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한강.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돛을 붙들고 섰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이병학 기자가 도전한 한강 윈드서핑의 세계
이병학 기자가 도전한 한강 윈드서핑의 세계
“윈드서핑엔 최악의 날씨군.”
한강 뚝섬시민공원 한국해양소년단 서울연맹 앞 윈드서핑장. 강사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온 하늘에 구름이 가득한데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고 습한 날씨. 오전 중 초보자 체험을 예약한 상태인데다, 곧이어 해양소년단 초등생들이 윈드서핑에 나설 예정이어서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어차피 초보잔데 날씨 궂으면 어떻고 바람 약하면 어떤가 하는 심정으로 반바지로 갈아입고 구명조끼를 껴입었다.
경력 7년째인 강사 김한경(29)씨가, “바다에서 하는 서핑과 요트의 장점을 결합한 레포츠”라는 유래와 함께 “장비가 간단해 조립시간이 짧고, 혼자 운반하기 쉬우며, 방향전환이 자유롭다”는 윈드서핑의 장점을 설명한 뒤, 단점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바람이 없으면 못 탄다는 거죠.”
제대로 서기도 전에 물에 처박히기 일쑤
고정 방향키(스케그)가 보드를 직진하게 도와주는데, 바람이 돛을 밀면 보드는 횡직각(수직방향)으로 움직인다는 진행 원리 설명을 듣는 동안에 바람은 더욱 잠잠해지고 더위가 한결 심해졌다. 돛(세일)과 돛대(마스트), 손잡이(붐), 연결줄 등 각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모형 보드에 올라 본격적인 자세 훈련에 들어갔다.
강사가 말했다. “어차피 물에 들어가면 다 잊어버릴 테지만, 듣는 데까지 들으세요. 5단곕니다. 하나, 오른쪽 발을 45도 틀어서 마스트에 붙인다. 둘, 보드 뒤쪽 발을 어깨너비로 벌린다. 셋, 보드 앞쪽 손으로 손잡이 앞쪽을 잡는다. 넷, 뒷손을 어깨너비로 벌려 손잡이를 잡는다. 그러면 바람이 불면서 한쪽으로 빠져나가게 되죠? 다섯, 자, 바람이 빠져나가지요? 앞손을 밀고 뒷손은 천천히 당기세요. 그러면 보드가 출발하게 됩니다. 어때요. 좀 복잡하죠?”
돛의 줄을 잡고 연습하고 있을 때 강사가 반가운 소리를 했다. “이 복잡한 과정은 다 까먹어도 돼요. 이걸 압축하면 이렇게 되죠. 보드와 돛 사이를 문틈이라고 생각하세요. 자, 문 닫으세요 하면 닫고, 여세요 하면 여는 겁니다. 문을 닫으면 바람을 많이 받아 빨라지고, 열어주면 느려집니다. 쉽죠?” 진행 방향은 세 가지다. 직진이냐, 풍상이냐, 풍하냐다. 직진할 땐 손잡이를 수면과 수평으로 하고, 풍상(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가려면 보드 뒤쪽으로 기울이며, 풍하(불어가는 쪽)로 가려면 앞쪽으로 기울여야 한다. 바람을 유효하게 받으려면 45도 각도까지만 기울여야 한다. 이걸 데드존이라고 부른다. 초보자용 보드는 무겁고 안정적이지만, 전문가용은 가볍고 예민하다는 설명이 끝나고 마침내 오늘 체험할 보드와 돛을 들고 강으로 향했다. 이제까지 열심히 듣고 연습한 내용은, 물에 띄워놓은 보드에서 균형잡기 연습을 하는 동안 백지상태로 돌아갔다. 물 위에 나무토막 하나 띄워놓고 두 발로 뛰어올라가 균형을 잡고 서 있어야 하는 것과 같았다. 제대로 서기도 전에 물에 처박혔다. 강사가 말했다. “자, 지금까지 배운 건 다 까먹어도 됩니다. 균형잡기만 알면 돼요. 이게 제일로 중요합니다. 보드에 서서 두 발을 옮겨 한바퀴 돌 때까지 연습하세요.” 두번을 더 처박힌 뒤 어정쩡하게나마 대충 서 있게 되자, 마침내 강사가 현장 투입을 허가했다. “보드와 세일을 역T자 상태로 만들고 줄을 한손한손 천천히 잡아당기면 됩니다.” 그러나 돛을 들어올리는 데 집중하면 두 발이 균형을 잃었고, 균형잡기에 몰두하면 돛이 쓰러졌다. 이래도 처박히고 저래도 처박혔다. 그래도 한강물은 깊고 차고 시원했다. 날아간 모자를 집어들고 벗겨진 안경을 바로 쓴 뒤 보드에 올라타려고 기를 쓰는데, 너무 힘을 줬는지 보드가 벌러덩 뒤집어져버렸다. 강사가 조언했다. “다 잊어버리고 천천히만 하세요. 천천히.” 몇번 물에 더 처박힌 뒤에야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서서 돛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일단 서 있게 되고 나자 그런대로 자세를 잡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까지 생겼다. 강남의 아파트숲과 잠실종합운동장도 보이고, 나를 지켜보는 강사의 모습도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뿐. 겨우 폼은 잡았는데, 보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수면은 고요하고 윈드서핑 돛들이 늘어선 강변은 평화로웠다.
