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백화점(본점)의 한 속옷 매장에서 란제리 피팅 컨설턴트와 함께 속옷 피팅을 해보는 손님.
[매거진 esc] 화려해진 속옷 피팅룸…컨설턴트가 만지면서 골라주는 속옷 입기
“제가 가슴을 만져도 될까요?”
“네? 아…그러세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풀어헤친 가슴을 보여주는 것도 민망한데 만진단다.
“등을 앞으로 좀더 숙여주시고요. 가슴을 이렇게 (손으로 쥐고 밀어올리며) 옆에서 위로 쓸어올린 뒤 끈을 조절하시면 돼요.”
“아…네.”
속옷 피팅룸에서 거울을 앞에 두고 ‘란제리 피팅 컨설턴트’(이하 컨설턴트)와 토론을 벌인다. 가슴의 모양과 크기에 대해 초면인 사람과 이렇게 진지하게 얘기를 나눌 줄 몰랐다. 올가을 신상품인 와인색 브래지어를 걸친 가슴은 컨설턴트의 손을 거치니 혼자 입어봤을 때는 없던 가슴골이 생겼다. 란제리 브랜드 ‘에블린’의 이경화 컨설턴트는 “올바른 속옷 착용법만 알아도 가슴선이 달라진다”며 속옷 피팅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공주방·놀이공간이 된 속옷 피팅룸
최근 속옷 브랜드들은 제품을 구입할 때 반드시 입어보고 구입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판매자인 브랜드로서는 정확한 치수를 입은 고객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환불과 교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 입장에서도 딱 맞는 속옷의 만족감을 알게 되면 직접 속옷을 입어보지 않고는 구매하지 않게 된다. 직장인 김정은(33)씨는 최근 신혼여행 때 입을 속옷을 사려고 백화점에 갔다 자신이 알고 있던 속옷 치수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혼할 때가 돼서야 제 사이즈로 산 속옷들이 왜 불편했는지 알게 됐다”는 그는 “정확한 사이즈의 속옷을 직접 입어보지 않았다면 평생 브래지어는 불편한 것이란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속옷을 입어보고 사는 게 아직은 생소하다는 이들이 있지만 속옷 매장에 피팅룸이 생긴 지 벌써 20여년이 됐다. 비비안 홍보팀 이정은씨는 “속옷 피팅룸은 1990년대 후반부터 백화점을 중심으로 고가의 브랜드에만 있었으나 이제는 중저가 브랜드의 로드숍에도 만들어질 만큼 이용객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약 4년 전부터는 단순한 탈의실 개념을 떠나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를 강조한 피팅룸이 등장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본점)의 비비안 매장은 공주풍 방으로 피팅룸을 꾸몄다. 붉은 레이스 커튼과 거울로 꾸며진 방은 소파가 놓인 대기실도 따로 갖출 만큼 넓고 화려하다. 이 매장의 양경희 매니저는 “피팅룸 이용객들이 다양해지면서 생긴 변화”라며 “요즘 젊은 고객들은 누가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는 것보다 자기만족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잘 꾸며진 피팅룸이 매출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고객들이 피팅룸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제품 판매량도 늘었다. 에블린 홍보 담당자는 “매장 방문객 중 70% 이상이 피팅 체험을 해보고 이 중 90% 이상이 체형에 맞게 착용해본 제품을 구매한다”며 피팅룸의 효과를 설명했다.
속옷 피팅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놀이공간처럼 피팅룸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컨설턴트의 도움이 필요없다며 커플끼리 피팅룸에 들어가기도 하고, 친구들 여럿이 패션쇼를 하듯 피팅을 하기도 한다. 양경희 매니저는 “요즘 젊은 여성들은 같이 온 남성에게 속옷 입은 모습을 보여주고 ‘오케이’ 사인을 받아야 제품을 구매한다”며 “남성들이 속옷 매장 밖에서 서성이던 모습은 옛날 일”이라고 말했다.
외국인과 달리 컨설턴트와 함께 해보는 속옷 착용을 여전히 불편해하는 한국인들을 위해선 피팅 방법도 단계를 거친다. 첫째는 말로 설명하기. 컨설턴트는 줄자를 이용해 고객의 정확한 치수를 재주고 평소 고객이 즐겨 입는 제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뒤 고객이 고른 제품을 피팅룸에서 혼자 착용해보도록 한다. 둘째는 간접 스킨십이다. 속옷 피팅룸에는 벨이 있어 컨설턴트를 피팅룸 안으로 호출할 수 있다. 보여주는 것은 참을 수 있으나 닿는 건 불편해하는 고객을 위해 컨설턴트는 고객의 손을 이용해 속옷 매무새를 다듬어준다. 셋째는 직접 스킨십, ‘손 빌리기’다. 말로 설명해서 안 되는 답답한 부분이 컨설턴트의 손을 거쳐 해결된다. 이경화 컨설턴트는 “사전에 많은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처음엔 부끄러워하던 분들도 금세 적응한다”고 말했다.
