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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카메라

등록 2010-11-04 13:56수정 2010-11-07 09:42

틸트 기능을 장착한 35mm 카메라로 찍은 거리(류찬샘)
틸트 기능을 장착한 35mm 카메라로 찍은 거리(류찬샘)
[매거진 esc] 세상에서 하나뿐인 자신만의 카메라를 만드는 사람들
대학생 류찬샘(25)씨는 지난 5월 에스엘아르클럽에 글을 하나 올렸다. 그날 류씨는 깜짝 놀랐다. 예전에는 댓글이 한두개 달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날은 댓글이 40개 이상 달리고 클릭 수가 1만건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사진 애호가들 사이에서 갑자기 유명해졌다. 도대체 무슨 글일까?

그는 자신이 직접 개조한 렌즈 제작기를 올렸다. 수동초점(MF) 렌즈를 자동초점(AF) 렌즈로 개조한 사연과 만드는 과정, 실패담이 누리집을 달궜다. 실패담은 눈물겨웠고 완성된 렌즈는 고풍스러우면서 세상에서 유일한 렌즈라는 지위를 얻었다. 그야말로 ‘나만의 렌즈’가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수동초점 렌즈를 자동초점 렌즈로 개종한 사람

디아이와이(Do It Yourself·스스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가 의류나 액세서리, 가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의 세상에서도 시작되었다.

렌즈를 개조한 것이 류씨의 첫 작업은 아니다. 사진 안에 예쁜 보케(일명 빛망울. 사물의 피사계심도가 얕아지면서 초점이 흐려지면, 피사체가 원모양으로 뭉개지면서 빛망울처럼 보이는 현상)를 넣는 장치부터 만들었다. 종이를 잘라 하트모양을 만들어서 렌즈 앞에 붙이고 사진을 찍었다. 보케는 생겼지만 사진의 화질이 떨어지고 주변부가 찌그러지는 현상이 생겼다. 개선하기 위해 카메라 내부에 있는 조리개 앞에 하트모양의 구멍을 낸 은박지를 붙였다. f2.8로 조리개 구경이 활짝 열었을 때만 장착이 가능하다. 독특하고 예쁜 사진이 만들어졌다. 그는 무선동조기 제작에도 나섰다. 여러 개의 플래시를 동시에 터뜨려서 사진을 찍을 때 무선동조기는 꼭 필요하다. 그는 자신이 쓰고 있는 무선동조기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무선동조기는 스튜디오용으로 제작되어 류씨처럼 야외에서 사진을 많이 찍는 이들에게는 동조 거리가 짧고 출력이 약하다는 불편을 안겨주었다. 그는 동조기를 뜯어 칩의 주파수를 알아냈다. 주파수가 맞는 안테나를 제작해서 동조기에 부착했다. 플래시의 발광 정확도가 높아지고 동조 거리가 10배 확장되었다. 꼬박 하루 걸렸다. 안테나 부품들은 종로나 용산 등지의 전자부품 가게에서 구했다.


하트모양의 보케가 만들어진 사진(류찬샘)
하트모양의 보케가 만들어진 사진(류찬샘)
류씨는 ‘링 돌리는 맛’이 있는 수동초점 렌즈를 좋아하지만 행사사진 같은 빠른 촬영이 필요할 때는 자동초점 렌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맺히는 상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렌즈가 앞뒤로 움직이면서 이루어지는 원리”라는 생각에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삼성카메라 NX10에 부착된 30㎜ 자동초점 렌즈에서 자동초점 기능의 모듈을 떼어냈다. 손톱보다 작은 나사를 돌려 꼼꼼하게 작업을 했다. 자동초점 어댑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니콘 85㎜(f1.4)와 캐논 58㎜(f1.2)와 슈나이더 25㎜(f1.4) 렌즈에 차례로 부착해서 테스트했다. 사진 촬영은 순조로웠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그는 로커클럽(www.rokkorclub.net)에서 개조할 렌즈를 주로 구입했다. 개조기에 반한 동호회 회원이 무료로 카메라 몸체와 렌즈를 제공하기도 했다.


