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패션잡지 <에스콰이어>의 패션디렉터 심정희(34)
[매거진 esc]
‘스타일 나라의 앨리스’ 펴낸 ‘에스콰이어’ 심정희씨 인터뷰
‘스타일 나라의 앨리스’ 펴낸 ‘에스콰이어’ 심정희씨 인터뷰
패션에디터는 여성들의 ‘꿈의 직업’ 중 하나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 해서웨이나 드라마 〈스타일〉의 김혜수처럼 명품을 걸치고, 브런치를 즐기며, 밤에는 셀레브리티들과 파티를 즐길 것 같은 환상이 깃든 직업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곳에서 누구보다 앞서 유행을 내다보며 사는 것, 근사하지 않은가. 그런데, 현실도 근사할까.
남성패션잡지 〈에스콰이어〉의 패션디렉터 심정희(34) 에디터가 책 〈스타일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패션에디터의 생활을 공개했다. 패션에 무관심한 패션방관자에서 청담동 패션제국의 패션에디터가 되기까지 그의 스타일 성장기를 읽다 보면 ‘에지 있게’ 사는 사람들의 빛과 그늘이 보인다. 각종 종이매체와 방송을 통해 국내에선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만큼이나 유명한 심 에디터에게 패션에디터의 삶과 스타일 있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패션에디터가 된 지 만 10년 됐다. 첫 단행본(사진 아래)을 낸 소감은? “새벽에 찬물 떠놓고 기도하는 심정이랄까. 자식 같은 책을 세상에 내놓고 나니 잘 팔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서점 갈 때마다 눈에 띄는 곳에 몰래 책을 올려두고 온다.(웃음) 누구나 쓰는 스타일 실용서 같은 책 말고 스타일에 관심 없는 사람도 재밌게 읽고 감동받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
트위터 자기소개 글이 “한때는 모범생, 요즘 모토는 상큼발랄 된장”이더라. 패션방관자였다면서 패션에디터가 된 이유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던 대학생 시절엔 늘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다니며 똘똘한 아이들은 치장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스타일리스트 어시스턴트로 패션 화보 촬영현장의 재미(예쁘고 흥미로운 것만 모여 있음)를 맛보면서 이 일에 빠졌다. 잡지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길 즐기던 것도 영향을 줬다.” 그는 남들이 도서관에서 고시 공부 할 때 당당히 패션잡지를 펼치고, 패션용어사전을 외웠다고 책에 썼다.
패션에디터로 살다 보면 그 직업에 맞는 외피를 가꾸느라 힘들지 않나? “패션에디터에겐 된장녀와 근로자의 삶이 반씩 섞여 있다고 종종 말한다. 에디터는 바닥에 무릎 꿇고 앉아 모델에게 신발을 신기는 순간에도 멋있어 보여야 한다. 패션업계에서는 에디터들이 드라마 〈스타일〉의 김혜수처럼 되길 바란다. 일을 잘하려면 나를 꾸미는 것도 중요하다. 이게 무슨 일이냐 싶겠지만 네일케어나 피부 마사지를 받는 것도 엄연한 일이다.”
패션에디터들은 명품을 휘감고 다닐 것 같은 편견이 있다. “처음 패션에디터가 됐을 때,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존재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려면 명품이 필요하다고 여겨 카드도 좀 긁었다.(웃음)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라. 드라마 속 김혜수처럼 멋지고 이상적인 에디터 모습은 어렵다는 걸. 후배들에게도 명품으로 몸을 휘감는 걸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말라고 조언한다. 내 존재감은 명품으로 휘감을 때가 아니라 내 일을 멋있게 해낼 때 생기더라.” 패션에디터로 사는 게 싫증난 적은 없나? “내가 소비를 부추기고 조장하는 사람인 것 같아 회의가 든 적은 있다. 그러나 똘똘한 척 외모를 꾸미지 않던 대학생 때보다 외모도 꾸미며 즐겁게 일을 하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는 걸 자각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무엇보다 열정적인 사람들, 늙지 않는 사람들, 깨어 있는 사람들과 일하는 게 즐겁다. 한 번도 월요일에 회사 가기 싫은 날이 없었다.(웃음) 회사 갈 때마다 오늘은 무슨 재미난 일이 있을까 늘 기대한다. 남보다 앞서 좋고 아름다운 것을 보는 일이 재밌고 자극적이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다.” 직업병처럼 스타일로 사람의 가치를 따지게 되진 않나? “사람을 만나면 스타일을 살펴보긴 한다. 가치를 따지려는 게 아니라 명함지갑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의 생활, 습관, 취향을 엿볼 수 있어서다.”
