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초 고봉중고등학교 사진영상반 학생들은 창덕궁을 찾았다. 야외촬영 수업은 사진 실력을 늘리는 데 꼭 필요하다.
[매거진 esc]
사진활동으로 밝게 변해가는 소년원 아이들…사진으로 환경운동 벌이는 조남룡씨
거대한 기계가 늘어선 공장에서 아이가 일을 하고 있다. 아이는 기계 속으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 20세기 초 미국의 사진가 루이스 하인의 사진이다. 그가 찍은 한 장의 사진은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16년 아동보호법은 국회에서 가결되었다. 그의 사진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사진사를 뒤적이다 보면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면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냈던 수많은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은 항상 시대와 조응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미지가 빠르게 소비되는 21세기에 사진의 역할은 무엇일까? 사진 애호가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요즘 더 궁금해진다.
지난 7월13일 경기도에 위치한 고봉중고등학교(서울 소년원) 사진영상반 교실을 찾았다. 특별한 사진수업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교실로 오르는 복도에는 아이들이 찍은 흑백사진들이 한 줄로 걸려 있다. 창문에서 서서 먼 곳을 바라보는 친구의 뒷모습, 꽃밭에서 뒹구는 신발 한 짝, 텅 빈 교실. 쓸쓸한 사진들이다.
“카메라가 뭐지?” “사진을 찍을 때 필요한 것은? 대답해볼래?” 교사의 질문이 이어지는 교실은 복도의 사진들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시간을 담는 그릇이에요”, “나를 표현하는 도구입니다.” 아이들의 답은 계속 이어진다. “조명이요”, “렌즈요”, “메모리카드요”, “유에스비요”. 경주(가명)가 “빛이 필요해요” 하자 교사는 “빙고”를 외친다. “우와” 하는 아이들의 함성이 터진다. 경주는 으쓱한다. “지난주 우영(가명)이 사진 보니깐 어땠어?”라고 묻는 교사의 질문에 “생각보다 생각이 없는 아이 같아요.” 웃음이 터진다. 일반 고등학교와 다르지 않다.
사진학과 진학 등 미래 설계하는 아이들 늘어
고봉중고등학교는 2007년부터 직업훈련반으로 사진영상반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 10개의 소년원 중에서 유일하다. 시작은 단순했다. 안산소년원의 사진영상반이 없어지면서 각종 사진장비들이 이곳 고봉중고등학교로 옮겨왔다.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푸르미방송 윤용범 팀장과 제작요원이었던 박인원 교사가 사진영상반을 신설하고 사진교육을 시작했다. 박인원 교사는 “처음에는 그저 직업훈련의 일환으로 사진기능사 자격증 취득을 목적으로 한 반이었는데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한다. 대학의 사진학과에 입학하거나 사진병으로 입대를 한 졸업생도 생겼다. 사진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올해 22살인 철수(가명)는 2009년부터 사진영상반 학생이었다. 사진 찍기는 지금 그에게 중요한 일이다. “너무 재미있어요. 사진을 찍다 보면 잡생각이 안 나요.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철수는 하루 50장씩 찍는다. 교정의 돌이나 구름, 나무, 친구들이 고작 그가 만날 수 있는 피사체지만 사진 안에서는 수백개의 다른 피사체로 바뀐다. “눈으로 보고 사진을 찍고 난 뒤 보면 너무 달라요. 사물을 다르게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았어요.” 철수는 지난 7월 초 창덕궁으로 나간 야외촬영 수업에서 1시간 넘게 부드러운 우리 기와를 찍었다. 야외촬영 수업은 사진영상반 아이들 중에서도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사진 실력이 출중한 학생들이 나간다. 사진가 배병우를 좋아한다는 그는 졸업을 하면 사진과 관련된 일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 교무계장 곽태진 교사는 “아이들은 거의 한번도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가진 적이 없어요. 자신의 생각만으로 무엇을 만든 경험은 아이들에게 소중합니다”라고 말한다. 그저 한 장의 사진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뿌듯한 세상의 성적표가 되었다.
광주(가명·19)는 제과제빵반보다는 “폼 나 보여서” 사진영상반에 들었다. “그런데 마음이 슬프거나 아플 때 사진을 찍으면 편해져요.” 아이들은 갇혀 있는 답답한 속내를 사진으로 풀어낸다. 사진가 김기찬의 골목길 사진을 좋아하는 광주는 창가에 놓인 컵을 자주 찍는다. 컵은 광주 자신이다.
