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요리 전문점인 시추안하우스의 ‘비프 마라탕’.
[매거진 esc] 신길동 매운짬뽕·시추안하우스 마라탕 등 매운 요리의 진수들
매운 음식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어디까지일까?
외국인들의 눈에 한국은 ‘청양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유난히 매운맛에 탐닉하는 나라’로 보이지만, 사실 나라별 고추 품종을 비교해보면 명함을 내밀기가 부끄러운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고 수류탄 재료로도 쓰인다는 인도산 ‘부트 졸로키아’의 스코빌척도(SHU)는 100만이다. 스코빌척도란, 매운 정도를 표시하는 지수로 한국의 청양고추가 1만스코빌이니 부트 졸로키아는 청양고추보다 100배 매운 셈이다. 2위는 방글라데시의 ‘도셋 나가’라는 고추로 스코빌지수가 88만에 이른다. 3위는 멕시코의 ‘아바네로’로 2007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매운 고추’로 기네스북에 올랐지만 바로 ‘부트 졸로키아’와 ‘도셋 나가’에게 밀려났다. 하지만 부트 졸로키아 역시 올해 들어 1위 자리를 새로운 고추 품종에 내주게 됐다. 지난 4월에 영국에서 개발된 ‘인피니티’의 스코빌지수는 무려 106만으로, 이름도 ‘끝없이 무한대로 맵다’는 뜻에서 그렇게 지어졌다.
더 맵고 더 자극적인 고추 품종을 개발하려는 이유는 매운맛이 주는 쾌감 때문이다.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성분인 ‘캡사이신’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을 자극한다. 맛보는 이가 ‘아프다’는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뇌신경에서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엔도르핀’이 나온다. 엔도르핀은 스트레스와 우울한 기분을 해소하는 중독성이 있는 호르몬이다. 이러한 전세계 60개국의 고추 품종 300여종을 9월3~4일 충남 청양군에서 열리는 ‘세계고추품종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 고추를 활용한 최고의 매운 음식들은 무엇일까? ‘죽음의 짬뽕’이라는 별명을 가진 신길동 매운짬뽕, 사천(쓰촨)요리 전문점 ‘시추안하우스’의 마라탕, 신촌의 ‘완차이’의 홍합요리 등을 기자가 직접 찾아가 맛보았다.
신길동 매운짬뽕 | 이곳 가게에는 곳곳에 무시무시한 경고장이 붙어 있다. ‘빈속·임산부·노약자·고혈압·위염·위궤양·컨디션 안 좋으신 분 짬뽕 절대 사절. 사고시 민형사상 책임 없음.’ 사장 임주성(46)씨는 처음으로 짬뽕을 시도하는 손님에겐 짬뽕의 매운 정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뒤 “그래도 시키겠냐”고 묻는다. 짬뽕을 먹고 있는 손님들을 둘러보며 “괜챦냐” “국물은 절대 다 마시면 안 된다” 등의 주의를 시키며 손님들의 컨디션을 파악하는 게 사장의 가장 큰 임무 중 하나다. “도대체 얼마나 매운가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사장은 “올해만 먹다가 7명이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고 짧게 답했다.
짬뽕을 시키니 홍합·파·무·양배추 등이 듬뿍 올라가 매우 먹음직스러운 짬뽕이 나왔다. 사장이 시키는 대로 면부터 먹는데, 처음엔 쫄깃쫄깃하고 탄력이 좋은 면발에 얼큰한 국물이 배어 그저 맛있는 짬뽕에 불과한 듯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눈물·콧물이 나오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한 젓가락 먹고 물을 한 컵 마시는 형국이 되었다.
“왜 이런 짬뽕을 개발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사장은 “제가 철가방을 10년 하다가 8년 전에 처음으로 식당을 열었어요. 두 집 건너 한 집이 음식점인데 우동과 자장면으로는 도저히 승부를 내기가 어렵겠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이 먹기 어려운 정도의 매운 짬뽕을 한번 만들어보자 했지요”라고 답했다. 처음에 5개월 동안은 손님들이 “어떻게 이걸 사람이 먹냐”고 항의하는 통에 장사가 어려웠단다. 그런데 5개월이 지나자 입소문이 나면서 매운맛 마니아들이 전국에서 몰려 지금은 하루에 300그릇 정도 짬뽕이 팔린다. 매운맛의 비결은 베트남·중국·청양 등 4종의 고추와 6가지 비밀 소스에 있단다.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30분까지 영업을 하는데 밤 11시30분 이후엔 짬뽕 국물이 다 떨어져서 예약을 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메뉴는 기계우동 3000원, 홍합매운짬뽕 3500원, 김밥 1500원으로 서울시내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착한 가격’이다. 임 사장은 “멀리서 택시 타고 오고 지방에서 오는 손님들이 많아서 미안한 마음에 도저히 가격을 올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부산, 대구, 인천, 인덕원 등에 분점을 냈고 서울 논현동에도 조만간 분점을 열 계획이다. 우유나 부드러운 음료를 준비해 가고 김밥과 함께 시켜 먹는 게 포인트다. ● 위치: 신길역 1번 출구로 나와서 신길 삼거리에서 우회전. 문의 010-5395-1151.
