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데스크처럼 건물 1층마다 자리잡은 카페 대신 도서관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에게도 개방했다.
[매거진 esc] 100만원짜리 의자·1층 도서관…쾌적한 사옥 NHN 그린팩토리
“냄새나는 화장실에서 양치질하기 싫어요.”
창립 10년 만에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사옥을 지은 엔에이치엔(NHN)은 사옥 짓기에 앞서 사내 설문조사를 했다. 직원들이 불편한 것과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의견을 담아 건물을 짓기 위해서다. “사내 카페가 있으면 좋겠어요” “흡연실을 없애주세요” “회의실이 부족해요” 등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상쾌하게 양치질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요구도 여기서 접수했다. 오케이! 이은재 엔에이치엔 공간경험팀 수석마케터는 “직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문손잡이 하나에도 이유가 있고, 이야기가 있고, 만족감이 들도록 건물을 짓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엔에이치엔 건물은 블로거와 방문객을 통해 ‘보기 좋고 일하기 좋은 공간’으로 빠르게 입소문이 났다. 현대카드 정태영 사장,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 등 최고경영자(CEO)들도 다녀갔다. 좋은 사옥 하면 빠지지 않는 현대카드의 정태영 사장은 “브랜드를 공간에 잘 수용한 것 같다”고 칭찬했다. 스페인·터키·미국의 정보통신 회사들도 사옥 인테리어를 벤치마킹하겠다며 찾아왔다. 구경꾼이 계속 늘면서 미술관에서 작품을 소개하듯 건물을 소개하는 ‘도슨트’(안내인)도 생겼다. ‘다녀오면 반한다’는 엔에이치엔 사옥을 지난 17일 꼼꼼히 들여다봤다.
“우린 놀면서 회의한다” 신나는 카페형 사무공간
‘지식을 생산하는 공장’이란 의미로 ‘그린 팩토리’란 이름을 붙인 엔에이치엔 건물은 지하 8층, 지상 27층으로 지어졌다. 연면적은 10만1661㎡. 올해 4월, 2800여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이곳에 입주했다. 1990년대 후반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허름한 사무실에서 네이버와 한게임을 만들어낸 엔에이치엔은 마침내 삼성동과 역삼동, 분당 일대 셋방살이 생활을 접고 새집에 둥지를 틀었다.
‘효율과 기능, 환경을 고려했다’는 그린 팩토리는 건물의 첫인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지하주차장부터 달랐다. 차를 세우고 나니 새소리가 들렸다. 새, 파도, 종소리 등 소리를 통해 층을 구별할 수 있는 ‘청각인지형 주차장’이다. 엘리베이터 단추도 ‘지하2층(B2)’이란 표시 대신 새, 종, 파도 그림 따위가 그려져 있었다.
건물 1층에는 카페 대신 책장으로 입구를 디자인한 도서관이 있다. ‘지식인의 서재’ 온라인 서비스를 하는 네이버답게 오프라인 공간에 만든 서재다. 주로 정보통신 분야와 디자인 관련 서적이 놓인 이곳은 직원과 주민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은재 수석마케터는 “책을 모으는 도서관이 아니라 책을 편히 보는 도서관이 콘셉트”라고 설명했다.
4층은 공원을 테마로 해 전층을 카페로 사용한다. 직원들이 카페에서 회의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회의실 기능을 겸해 카페 공간을 크게 만들었다. 레고 테이블에 앉아 블록 쌓기만 하고 소파에 퍼지고 앉아 수다만 떠는 것처럼 보여도 직원들에게 눈치 주는 이들은 없다. ‘10시 출근, 자유복장’을 실천한 직장답게 자유로운 모습이다.