수공 필름카메라로 찍은 풍경(현광훈)
수공 필름카메라로 찍은 풍경(현광훈)
그의 도전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는 틸트(tilt, 카메라 축에 카메라가 고정된 상태에서 위아래 수직으로 움직이는 것)가 되는 35㎜ 렌즈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틸트는 대형 카메라(4×5인치 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에서 초점을 맞출 때 주로 사용하는 기능이다. 35㎜ 렌즈 중에도 틸트 기능이 있는 것이 있지만 가격은 사진 애호가가 탐을 내기에는 턱없이 비싸다. 그는 시디롬 드라이브를 뜯어서 바늘 구실을 하는 광학장치를 틸트 모듈로 활용했다. 이 모듈을 장착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몽환적이다. 그는 요즘 동영상 카메라의 렌즈를 활용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렌즈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내침김에 300대까지 자기 카메라 만든 사람

류씨와 같은 이들이 많다. 홍익대 금속조형디자인과 대학원생인 현광훈(30)씨는 아예 자신의 카메라를 만들었다. 시작은 미약했지만 결과는 창대했다. 그는 대학 3학년 때, 과제로 직접 제작한 핀홀카메라(렌즈 대신 바늘구멍, 즉 핀홀로 사진을 찍는 카메라)를 제출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종이로 만든 핀홀카메라를 생각할 때 그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금속으로 완성했다. 손바닥만한 크기였다. ‘obscura I’이라는 이름도 달았다. 재미가 생겼다. 2005년 군대를 다녀와서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코닥의 창업자, 조지 이스트먼이 따로 없다. 초창기 작업은 주로 적동이나 백동, 은을 오리고 붙여서 카메라 몸체를 만들었다.
다양한 모양과 기능을 갖춘 수공 필름카메라(현광훈).
다양한 모양과 기능을 갖춘 수공 필름카메라(현광훈).
두께가 1.2~1.6㎜의 금속이었다. 용접을 하면서 밤을 새웠다. 카메라 한 대당 한 달의 시간이 걸렸다. 만들다 보니 렌즈가 달린 제대로 된 카메라가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금속으로 만든 카메라 몸체에 셔터와 조리개 기능을 넣기 시작했다. 그는 “(셔터의) 누르는 기능과 (조리개)의 조이는 기능”을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렌즈가 문제였다. 렌즈는 폐품이 되어버린 구형 카메라의 렌즈를 사용했다. 몸체에서 빼서 제작한 카메라에 붙였다. 보이트클럽(www.voigtclub.com)이나 로커클럽에서 폐렌즈를 주로 구입했다. 가격은 5만~10만원 선이었다. 그가 만든 카메라는 일반 카메라와 비교해서 기능과 내구성 등이 차이가 없다. ‘나만의 카메라’라는 점이 큰 장점이 되었다. 그는 조금씩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몸체의 재질을 티타늄이나 알루미늄으로 바꾸고 금속판을 오리고 붙이는 대신 금속 덩어리의 안을 팠다. 을지로의 한 정밀기계 주인에게서 여러 가지를 배우면서부터다. “2~3개월 꼬박 아저씨 옆에서 어깨너머로 배웠어요. 함께 연구하기도 했죠. 그분도 카메라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어요.” 현씨는 명품을 만들고 싶었다. “가구도 이음새가 있는 것보다는 덩어리에서 출발한 것들이 명품 반열에 오르죠.”


대량 생산한 수공 필름카메라 300대(현광훈)
대량 생산한 수공 필름카메라 300대(현광훈)
스프링, 기어 등 각종 부품을 세밀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23대를 만들었다. 그중에서 50%는 핀홀카메라고, 나머지는 렌즈가 달린 카메라들이다. 2008년에는 대량생산을 하기도 했다. 한 디자인회사에서 기념품으로 현씨의 카메라를 주문한 것이다. 한 종류의 필름카메라를 300대 만들었다. 한 대당 30만원에 팔았다.

그의 수공카메라가 소문이 나면서 전시 요청도 이어졌다. 올해까지 12번이다. 마치 예술작품이 팔리듯이 사진 애호가에게 팔렸다. 250만원에 팔린 것이 가장 비싸게 판 카메라다. “그 카메라는 렌즈가 조금 비싼 것이었죠.” 그의 새로운 시도는 계속될 예정이다.

사진 관련 누리집을 여행하다 보면 이들 같은 장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불편함을 스스로 해결하는 일은 사진의 또다른 즐거움을 안겨준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사진제공 류찬샘·현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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