랑 순례해보니
‘더 반’, ‘더 스테이크 하우스’, ‘GOO STK 528’, ‘트윈 크릭스’ 등. 이 레스토랑들은 공통적으로 ‘드라이에이징’(dry aging·건조숙성) 스테이크를 내놓는다. 올해 미식계의 화두다.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자부하는 미식가들이 앞다퉈 찾고 있다. 파워 블로거로 알려진 ‘팻 투 바하’, ‘와인 마시는 아톰’ 등도 이 레스토랑들을 소개하고 있다. 가장 최근 문을 연 ‘더 반’은 이틀 전에 예약을 해야 자리가 있을 정도고 한류 스타 배용준까지 맛을 보고 갔다고 한다. 보통 스테이크보다 값이 2~3배 비싸다.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가 뭐기에 이토록 요란스러울까?
드라이에이징은 공기 중에 고기를 그대로 걸어두고 말리는 숙성 방식이다. 고기는 마르면서 수분이 줄어들고 겉에는 곰팡이가 핀다. 겉은 잘라내고 안쪽의 고기만으로 요리를 한다. 신기술은 아니다. 포장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잡은 고기를 그저 걸어두고 말려 먹었다. 1960년대 진공포장 방식이 등장하기 전까지 그랬다. 도축한 고기를 진공포장하면 수분 증발 기간이 줄어 보관기간이 길어진다. 고기의 표면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포장을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습식숙성(wet aging)이라고 하고, 드라이에이징의 반대다. 습식숙성을 하면 고기를 먼 곳까지 안전하게 유통시킬 수 있다.
사라졌던 건조숙성법은 미국의 고급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다시 등장했다. 12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뉴욕의 ‘피터 루거 스테이크 하우스’가 대표적이다. 이 방식은 미식의 역사가 오래된 유럽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코스요리로 다양한 맛을 즐기는 유럽의 미식가들에게는 그다지 흥미로운 조리법은 아니었다.
건조숙성은 포장법 없던 시대 옛기술
건조숙성 방식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부패를 적당히 조절하면서 고기를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4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적당한 숙성기간(요리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약 14일)과 저장온도, 습도, 바람이다. 얼음이 얼 정도로 낮은 온도에서는 풍미를 증가시키는 효소나 미생물의 작용이 중단된다. 반대로 높은 온도에서는 고기가 오염, 악취, 병원균 등에 노출될 수 있다. 적당한 온도는 0~4도라고 한다. 습도도 마찬가지다. 높으면 병원균 번식이 활발해지고 낮으면 고기가 지나치게 수축된다. 약 80% 안팎이 적당하다고 한다. 통풍도 중요하다. 겉을 잘라내기 때문에 원래 고기 양의 약 30~60%만 사용이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이 가격 상승 요인이 된다.
‘더 반’, ‘더 스테이크 하우스’, ‘GOO STK 528’, ‘트윈 크릭스’ 등의 메뉴판에는 원산지 표시는 되어 있을까? 있다. 미국산 프라임급 쇠고기라고 적혀 있다. 미국식 숙성 방식에는 미국 쇠고기가 적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육류수출협회 자료를 보면, 미국산 쇠고기는 농무부 검사에 따라 여덟 등급으로 나뉜다고 한다. 프라임(Prime), 초이스(Select), 스탠더드(Standard), 커머셜(Commercial), 유틸리티(Utility), 커터(Cutter), 캐너(Canner) 등이다. 이 중에서 프라임은 미국 전체 쇠고기 생산량의 약 3% 정도라고 한다. 보통 대중식당에서 파는 미국산 쇠고기보다 훨씬 높은 등급이고 값도 한우만은 못해도 비싼 축에 든다.
‘더 반’의 요리사 노종헌씨는 “예전에 미국 뉴욕에서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맛보고 반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일했던 레스토랑 뱅가의 오너인 운산그룹 이희상 회장과 의기투합해서 올해 ‘더 반’을 열었다. 고기는 운산그룹의 계열사인 동아푸드에서 수입했다. 그는 4개월간 한우, 오스트레일리아(호주)산 와규, 미국 프라임급 등을 건조숙성하고 맛 테이스트를 했다. 그 결과, 미국산 프라임 쇠고기를 선택했다고 한다. “한우는 잘라서 그냥 구워 먹는 것이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드라이에이징을 한 오스트레일리아산 와규는 부위별로 맛이 너무 달랐다”고 한다. 그는 1도에 75~85% 습도를 유지하는 5평 정도의 저장고를 마련했다. 그는 “(드라이에이징 한) 고기는 농축된 깊은 맛을 내고 차진 식감이 있다”고 전했다.