아이들이 사진가 배병우나 김기찬을 알게 된 것은 사진가 김미경씨의 공이 크다. 그는 사진장비 업체인 세기P&C가 운영하는 사진교실 강사다. 2010년부터 이곳 사진영상반에도 ‘세기P&C 사진교실’이 개설되었다. 전문 강사가 1주일에 한번 직접 방문해서 강의를 한다. 그는 아이들의 대학입시도 꼼꼼하게 챙기고 다양한 사진가들의 작품도 보여준다. 김씨는 “아이들이 사진에 대한 이해가 빨라요. 피드백도 바로 오고, 가르치는 보람이 있습니다.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친구도 눈에 띄어요”라고 말한다. 이 수업의 개설은 3년 전부터 사진기자재 등을 서울소년원에 지원하고 있는 세기P&C 이봉훈(60) 대표의 의지가 컸다. 1960년대부터 사진판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사진의 교육적 효과에 대한 믿음이 크다. “사진영상반 아이들의 재범률은 낮아요. 사진을 통해 자신을 보는 거죠. 처음에는 어둡던 아이들의 표정이 사진을 찍으면서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박인원 교사는 2008년도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우리도 해보자 하고 나선 일이 있었어요.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죠.” 사진영상반 학생들은 2008년 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매그넘코리아전’을 보고 와서 “우리도 전시회를 하자”고 교사들에게 제안했다. 그해 가을 ‘2008 서울소년원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제목의 사진전시가 열렸다. 고봉중고등학교에서 사진은 루이스 하인의 기록사진보다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가 하면 환경을 걱정하는 캠페인에도 사진은 유용하게 쓰인다. 지난 6월부터 사진가 조남룡씨는 컵을 찍기 시작했다. 그냥 컵이 아니다. 초상권을 기부한 유명 인사들의 손안에 있는 컵들이다. 이 컵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다니는 컵이다. 그는 여성환경연대가 ‘위드 어 컵’(With a Cup)을 기획하자 사진을 찍는 재능 기부를 했다. 이 캠페인은 페트병과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컵을 가지고 다니자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도보여행가 김남희, 배우 박시연, 이태란, 변정수, 건축가 오기사, 가수 이상은, 이문세 등이 동참했다.
연예인들과 손잡고 사진으로 ‘종이컵 안 쓰기 캠페인’ 벌여
이보은 사무처장은 “컵은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 오브제일 뿐, 자연 그대로의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성환경연대의 자료에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한해 120억개의 일회용 종이컵이 소비된다. 약 8만의 천연펄프가 재료로 사용된다. 16만 정도의 이산화탄소가 종이컵 제작 과정에서 배출된다. 나무 3만 그루를 심어야 없앨 수 있는 양이다. 이런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나선 사람들의 옆에 ‘사진’이 있었다. 사진가 조남룡씨는 “캠페인을 알리는 데 사진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진은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매체입니다”라고 말한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컵을 들고 즐거워한다. 머그잔을 들고 춤추는 김풍, 컵을 부딪히면서 뽀뽀하는 빈도림 부부(사진), 자랑스럽게 자신의 컵을 내미는 양익준 감독 등, 사진 안에는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잘 나타나 있다. 그가 찍은 수십 장의 사진은 포털이나 잡지 등에 화보로 노출될 예정이다.
우리 시대의 루이스 하인의 사진은 다른 형태와 모습을 띠고 있다. 하지만 형식이 다를 뿐 세상을 바꾸는 힘은 옛날과 다름없다.
글 박미향 기자 mh@hani.co.kr·사진 제공 서울소년원, 여성환경연대
고봉중고등학교 사진영상반 학생이 찍은 친구의 모습. 창덕궁 촬영 수업에서 잠시 한눈을 팔고 있는 친구를 찍었다.
고봉중고등학교는 2007년부터 직업훈련반으로 사진영상반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 10개의 소년원 중에서 유일하다. 시작은 단순했다. 안산소년원의 사진영상반이 없어지면서 각종 사진장비들이 이곳 고봉중고등학교로 옮겨왔다.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푸르미방송 윤용범 팀장과 제작요원이었던 박인원 교사가 사진영상반을 신설하고 사진교육을 시작했다. 박인원 교사는 “처음에는 그저 직업훈련의 일환으로 사진기능사 자격증 취득을 목적으로 한 반이었는데 아이들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한다. 대학의 사진학과에 입학하거나 사진병으로 입대를 한 졸업생도 생겼다. 사진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가로, 세로 직선을 느낌을 잘 살려 찍은 고봉중고등학교 사진영상반 학생의 작품. 장소는 창덕궁.
사진가 조남룡이 찍은 가수 아이앤아이 장단. 자신들이 가지고 다니면서 쓰는 컵을 들고 웃고 있다.
고봉중고등학교 사진영상반 학생의 작품. 창덕궁 마당의 세밀한 모습을 잘 표현했다.
뽀뽀하는 빈도림 부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