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양파수프
[매거진 esc]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언제부터 음식과 인연을 맺었을까? 10년 전이다. 당시 경제주간지에 ‘밤참’이라는 요리 연재를 시작했다. 벤처 붐이 한창이던 시절이다. 늦은 밤까지 일하는 아이티업체 직원들을 위한 연재였다. 요리는 ‘내 마음대로 야밤에 마구 먹고 싶은 것들’로 했다. 당시에는 기상천외했다. ‘콩가루 비빔밥’, ‘파 참치 다타키’ 같은 것은 평범했다. 그중에서 라면은 참 요긴한 재료였다. 때로 우유와 뒹굴고 북어와도 한 몸이 되었다. 삶은 국수로 쌈을 만들고, 명란을 튀겼다. 구운 두부에 치즈를 올리고 떡볶이용 떡을 둥둥 과일 화채 위에 뗏목처럼 띄웠다. 요리의 끝은 지옥과 천국을 오고 갔다. 매주 목요일 밤, 왕창 만든 음식을 마감 때문에 예민한 부엉이로 변한 동료 기자들에게 배달했다. 시식을 한 동료들은 냉정했다. 평가는 별점과 함께 지면에 올랐다. ‘별 2, 우리는 개나 소가 아니다’, ‘별 3, 오묘한 첫사랑의 맛이로군’, ‘별 4, 이번엔 먹을 만하다’ 등 처절하게 비굴한 야식배달이었다. 요리의 내용보다 평가가 독자들에게 더 인기였다. 어쨌든 시작은 이랬다. 이 일은 ㅇ이 없었다면 힘들었다. 그는 회사 앞에서 자취를 했다. 흔쾌히 매주 목요일 밤마다 부엌을 내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그런 ㅇ에게 한번도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다. 훌쩍 그가 경제지로 옮긴 후에 바람결에 소식을 접하고 염려하고 걱정하는 정도로 위안을 삼았다. 최근 그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경제지에 있으면서 사내 벤처처럼 만든 ‘이로운몰’이라는 회사를 독립시켰다고 한다. ‘이로운몰’은 사회적기업을 지향하는 벤처다. 대표로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늘 애처로운 ㅇ이다. 몸무게가 50㎏도 안 될 정도로 얇은 몸에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체구를 가졌다. 밤마다 살을 찌우기 위해 일부러 초콜릿을 한통씩 먹었던 이다.
오랜만에 늦은 밤 그리워서 통화를 했다. “언니, ‘우리 당장 만나’ 할까요?”라고 그가 웃으며 말한다. 가수 장기하 버전이다.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나랑 밥 먹을래요’를 할 요량이었다. “뭐 좋아해?” “삼계탕, 토마토나 양파수프” 옳다구나! 그를 위한 ‘밤참’을 해주리라! 요리명은 ‘내 마음대로 닭가슴살 양파수프’가 좋겠다. 다시마로 우린 고운 물에 잘게 썬 양파를 넣고 한동안 끓이다가 이미 익혀둔 닭가슴살을 쪽쪽 찢어서 넣은 수프를 만들어야겠다. 간은 소금 대신 간장을 쓰자. 간장은 200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는 논산 교동 간장을 아주 살짝 넣어야겠다. 양파는 건강과 미식의 즐거움을 함께 선사해주는 먹을거리다.
단맛과 매운맛을 모두 가지고 있어 인생 같은 채소다. 오래전부터 인기도 많았다. 19세기, 미식의 도시로 유명한 프랑스 리옹의 향토음식에는 양파가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양파는 햇볕을 많이 받을수록 굵기가 커지는 ‘해’바라기다. 굵은 양파를 재료로 쓰면 ㅇ이 그만큼 햇볕을 많이 담게 되는 것일까! 햇볕을 충분히 받아 잘 자란 나무처럼 그도 튼튼했으면 좋겠다. 좀 이상한 논리긴 하다! ㅇ이 매기는 별점이 궁금해진다.
mh@hani.co.kr
박미향 기자의 ‘나랑 밥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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