도대체 스타일이란 뭘까? “스타일은 그 사람을 알게 하는 첫번째 관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남이 좀더 잘 듣게 할 수 있는 도구, 정확하게 표현할 수도 있게 돕는 도구다. 나를 자신있게 하는 삶의 양념이랄까. 다른 사람이 나를 파악하게 하는 첫번째 단서이기도 한 만큼 나를 보여줄 때와 위장할 때 꼭 필요하다. 따라서 외모를 가꾸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가꾸지 않는 사람이 게으르다는 말은 틀리지만, 게으른 사람이 가꾸지 않는 건 맞는 말 같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건 말투나 표정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영어 공부에 신경쓰듯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하다.”
스타일에 관심이 있으나 방법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조언을 해준다면? “첫째, 사람들은 생각만큼 남에게 관심 없다. 나도 종아리 때문에 치마를 못 입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안 보더라. 둘째, 관심 있는 사람은 내 약점을 봐도 좋아한다. 내 적은 내 굵은 종아리에 적의를 품는 이다. 셋째, 내가 즐거우면 되는 거다. 하고 싶은 대로 입어라.”
앞으로의 계획은? “콤데가르송(일본 유명 패션브랜드)의 디자이너 가와쿠보 레이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에게 기자들이 쓰는 쇼 리뷰를 읽느냐고 물었더니 읽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유인즉슨 기자가 쓰는 리뷰는 내 쇼를 바탕으로 하지만 실은 쇼보다는 그 기자의 기존 지식이나 교양을 가지고 쓰는 것이라 그 얘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에 기자로서 울컥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때 세상 그 어떤 오만한 디자이너도 귀 기울일 수 있는 멋진 기자가 되자고 결심했다. 미국 여성들의 옷장을 바꿨다는 칭송을 듣는 〈하퍼스 바자〉의 유명 패션저널리스트 다이애나 브릴랜드처럼 내가 하는 말도 모두가 신뢰할 수 있도록 유명한 기자가 되고 싶다. 그때 〈앨리스, 편집장 되다〉란 책도 내고 싶다.(웃음)”
‘esc’ 엔터테인먼트면에 ‘아이돌 보기’란 새 칼럼을 10월부터 연재한다. 아이돌 의상 품평기의 꼴을 갖추는 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건가? “대중의 관심이 높은 아이돌을 재료로 스타일에 대한 수다를 떨 계획이다. 단순히 옷을 잘 입었다 못 입었다가 아니라 아이돌 의상을 통해 우리의 스타일이 다양해지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고 싶다. 궁극적으로 이 칼럼에서 중요한 건 아이돌이 아니라 우리다. 독자와 내가 옷차림에 관한 새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글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패션에디터들은 명품을 휘감고 다닐 것 같은 편견이 있다. “처음 패션에디터가 됐을 때,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내 존재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려면 명품이 필요하다고 여겨 카드도 좀 긁었다.(웃음)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라. 드라마 속 김혜수처럼 멋지고 이상적인 에디터 모습은 어렵다는 걸. 후배들에게도 명품으로 몸을 휘감는 걸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말라고 조언한다. 내 존재감은 명품으로 휘감을 때가 아니라 내 일을 멋있게 해낼 때 생기더라.” 패션에디터로 사는 게 싫증난 적은 없나? “내가 소비를 부추기고 조장하는 사람인 것 같아 회의가 든 적은 있다. 그러나 똘똘한 척 외모를 꾸미지 않던 대학생 때보다 외모도 꾸미며 즐겁게 일을 하는 지금이 더 행복하다는 걸 자각하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무엇보다 열정적인 사람들, 늙지 않는 사람들, 깨어 있는 사람들과 일하는 게 즐겁다. 한 번도 월요일에 회사 가기 싫은 날이 없었다.(웃음) 회사 갈 때마다 오늘은 무슨 재미난 일이 있을까 늘 기대한다. 남보다 앞서 좋고 아름다운 것을 보는 일이 재밌고 자극적이다 보니 지루할 틈이 없다.” 직업병처럼 스타일로 사람의 가치를 따지게 되진 않나? “사람을 만나면 스타일을 살펴보긴 한다. 가치를 따지려는 게 아니라 명함지갑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의 생활, 습관, 취향을 엿볼 수 있어서다.”
“패션에디터, 된장녀와 근로자의 중간 어디쯤”
남성패션잡지 <에스콰이어>의 패션디렉터 심정희(34)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