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서기 나선 아이돌 출신 박정아
[매거진 esc] 김어준이 만난 여자 홀로서기 나선 아이돌 출신 박정아
0. 소녀시대 때문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소녀시대에 넋 나간 삼촌들. 이 인터뷰가 애초 작정된 건 말이다. 넋만 나갔다면야 관심 껐다. 일본의 로리타 열풍과 원조교제 유행이 버블붕괴, 여권신장과 그 궤를 같이 했던 것만 봐도 오그라든 성인 남성들이 더 이상 만만치 않은 성인 여성들 대신 어린 소녀에 꽂힌단 자체는, 좀 애처롭긴 해도 너절하다 할 일은 아니니까. 남루한 현실에 그 정도 위안이야 뭐. 더구나 이건 단순히 수컷의 속물적, 생물학적 경향성을 넘어서는 사회경제적 현상이자 젠더의 권력이동 징후라. 최근 누나들 침샘이 연하 꽂미남에 범람하고 있는 것과 수미쌍관 이라고.
그러니까 애초 호기심이 동한 건 그 팬클럽 운영진들이 죄 30대 중반 남성들이란 사실이 아니라 그들이 그 소녀들을 대하는 태도 덕이었다. 이 남정네들, 그 아이들 요정 취급한다. 요정은 쥐뿔. 그냥 육덕지고 귀여운 여자애들이잖아. 그런데도 제 애착이 로리타 콤플렉스 따위로 해석되는데 분개한다. 뭐 아닌 점도 있겠다. 그 아이들, 기특하고 기량 출중하다. 허나 소녀시대의 허벅지나 2PM의 웃통이나, 그렇게 그 몸과 율동이 훈련된 교태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거잖아. 그 성적긴장, 당연한 거잖아. 근데 애써 부인한다. 그리고 숨는다. 삼촌 알리바이 뒤로. 이건 쩨쩨하다. 그 부정이 오히려 그들 죄의식, 존재 증명한다. 죄의식은 쾌감을 배가시키는 법이고. 이게 그들 애착이 삼촌 가면 쓰고 안전하게 강화되는 선순환 구조다.
여하간 이 소란 덕에 궁금해진 게다. 목하 무연고 비혈육 삼촌들을 이리도 대거 양산 중인, 이 종합선물세트들은 대체 어떤 공정으로 제작되는 걸까. 그리고 그렇게 상품 기획된 그들이 한 사람의 인간으론 어떤 걸 겪어낼까. 20대를 통으로 아이돌로 살아낸 박정아를 만난 건 그래서다.
1. 인터뷰 하나.
소녀가장. 희한하게도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떠오른 단어다. 이유, 나도 모르겠다. 선입관 없이 실체와 만나려 검색 한 번 않고 갔는데 말이다. 충분히 세련된 용모인데. 그런데 그 털털한 어조와 큼직한 제스처들이 뭐랄까. 어느 순간부터 차라리 그러기로 결의한 아이가 부러 일찍부터 익숙해진 명랑이랄까. 그리 느껴진 걸 어떡해. 하여 대뜸 가정형편 어려웠냐 물었다.
“평탄치는 않았죠.” 그러면서 “주영훈 오빠”가 그랬단다. 너무 잘 살면 이 짓 못 한다고. 뭔가 표출해야 되는 직업인데 부족한 게 없으면 안 된다고. 동의한단다. 뭐가 그리 나빴는데. “부모가 초등학교표출 이혼하셨고 유복하지는 않았어요.” 지금은 조모 모신단다. 그랬구나. 왜 그런 걸 묻냐 살짝 따진다. 대견하다 추키려 한 짓은 아니다. 알고 싶었지. 당신 근성이 어찌 조직됐는지. 근데 어쩌다 이 길로 들어섰을까. “그저 밴드하고 노래 부르족한갠 좋았 따아이였어요. 스쿨밴드로 고퐲출부터. 그게 그 시절모 일한 탈출구거였거든요.” 그러다 ‘아무로 나미에‘에 반했고 관련 오디션에 응모했다 떨어졌으나 주최 측 콜로 여차저차 주얼리로 데뷔했단다. 애초부터 걸그룹이 목표였냐. 아니란다. 요즘은 12살부터 시작하지다.자기 땐 그렇지 않았단다. 그저 날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게 즐거워 “된장인지 고추장인지” 모르고 시키는 대로 달렸단다.