한우와 최고급 미국산, 어떤 게 나을까? 건조숙성 방식이 노씨의 말처럼 미국 프라임급 쇠고기에만 맞는 조리법일까? 서울 신라호텔 ‘콘티넨탈’의 요리사 임형택씨는 건조숙성시킨 한우 스테이크를 선보이고 있다. 2003년 그는 여러 나라 쇠고기로 건조숙성을 해봤다고 한다. 연구 목적이었다. “브이아이피(VIP)용으로는 가능하겠지만 대중적으로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메뉴화를 접었다가 올해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다시 내놓았다고 한다. 한우를 선택한 이유는 “미국산 프라임급, 호주산, 한우 등을 건조숙성시켜 맛을 평가했는데 한우가 가장 맛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미국산 프라임급 쇠고기는 배로 한국에 도착하는 데 약 14~25일이 걸린다. 그 기간엔 진공포장 상태다. 이미 “습식숙성이 어느 정도 진행된 뒤 건조숙성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잡은 직후 건조숙성이 가능한 한우가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임씨는 1~3도, 70~80%의 습도에서 8주 정도 숙성을 시킨다고 했다. 값은 부가세 별도로 18만원이다. 일반 소비자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임씨는 “우리는 전문 스테이크 레스토랑이 아니다. 프렌치 식당이다. 마니아들의 다양한 취향을 맞추려는 메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비싼 쇠고기 스테이크의 맛은 도대체 어떨까? 수년간 전세계의 레스토랑을 섭렵한 미식가로 알려진 한양대 경영학과 예종석 교수와 지난 18일 레스토랑 탐방에 나섰다. 처음 찾은 집은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더 스테이크 하우스’였다. 씨제이(CJ)푸드빌에서 운영하는 스테이크 전문점이다. 점심시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한쪽에는 작은 크기의 저장고가 보였다. ‘립아이 스테이크 미국산 프라임 400g’을 주문했다. 값은 6만2000원.(부가세 별도) “포터하우스(스테이크 가운데 T자 모양의 뼈가 붙은 티본 스테이크의 한 종류. 한쪽은 등심이고 다른 한쪽은 안심인데, 안심 쪽이 크고 두꺼운 것을 포터하우스 스테이크라고 한다) 드라이에이징이 없네요.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는 포터하우스가 적당하죠. 드라이에이징은 ‘레어’나 적어도 ‘미디엄 레어’(고기를 익히는 한 방법)로 먹어야 해요.”
스테이크는 굽는 방식도 중요하다. 겉은 바삭하고 뜨겁지만 안은 차갑고 부드러워야 잘 구워진 레어라고 한다. 예 교수는 냉정하게 평가했다. “두께가 너무 얇아요. 두툼하고 어느 정도 두께가 나와야 제대로 된 스테이크인데. 역시 예상대로 고기의 안은 차지 않네요. 지방이 너무 적은 것 같아요.”
다음으로 찾은 곳은 요즘 한창 ‘뜨는’ 강남구 청담동의 ‘더 반’이었다. 은은한 조명과 고상한 분위기가 찾는 이를 압도한다. ‘립아이 스테이크, 본리스(뼈 없는 꽃등심 스테이크) 400g’을 주문했다. 점심 가격은 4만5000원. 저녁에는 좀더 다양한 종류의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가 있다. 400~950g, 값은 6만5000~17만원.(모두 부가세 별도) “조명이 너무 어둡네요. 세계적인 스테이크 집들의 공통점은 인테리어가 화려하지 않아요. 뉴욕의 피터 루거만 해도 고상하지 않아요. 문을 연 지 120년이 넘고 자갓서베이에서 늘 1등 하는 집이지요. 스테이크는 왁자지껄 떠들면서 먹는 음식일 뿐입니다. 스테이크 레스토랑은 고급스러운 곳이 아닙니다. 미국의 경우만 봐도 펍 같은 분위기가 많아요.” 맛에 대한 예 교수의 평가가 이어진다. “이전 집보다는 두껍네요. 더 두꺼우면 좋을 텐데. 그런데 아쉽게도 고기에서 나는 향취가 거슬리네요. 고기의 안이 역시 차지 않네요.” 예 교수는 갑자기 ‘오픈 키친’에 대해 의견을 말한다. “오픈 키친이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주방의 연기가 식탁까지 오네요.” 다른 곳과 달리 수프나 빵 등이 함께 나와 식탁의 즐거움을 더했다.
