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요리 ‘달인’의 특별한 식탁
[매거진 esc] 김정은 요리사의 캠핑 요리 준비부터 테이블세팅까지
요리사 김정은(37)씨는 2007년부터 캠핑에 푹 빠졌다. 영하 16도로 내려가는 강원도 봉평이나 교통체증 때문에 10시간이나 걸리는 서해안 캠핑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캠핑장이 꽉 차면 민박집 마당에 텐트를 칠 정도다.
그는 일본에서 식품영양학과 요리를 공부했다. 도시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세련된 외모의 국외파 요리사다. 밤새 벌레와 씨름해야 하는 캠핑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런 이가 캠핑 마니아가 되었다.
“친구의 권유로 처음 강원도의 한 캠핑장을 갔는데 깜짝 놀랐어요.” 그는 그곳에서 캠핑 그릇에 홀딱 빠져버렸다. 그릇의 크기나 모양, 테두리의 우아함, 실용성 등 평소 자신의 주방에서 만났던 ‘요리의 친구’들과는 달랐다. 첫째로 그의 눈을 사로잡은 용품은 ‘스노 픽’(Snow Peak: 일본 캠핑 장비 브랜드)의 무광 스테인리스 그릇이었다. 그날부터 캠핑 주방기구들을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했다. 몇백원부터 몇십만원까지 다양했다. 그것들을 배낭에 넣고 주말마다 남편과 두 자녀의 손을 이끌고 캠핑장으로 떠났다. “가장 좋은 점은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는 것.”
캠핑에 빠진 요리사의 식탁은 남다르다. 요술을 부리는 것처럼 뚝딱 몇번의 손놀림만으로 깔끔한 식탁이 차려진다. 그의 식탁을 만나기 위해 김씨의 캠핑을 따라나서 보자.
캠핑 준비는 바비큐 소스·카레가루 등 양념통 준비부터
떠나기 전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는 가방(사진)에 양념통부터 정리한다. 8개의 세로로 긴 통에는 액체 양념들이 들어간다. 바비큐 소스, 케이크 시럽, 포도씨유, 식초, 데리(야키) 소스, 간장, 참기름, 올리브유. 9개의 납작한 용기와 원통에는 가루가 들어간다. 허브소금, 설탕, 소금, 천일염, 후추, 바질, 베이킹소다, 카레가루, 중국고추, 파래가루, 고춧가루, 설탕 등. 휴대용 고추냉이와 조선간장, 시나몬 파우더, 허브차도 넣는다.
두번째 가방에는 일회용 잼과 수프, 각종 차와 중화 두반장, 중화 고추마늘 소스, 코코아를 넣는다. 양념용기들은 모두 방산시장(서울 중구 소재)과 일본에서 100엔숍으로 유명한 다이소(실용적인 저가제품 판매 전문점)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화장수를 넣던 용기들이 양념통으로 변신했다. 각종 식재료는 이미 잘 다듬어서 팩에 싸둔 상태다. 요리에 쓰일 일부분만 있다.
드디어 길을 나선다. 동해의 한 캠핑장으로 “고고씽!”
캠핑장에 도착하기 전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편을 채근해서 주문진항을 찾는다. 그는 캠핑장 주변의 어시장이나 장터를 꼭 간다. “현지에서 구한 식재료는 싸고 정말 신선해요.”
