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의 구수한 맛이 맴돌다 무의 맑은 맛에 밀려 사라졌다. 새우젓갈의 짭짤한 감칠맛이 그뒤 두 맛을 밀어냈다.
[매거진 esc] 음식의 문화적 의미 분석·맛 재현한 <백석의 맛> <라블레의 아이들>
도전 ‘음식 골든벨’이라 생각하고 빈칸을 채워보자.
1. 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문창에 텅납새의 그림자가 치는 아침 시누이 동세들이 욱적하니 흥성거리는 부엌으론 샛문틈으로 장지문틈으로 () 을/를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백석 <여우난골족>)
2. ()의 재료가 기름에 들어가면 노르스름한 색으로 변하는데 그 유액은 너무도 묽어 재료의 단면을 완전히 감싸지 않고 새우의 경우에는 소재의 장밋빛을, 피망은 초록빛을 가지는 갈색으로 그 표면을 살짝 드러내 보인다.(롤랑 바르트 <기호의 나라>)
3. 워홀을 일약 유명 스타로 만든 건 1962년에 발표한 일련의 그림이었다. 우선 로스앤젤레스에서 연 개인전에서 <서른두 개의 ()>라는 제목으로…작품을 선보인다.
탈북자가 알려준 무이징게국을 만들어보다
정답은 1번 무이징게국, 2번 덴푸라(튀김), 3번 캠벨 통조림 수프. 두 개 이상 맞혔다면 당신은 혀에 민감한 사람이다. ‘혀에 민감하다’는 것은 맛집을 많이 안다거나 음식 조리법을 잘 안다는 뜻만은 아니다. 음식이 배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문화의 일부라는 점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음식은 문화 상품에 그치지 않는다. 어떤 식재료로 어떤 방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을 언제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개인의 기억이 달라지고 서로 다른 기억은 조금씩 사회를 바꾼다. 적지 않은 음식 칼럼니스트·학자들이 음식 담론이 맛집 소개나 조리법 소개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다. 누가, 어떤 음식을, 왜, 언제부터 먹는지 들여다보면 결국 ‘사람’이 보인다고 그들은 말한다.
가령 이달 5일 출간된 <백석의 맛>(소래섭 지음·프로네시스)을 보면 수능 언어영역 시험 때 볼펜을 그어가면 외운 시인 백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백석의 모습이 튀어나온다. 백석은 1912년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나 주로 1930년대에 활동한 시인이다. 막 수능시험을 마친 예비 대학생들에게 백석은 언어영역 문제의 하나에 불과할 게다. 그러나 실은 죽은 백석은 산 시인을 좌지우지하는 언어의 요리사다. 2004년 240여명의 시인이 참여한 ‘시인들이 좋아하는 애송시’ 설문에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이 3위로 꼽혔을 정도다. ‘흰 바람벽이 있어’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제법 알려진 축에 속한다. 그의 시가 더 많이 읊어지기를 바라는 소래섭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가 백석의 시에 음식과 맛이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왜 등장하는지 분석했다. 책을 보면, 백석의 시는 100여편인데 등장하는 음식 종류는 110여종에 이른다. 모밀국수, 조개송편 등 고향 평안도의 음식부터 참치회, 연소탕(제비집 요리)등 일식·중식까지 다양하다. 널리 알려진 노래 중 하나인 ‘여우난골족’은 어린 시절의 명절날 추억을 노래한다. 매감탕(메진 감탕. 엿 곤 솥을 씻은 단물), 콩가루찰떡(콩가루를 묻힌 찰떡), 송구떡 등 많은 음식이 등장한다. 그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은 맛과 냄새로 기억된다. 무이징게국도 등장한다. 추운 겨울 아침 막 잠에서 깬 백석 어린이의 입에 침이 가득 고이게 만든 무이징게국은 어떤 맛일까?
