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
[매거진 esc] 김어준이 만난 여자
‘후보사퇴’ 뒤 진보진로 고민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
‘후보사퇴’ 뒤 진보진로 고민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
① 지난 6·2 지방선거, 극적이었다. 노무현이 평생 이루지 못한 것들이, 노무현이 목숨을 던지고서야, 그 적자들에 의해 성취되는 장면들, 짠했다. 한명숙의 분패도, 노회찬의 곤욕도, 유시민의 실패도, 이정희의 부상도 마찬가지로 드라마틱했다. 지방선거에서 그 정도 롤러코스터, 쉬이 재현되지 않을 게다. 거기 투사됐던 감정의 규모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하긴. 그건 선거가 아니라 비명이었으니까. 이명박 시대를 하릴없이 겪어내던 이들이 각자 제 투표용지에다 대고 마침내 질러댄.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꼭 되짚어 기록해두고픈 순간이 하나 있다. 심상정의 사퇴다. 그의 사퇴는, 결사저지 당원들 덕에, 기자회견조차 없었다. 당 게시판에 성명 하나 달랑 남겼다. 그리고 이제는 그 댓글들만 당시의 격분을 전한다. “그 더러운 아가리로 진보신당을 들먹이지 마라!” 정확히 성명서 게재 2분 만에 작성된 첫 댓글의 첫 문장이다. “더 추잡한 모습 보이지 말고 자진해서 당적을 정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전부 거짓말입니다. 지금 심상정 머릿속에는 7월에 있을 은평 보궐선거 생각밖엔 없습니다.” “십수년 진보정당원으로 살아오면서 오늘같이 수치스러움은 처음입니다.” 댓글들, 그리 이어진다.
그럴 만했다. 버려진 거니까. 더구나 그 투항의 대상이 에프티에이(FTA) 정권의 경호실장, 유시민이라니. 그건 당원들에 대한 배신을 넘어 신념에 대한 변절인 게다. 그들은 그렇게 심상정에게 정치적 사망을 선고한다. 그러나 난 그날 한 정치인의 탄생을, 목격한다. 대체 이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오늘 목표는 하나다. 내가 목격했던 그 장면의 의미,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하기. 왜 굳이 그래야만 하느냐. 내 맘이다. 어쩔 건가.
② 질문은 당연히, 사퇴의 이유부터 출발했다. “국민들이 단일화하라 했으니까. 열심히 해봤지만 조연밖에 안 됐으니까.” 이게 퉁명스런 자조인지 시큰둥한 객관인지 가늠이 안 된다. 하여 애초 작정한 게 아니라 상황에 밀린 거냐고 되받았다. “아니죠. 처음부터 도지사 출마는 상책이 아니라 봤어요. 하지만 당의 요구가 강력했으니까. 그래서 나가긴 나가되 선거연합에 맞물려야 한다고 처음부터 이야기했고. 그런데 당의 전략에 많은 혼선이 있었어요.”
어떤 혼선? “당 지지율 5%가 목표였는데 그건 선거, 그 자체의 목표는 불투명했단 이야기거든요. 작은 정당일수록 작은 권력이라도 잡아 모범을 창출해야 하는데. 구청장이라든지. 그런 구체적 목표가 없었죠. 당 목표가 분명해지면 심상정의 쓰임새도 쉽게 정리가 됐을 텐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결국은 완주냐 사퇴냐 하는 것만 남아 선악의 문제처럼 돼 버렸죠.”
단일화 요구, 받겠다고 전제하고 출발했단 건가. “처음부터 노 대표와 그런 이야기를 나눴죠. 완주가 최선은 아니다. 하지만 마무리 전략을 갖지 못한 채 출발했어요.” 기왕 그리 작정한 거라면 왜 마지막까지 미뤄진 건가. “마무리 전략을 나중에 논의하기로 했는데 그 시점이 되니 당이 몰려 사퇴가 정서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분위기가 안 된 거죠.” 그래서 결국 본인이 모든 위험부담 안고 혼자 결정한 건가. “그렇죠. 그래서 당원들에게 혼이 많이 났고. 하지만 한 달 후 당내 여론조사 보니 사퇴가 옳았다는 게 다수이긴 하더군요.” 진보신당은 항상 그렇다. 결과 분석해 사퇴의 유불리를 냉정히 따질 만큼 논리적 정당인데, 사전에 그걸 말하지는 못해. 아무도.(웃음) “미리 마무리 문제를 교감해두지 못했다 보니 당원들과 축적된 공감이 너무 없었고 그래서 당원들이 화나신 건 제 업보라 생각합니다.”