그러다 마침내 스타가 되면 뭐가 바뀌나. “일단 회사에서 대우가 달라지고.(웃음) 대중교통 이용 못하고. 변장해도 알아보니까. 외로워지고. 오래된 친구들도 끊어지니까. 의식적으로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해도. 자기 생활 없어지고. ”초살인적“ 스케쥴 덕에. 차에선 시체 되고. 그러다 차문 열리면 또 나가서 세상에서 내가 젤 예쁘다는 듯 노래하고. 돌아와선 다시 시체 되고. 차문이 열리면 또 다시 나가고.” 세상에 공짜인생 어디 있다고, 게다가 그게 다 자청한 수고면서, 그 노고에 스스로 너무 갸륵해 토크쇼서 목메는 이들 많다만 그녀, 이 대목에서 드라이하다. 맘에 든다.
그런데 그리 살면 자신과 마주할 기회가 있나. 그렇게 누군가 만들어준 스케쥴에 누군가 만들어놓은 설정에 누군가 요구하는 이미지로만 산다는 게 어느 순간 허하지 않나. 자기가 없잖아. “일이(드라마)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5년 차에, 내가 어떤 일을 해왔고 어떤 사람이며 앞으로 어떻게 살지 처음으로 고민했어요. 그전까진 내가 이걸 왜 해야 되는 건지 생각도 안 했어요.” 그랬더니 뭐가 변하던가. “남이 그려주는 인생이 아니라 그 그림에 내 생각을 보태는 걸 배웠어요. 그리고 그제야 진짜 내 일을 하는 것 같았어요.” 실패가 자기대면의 첫 기회를 제공한 게라. 하여 비로소 연예인 박정아가 아니라 인간 박정아가 각성한 게라. 그만하면 많이 남는 장사.
그러나 그동안 무대에서 요구되는 자기와 실제 자기의 차이가 만들어져 버렸을 텐데 그건 어찌 해결했나. “괴리감이 많이 들었죠. 대중이 아는 나와 실제 내가 다르다는 게.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그냥 생긴 대로 살기로 했어요. 전 연예인 생활하면서 제 자신을 사랑해야 된다는 걸 배웠어요. 만든 건 들통 나게 되어 있으니까.” 자존감이 그렇게도 만들어지는 구나. 근데 비난받았던 연기는 왜 한 건가. 노후대책인가. 아님 연기까지 잘할까봐? “빙고!(폭소) 시켜서 했어요.(웃음) 그리고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웃음)” 흐. 그랬단다. 그 비난은 어찌 받아들였나. “무척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누구도 내 대신 내 인생을 살아주지 않는다는 깨달았어요.” 영민하다.
그러다 후배가 추월하면 어떤가. 연예계는 인기가 수입이고 계급이고 진급인데. “박정아 끝났네. (서)인영이 시대가 온 거야. 둘 사이 안 좋대. 그런 얘기들 힘들었어요. 둘이 서먹서먹하기도 했어요. 솔직히 속도 상하고 내가 뭘 놓치고 간 걸까 고민도 했고. 하지만 인정하니깐 다 끝났어요. 원래 질투에 자기가 죽어요. 스스로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깨달아야 해요.” 건강하다.
