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일본 미식 여행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간편함·색다른 맛으로 안방까지 파고든 일본 즉석식품들
한국식품업체도 발빠르게 경쟁 합류
간편함·색다른 맛으로 안방까지 파고든 일본 즉석식품들
한국식품업체도 발빠르게 경쟁 합류
1996년, 일본 덮밥 체인점 요시노야(吉野家)가 한국에 상륙했다. 일본 요식업계 최강자가 신촌, 강남, 종로 세 군데에 점포를 내며 의욕적으로 도전장을 던진 것. 한국과 일본의 입맛은 그리 다르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 새로운 맛은 서울 번화가에서조차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1년도 안 되어 세 점포 모두 철수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다. 오늘도 식사 시간이면 홍대 앞 일식집 ‘돈부리’의 좁은 골목에는 여지없이 장사진이 펼쳐진다. 줄 선 이들이 최소 30분 이상 기다려서라도 먹겠노라 벼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이 가게의 메인 메뉴, 일식 덮밥이다. 무관심에서 열광으로. 이렇게 서울의 입맛이 바뀌는 데 꼬박 13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사이 일식은 우리의 식문화에서 떼어놓기 힘든 부분으로 뿌리내렸다.
홍대 앞에 일식 라면 가게만 십수 군데. 일식 주점의 수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얼핏 이곳이 서울의 한복판인지 도쿄 하라주쿠 어드메인지 헷갈릴 법도 하다. 소비자들의 취향과 관심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일식 라면이 밍밍하다며 고개를 내젓던 이들도 이제는 어느 가게의 돈코쓰(돼지뼈 사골 육수) 국물이 진국인지, 어느 가게가 생면을 쓰는지, 어느 가게의 차슈(돼지고기 편육 장절임)가 두텁고 실한지에 대해 블로그와 커뮤니티 등지에서 의견을 나눈다. 그리고 이렇듯 일식에 대한 높은 호응은 단지 외식문화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4년 새 5배로 매출 증가
인터넷 쇼핑몰은 물론, 오프라인 매장 9곳까지 갖추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일본 식품/식자재 도소매 전문점 ‘모노마트’에 따르면, 2005년 25억여원에 불과했던 일본 식자재 매출액이 해마다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더니 올해에는 120억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4년 만에 매출 규모가 5배 가까이 커진 셈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2007년 이후 올해까지 기록한 43.9%의 매출 성장으로, 엔화 강세 등 시장의 악조건 속에서도 일식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추세는 역시 같은 조건 아래서 일본 식품 판매대를 오히려 신설하거나 늘렸다는 대형할인점/백화점들의 증언에서도 드러난다. 이렇게 일본 식문화가 우리의 생활 속에 당당히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간편함이다. 예를 들어, 국산 즉석국 제품들은 아무리 간편하다 해도 냄비를 사용하여 국을 끓여야 한다. 그러나 일본 즉석 미소된장국 제품들은 끓는 물을 붓기만 해도 완성된다. 반찬 없이 밥을 먹기에는 3분 요리가 제격이지만 이 또한 물을 끓이고 초침을 째려보며 3분 땡을 기다려야 하는 조바심을 요구한다. 하지만 후리가케 제품들은 그저 밥 위에 흩뜨리기만 하면 된다. 찬물에 밥을 말아서 재료를 뿌려 먹으면 식사 대용으로 괜찮은 오차즈케는 또 어떤가. 90년대에는 ‘아침에 우유 한 잔, 점심에 패스트푸드’로 때우는 것이 ‘시티라이프’였다지만, 이젠 느긋하게 우유 한 잔 마실 시간만 투자한다면 그럭저럭 일본식 아침식사를 마칠 수 있게 된 시대인 것이다. 간편함을 무기로 삼은 일본 즉석식품들의 전략에는 국내 식품 기업들도 발빠르게 대응중이다. 2000년대 초 씨제이(CJ)에서 ‘밥이랑’이라는 후리가케 브랜드를 론칭한 뒤 오늘날까지 품목을 확대하고 있다. 오뚜기는 일본 최고 밥도둑으로 손꼽히는 간장 김조림을 2009년 하반기에 새롭게 출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간편해서 찾았던 일본 인스턴트제품들은 어느덧 다채로운 미각에의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니까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식품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90년대에는 몰랐던 일본 덮밥과 라면의 맛에 뒤늦게 열광하는 것에서 보듯 우리의 입맛도 크게 다양화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식자재 전문점 모노마트에서도 최근 가장 잘 팔리는 상품들로 유기농 낫토, 새우 슈마이, 간사이 어묵 모둠 ‘오뎅테이’, 기네우치 생면 우동, 나가사키 카스텔라 등을 꼽았다. 말하자면 우리의 입맛과는 다소 이질적이거나(낫토), 새로운 맛이거나(간사이 어묵), 현지의 명물(카스텔라) 등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이 확장되고 있다는 뜻이다. 간편함과 다양함으로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일본 즉석식품들. 그 성장세는 앞으로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사람들의 일은 덜 바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한번 발을 뗀 미각의 취향 또한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일본 즉석식품들의 가짓수가 무궁무진하다.