노 대표와 동반사퇴는 불가능했나. 그랬어야 했단 게 아니라 그런 논의 자체가 가능은 했느냐는 질문이다. “노 대표도 정세인식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봅니다.” 노 대표가 심상정 사퇴 막지 않았나. “그것도 진실이죠.” 정세인식이 같았단 말과 상충되지 않나. 막았다면 달랐단 거 아닌가.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구요.(웃음) 저는 사퇴, 노 대표는 완주를 당의 공식방침으로 정하려 했지만 그게 굉장히 어려웠죠.” 어차피 지는 건데 당내 결속이라도 유지해야지, 잘못하면 당이 박살난다. 그런 인식? 그럼 정세분석이 다른 게 아니라 그 대처가 달랐던 건가.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죠.”(웃음) 그렇게 볼 수 없는 게 뭔가.(웃음) “전 당원 다수의 상황인식은 민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봅니다. 의사결정 구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의 견해는 달랐지만.” 그럼 그들이 당의 의지를 과잉대표 한 건가. 결국 평균 당심과 의사결정권을 가진 그룹 사이 괴리가 문제였나. “뭐 다 알면서. 제가 지금 숙려 기간이라.”(웃음)
좋다. 그럼 그때 동반사퇴해야 했다 생각하나. “그렇죠. 그게 국민들 뜻이었죠. 다만 당은 조직이라 민심과 당심을 수렴하는 과정과 절차가 있어야 하는데. 처음부터 목표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당원들과 공유했다면 막판 운신의 폭이 훨씬 넓었을 거라 봅니다.” 그럼 선거연합에서는 왜 그렇게 소극적이었나. “결국은 먹히는 거 아니냐. 그런 불신이 있었습니다. 실제 놀부 민주당의 모습을 워낙 많이 봐 왔기에. 그런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태도가 엄청난 실책이었다고 보지만.” 진보신당의 전략은 차별성을 선명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식이었다. “맞습니다. 선명성을 통해 당의 존재감을 확실히 부각시키자. 문제는 그 차별성을 국민들이 이해하느냐. 국민들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차별성, 선명성이란 건 결국 독자성으로 연결됩니다. 혼자서 가는. 하지만 진보도 국민을 위해 있는 거지 국민이 이념적 가치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닌데.”
진보진영의 큰 오산은 자신들 최대자산이 선명하고 차별화된 정책과 노선이라 여기는 거다. 실은 부채의식인데. 대중들이 진보진영에 가진. 지난 지방선거의 가장 큰 피해는 낙선이 아니라 바로 그 부채의식을 스스로 다 까먹었다는 거다. “진보적이기만 하고 정치적이지 못하면 민심을 얻을 수 없는 거죠. 말씀하신 대로 국민들이 그런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는 것, 그게 말하자면 저금인데, 그렇게 생각지 않고 내 걸 빼앗긴다 생각하죠.” 절대 공감이다. 노무현의 당선은, 그 양반이 평생 국민들 마음에 쌓아뒀던 빚을 받아간 거였다. 정치인의 당선은 그렇게 국민들 마음에 예치해둔 부채의식을 인출하는 거다. 그래서 지난 지방선거는 진보신당에 오히려 절호의 찬스였다. 국민들에게 잊을 수 없는, 빚을 지우는. 그랬다면 지금은 그 이자를 불려가고 있었을 거다. 사람들은 그런 걸 기억한다. 이념이고 나발이고 미안하니까. 반면 누가 더 선명한가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라 종교의 영역 아닌가. “제가 이렇게 표정으로 동의를 했다고 해서…”(웃음) 그런 말을 본인이 하고 싶었으나 차마 제 입으로 뱉지는 못하였다고 정리하겠다.(폭소)
이제 사퇴의 전후는 알겠다. 하지만 내가 정작 묻고픈 걸 답할 상황이 못 된다. 심상정 스타일상. 눈과 귀가 너무 많다. 아무래도 다시 만나야겠다. 주변 모두 물리치고 단둘이만. 하여 여기서 일단 유시민과 진보통합 문제로 점프했다. 유시민의 동참 없이 진보진영의 후보들끼리 단일화해봐야, 민주당이 일대일로 상대해주지 않을 거 아니냐. 그는, 진보진영이 유시민과 합치려면 “유시민이 좌클릭 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진보진영 내에서 공감대 얻기 힘들다” 했다. 해서 되물었다. 진보신당이 유시민에게 에프티에이 잘못 인정하란 요구의 뉘앙스와 태도를 보고 있자면, 정치적 성찰과 정책적 자성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회개의 통성기도를 요구하는 거지. 자신들 노선에 대한 정당성과 그동안 고초를 그렇게 정서적으로라도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는 이해 간다. 하지만 회개는 종교에서나 요구하는 거 아니냐.