바람없는 날엔 베테랑도 타기 어려워
돛을 잡고 이리저리 움직여 봐도 보드는 제자리다. 부채질하듯 돛을 움직이며 주변을 둘러보니, 보드 탄 사람들이 하나같이 돛을 두 손으로 잡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윈드서핑이 가진 ‘단 하나의 단점’이 이것이었다. 초당 2회가량의 속도로 열심히 부채질을 해도, 한뼘도 나아가지 않았다. 물가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강사가 배에 시동을 걸어, 보드로 다가와서 말했다. “바람 없는 날엔 제아무리 베테랑도 말짱 헛일이지요.”
체험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며 생각하니 물에 처박힌 게 균형잡기에서 세번, 돛을 올릴 때 두번, 부채질할 때 한번, 배에 올라탈 때 한번, 도합 일곱번이었고, 보드가 뒤집어진 게 한번이었다. 첫 체험이 어땠냐는 강사의 물음에 “돛이 생각보다 안 무거워 어렵진 않았다”고 했더니, 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아, 그거요. 초등학생용이에요. 초보자는 그걸 써요.”
돛은 크기에 따라 무게도 달라진다. 면적 1.6㎡짜리부터 12㎡까지 돛의 크기는 큰 차이를 보인다. 초등생이나 초보자들은 2㎡ 안팎의 돛을 사용하게 된다. 당연히 큰 돛일수록 바람을 많이 받을 수 있지만, 그만큼 무거워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반대로 보드는 무겁고 큰 것이 초보자용(15㎏)이고 작고 가벼운 것이 숙련자용(5~10㎏)이다.
멋진 운동복을 입은 씩씩한 한국해양소년단 초등학생들이 몰려왔을 때, 그 고요하던 강변에 서서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하류 쪽에서 불어오는 서풍이었다. 이미 오후가 돼 있었다.
윈드서핑장을 나설 때 강사가 인사하며 말했다. “바람 부는 날 다시 오세요. 바람을 맞아야 해요. 바람 타고 달리면, 균형잡기도 쉽고 힘도 덜 들고 서핑 재미도 느낄 수 있습니다.”
윈드서핑 처음 체험하실 분들은 되도록 바람 거센 평일 오후를 선택하시길.
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ㆍ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윈드서핑에 나서기 전에 장비의 기능과 조종 요령을 충분히 익혀야 한다. 물론, 물에 들어가면 아무 생각도 안 난다.
돛의 줄을 잡고 연습하고 있을 때 강사가 반가운 소리를 했다. “이 복잡한 과정은 다 까먹어도 돼요. 이걸 압축하면 이렇게 되죠. 보드와 돛 사이를 문틈이라고 생각하세요. 자, 문 닫으세요 하면 닫고, 여세요 하면 여는 겁니다. 문을 닫으면 바람을 많이 받아 빨라지고, 열어주면 느려집니다. 쉽죠?” 진행 방향은 세 가지다. 직진이냐, 풍상이냐, 풍하냐다. 직진할 땐 손잡이를 수면과 수평으로 하고, 풍상(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가려면 보드 뒤쪽으로 기울이며, 풍하(불어가는 쪽)로 가려면 앞쪽으로 기울여야 한다. 바람을 유효하게 받으려면 45도 각도까지만 기울여야 한다. 이걸 데드존이라고 부른다. 초보자용 보드는 무겁고 안정적이지만, 전문가용은 가볍고 예민하다는 설명이 끝나고 마침내 오늘 체험할 보드와 돛을 들고 강으로 향했다. 이제까지 열심히 듣고 연습한 내용은, 물에 띄워놓은 보드에서 균형잡기 연습을 하는 동안 백지상태로 돌아갔다. 물 위에 나무토막 하나 띄워놓고 두 발로 뛰어올라가 균형을 잡고 서 있어야 하는 것과 같았다. 제대로 서기도 전에 물에 처박혔다. 강사가 말했다. “자, 지금까지 배운 건 다 까먹어도 됩니다. 균형잡기만 알면 돼요. 이게 제일로 중요합니다. 보드에 서서 두 발을 옮겨 한바퀴 돌 때까지 연습하세요.” 두번을 더 처박힌 뒤 어정쩡하게나마 대충 서 있게 되자, 마침내 강사가 현장 투입을 허가했다. “보드와 세일을 역T자 상태로 만들고 줄을 한손한손 천천히 잡아당기면 됩니다.” 그러나 돛을 들어올리는 데 집중하면 두 발이 균형을 잃었고, 균형잡기에 몰두하면 돛이 쓰러졌다. 이래도 처박히고 저래도 처박혔다. 그래도 한강물은 깊고 차고 시원했다. 날아간 모자를 집어들고 벗겨진 안경을 바로 쓴 뒤 보드에 올라타려고 기를 쓰는데, 너무 힘을 줬는지 보드가 벌러덩 뒤집어져버렸다. 강사가 조언했다. “다 잊어버리고 천천히만 하세요. 천천히.” 몇번 물에 더 처박힌 뒤에야 간신히 균형을 잡고 서서 돛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일단 서 있게 되고 나자 그런대로 자세를 잡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까지 생겼다. 강남의 아파트숲과 잠실종합운동장도 보이고, 나를 지켜보는 강사의 모습도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뿐. 겨우 폼은 잡았는데, 보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수면은 고요하고 윈드서핑 돛들이 늘어선 강변은 평화로웠다.
보드 위에 있는 시간과 물에 있는 시간이 비슷했다(맨 왼쪽). 체면을 구겼어도 다시 일어나 균형을 잡고 서야 한다(가운데). 마침내 장시간(?) 버티기에 성공한 모습(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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