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새벽 2시 탐앤탐스. 노트북을 켜놓고 작업에 몰두하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작업실이다. 2,4. 새벽 1시 맥도날드. 늦은 시간이지만 주문하려고 줄을 길게 늘어선 사람들, 음식을 먹으며 친구들과 얘기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낮밤 없는 호모 나이트쿠스들의 아지트 24시간 커피전문점·패스트푸드점 관찰기
낮밤 없는 호모 나이트쿠스들의 아지트 24시간 커피전문점·패스트푸드점 관찰기
새벽 시간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가게 된 한 커피전문점에서 봤던 생경한 광경 때문이었다. 시계는 분명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곳의 분위기는 낮 2시였다. 새벽 특유의 몽롱한 냄새 대신 시간대를 가늠할 수 없는 공간의 냄새만 남았다. 새벽 시간,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그 기록이 여기 있다.
#12월18일 새벽 1시42분 - 홍대지하철역 앞 탐앤탐스 홍대점
춥다. 제아무리 사람들로 가득한 홍대 앞도 추위에는 별수 없는지, 거리에 사람들이 많지 않다. 다 집에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커피전문점 문을 밀었다. 그럼 그렇지, 다들 여기 와 있구나. 1층 풍경은 낮 1시 반과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생기발랄하다. 커피를 주문하려고 줄을 섰다. 내 앞에 4명이나 있다. 오른쪽 의자에는 빵과 커피를 앞에 두고 눈빛 교환에 바쁜 남녀 커플이 서로 마주보며 연방 웃고 있다. 연애세포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간대인가. 주문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손님 20여명이 자리한 2층 가운데 테이블에 앉았다. 오른쪽 탁자에 20대 여성 2명이 술을 좀 했는지 발그레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다. 커피잔 옆에 숙취해소음료가 놓여 있다. 커피와 함께 마시면 효과가 두 배인 걸까. 1층에는 열애중인 커플이 있더니 2층에는 ‘열공’중인 커플이 있다. 각자 노트북을 켜고 마주 앉은 남녀, 20대 초반으로 보인다. 커플티 비슷한 걸 입은 거 보면 커플은 확실한데 권태기인가 보다. 30분째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노트북만 보고 있다. <개그콘서트> 오나미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헤어지세요.”
도서관이야? 커피전문점이야?
#12월18일 새벽 2시38분 - 홍대지하철역 앞 탐앤탐스 홍대점
어라, 2층이 제법 썰렁하다. 3층으로 올라갔다. 창가를 향해 바 형태로 되어 있는 좌석에 일행으로 보이는 3명이 노트북을 켜놓고 일에 열심이다.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들은 종이를 들고 ‘프로젝트 어쩌고’ 하며 사무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4층으로 올라갔다. 잘못 들어간 줄 알았다. 15명 정도가 아무 말 없이 책을 보거나 노트북에 뭔가를 쓰고 있다. 이 학구적인 분위기는 뭐지. 안쪽 커다란 탁자에서 책을 펴놓고 열공중인 사람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앞머리를 핀으로 올리고 공부하는 대학생, 이어폰을 끼고 노트북을 뚫어져라 보는 남성, 커피잔 3개를 앞에 놓고 노트에 뭔가를 적고 있는 이들. 말소리 대신 타이핑 소리와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들린다. 20분이 지나도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 하나 없다. 한쪽 구석에서 작은 말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자리에 앉아서 화장을 고치고 있는 여성 2명이 있다. 아, 여기는 도서관이 아니라 커피전문점이었지. 주차장 골목의 유흥주점에서 음주에 열중하는 이들과 카페인으로 뇌를 각성시키며 향학열을 불태우는 이들이 창문을 사이에 두고 새벽이라는 같은 시간에, 홍대 앞이라는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
#12월20일 새벽 1시12분 - 학동사거리 맥도날드 청담점
1층 기둥에 서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는 새벽에도 외롭지 않다. 친구들과 야식 먹으러 들어오는 이들, 햄버거를 사들고 나가는 이들, 주문한 햄버거를 배달하는 라이더들로 출입구 문이 쉴 새 없이 열렸다 닫힌다. 커피를 들고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창가는 이미 만석이다. 제법 잘 차려입은 20대 초반의 남성 4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날 있었던 일을 복기한다. 저쪽 창가에 자리잡은 남성 4명은 키득거리며 게임 얘기에 한창이다. 머그잔을 3잔 앞에 놓고 수다 떠는 여성들은 서로 “맞아, 맞아”를 해주며 수다 삼매경이다. 외국인 3명이 느릿한 걸음으로 2층에 올라와 햄버거 세트를 들고 ‘파티룸’으로 향한다. 파티룸에 들어간 이들은 서로 눈을 맞추며 얘기하고 있다. 멀리서 봐도 ‘있어 보이는’ 코트를 입은 남녀가 커피 한잔과 치킨너깃을 들고 옆자리에 앉아 영어로 얘기를 시작한다. 새벽이 되면 갈 데 없는 건 ‘럭셔리 커플’이나 ‘노멀 커플’이나 매한가지구나.