건강까지 고려한 유기농 즉석식품 늘어나
현지에서는 진작에 동결건조된 고기가 아니라 제대로 된 차슈를 별첨한 즉석라면이 등장했으며, 건조하고 텁텁한 후리가케의 맛을 보완하여 식재료의 부드러운 식감을 강조한 진화형 ‘소프트 후리가케’도 높은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거기에 ‘인스턴트식품 = 죽어서도 육체는 영원히 보존’이라는 관념을 깨고자 저염분, 무첨가물, 유기농을 강조한 제품들도 속속 등장하고, 맛으로 소문난 현지의 가게들도 자신들의 차별화된 명물 요리를 제품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요컨대, 주의 깊게 인터넷을 뒤지거나 발품만 잘 팔아도, 굳이 바다를 건널 필요 없이 자신의 식탁에서 제법 근사한 일본식 식도락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글·사진 조민준 객원기자 zilch321@empal.com
표지디자인 이상호 기자 silver35@hani.co.kr
방구석 일본 미식 여행
인터넷 쇼핑몰은 물론, 오프라인 매장 9곳까지 갖추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일본 식품/식자재 도소매 전문점 ‘모노마트’에 따르면, 2005년 25억여원에 불과했던 일본 식자재 매출액이 해마다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더니 올해에는 120억원을 돌파했다고 한다. 4년 만에 매출 규모가 5배 가까이 커진 셈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2007년 이후 올해까지 기록한 43.9%의 매출 성장으로, 엔화 강세 등 시장의 악조건 속에서도 일식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해 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추세는 역시 같은 조건 아래서 일본 식품 판매대를 오히려 신설하거나 늘렸다는 대형할인점/백화점들의 증언에서도 드러난다. 이렇게 일본 식문화가 우리의 생활 속에 당당히 지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간편함이다. 예를 들어, 국산 즉석국 제품들은 아무리 간편하다 해도 냄비를 사용하여 국을 끓여야 한다. 그러나 일본 즉석 미소된장국 제품들은 끓는 물을 붓기만 해도 완성된다. 반찬 없이 밥을 먹기에는 3분 요리가 제격이지만 이 또한 물을 끓이고 초침을 째려보며 3분 땡을 기다려야 하는 조바심을 요구한다. 하지만 후리가케 제품들은 그저 밥 위에 흩뜨리기만 하면 된다. 찬물에 밥을 말아서 재료를 뿌려 먹으면 식사 대용으로 괜찮은 오차즈케는 또 어떤가. 90년대에는 ‘아침에 우유 한 잔, 점심에 패스트푸드’로 때우는 것이 ‘시티라이프’였다지만, 이젠 느긋하게 우유 한 잔 마실 시간만 투자한다면 그럭저럭 일본식 아침식사를 마칠 수 있게 된 시대인 것이다. 간편함을 무기로 삼은 일본 즉석식품들의 전략에는 국내 식품 기업들도 발빠르게 대응중이다. 2000년대 초 씨제이(CJ)에서 ‘밥이랑’이라는 후리가케 브랜드를 론칭한 뒤 오늘날까지 품목을 확대하고 있다. 오뚜기는 일본 최고 밥도둑으로 손꼽히는 간장 김조림을 2009년 하반기에 새롭게 출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간편해서 찾았던 일본 인스턴트제품들은 어느덧 다채로운 미각에의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니까 2000년대 중반 이후 일본 식품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90년대에는 몰랐던 일본 덮밥과 라면의 맛에 뒤늦게 열광하는 것에서 보듯 우리의 입맛도 크게 다양화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식자재 전문점 모노마트에서도 최근 가장 잘 팔리는 상품들로 유기농 낫토, 새우 슈마이, 간사이 어묵 모둠 ‘오뎅테이’, 기네우치 생면 우동, 나가사키 카스텔라 등을 꼽았다. 말하자면 우리의 입맛과는 다소 이질적이거나(낫토), 새로운 맛이거나(간사이 어묵), 현지의 명물(카스텔라) 등으로 소비자들의 관심이 확장되고 있다는 뜻이다. 간편함과 다양함으로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일본 즉석식품들. 그 성장세는 앞으로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사람들의 일은 덜 바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한번 발을 뗀 미각의 취향 또한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일본 즉석식품들의 가짓수가 무궁무진하다.
간편함·색다른 맛으로 안방까지 파고든 일본 즉석식품들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