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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체험 극과 극

등록 2010-01-27 20:13수정 2010-01-28 14:21

너 어제 그거 봤어?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문화방송 창사특집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이하 <아마존>)은 다큐멘터리로서 이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웬만한 드라마보다 높은 20%대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지난주 금요일 축구 때문에 3부가 결방하자 이에 항의하는 시청자들로 홈페이지는 문전성시를 이뤘다. 에스비에스 역시 2010년을 시작하며 4부작으로 제작한 대형 다큐멘터리 <에스비에스 스페셜: 출세만세>(이하 <출세만세>)를 내놓았다. <10 아시아>(10asia.co.kr)의 최지은 기자(사진 오른쪽)와 위근우 기자가 각 방송사의 야심작인 <아마존의 눈물>과 <출세만세>를 들여다봤다.

피사체의 삶으로 들어가 이해와 감동 이끌어낸 ‘아마존의 눈물’
정치인이 출세의 표상? 개념은 없고 시선은 촌스러운 ‘출세만세’

위근우(이하 위) <아마존>의 시청률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다. 한국방송 <차마고도>나 <누들로드>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런 시청률을 내지는 못했다. 일종의 기현상이나 다름없는 <아마존> 열풍에는 복합적인 것들이 얽혀 있다. 내레이션을 김남길이라는 대중적인 스타가 했고, 또 잘했다. 원시라는 것에 대한 향수도 작용했다.

최지은(이하 최) 영화 <아바타> 열풍도 중요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지구에는 없을 줄 알았던 사람들이 지구에 살고 있다는 걸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알게 됐다. 보통 큰돈이 드는 프로젝트이면서 교양이기도 한 다큐는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어지면 엎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문화방송에서 이를 밀어붙였다. 모험을 했다. 물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는 게 가장 크다. 모든 요소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문화방송 <아마존의 눈물>과 4부작 기획 다큐멘터리 <에스비에스 스페셜: 출세만세>. 문화방송·에스비에스 제공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문화방송 <아마존의 눈물>과 4부작 기획 다큐멘터리 <에스비에스 스페셜: 출세만세>. 문화방송·에스비에스 제공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향수

교양이나 다큐는 보통 공영방송이 해야 할 책임이라고 많이들 얘기한다. 이번에 문화방송이 공영방송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보여줬다고 본다. <북극의 눈물>로 인해 얻은 관심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이유였다.

또 하나의 배경은 시사교양프로그램 <세계와 나 : 더블유>다. 전세계 오지와 분쟁지역 등을 취재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있을 것이고, 또 그 지역의 이슈에 대해서도 잘 파악할 수 있었을 거다. 아마존의 불법 벌목이나 산불을 내서 목장을 만드는 문제 등 아마존의 파괴에 대해서는 <더블유>가 꾸준히 짚어왔던 얘기다.

<더블유>가 주제의식을 갖고 고발하거나 문제제기를 하는 형식이라면, <아마존>은 자유롭게 어떤 가치판단이든 할 수 있도록 열어놓는 형식이다. 내레이션을 봐도 팩트 전달에만 충실하다. 어떤 것을 강제하지 않는 게 미덕이다. 다양한 방식과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이 다큐의 장점이다.

조에 부족에 관한 내용이 방송되고 네티즌은 ‘훈남 원주민’ 사진 등을 올렸다. 또 성실한 사냥꾼인 남자와 집안일을 주로 하는 ‘초식남 남편’ 등 이들을 이름과 성격으로 인식한다. 보통은 ‘어디에 사는 어떤 종족’이라는 집단으로 인식되는데, 여기에서는 이 사람은 이렇고 저 사람은 저렇고, 이렇게 특징지어 보게 된다.

<아마존>이 아마존을 내재적인 시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조에 부족의 삶을 ‘보호해야 할 원시 문화’ 등으로 위치짓거나 개념화하지 않고, 그냥 그 안에 들어가서 그들의 삶을 비춘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에 대해서도 반추해볼 기회가 생긴다. 이 다큐를 보다 보면 무엇이 원시이고, 무엇이 문명인지 헷갈린다. 스스로 문명화됐다고 믿는 우리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예전 같으면 이들에 대해 미개하다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수렵과 채집을 통해 삶을 이어가지만 복지 시스템은 잘되어 있다. 아이들도 공동양육하고 사냥을 한 음식도 자신들의 기준으로 심사숙고해 나눈다. 그렇게 사는 그들이 우리보다 미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향수 역시 이 다큐를 보게 되는 하나의 이유다.

그렇다고 <아마존>을 보면서 계속 웃을 수만은 없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외부의 인간들이 그들의 삶의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아마존>은 <북극의 눈물>이 그런 것처럼 처음부터 환경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 땅에 사는 존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인 다음에 그들이 무엇으로 인해 고통받는지를 보여준다. 오지를 찍을 때 어려운 점은 정해진 시간과 상황 안에서 원하는 이야기와 그림을 뽑아내야 한다는 거다.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15일을 기다려도 재규어가 오지 않아 촬영에 실패한 것도 나온다. 그게 한계이기도 하다.