그렇게 산전수전 다 겪은 후 지금 아이들에게 인간으로 한 마디만 해준다면. “이유가 있는 일을 해야 해요. ‘왜’가 있는 일을. 누군가 만들어준 인생을 살다보면 생각하는 법을 잊어버려요. 훈련이 안 되어 있으니까.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 그렇게 되요.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해요. 그래야 행복할 수 있어요.” 성숙하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자신이 아니라 구조는 어찌 파악하는지. 노무현과 이명박의 차이, 누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차이를 느끼나. “모르겠어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십시오.(웃음) 제가 앞으로 출마하게 되면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웃음)” 능숙한 대처이긴 했다만 그렇다고 덜 실망스러워지는 건 아니다. 어떻게 연예인 시민 초등학교라도 하나 세워야 하나.
마지막으로 이제 배우로 살 건지 물었다. “연기 실패한 가수로 박정아가 있다는 말. 그건 과거니깐 어쩔 수 없어요. 이제 ‘박정아가 노력해 그걸 바꾸었다’는 기사를 내 눈으로 보고 싶어요. 그동안 두려워서 못했던 걸 하고 싶어요. 제 자신을 즐기고, 도전하고 싶어요.” 그래. 인정. 그대, 건투를 빈다.
그렇게 스무 살로 돌아가면 솔로하고 싶단 이야기까지 2시간여를 성실히 응한 그녀는, “그윽하게 몽환적으로 도전적으로 얄밉게” 따위의 옆에서 보고 있자니 내 수족이 다 오징어 되는 촬영요구마저 매우 근면하게 이행한 후, 그 포즈들에 박장대소하는 내게 “미친 척하고 하는 거예요”란 한 마디를 남기곤 자리를 떴다. 그 뒤통수에 대고 혼자 중얼거렸다. “거 참, 씩씩한 처자일세.”
그렇게 운 좋게 대견한 어른이 된 아이돌을 만나고 나니 문득 궁금했다. 나머지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어찌 되는 걸까.
2. 인터뷰 둘.
오늘은 현상 인터뷰인지라 한 사람을 더 만났다. 과거 SM 가수들의 공중파 방송 프로모션을 하였고,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천상지희, 트랙스, 샤이니의 매니지먼트 파트장을 했던 김석현씨. 다음은 그 일문일답.
- SM에서 아이돌을 시작한 건 어떤 이유인가.
이수만 대표가 미국 가서 MTV에서 뮤직비디오만으로, 그림만으로 종일 서비스가 가능하단 걸 보고 가수에 대한 관점이 바뀐 걸로 안다. 여기에 기획사 통제 범위 내에 들어오는, 상품으로서의 가수에 대한 필요가 더해졌다. 장사에는 이윤의 지속 가능성이 중요하니까.
- 아이돌 그룹을 구성하는 원칙이 있는가.
완전히 다른 아이들을 섞는다. 얼굴 담당은 누구부터 시작해 어떤 애는 MC용, 어떤 애는 춤용, 어떤 애는 노래용으로 만든다. 어차피 인기 있는 애들은 계속 바뀐다. 그러니까 소녀시대는 플랫폼일 수가 있다. 숫자는 센터가 있는 홀수가 유리하다. 일정 숫자 넘어가면 1단, 2단으로 나눈다. 인터뷰대형부터 안무대형까지 세심하게 설계하고 얼굴 크기까지 따져 위치 정한다.
- 선발 과정은 어떤가.
보아를 비롯한 연속된 성공 이후 스스로 걸어 들어온다. 매주 공개 오디션 한다. 한 번에 많을 때는 700명까지. 확률은 상당히 낮다. 주로 지방 아이들이 이 코스다. 차라리 길거리 캐스팅 확률 더 높다. 참가 인원대비로 보면, LA 오렌지카운티의 할리우드 볼 교포행사가 가장 확률이 높다. 교포 동네 노래자랑에서 뽑는 거다. 한국시장은 영어 프리미엄이 엄청나고 오히려 한국말이 어눌한 게 더 먹히니까. 요즘은 중국 가서도 많이 뽑는다.
- 어떤 배경의 아이들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나.