끼니때가 되자 텐트마다 솔솔 맛난 냄새가 피어오른다. 그는 자신이 조립한 ‘ㄱ’자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한다. ‘ㄴ’자나 일자형 주방을 만들기도 한다. 이웃한 텐트에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의 식탁으로 모여든다. 요리사의 캠핑 음식이 궁금한 것이다. 대부분의 캠핑 애호가들은 숯불에 구운 큼지막한 쇠고기나 돼지고기 요리를 많이 먹는다. “고기요리가 많더라구요. 동파육을 만드시는 분도 봤어요. 너무 무겁다는 생각을 했어요. 생선요리는 거의 없었어요.” 그는 생선이나 칼로리가 낮은 가벼운 음식들을 준비한다. “성게를 사서 지라시초밥(생선 조각을 초밥에 얹지 않고 잘게 잘라 양념한 채소들과 초밥에 섞고 달걀지단, 초생강 등을 뿌려서 먹는 스시)을 만들거나 캠핑장의 뽕잎, 단풍잎을 따서 살짝 튀겨서 먹거나, 생선을 여러 마리 사서 캠핑 첫날 걸어두고 두고두고 말려서 구워” 먹는다. 간편하면서도 신선한 요리를 만드는 그만의 방법들이다.
이날 그가 준비한 요리는 ‘바지락 토마토찜’과 ‘닭꼬치와 가지구이’, ‘포켓샌드위치’다. ‘바지락 토마토찜’은 백포도주로 조개의 비린내를 없애고 토마토, 양파, 마늘 등을 함께 익혀 신선함 그대로를 먹는다. 쫄깃한 조개의 속살과 익어서 부드러운 토마토의 뭉클한 결이 입안에서 널을 뛴다. 자작하게 남은 국물은 버리지 말고 파스타나 라면을 삶아 먹으면 그 맛이 또 일품이다. 이 요리를 만들 때 사용한 ‘미니 더치오븐’(사진)은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아 유용하다. 식재료를 넣고 뚜껑을 덮어두기만 하면 된다. 김씨는 ‘원 버너’에 ‘미니 더치오븐’을 올려놓고 잠시 잊는다. 그가 고른 ‘원 버너’의 디자인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매끈한 표면과 단순한 가장자리의 디자인은 아름답다.
‘닭꼬치와 가지구이’는 캠핑요리의 단골 메뉴다. 적당히 자른 대파와 닭의 넓적다리 살을 꼬치에 꽂아 굽는다. 이때 데리 소스가 중요하다. 데리 소스는 간장을 주재료로 하는 일본 소스다. 그는 집에서 만든 데리 소스를 계속해서 발라가며 뒤집는다. 가지는 칼집을 잘 내서 따로 굽는다. 칼집이 정확해야 포도씨유가 골고루 밴다. 최근에는 포도씨유를 애용하는 요리 애호가들이 많다. 다른 기름보다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가지는 요리를 해도 좋고 그냥 구워 먹기만 해도 맛나요.”
아이들에겐 ‘포켓샌드위치’가 인기 만점
아이들을 위한 요리는 ‘포켓샌드위치’다. ‘포켓샌드위치는 포켓 모양의 작은 샌드위치다. 이 샌드위치는 캠핑장을 찾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짱’이다. 아이들은 줄을 서서 한개씩 받아들고 뛰어다니면서 먹는다. ‘포켓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요리기구, ‘핫 샌드위치 플레이트’는 간편한 도구다. 이 기구를 사용하면 사각의 빵이 앞뒤로 딱 붙어서 그 안에 내용물이 흐르지 않는다.
준비한 음식이 완성되자 그는 납작한 실리콘 볼들을 꺼낸다. ‘우왕’ 몇번 볼을 움직이자 춤추는 풍선처럼 볼들이 잠에서 깨어난다. 금세 그릇이 된다. 그릇의 벽이 진공으로 비어 있어 뜨거운 국이나 차를 담아두기에 좋은 주방용품도 그가 좋아하는 품목이다. 겨울에는 국이 식지 않는다. 표면은 차가워서 쥐기에도 편하다. 그는 다음날 “별이 쏟아지는” 캠핑장을 떠날 때 잊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음식물쓰레기들을 잘 처리하는 것. “자연에서 먹는 요리는 그다지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최고의 맛을 선사합니다.” 그의 캠핑 요리 예찬사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요리 김정은/배화여자대학 전통조리과 교수
그는 가방에 양념통부터 정리한다.
미니 더치오븐
요리사 김정은(37)씨는 2007년부터 캠핑에 푹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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