#12월20일 새벽 2시7분 - 탐앤탐스 청담JJ점
아, 훈훈하다. 날씬하고 늘씬한 여성들과 이 새벽 찬 공기를 따뜻하게 바꿔주는 남성들이 대부분이다. 강남이라서 그런가. 흡연실은 이미 절반 이상 찼다. 예쁜 언니는 커피와 담배를 놓고 마주 앉은 사람에게 커다란 손동작을 그려가며 열변을 토하는 중이다. 6명이나 되는 제법 큰 규모의 일행은 들릴 듯 말 듯 천천히 대화를 나눈다. 매장 안쪽에서 유독 톤이 높은 목소리가 많이 들려온다. 일찌감치 자리잡은 것 같은 여성 3명은 편한 자세로 벽에 기대어 앉아 코트로 무릎을 덮고 제법 누구네집 안방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탁자에는 각종 빵과 음료가 가득하다. 먹을 만큼 먹었고 얘기할 만큼 한 것 같은데, 아직도 수다가 부족한가 보다.
누군가에겐 늦은 저녁, 누군가에겐 이른 아침
#12월20일 새벽 3시20분 - 주차장 골목 탐앤탐스 홍대파크점
제아무리 매서운 추위도 주말 홍대 앞은 어찌할 수 없는가 보다. 주차장 골목은 인산인해다. 커피전문점 2층으로 올라갔다. 토요일 새벽은 목요일 새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빈자리를 쉽게 찾을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많다. 한쪽에는 뭐가 그렇게 서글픈지 검은 마스카라 눈물을 흘려가며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여성이 있고, 저쪽에는 휴대전화에 대고 화를 내는 남성이 있다. 차를 한잔 들고 3층으로 올라갔다. 3층 역시 비슷한 풍경이다. 사람은 많고 자리는 없다. 북적대는 사람들 한가운데에 독야청청 노트북에 집중하는 외국인이 눈에 들어온다. 며칠 전 도서관인 줄 착각했던 4층으로 올라갔다. 주말은 역시 다르구나. 사각사각 연필 움직이는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7명이 넘는 대규모 일행이 커다란 테이블을 차지했다. 근데, 이 사람들 할증 풀리길 기다리는 건가.
#12월20일 새벽 4시15분 - 목동 맥도날드 파리공원점
아침 메뉴가 시작되는 시간이다. 점포 안은 아침 메뉴판을 갈아 끼우느라 분주하다. 왼쪽 탁자에 편한 복장의 여성 2명이 앉아 있다. 한명은 잠옷 위에 두꺼운 코트를 걸치고 모자를 눌러썼고, 또 한 명은 트레이닝복 위에 입은 코트 모자로 얼굴을 절반 이상 가렸다. 동네 친구 사이인 것 같은데 인생사 걸림돌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지 분위기가 심각하다. 오른쪽 탁자에는 커플이 나란히 앉아 멍한 표정으로 음식을 먹고 있다. 옷차림을 보니 어딘가 놀러 가려고 이 시간에 만나 우선 아침을 먹고 있는 듯하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먹는 음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술 대신 들이켜는 콜라 한잔이고, 누군가에게는 일러도 한참 이른 아침 식사다.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낮밤 없는 호모 나이트쿠스들의 아지트 24시간 커피전문점·패스트푸드점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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