이전까지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가정의 자녀들이 많이 응모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산층 이상이 반응한다. 만드는 건 전부가 대상이다. 사정에 따라 상당한 치아교정을 하기도 한다. 얼굴은 정리해 갈 수 있는데 키는 문제다. 연습은, 예전엔 1-2년 준비했지만 자본이 축적되면서 4-5년은 기본이다. 그 사이 정규수업은 간다. 실패하면 그 인생 책임질 수 없으니까. 춤부터 외국어까지 가르친다. 공부를 그렇게 하면 다 서울대 갈 정도다. 생존경쟁 치열하다. 영리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 그들을 육성하는 데 드는 비용과 회수 방법은.
연습생을 제대로 키우는 데 한 사람 당 웬만한 월급쟁이 연봉 이상 들어간다. 개인이 가정에서 하긴 불가능한 액수다. 데뷔하면 비용부터 정산한다. SM은 모든 트레이닝 비용을 정산하진 않는다. 소녀시대 정도면 첫 해 흑자 전환한다. 정산은 예전엔 1/n로 했지만 요즘은 개인별이다. 소녀시대 정도면 광고와 행사에 따른 추정치라 말하기 힘들지만 상당한 금액을 가져간다. TV는 홍보수단일 뿐 행사가 주수입이다.
- 소녀시대는 처음부터 삼촌을 타겟으로 한 건가.
아니다. 그러나 데뷔 후 곧 반응이 왔다. 원래 회사 앞에 여자애들이 바글바글하는데, 어느 날부터 먼 산 쳐다보는 남자들이 등장했다. 공연장엔 삼촌들 입장했고. 회사 입장에서 신기했다. 이제 최신 곡들은 아예 이 층에 대놓고 때리기 시작했다. 이수만 대표는 원래 먹고 살만하면 이런 것에 열중하게 된다고 했다. 해서 가사에 신경 쓰라 했다.
- 데뷔에 실패한 연습생은 어찌 되나.
지하에 연습생들이 꽉 차 있지만 SM조차 1년에 한, 두 팀 데뷔한다. 데뷔에 실패하면 사후조치는 사실상 어렵다. 만약 자의적 일방적으로, 다른 회사로 옮김 가능성이 있다면 막을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다. 투자한 게 있으니까. 그러니까 당사자들에겐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는 거다. 굉장히 슬픈 현실이다.
- 그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면 가장 안타까운 건.
자연인으로 살아가기 힘들다. 주변에서 가만 두지 않는다. 이용하려 한다. 남들이 대신 다해주니 현실감각 떨어지고. 그래서 사기 잘 당한다. 형과 오빠로 그들을 보자면, 저렇게 해서 인간으로 살아지겠나 싶다.
3. 아이돌은 그리 생산되고, 그 소비의 선두엔 삼촌과 누나가, 그 대기 열엔 초등생들이, 그 등 뒤엔 부모들이 끝없이 도열했다. 인간으로 살아지겠나 싶은 우려는 소수 내부자들의 극비인 채. 아이돌은 그렇게 이미 승인된 입신양명 코스. 대한민국은 이제 연예국가인 게다. 불편해도 부정할 도리 없는, 이 사회의 유랑극단화. 소녀시대가 아무리 짭짤하고 기특하다 한들 위안과 위무를 넘어 한 사회의 압도적 롤모델이 된다는 거, 이거 참 서글프다. 너무 초라하잖아.
이게 다, 어른이 없어서다. 정말로.
PS- 다음엔 현직을 만나봐야 할 텐데... 걔네들이 한겨레를 만나 주겠나. 쩝.
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사진 박미향 기자
김어준이 만난 여자
1. 인터뷰 하나.
홀로서기 나선 아이돌 출신 박정아
홀로서기 나선 아이돌 출신 박정아
김석현씨. 김석현 제공
“아이돌아, 네 인생을 살아라”
박정아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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