컨설턴트는 올바른 속옷 착용법 외에도 고객에게 어울리는 맞춤형 제품도 알려준다. “가슴을 성형한 분이나 임산부는 가슴을 압박하는 와이어가 든 제품보다 커진 가슴을 힘 있게 지지해주는 부드러운 소재의 브래지어를, 체형 보정이 필요한 40~50대 여성들에게는 올인원 같은 기능성 제품을 권해드려요.”(양경희 매니저)
고객들의 요구는 하나 ‘모아주고 올려달라’
연령, 취향, 체형은 다르지만 고객들이 컨설턴트에게 바라는 요구는 하나다. 가슴을 모아주고 올려주는 제품을 찾아달라는 것. 얼굴보다 몸매가 더 강조되는 시대에 맞게 가슴에서 자신감을 찾고 싶어하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이때마다 컨설턴트들은 속옷을 잘 입는 게 방법이라고 말한다. 정확하게 맞는 사이즈의 속옷을 입으면 체형 보정도 되고 겉옷의 맵시도 살릴 수 있다. 속옷 잘 입는 방법도 어렵지 않다. 브래지어의 경우, 어깨끈을 걸친 후 몸을 앞으로 숙여 가슴을 모아 훅을 잠근다.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서 모양을 잡은 뒤 어깨끈은 손가락이 두 개 정도 들어갈 만큼으로 조절한다. 끈이 헐거우면 컵이 뜨기 마련인데 끈 조절 없이 입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결혼 성수기인 요즘, 속옷 피팅룸을 가장 바쁘게 들락거리는 이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들이다. 신혼여행을 위해 평균 3~5세트씩 속옷을 사가는 이들에게도 컨설턴트의 손길이 필요하다. 컨설턴트가 신부에게 추천하는 제품은 보통 ‘베이식(살구색과 흰색), 섹시, 큐티, 로맨틱’ 제품군을 골고루 갖고 가는 것이다. 뷔스티에, 코르셋, 슬립 등 평상시엔 잘 입지 않는 속옷은 ‘특별한 밤’을 위한 필수품이 돼가는 중이다. 이경화 컨설턴트는 “신혼여행 일정에 맞춰 챙겨 가는 속옷들은 더 야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첫날밤에는 순결·정절의 의미를 담은 흰색과 분홍색 속옷들을 선호한다”고 귀띔했다.
신민아·신세경 등 청순글래머가 뜨는 요즘 이들이 광고하는 제품을 구매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운동이나 다이어트로 해결되지 않는 몸매에 대한 환상은 모델과 같은 제품을 입으면서 채워진다. 피팅룸 거울을 다시 본다. 거울에 비친 가슴골을 보니 괜히 어깨가 펴진다. 레드카펫 위의 김혜수가 부러우랴. 속옷 매장은 이제 쇼핑 공간이 아닌 여성들의 로망을 채워주는 공간이 되고 있다.
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최근 속옷 브랜드들은 제품을 구입할 때 반드시 입어보고 구입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판매자인 브랜드로서는 정확한 치수를 입은 고객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고 환불과 교환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 입장에서도 딱 맞는 속옷의 만족감을 알게 되면 직접 속옷을 입어보지 않고는 구매하지 않게 된다. 직장인 김정은(33)씨는 최근 신혼여행 때 입을 속옷을 사려고 백화점에 갔다 자신이 알고 있던 속옷 치수가 틀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혼할 때가 돼서야 제 사이즈로 산 속옷들이 왜 불편했는지 알게 됐다”는 그는 “정확한 사이즈의 속옷을 직접 입어보지 않았다면 평생 브래지어는 불편한 것이란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자인이 예쁜 속옷보다 자신의 체형에 맞는 속옷을 입는 게 중요하다.
디자인이 예쁜 속옷보다 자신의 체형에 맞는 속옷을 입는 게 중요하다.
뷔스티에·가터벨트 같은 속옷은 입는 방법이 까다로워 구매 전 속옷 피팅룸에서 미리 입어볼 필요가 있다.(에블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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