무이징게국을 재현하는 일은 처음부터 벽에 부닥쳤다. 인터넷 포털에 무(무이는 평안도 말로 무를 뜻한다)와 작은 새우를 넣고 끓인 국이라는 블로그 글이 몇 개 있었으나 믿기 어려웠다. 조리법도, 설명의 근거도 없는 같은 글이 여기저기 올라 있었다. 탈북자 출신의 북한 음식 연구가인 이애란 서울전문학교 교수에게 물었으나 “무이는 평안도 말로 무가 맞지만 무이징게국은 들어본 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개성 음식을 내는 개화옥에서도 금시초문이라고 답했다. 다행히 이름 밝히기를 꺼린 43살의 평안도 출신 탈북 여성으로부터 설명의 단초를 들었다. “무와 작은 새우를 넣고 끓인 국이 평안도에 있느냐”란 질문에 그는 평안도 성천, 증산 등 바닷가에서 무와 새우젓갈로 끓인 국이 있으며 무가 나는 가을·겨울에 여전히 많이 먹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렸을 때 많이 먹었다며 조리법도 설명했다. 무이징게국은 곧 무이징게젓국을 가리킨다는 설명이다. 북한 사회과학출판사에서 펴낸 <조선말 큰사전>에도 ‘징게’는 없었으나 작은 새우를 가리키는 ‘징개미’라는 단어가 있었다.
용수산 청담점(02-544-2527)의 김재영 차장이 조리법을 보고 무이징게국을 재현했다.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파와 무를 볶은 뒤 물을 붓고 새우젓갈로 간을 한다. 작은 새우가 동동 뜬 국물을 떠 넣었다. 기름의 고소한 첫맛 뒤에 무의 시원함이 느껴졌다. 무와 파만으로 자칫 심심할 뻔한 국물은 소금이 아니라 새우젓갈로 간을 함으로써 감칠맛을 냈다. 담백했고 구수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맛이었다. 김 차장은 “옛날 맛”이라고 표현했다. 전라도 출신인 그는 비슷한 뭇국을 북한은 물론 남한의 바닷가 지역에서도 먹는다고 덧붙였다.
귄터 그라스는 왜 장어에 집착했는가
<백석의 맛>이 음식을 통해 문학을 들여다본 책이라면, 지난달 출간된 <라블레의 아이들>(요모타 이누히코 지음·양경미 옮김·빨간머리)는 예술가들이 사랑한 음식을 다뤘다. 문학가·미술가 등이 어떤 음식을 좋아했는지에 대한 개인사, 음식이 어떻게 표현의 수단으로 활용됐는지에 대한 미학론이 맛있게 펼쳐진다. 비교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는 요모타 이누히코는 설명에 그치지 않고 문헌을 총동원해 각각의 음식을 재현하고 직접 먹어봤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 팝아트 미술가 앤디 워홀, 소설가 귄터 그라스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어떤 음식에 집착했는지 궁금한 사람이든, 자신의 글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맛집 블로거든 읽어두면 도움이 될 것 같다. 잘 살기 위해서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이라면, 음식에 대한 글은 결국 사는 이야기가 될 테니.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사랑했던 돼지고기 요리. 빨간머리 제공
가령 이달 5일 출간된 <백석의 맛>(소래섭 지음·프로네시스)을 보면 수능 언어영역 시험 때 볼펜을 그어가면 외운 시인 백석이 아니라 살아 있는 백석의 모습이 튀어나온다. 백석은 1912년 평안도 정주에서 태어나 주로 1930년대에 활동한 시인이다. 막 수능시험을 마친 예비 대학생들에게 백석은 언어영역 문제의 하나에 불과할 게다. 그러나 실은 죽은 백석은 산 시인을 좌지우지하는 언어의 요리사다. 2004년 240여명의 시인이 참여한 ‘시인들이 좋아하는 애송시’ 설문에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이 3위로 꼽혔을 정도다. ‘흰 바람벽이 있어’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제법 알려진 축에 속한다. 그의 시가 더 많이 읊어지기를 바라는 소래섭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부 교수가 백석의 시에 음식과 맛이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왜 등장하는지 분석했다. 책을 보면, 백석의 시는 100여편인데 등장하는 음식 종류는 110여종에 이른다. 모밀국수, 조개송편 등 고향 평안도의 음식부터 참치회, 연소탕(제비집 요리)등 일식·중식까지 다양하다. 널리 알려진 노래 중 하나인 ‘여우난골족’은 어린 시절의 명절날 추억을 노래한다. 매감탕(메진 감탕. 엿 곤 솥을 씻은 단물), 콩가루찰떡(콩가루를 묻힌 찰떡), 송구떡 등 많은 음식이 등장한다. 그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은 맛과 냄새로 기억된다. 무이징게국도 등장한다. 추운 겨울 아침 막 잠에서 깬 백석 어린이의 입에 침이 가득 고이게 만든 무이징게국은 어떤 맛일까?
한·중·일 요리문화를 다룬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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