27층은 가장 높은 곳이다. 최고층은 보통 경영진의 차지지만 그린 팩토리는 직원들을 위해 사용한다. 다양한 형태의 회의실과 샐러드바를 갖추고 먹으면서 회의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공간이다. 오후 4시 반께 회의실에선 떡볶이와 튀김을 간식으로 먹는 직원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의실이 있다지만 4층과 27층, 두 층을 전부 카페테리아로 사용하는 게 낭비는 아닐까? “사무공간은 직원들이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해요. 집처럼 편한 회사를 만들어놓으니 주말에도 회사에 오는 직원이 늘었어요. 처음에 건물 지을 때만 해도 환경미화 할 돈으로 월급을 올려달라는 얘기도 들렸는데 막상 일하는 공간이 좋아지니 반응이 달라졌어요.”(이은재 수석마케터)
레고놀이·수다떨기 삼매경에도 눈치 안 봐
노는 공간이 확실한 만큼 일하는 공간의 공간 인테리어도 야무지다. 전면이 유리로 된 건물엔 초록색의 전동 ‘루버’(폭이 좁은 판을 일정 간격을 두고 배열한 것)를 달아 햇빛으로 인한 눈부심을 방지했다. 모니터를 항상 사용해야 하는 인터넷 회사에 알맞은 장치이면서 건물 외관에 색을 입히는 디자인적 요소다. 업무 환경이 바뀌면서 가구도 교체했다. 인체공학 설계로 몸에 착 달라붙어 편안한 ‘허먼 밀러 에어론’ 의자가 모든 직원들에게 제공됐다. 개당 100만원이 넘는 ‘명품’ 의자를 선택한 건 온종일 앉아 일하는 직원들을 위한 선택이었다. 사무공간이 있는 층에는 정자 개념의 ‘하이브’라는 공간을 마련했다. 광장 구실을 하는 이곳에서 직원들은 쉬고 회의하며 서로 소통한다.
업무 효율을 높인다면 못해줄 게 없다. 화장실과 분리된 양치 공간인 ‘치카치카룸’은 남이 볼일 보는 공간에서 이를 닦는 게 불편하다는 직원들의 얘기를 반영해 탄생했다.
환경과 건강 챙기는 똑똑한 아이디어
그린 팩토리는 좋은 디자인은 비쌀 것이라는 편견을 깬다. 친환경 기업임을 알리는 겉치레적인 기술을 도입하기보다 쓸모없는 소비를 줄이고, 빌딩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환경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는 공간이 되도록 꾸몄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환경과 직원 건강을 챙기는 인테리어가 완성됐다.
우선 사무실 바닥에 카펫 대신 나무를 깔아 먼지를 줄였다. 눈의 피로를 줄이는 간접조명을 천장에 설치하는 대신 책상마다 개인스탠드를 놓았다. 필요 없는 공간까지 불이 켜지는 것을 막을 수 있어 조명 전력량이 연간 10% 줄었다. 카페 앞에는 머그컵을 걸 수 있는 머그월과 컵을 씻을 수 있는 개수대를 마련했다. 2800여명의 직원이 하루에 한번씩 카페를 이용할 경우 쏟아질 2800여개의 일회용컵 사용을 줄일 수 있었다.
카페테리아 공간에서는 재활용의 흔적도 보인다. 선적용 나무상자를 테이블로, 커피 원두가 담겼던 자루는 커튼으로 이용하는 식이다. 함께 사옥을 돌아본 건축가 이현욱씨는 “환경적인 것이 경제적인 것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그린 팩토리에만 있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또 있다. 건물 안 비상계단이다. 보통 계단은 철문으로 가려놓는데 이곳은 유리문으로 환하게 드러냈다. 직원들의 계단 사용을 권장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세계 각국의 유명 공원과 숲을 주제로 그림이 그려진 계단은 산책하는 느낌을, 칼로리 소모량을 적어놓은 계단은 걸을수록 날씬해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7층까지 오르면 계단당 110㎈씩 9만5370㎈를 소모할 수 있다. 설문조사 결과 하루 1시간도 걷지 않는다는 직원들을 위한 숨은 배려다.
‘꿈의 직장’ 구글과 비교해도 있을 건 다 있는 것 같은 그린 팩토리에도 없는 것이 있을까? 이제 웬만한 기업에는 다 있는 수면실과 피트니스센터가 여긴 없다. 이유는? “사무공간에서 먹고 자고 일만 하지 말고 밖에서 개인생활도 즐기게 하기 위해서”란다. 아예 한달에 한번은 오후 5시에 퇴근해 빨리 나가서 놀라는 ‘오아시스 제도’도 이런 이유에서 나왔다.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디자인이 사무공간을 바꾸니 직원들의 복지제도도 덩달아 바뀌었다.
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사진 제공 엔에이치엔
안내데스크처럼 건물 1층마다 자리잡은 카페 대신 도서관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에게도 개방했다.
걸으면 날씬해질 것 같은 운동 장소로 꾸민 비상계단.
사무공간이 있는 층마다 만들어진 회의실 겸 다과실, ‘하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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