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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삼기칠 황금률을 찾아라

등록 2009-11-18 21:23수정 2009-11-21 14:26

11월15일 용산 아이파크몰 이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바투리그' 경기장 모습.
11월15일 용산 아이파크몰 이스포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바투리그' 경기장 모습.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바둑 문외한들의 요절복통 바투 개발기…도박판 ‘선생님’들의 훈수 듣기도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회사 대표에게 프로젝트 결과를 보고하러 온 한 남자가 갑자기 주섬주섬 녹색 군용 담요를 회의실 책상에 깔기 시작한다. 남자는 “이 게임은…”을 중얼거리며 군용 담요 위에 화투장을 펼쳐놓으며 화투를 친다. “그냥 올라가서 하지 그래?” 부자연스러운 팔의 움직임을 포착한 대표의 얘기가 떨어지자마자 남자는 책상 위에 올라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화투를 치면서 얘기를 이어간다. “그러니까 이번에 만들어본 게임은요….” ○○나이트클럽 △△파 사무실의 풍경도, 경기도 최고의 타짜 김아무개씨의 강의실 풍경도 아니다. 회사 대표 앞에서 책상에 올라가 진지하게 화투를 치는 이 생경한 모습은 ‘바투’를 기획하던 시절, 이플레이온 사무실의 풍경이다.

대표 집무실 책상 올라가 화투 친 사연

바투 게임 화면.
바투 게임 화면.

2007년 봄, 바둑을 온라인 게임으로 기획하라는 프로젝트를 받아든 기획팀 팀원 10여명의 머릿속에는 커다란 물음표가 하나 그려졌다. 바둑을 둘 줄 알았던 이는 바둑티브이에서 일했던 김옥곤씨뿐이었다. “바둑을 둘 줄 모르는데 게임을 만들라니 참 황당했어요. 그날부터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죠.” 김씨의 지도편달에 따라 심화학습에 들어간 이들에게 매일매일은 괴로움과 자학의 연속이었다. “내 머리가 이렇게 나쁜 줄 미처 몰랐다”는 하소연이 끝날 때쯤 비로소 새로운 바둑 게임을 만들 준비를 마쳤다. 그다음부터는 온갖 게임을 섭렵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새로운 온라인 게임의 승부수는 무엇보다 규칙, 그러니까 기획이었다. 화려한 화면이나 구성, 캐릭터 같은 요소는 바둑 게임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게임 개발 경험이 전무한 신생 회사였고, 바둑이라는 고전을 현대화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일일이 직접 해보는’, 그러니까 소위 ‘삽질’이었다. 바둑의 기원을 비롯해 바둑을 응용해 만들었던 게임의 역사를 파헤쳤고, 바둑 관련 만화책부터 온갖 보드게임, 고스톱, 포커, 마작까지 수많은 게임을 하고 또 하며 바둑과 교접을 시도했다. 1980년대 도박판을 쥐락펴락했다는 ‘마작 선생님’에게 사사(!)하기도 했고, ‘화투 13장으로 게임 만들기’, ‘카드로 하는 게임 다섯 가지 만들기’ 등 매주 회사 대표가 직접 내주는 미션을 수행하다보니 처음 설명한 웃지 못할 풍경이 이어지기도 했다.

바둑판도 고생이 많았다. 19줄인 바둑판을 15줄로도 잘라보고, 11줄로도 잘라보고, 9줄로도 잘라봤다. 나무로 만든 바둑판을 자르고 이어붙이고를 반복하다보니 여기가 회사인지 목공소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육각형 바둑판, 삼각형 바둑판도 만들어보고 오른쪽과 왼쪽이 이어지는 원통형 바둑판, 더 나아가 위쪽과 아래쪽도 이어지는 바둑판까지 구상했다. 바둑판이 변할 때마다 머리는 점점 더 복잡해져갔다. “원통형 바둑판을 두고 게임 규칙을 만들어보니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더라구요.” 바둑돌에 스티커를 붙여보기도 하고, 바둑판 좌표마다 ‘+’와 ‘-’를 적어보기도 하면서 50여가지의 아이디어를 모았다.

새로 만든 규칙과 아이디어를 적용해보는 것은 대학생들의 몫이었다. 서울대, 연세대 등 대학교의 보드게임 동아리와 바둑 동아리 등의 학생들이 새로운 규칙으로 게임을 해보고 그에 관한 의견을 주면 거기에 맞춰 규칙을 수정했다. 실제 서울대 수학과의 한 학생은 선공격권을 정하는 ‘턴베팅’ 규칙을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바둑의 전문가인 프로 기사들도 중요한 의견 집단이었다. 50여명의 프로 기사들은 토너먼트 대회 등을 통한 게임 테스트에 참여해줬다. 1시간 동안 게임을 하면 2시간 동안 의견을 들었다. ‘히든’ 규칙은 회의를 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였다. ‘함정수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에서 시작된 생각은 포커 등의 게임에 있는 규칙을 타고 현대적 전쟁에서 첩자의 역할을 지나 흐르고 흘러 바투의 가장 특징적인 규칙이 됐다. 바투의 판인 맵에 ‘+’와 ‘-’를 표시하는 것은 일정한 곳에 도착하면 미션을 부여받는 블루마블에서 착안했다. “그때는 회사라기보다 종합게임장 분위기가 물씬 풍겼죠. 다들 신나서 참 재미있게 일했어요.”


1년 동안 바투 기획에 매달렸던 기획팀 팀원들.(왼쪽부터 시계 방향) 운영팀 김옥곤씨, 프로그램팀 한진희씨, 웹기획팀 정동균씨, 운영팀 박제영씨, 플랫폼 개발팀 강선영씨.
1년 동안 바투 기획에 매달렸던 기획팀 팀원들.(왼쪽부터 시계 방향) 운영팀 김옥곤씨, 프로그램팀 한진희씨, 웹기획팀 정동균씨, 운영팀 박제영씨, 플랫폼 개발팀 강선영씨.

대학생 게임동아리에 실전 시뮬레이션

바투가 게임의 모양새를 갖추고 나서 처음 이스포츠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던 순간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당시 기획을 함께 했던 학생들 중 두 명을 한 방에서 시합하게 하고, 다른 방에서는 이를 지켜보며 중계를 해봤어요. 그때 이 게임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구나 알게 됐죠. 관전할 가치가 있다면 충분히 이스포츠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1년이 넘게 바투 기획에 몰두하면서 했던 ‘삽질’은 바투라는 결과물이 됐다. 지난해 8월 바투의 규칙에 대해 특허를 따내기도 했다.

“여러 게임을 하면서 놀이의 본질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해봤어요.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외성과 필연성의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운칠기삼이 아니라 운삼기칠 정도의 비율이 되면 놀이에 몰입하게 돼요. 또 한 가지, 시간을 무작정 보내는 비생산적인 방식보다 생각하면서 할 수 있는 놀이가 조금 더 본질에 가까운 놀이인 것 같아요.”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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