한계가 오히려 이 다큐를 담백하게 만든다. 한정된 시간 안에 원하는 걸 뽑아내려면 설정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마존>은 포기한 것과 해내지 못한 것을 보여주면서 다큐의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선정성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는데, 과연 우리 문명을 기준으로 그들의 벗은 몸을 보고 선정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입고 사는 이들에게는 벗는 게 ‘노출’이지만, 벗고 사는 그들에게 벗는 건 ‘노출’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그게 자연스러운 의식주 문화다. 사냥 장면도 잔인한 장면을 보여주려고 동물을 잡는 장면이 나오는 게 아니라 그들이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이다.

그 부분만 잘라놓고 보면 선정적일 수도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선정성은 구경거리냐 아니냐의 문제다. 그런 면에서 <출세만세>는 선정적이라는 논란을 피할 수 없다. 2부 ‘나도 완장을 차고 싶다’에서 지렁이를 입에 넣고 닭을 잡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동물 학대라는 거다. 일종의 상황을 만들어 그 안에 사람들을 넣고 한 사람에게 절대권력인 완장을 차게 하는 상황은 자연스럽다기보다 실험 다큐나 페이크 다큐에 가까워 보였다. 인근 농가에 있던 닭이 스스로 온 것일 수도 있지만 의도가 도드라져 보이는 상황에서 ‘왜 닭이 저기 있었을까’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정말 닭을 잡는 장면이 필요했을까.

당위성이 없는데, 굳이 닭을 죽이는 것은 프로그램에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정한 상황에 사람들을 넣고 그걸 지켜보는 실험 다큐는 교육방송 등에서 종종 쓰이는 방식이다. 그 방식을 쓴 이유는 알겠지만 실제 그 상황이 사람들을 실제로 움직였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참가자들은 자연스러운 실험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프로그램이 원하는 걸 이미 눈치챘을 수도 있고, 프로그램 자체가 어떤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면도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완장을 차고 권력을 갖는 게 과연 출세의 문제냐는 거다. 인정받으려는 욕구일 수도 있다. 모든 걸 출세와 완장이라는 상징적인 기호로 몰고 간다.

<출세만세>의 가장 큰 문제는 출세와 권력, 리더십 등을 구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모르게 만들었다는 거다. ‘출세’라는 발상은 좋지만 결과물은 조악하다. 다큐 내내 정치인들이 등장한다. 정치인을 출세한 사람의 표준으로 삼고 접근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가난한 환경을 딛고 출세했다고 해도 출세하는 과정에 있어서 어떤 논란이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최소한 고려했어야 한다. 인터뷰이를 선정하면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가 보이지 않는다.

출세와 권력, 리더십 구분도 못하나

자의적인 해석이 프로그램을 관통한다. 모든 이야기를 출세라는 코드에 맞춰 해석한다는 얘기다.

4부 ‘리더에게 길을 묻다’에는 출세와 리더, 리더십에 대한 개념이 혼재돼 있다. 옛날 방식으로 출세한 이들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을까. 출연한 이들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제작진이 이들을 통해 무슨 얘기를 했는지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오히려 출세를 어디에서 으스댈 수 있는 힘으로 보고 좀더 솔직하게 갔다면, 극악하게 돌아가는 사회에 주목해 더 의미있는 다큐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이 다큐는 불편한 지점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다.

<출세만세>가 한국전쟁 이후 한국 사회는 모두가 공평하게 가난했다는 데에서 출발했다는 얘기는 신선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평하지 않은 사회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는 식의 얘기를 하고 싶다면 2010년을 기준으로 생각했어야 한다. 이 다큐가 지금의 20~30대에게 무슨 얘기를 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존의 눈물> 이래서 인상적이었다

“조에 부족의 한 사냥꾼이 부인을 위해 턱 아래에 끼우는 나무를 깎는 장면이 있다. 턱에 나무 장식물을 끼우는 건 충격적이거나 신기한 구경거리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이 다큐는 그런 행동이 지닌 의미를 보여주면서 그들에게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일 수도 있다는 걸 알려줬다.”(위근우)

“사냥을 주로 하던 부족이 외부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사냥 대신 동물을 키운다. 멧돼지가 우리에서 도망쳐 다시 잡느라 고생하는 상황을 보여주는데, 그 자체가 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이더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바뀌고 문명이 바뀌다는 게 저런 거구나, 싶었다.”(최지은)

<출세만세> 이래서 불편했다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두산 박용만 회장의 모습은 흥미로웠지만, 이 인물을 통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더라. 섭외한 것만으로 모든 고민을 접은 것 같다.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그의 환경에 대해서는 슬쩍 넘어가고 회장으로서 힘들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 것도 불편했다.”(최지은)

“3부에 노숙자와 장군을 놓고 실험하는 장면이 나온다. 둘이 각각 길가에 쓰러져 있었을 때 사람들이 이들을 도와주는 데 걸리는 시간을 잰다. 이게 의미가 있는 실험일까. 이 실험은 출세와 아무 관련이 없다. 이 프로그램의 당위성에 대해 동의하고 안 하고를 떠나 이 실험은 이 다큐의 질적 문제를 보여준다.”(위근우)

정리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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