비싸다고 더 맛있지는 않아요
강남구 신사동 ‘트윈 크릭스’(위 사진)로 자리를 옮겼다. 한쪽 벽을 차지한 큰 창은 떨어지는 낙엽 때문에 그림 같다. 모던한 인테리어는 캐주얼한 와인바라는 착각이 들게 한다. 한쪽 벽 저장고에 고이 누워 있는 쇠고기들이 보인다. ‘립아이 400g’(아래 사진)을 주문했다. 가격은 8만9000원.(부가세 별도) “스테이크는 소스 없이 그냥 먹어야 고기 맛을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취향 나름이긴 하지만. 고기 위에 후추가 뿌려져 있네요. 손님에게 물어봐야 하는 건데. 고기의 드라이에이징 상태와 굽기는 괜찮은 편이네요. 살짝 불 냄새가 나는 것도 풍미를 더하고.”
처음 미국산 프라임급 쇠고기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를 선보인 것으로 알려진 ‘GOO STK 528’에 대해서는 “구운 정도나 고기의 두께가 적당하다”고 말을 마쳤다.
그는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가 더 맛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모든 맛이 그렇듯 개인의 취향일 뿐이란다. 다만 가격에 대하서는 따끔한 한마디를 던진다. “유행하는 조리법이 가격을 올리는 도구로 사용돼서는 안 됩니다. 젊은이들이 돈을 모아 한번 호사를 누리기에도 너무 비싼 가격입니다. 서울의 음식값은 이미 뉴욕이나 런던보다 비싸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 식문화에 대해 한마디 덧붙인다. “새로운 식문화를 이끄는 이도 사회에서 필요합니다. 다양성이지요. 하지만 사회 전반과 어울리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신라호텔 제공
한우와 최고급 미국산, 어떤 게 나을까? 건조숙성 방식이 노씨의 말처럼 미국 프라임급 쇠고기에만 맞는 조리법일까? 서울 신라호텔 ‘콘티넨탈’의 요리사 임형택씨는 건조숙성시킨 한우 스테이크를 선보이고 있다. 2003년 그는 여러 나라 쇠고기로 건조숙성을 해봤다고 한다. 연구 목적이었다. “브이아이피(VIP)용으로는 가능하겠지만 대중적으로는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메뉴화를 접었다가 올해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다시 내놓았다고 한다. 한우를 선택한 이유는 “미국산 프라임급, 호주산, 한우 등을 건조숙성시켜 맛을 평가했는데 한우가 가장 맛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미국산 프라임급 쇠고기는 배로 한국에 도착하는 데 약 14~25일이 걸린다. 그 기간엔 진공포장 상태다. 이미 “습식숙성이 어느 정도 진행된 뒤 건조숙성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잡은 직후 건조숙성이 가능한 한우가 가장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임씨는 1~3도, 70~80%의 습도에서 8주 정도 숙성을 시킨다고 했다. 값은 부가세 별도로 18만원이다. 일반 소비자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임씨는 “우리는 전문 스테이크 레스토랑이 아니다. 프렌치 식당이다. 마니아들의 다양한 취향을 맞추려는 메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비싼 쇠고기 스테이크의 맛은 도대체 어떨까? 수년간 전세계의 레스토랑을 섭렵한 미식가로 알려진 한양대 경영학과 예종석 교수와 지난 18일 레스토랑 탐방에 나섰다. 처음 찾은 집은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있는 ‘더 스테이크 하우스’였다. 씨제이(CJ)푸드빌에서 운영하는 스테이크 전문점이다. 점심시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한쪽에는 작은 크기의 저장고가 보였다. ‘립아이 스테이크 미국산 프라임 400g’을 주문했다. 값은 6만2000원.(부가세 별도) “포터하우스(스테이크 가운데 T자 모양의 뼈가 붙은 티본 스테이크의 한 종류. 한쪽은 등심이고 다른 한쪽은 안심인데, 안심 쪽이 크고 두꺼운 것을 포터하우스 스테이크라고 한다) 드라이에이징이 없네요.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는 포터하우스가 적당하죠. 드라이에이징은 ‘레어’나 적어도 ‘미디엄 레어’(고기를 익히는 한 방법)로 먹어야 해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