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라는 뜻을 가진 라네즈는 눈을 주요 모티브로 화장품 용기를 디자인한다. 테이블 위 제품들은 지난 2년 동안 라네즈가 내놓은 화장품 용기들. 해마다 예술가들과 협업해 한정판 제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매거진 esc]
기능에서 미학적 완성도까지 담는
화장품 용기 디자인
예술가들과의 협업이 대세 ‘의외로 센스 있네.’ ‘고급스러운 걸 좋아하는군.’ ‘취향이 세련됐는데?’ ‘나도 갖고 … 싶다!’ 테이블마다 수다 떠는 여자들로 가득한 카페, 한 여자가 핸드백에서 콤팩트를 꺼내 화장을 고친다. 카페 안 사람들의 시선은 (절대 티 나지 않게) 콤팩트로 향하고, 카페 안에는 (절대 들리지는 않게) 콤팩트에 대한 각자의 평과 감상이 공기에 실려 떠다닌다. 피부 상태부터 화장품에 대한 취향, 그리고 미적인 감각까지 그 여성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바로 화장품 용기 디자인이다. 품질 강조에서 감성적 접근으로 화장품 용기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스킨이나 로션, 파운데이션 등을 담는 기본적인 기능의 용기에서 화장품 브랜드 콘셉트를 보여주는 도구로 진화해온 화장품 용기가 최근에는 편리함과 정보는 기본이고 더 세련된 디자인에 예술가와 협업까지 하면서 실용성과 예술성 두 가지를 모두 갖췄다. 슈에무라 브랜드매니저 이윤진 이사는 “기존에는 제품의 품질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주로 진행했다면 최근에는 감성적인 접근이 바로 구매로 이어져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예쁘고 독특한 화장품 용기 개발에 많은 신경을 쓴다”며 “디자인이 예쁜 화장품은 패션 아이템으로도 각광받고 있어 브랜드별로 차별화된 제품 출시와 다양한 마케팅 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화장품 용기의 기본 형태는 각 브랜드의 콘셉트와 성격, 브랜드명과 그에 따른 색상을 바탕으로 디자인된다. 라네즈의 경우 브랜드명이 불어로 ‘눈’을 뜻하기 때문에 디자인의 주요 모티브는 눈이다. 스킨로션 등 기초 제품은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콘셉트에 맞춰 푸른색이, 메이크업 제품은 눈의 결정처럼 화려하고 빛나는 흰색이 기본 색상이다. 라네즈 디자인팀 진정선씨는 이렇게 말한다. “브랜드와 라인을 지속적으로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기본 색상과 디자인을 놓고 응용하는 형태로 라인을 내놓고 매년 새로운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그렇게 브랜드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거죠. 라네즈의 경우 단순하면서 절제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지향해요.” 헤라는 보라색을, 마몽드는 여성스러운 분홍색과 꽃무늬 패턴을 주요 색상과 모티브로 사용한다. 섬세하고 예민한 피부를 가진 여성이 주 소비층인 크리니크는 기초 제품과 메이크업 제품의 모티브를 각각 버드나무 빛깔의 초록색 종이와 꽃송이 문양에서 가져왔다. 베네피트는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 메이크업을 즐긴다는 콘셉트에 맞춰 용기 디자인에 20대의 팝적인 취향을 그대로 담아냈다. 베네피트의 공동 크리에이터인 쌍둥이 자매 진과 제인은 빈티지 제품을 주요 모티브로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핸드백에 갖고 다니면 여자를 돋보이게 하는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빈티지 마네킹이나 포스터 등에서 영감을 받고 올드 패션의 이미지와 스타일을 모두 이용하죠. 하나의 훌륭한 디자인과 제품은 시간의 흐름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어요. 이것이 제품을 여러 번 보고 싶게 만들고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원동력이에요.” 베네피트의 ‘우먼 시킹 토너’는 구인광고를 용기 디자인에 적용했다. 싱글 여성이 완벽한 배우자감을 찾는 것처럼 피부를 가꿔줄 솔메이트나 다름없는 스킨케어 제품을 찾는다는 게 디자인의 아이디어다. 빈티지 느낌의 종이로 만든 용기를 사용해 유명해진 ‘박스-오-파우더’ 라인은 그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훌라’부터 ‘단델리온’, ‘슈가밤’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피부관리 전문 브랜드는 제품에 대한 신뢰성을 용기 디자인으로 표현한다. 피부과학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 아이오페는 기능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은색과 파란색을 주요 색상으로 사용한다. 닥터자르트는 피부과 의사들이 만든 화장품이라는 점을 강조해 용기 디자인 색상을 검은색과 은색으로 통일하고 장식을 뺐다. 비타민 크림 ‘V7 비타레이저’는 연고처럼 디자인된 용기에 제품을 넣고 전문의약품과 같은 알루미늄 재질로 제작해 제품에 대한 믿음을 극대화했다. 친환경성이 주요 콘셉트인 영국 브랜드 러시는 재활용이 가능한 검은색 용기에 핸드메이드 제품을 넣어 제품부터 용기까지 일관성 있는 접근을 보여준다.