“당원들 분노 중 하나가 바로 그 점이었어요. 제가 유시민에게 고개 숙이는 걸 정서적으로 감내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연대하려면, 그 정서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대한 상호 간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거죠.”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하지만 만약 진보신당이 독자를 고수한다면, 과감하게 밀고 나갈 생각이에요. 조승수 대표가 통합재편에 소극적이더라도 대의원의 결의와 당원들의 결의로 조직적 방침을 통합재편으로 밀고 가도록 할 작정이에요. 제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평생 처음 조직을 거스르며 결단한 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보신당이 국민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결의입니다.” 그렇다면 조승수 대표를 축출한다는 이야기인가.(웃음) “불순해, 불순해!(웃음) 법정 스님이 그랬죠.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을 이룬다고. 절이 만들어지기 전에 스님이 있었다는 거죠. 정치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정치인이 어떤 전망을 가지고 어떤 의지와 능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봄을 이뤄가는 겁니다. 제가 당이 움직이게 할 겁니다.”
여기서 첫번째 인터뷰가 끝났다. 그리고 이틀 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단둘이서. 지난 이야기 한참 복기하다, 심상정 사퇴하고 노회찬 완주하는 걸 공식방침으로 정하지 못했단 대목에 다시 이르렀다. 비슷한 정세판단이었음에도, 심상정은 왜 사퇴할 수 있었고 노회찬은 왜 그걸 공식방침으로 정하지 못했는가, 바로 그 대목에서 내가 그로부터 확인하고 싶은 게 있었다. 그때 노회찬 대표에게 뭐라며 사퇴한다고 했나. “민심으로 보나 우리 당이나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해서나, 이 길이 맞는데도, 당내 갈등이나 긴장을 우려해 뒷걸음질 치거나 그냥 넘어가는 우리의 태도가, 당을 더 어렵게 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또 당내 논리 때문에 그런 일을 다시 되풀이한다면, 난 더 이상 정치를 못 하겠다.” 역시. 바로 그때 그 순간이, 정치인 심상정이 탄생한 순간이다. 난 사실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어 다시 온 거다.
“그걸 알아보셨다니. 그 일로 당에서 참 많이 두들겨 맞았잖아요. 하지만 전 사실 굉장히 후련해졌어요. 전 분당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이에요. 당내 소수파로 남으려고 했던. 그런데 결국 탈당했고. 또 조기창당에도 반대했어요. 선도탈당 6000명만으로 안 된다고. 하지만 또다시 상황논리에 창당을 했고. 그렇게 항상 조직논리에 따랐어요. 그 길이 아닌 거 같은데도 불구하고. 조직이니까. 그건 동시에 노회찬 리더십에 대한 존중이기도 했고. 그런데 더 이상은 아니라고 그날 선언했던 겁니다. 그런 결단을 한 내 자신이 대견했어요. 하지만 나의 사퇴가 당과 진보정치를 위한 것이라는 걸, 그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당원들에게 주지 못한 건 제가 크게 반성하고 성찰할 일이죠. 그게 바로 리더십인데. 제 리더십의 한계였죠. 그러나 지금은 편안합니다. 앞으로의 정치에 자신이 있어요. 내가 판단하고 내 소신대로 내 길을 간다. 그 과정에서 당원들의 섭섭함은 털어낼 수 있다. 그런 확신이 생겼죠. 예전엔 어떤 자리와 역할도 당적 논리가 먼저 있고 그에 의해 거기까지 간 거였어요. 아무리 불편해도. 하지만 좋은 리더가 무엇인가. 조직 논리 뒤에 숨거나 그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당원들을 끌고 민심으로 가는 리더 아닌가. 제 정치에 대한 소명이 분명해진 겁니다. 국민들이 진보정치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보정치가 민심을 얻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러고는 자신의 집권 계획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또 그 이야기대로, 다시 하자. 오늘은 이만하면 배부르다.
③ 진보진영의 집권전략을 듣고 있자면 항상 맥이 빠지곤 한다. 그들은 내가 집권한다,가 아니라 진보세력이 집권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제까지고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는 아이처럼, 조직의 부름과 사명을 이야기한다. 스스로 권력의지를 가진 정치적 욕망의 주체가 아니라, 정치적 소명을 조직과 조직의 합의로부터 할당받아, 자발적 권력의지가 거세된 조직원으로, 기능한다. 그들은 그렇게 조직으로부터 여의도에서의 정치근로를 할당받은 파견조합원이다. 국회의원 세비 반납하고 노동자 평균임금이라며 230만원 활동비로 배당받는 발상, 그런 연유로 할 수 있는 게다. 그리고 그게 자랑인 줄 안다. 슬프다.
심상정의 사퇴를, 사망이 아니라 탄생이라 한 건 그래서다. 25년 노동운동 끝에, 조직의 조합원이 아니라, 정치적 단독자를 선언한 최초의 순간이니까. 그리고 그래서 기록해 두고 싶었다. 그가 진보진영의 대표가 되어 마침내 대권을 잡게 될지, 그래서 자신이 바라 마지않던 진보의 가치를 이 땅에서 직접 구현해 낼 수 있을지, 그건 모른다. 그러나 만약에 그런 일이 정말로 벌어진다면, 그럼 그건 바로 그 사퇴의 순간에 비로소 시작된 거라고. 난, 그리 생각한다. 이상, 기록 끝.
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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