시추안하우스의 ‘비프 마라탕’ | 얼얼한 매운맛을 뜻하는 한자 ‘마’와 고추의 매운맛을 뜻하는 한자 ‘라’를 이용해 이름을 지은 ‘비프 마라탕’은 최근 ‘시추안하우스’로 이름을 바꾼 과거 ‘레드페퍼 리퍼블릭’의 얼얼한 전골요리다. 지난해 9월 문을 연 사천요리 전문점 ‘레드페퍼 리퍼블릭’은 본격적인 사천음식점으로 어필하기 위해 사천의 영문 표기인 ‘Sichuan’을 읽히는 대로 표기하는 식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비프 마라탕’은 사천·베트남·타이 고추와 청양고추 등 총 4가지 고추와 ‘파가라’를 이용한 음식이다. 사천요리에 반드시 들어가는 ‘파가라’는 혀를 약간 마비시키는 듯한 얼얼한 맛을 내는 산초의 일종이다. 국내에서 파가라를 맛볼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고 시추안하우스 쪽은 설명했다. 얇게 저민 연한 쇠고기와 쫄면과 콩나물을 이용한 이 요리는 서빙되는 순간부터 찡한 매운 향이 코로 전해지고 혀끝에 전해지는 짜릿함과 얼얼함은 귓속까지 전해진다. 웬만한 매운맛 마니아가 아니라면 다 먹기가 어려울 정도다.
이외에 닭을 한입 크기로 잘라 매운 양념을 한 뒤 4가지 고추와 파가라 등과 함께 센불에서 볶아낸 ‘시추안 라즈지’는 고추 사이로 닭을 찾아 먹어야 할 정도로 고추 반, 닭 반인 요리다. 이곳의 ‘마파두부’ 또한 파가라를 넣어 일반 시중에서 맛보는 마파두부와는 차원이 다른 매운맛의 진수를 보여준다. ● 가격: 비프 마라탕 3만2500원, 시추안 라즈지 2만6000원, 마파두부 1만6000원. ● 위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길 도심공항터미널 맞은편. 문의 (02)508-1320.
완차이의 ‘아주 매운 홍콩홍합’ | 서울 신촌의 10년 된 중국집 완차이의 가장 인기있는 메뉴다. 혀를 마비시키고 위장까지 활활 타는 듯한 소스에 홍합을 볶은 요리다. 매운맛을 중화시키라고 하얀 쌀미음도 곁들여 주는데 홍합 하나 먹고 미음을 여러번 퍼 먹거나 홍합을 미음에 씻어 먹어야 한다. 화끈하게 매우면서도 감칠맛과 달콤함을 주는 게 인기 비결. 먹고 나면 ‘속이 쓰리다’는 사람도 많지만, 곧 잊어버리고 다시 찾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화교 출신 총복자(54) 사장은 “홍합이 많이 팔릴 때는 하루에 120㎏ 팔렸는데 요즘엔 하루에 60㎏ 정도 팔린다”며 “손님 중 80%가 이 요리를 먹으러 온다”고 말했다. 소스엔 사천고추·다홍고추·청양고추와 마늘·생강·대파 등이 들어간다. 꽃빵과 같이 시켜 먹는 게 포인트다. 이 집의 중국요리들은 대체로 매운 편인데, 홍합 요리 외에 고추기름에 볶은 매콤한 쌀국수와 쇠고기를 얇게 저며 바삭하게 구운 뒤 칠리소스 등에 볶은 칠향쇠고기도 인기 메뉴다. ● 가격: 아주 매운 홍콩홍합 2만3000원, 돼지고기 쌀국수 볶음 1만3000원, 칠향쇠고기 2만8000원. ● 위치: 신촌 민들레영토 뒤편 골목가. 문의 (02)392-0302.
글 김아리 기자 ari@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신촌의 10년 된 중국집인 완차이의 ‘아주 매운 홍콩홍합’(왼쪽). 올해만 먹다가 7명이 기절했다는 신길동 매운짬뽕(오른쪽).
신길동 매운짬뽕
시추안하우스의 ‘비프 마라탕’
완차이의 ‘아주 매운 홍콩홍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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