최근 2~3년 동안 화장품 브랜드 관련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컬래버레이션’, 그러니까 예술가와의 협업이다. 화장품 브랜드는 자신의 브랜드 콘셉트와 잘 맞는 예술가와 함께 5000개에서 1만개 정도의 한정판 제품을 제작한다. 슈에무라는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아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 쓰모리 지사토와 함께 디자인한 한정판 ‘츠모리 치사토 컬렉션’을 선보였다. 메이크업 팔레트와 립스틱, 파우치 등 여덟 종류의 제품 용기마다 쓰모리 지사토가 직접 그린 고양이, 리본, 별 등의 일러스트가 들어가 패션 아이템으로도 손색이 없다. 라네즈는 지난해 봄 윈도 페인터 나난과 함께 ‘스노 블룸’을 주제로 눈의 이미지를 일러스트로 표현한 제품을 선보였다. 올해 봄에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핀란드 일러스트레이터 클라우스 하파니에미와 협업한 컬렉션을 발표했다. 예술가뿐 아니라 유명 인사와의 협업도 눈길을 끈다. 라네즈는 올해 송혜교가 제품 색깔부터 용기 디자인까지 관여한 일명 ‘송혜교 립스틱’을 제작해 5000여개의 한정 수량을 한 달 만에 팔아치웠다.
용기 디자인은 단지 용기의 색상이나 무늬에만 그치지 않는다. 화장품을 사용하는 방법 역시 디자인 영역에 들어간다. 립스틱 뚜껑을 연 다음 좌우로 당기면 본체와 밑판이 분리돼 립스틱을 교체해 사용할 수 있는 슈에무라의 제품이나 슬라이드형 휴대전화처럼 위로 밀어서 여는 라네즈의 슬라이딩 팩트가 그 예다. 뚜껑을 열고 안쪽에 있는 거울을 보면서 화장을 하는 기존 콤팩트의 형태가 아닌, 위로 밀어 올리면서 겉에 부착된 거울을 통해 쉽게 화장을 고칠 수 있도록한 슬라이딩 팩트는 출시된 2005년 이후 세 번의 업그레이드를 거치며 점점 더 사용하기 편리한 방향으로 발전해왔고 지금 제작되는 반자동 슬라이딩 팩트에는 실제 슬라이드형 휴대전화에 쓰는 부품이 들어간다. 라네즈 진정선씨는 “화장을 하는 고정된 습관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 디자인적인 혁신을 통해 새로운 용기 디자인을 찾아간다”고 설명했다.
디자인의 혁신은 제품도 성형한다
화장품 안의 내용물도 디자인에 포함된다. 색색깔의 아이섀도는 제품 콘셉트에 따라 패턴을 디자인하고 성형하는 과정을 거쳐, 쓰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제품이 된다. 요즘 화장품 디자인 경향 중 하나는 ‘용기는 단순하게, 내용물은 화려하게’다. 여기에는 정교해진 화장품 내용물 성형 기술이 한몫했다.
화장품 용기는 이렇게 얘기한다. 차분한 은색 용기에 글씨가 점잖게 적혀 있는 로션을 가졌다면 피부에 민감하고 화장품의 기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민한 사람이며, 귀여운 고양이 일러스트가 그려진 콤팩트가 있다면 시각적 만족도를 중요시하는 문화적인 사람, 또 디자인적인 요소가 거의 없고 재활용이 가능한 용기의 화장품을 좋아한다면 환경친화적인 사람이라고. 지금 핸드백 화장품 주머니 속 화장품은 당신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고 있을까.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사진제공 슈에무라 베네피트 닥터자르트
화장품 용기 디자인
예술가들과의 협업이 대세 ‘의외로 센스 있네.’ ‘고급스러운 걸 좋아하는군.’ ‘취향이 세련됐는데?’ ‘나도 갖고 … 싶다!’ 테이블마다 수다 떠는 여자들로 가득한 카페, 한 여자가 핸드백에서 콤팩트를 꺼내 화장을 고친다. 카페 안 사람들의 시선은 (절대 티 나지 않게) 콤팩트로 향하고, 카페 안에는 (절대 들리지는 않게) 콤팩트에 대한 각자의 평과 감상이 공기에 실려 떠다닌다. 피부 상태부터 화장품에 대한 취향, 그리고 미적인 감각까지 그 여성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려주는 것은 바로 화장품 용기 디자인이다. 품질 강조에서 감성적 접근으로 화장품 용기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스킨이나 로션, 파운데이션 등을 담는 기본적인 기능의 용기에서 화장품 브랜드 콘셉트를 보여주는 도구로 진화해온 화장품 용기가 최근에는 편리함과 정보는 기본이고 더 세련된 디자인에 예술가와 협업까지 하면서 실용성과 예술성 두 가지를 모두 갖췄다. 슈에무라 브랜드매니저 이윤진 이사는 “기존에는 제품의 품질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주로 진행했다면 최근에는 감성적인 접근이 바로 구매로 이어져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예쁘고 독특한 화장품 용기 개발에 많은 신경을 쓴다”며 “디자인이 예쁜 화장품은 패션 아이템으로도 각광받고 있어 브랜드별로 차별화된 제품 출시와 다양한 마케팅 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라네즈와 협업해 캠페인을 진행했던 윈도 페인터 나난의 스케치.
