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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리고 ‘빤스 고무줄’

등록 2009-11-04 19:01수정 2009-11-06 08:37

아직 못한 이별, 그리고 ‘빤스 고무줄’
아직 못한 이별, 그리고 ‘빤스 고무줄’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1. 그녀와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2. 미디어법 판결은 어떤 의미인가요?
0. 언빌리버블하게 후진 시절인지라 연애상담, 뜸했다. 하여 오늘은 좀 섞어 봤다. 연애 하나, 시사 하나. 일명, 짬짜 상담. 자, 연애부터.

Q1. 갓 스물 된 대학생입니다. 며칠 전 한마디 이별 통보도 없이 여친이 떠났습니다. 다른 남자가 생겨 한순간에 마음이 변하더군요. 하루도 빠짐없이 술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너처럼 이별을 힘들어하는 사람은 난생처음이다.” 또다른 친구는 “가버린 여자가 뭐가 좋다고 기다려”라고 핀잔을 줍니다. 하지만 전 기다리려고 합니다. 다른 남자와 평생 갈 수 없을 거라는 걸 잘 아니까. 그 둘이 헤어지길 기다리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녀 아니면 안 되니까요. 어딜 가든지 이별노래만 들리고 어떤 일을 해도 그녀가 아른거립니다. 저는 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힘든 걸까요?

A1. 음. 이 상황에선 대체로 이런 질문들이 통례지. 기다리는 게 옳은 걸까요. 과연 돌아올까요.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요. 잊을 수 있을까요. 근데 그댄 이렇게 묻는다. 난 왜 특별할까요. 엉아가 오늘은 숙제가 두 개라 바빠요. 해서 답부터 간다. 너, 안 특별해. 오해는 마라. 특별하지 않다는 게 아프지 않단 뜻은 아니니까. 당근 아프지. 근데 말이지. ‘결별 통증 등급에 관한 ISO 인증기준’ 같은 거 없거든. 그래 저마다 제 고통만은 각별하다 맘 놓고 믿곤 하지. 허나 설사 인류가 미터법을 발명치 못했다 해도 인간 신장이 3미터 넘지 못한단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거든. 마찬가지야. 그대 이별 통증, 유사 이래 수없는 이들이 겪어낸 정도를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안 특별해. 하나도.

2. 안 특별하다니까 실망스럽나. 특별했으면 좋겠나. 그 경험에서 유일하게 특별한 건, 그대 통증이 아니라 그런 경험을 그대 인생에서는, 처음 겪는다는 사실 하나야.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 다른 게 아니라 자신의 이전 경험과 다를 뿐이라고. 살며 그런 경험 한 번 없는 사람 있다면 오히려 그 사람이야말로 특별 케이스라 봐야지. 그러니 이 사건을 통해 배워둬야 할 건, 난 왜 특별한가 따위가 아니라 이별, 그 자체야. 왜냐. 당신 통증은 누구나 그렇듯 시간이 해결해줄 게야. 하지만 아무도 이별을 훈련시켜 주진 않거든. 근데 우리 모두는 계속해 헤어지거든. 게다가 잘 헤어지는 건 잘 만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거든. 시작이 우연과 충동의 지배를 받는다면, 이별은 의지고 결심이거든. 시작은 열정으로 족하나 끝은 지혜가 필요하거든. 그러니 지금부터 엉아가 하는 말, 잘 기억해두라고.

첫째, 탯줄 끊어지는 최초의 그 순간부터, 이별은 삶의 본질이야. 세상만사, 다 제 나름의 생명이 있는 거거든. 관계라고 예외일 순 없어요. 이별은 자연의 일부라고. 만남은 좋은 거고 이별은 나쁜 게 아냐. 만남과 이별은 하나의 뫼비우스야.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져야 만나는 거야. 그게 만물의 이치야.

둘째, 그러니 헤어질 걸 두려워 말고 만나는 동안 다 누리지 못할 걸 두려워해야 해. 이별보다 두려워할 건 쏟지 못한 애정을 남기는 거라고. 그건 고스란히 비탄이 되거든. 그러니 매일매일 가진 걸 남김없이 다 줘. 그렇게 좋은 이별은 오히려 매일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고. 이 말을 이해할 즈음이면 대개 누군가와 결혼해버린 후란 게 문제지만.


셋째,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이별은 혼자 남은 이별도, 너무 일찍 한 이별도, 반복되는 이별도, 충동적인 이별도 아냐.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이별은, 이미 진즉에 했어야 마땅함에도 아직도 못 한 이별이야. 제 사랑만은 특별하단 유아적 집착과 자기애 그리고 혼자된단 공포와 본전의식 덕에 유지되는 블랙 판타지지. 그러나 가장 슬픈 이별도 나쁜 지속보다는 낫다.

이별은 쉽다거나, 이별을 자주 하란 게 아냐. 이별은 그저 자신을 필요로 했던 특정인 하나가 사라진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필요 자체가 순간적으로 우주에서 사라진 것처럼 느끼게 만들지. 쉬울 리가 없지. 하지만 그런 상실감 없인, 그게 채워지는 충만감도 없는 거야. 이별을 슬퍼하고 아파하되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말지니 그 흉터에서만 다시 움틀 수 있는 게 바로 어른의 사랑이니라.

Q2. 미디어법에 관한 헌재의 판결,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건가요?

김어준
김어준
A 이거 간만에 연애상담 했더니 벌써 지면 다 썼네. 요건 짧게 정리하자. 어차피 간단하니까. 헌재 결정이 무슨 소리냐. 한마디로 말해, 싼 게 똥은 맞는데 빤스는 계속 착용토록 하라, 이거야. 근데 애초 헌재에 물었던 건 이거거든. 이 얼룩은 똥인가요, 아닌가요. 똥이면 벗어야 하니 판별을 해주세요.

그랬더니 헌재 왈, 똥은 똥이로되 빤스를 벗진 말거라. 자기들은 고무줄에 불과하나니 그 여부는 괄약근이 결정토록 하라. 이런 소리라고. 아니 애초 그 똥을 싼 게 괄약근인데. 그럼 괄약근더러 그 똥을 도로 삼키라는 건가. 뱉은 똥 주워 먹는 괄약근 봤나. 뻔히 알면서, 씨바. 게다가 그럼 우리들, 죄 없는 히프는 어쩌라고. 정작 그 똥 문대면서 살아야 하는 우리들 히프는 어쩌란 거냐고. 그냥 끊어버렸으면 되었을 것을. 그럼 벗겨지고 끝났을 것을. 그게 그렇게 무섭나. 에이, 이 비겁한 고무줄 어르신들아. 안 끊기니까 좋냐. 끝.

김어준 칼럼니스트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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