화장품 용기의 기본 형태는 각 브랜드의 콘셉트와 성격, 브랜드명과 그에 따른 색상을 바탕으로 디자인된다. 라네즈의 경우 브랜드명이 불어로 ‘눈’을 뜻하기 때문에 디자인의 주요 모티브는 눈이다. 스킨로션 등 기초 제품은 눈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콘셉트에 맞춰 푸른색이, 메이크업 제품은 눈의 결정처럼 화려하고 빛나는 흰색이 기본 색상이다. 라네즈 디자인팀 진정선씨는 이렇게 말한다. “브랜드와 라인을 지속적으로 소비자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기본 색상과 디자인을 놓고 응용하는 형태로 라인을 내놓고 매년 새로운 캠페인을 전개합니다. 그렇게 브랜드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거죠. 라네즈의 경우 단순하면서 절제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지향해요.” 헤라는 보라색을, 마몽드는 여성스러운 분홍색과 꽃무늬 패턴을 주요 색상과 모티브로 사용한다. 섬세하고 예민한 피부를 가진 여성이 주 소비층인 크리니크는 기초 제품과 메이크업 제품의 모티브를 각각 버드나무 빛깔의 초록색 종이와 꽃송이 문양에서 가져왔다. 베네피트는 ‘쉽고 빠르고 재미있게’ 메이크업을 즐긴다는 콘셉트에 맞춰 용기 디자인에 20대의 팝적인 취향을 그대로 담아냈다. 베네피트의 공동 크리에이터인 쌍둥이 자매 진과 제인은 빈티지 제품을 주요 모티브로 사용한다고 설명한다. “핸드백에 갖고 다니면 여자를 돋보이게 하는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해요. 빈티지 마네킹이나 포스터 등에서 영감을 받고 올드 패션의 이미지와 스타일을 모두 이용하죠. 하나의 훌륭한 디자인과 제품은 시간의 흐름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을 갖고 있어요. 이것이 제품을 여러 번 보고 싶게 만들고 호기심을 갖게 만드는 원동력이에요.” 베네피트의 ‘우먼 시킹 토너’는 구인광고를 용기 디자인에 적용했다. 싱글 여성이 완벽한 배우자감을 찾는 것처럼 피부를 가꿔줄 솔메이트나 다름없는 스킨케어 제품을 찾는다는 게 디자인의 아이디어다. 빈티지 느낌의 종이로 만든 용기를 사용해 유명해진 ‘박스-오-파우더’ 라인은 그 독특한 디자인 때문에 ‘훌라’부터 ‘단델리온’, ‘슈가밤’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피부관리 전문 브랜드는 제품에 대한 신뢰성을 용기 디자인으로 표현한다. 피부과학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 브랜드 아이오페는 기능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은색과 파란색을 주요 색상으로 사용한다. 닥터자르트는 피부과 의사들이 만든 화장품이라는 점을 강조해 용기 디자인 색상을 검은색과 은색으로 통일하고 장식을 뺐다. 비타민 크림 ‘V7 비타레이저’는 연고처럼 디자인된 용기에 제품을 넣고 전문의약품과 같은 알루미늄 재질로 제작해 제품에 대한 믿음을 극대화했다. 친환경성이 주요 콘셉트인 영국 브랜드 러시는 재활용이 가능한 검은색 용기에 핸드메이드 제품을 넣어 제품부터 용기까지 일관성 있는 접근을 보여준다.
1-2. 슈에무라가 쓰모리 지사토와 협업해 내놓은 올해 크리스마스 한정판 제품. 3. 연고처럼 디자인한 닥터자르트의 비타민 크림. 4. 구인광고를 디자인에 활용한 베네피트의 우먼 시킹 토너. 5. 용기를 종이로 만든 베네피트의 단델리온 파우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