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눈으로 맛보는 음식황홀경

등록 2009-09-23 21:38

눈으로 맛보는 음식황홀경
눈으로 맛보는 음식황홀경
[매거진 esc] 블로거 인기 취미 음식사진 잘 찍는 법… 냅킨은 반사판으로 활용할 수 있어
“빨리빨리 눌러.” “김이 식잖아.” “그 위치에는 그 물건 놓으면 안 돼.” “뭐야!” 버럭 사진가는 조수에게 소리를 지른다. 음식사진은 시간이 생명이다. 채소가 시들기 전에, 국의 김이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셔터를 눌러야 한다. 빠른 시간 안에 음식의 색과 맛과 향을 고스란히 표현해야 하는 분야다. 스튜디오에 늘 긴장감이 도는 이유다.

요리광고 사진, 각종 음식 관련 서적, 레스토랑의 벽장식, 음식점 차림표, 요리 블로거들의 인터넷 세상 등, 요즘 음식사진은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잘 찍은 음식사진은 어떤 진경산수화 못지않게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식욕을 자극하는 것은 허기보다 시각적인 요소라고 하지 않던가!

검은 그림자는 음식 맛을 떨어뜨려요

어떤 음식사진이 훌륭한 것일까? 12년 경력의 음식전문 사진가 박태신(44)씨는 “우리 눈으로 본 음식 그대로를 제대로 재현한 사진”이 훌륭하다고 말한다. 식감과 질감을 잘 드러내야 하고 따스한 분위기나 반짝이는 느낌도 사진가는 오롯이 앵글 안에 넣어야 한다. 좋은 음식사진을 찍기 위해 그가 꼽는 첫째 덕목은 음식에 대한 이해다. 요리에도 얼굴과 뒤통수가 있는데 알아보지 못하거나, 인도 음식을 담은 접시 옆에 프랑스 요리에 어울리는 포크를 두거나 하면 안 된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다가가는 것처럼 조금씩 공부하고 살펴서 ‘그’(요리)를 잘 알아야 한다.

음식의 오른쪽(혹은 왼쪽)에 흰 종이를 세우고 그쪽으로 플래시의 방향을 꺾어 터뜨린다.
음식의 오른쪽(혹은 왼쪽)에 흰 종이를 세우고 그쪽으로 플래시의 방향을 꺾어 터뜨린다.

실제 촬영에 들어가면 음식의 색 재현이 중요하다. 자신의 디지털카메라로 레스토랑에 가서 용감하게 셔터를 눌렀는데 눈으로 봤던 음식이 아니라 마녀의 음식처럼 요상한 색의 밥이 나온다면 당황스럽다. 빛 때문이다. 모든 사진이 그렇듯이 음식사진도 빛이 중요하다. 보통 음식사진에 노란색이나 붉은색이 도는 이유는 레스토랑의 조명이 데이라이트 조명(태양광을 기준으로 만든 인공조명)이 아니라 텅스텐 조명이기 때문이다. 이때 문제를 해결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카메라에 있는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최대한 태양광이 들어오는 창가로 자리를 옮겨 찍는 것이다. 플래시는 소형 데이라이트 조명이다. 노란색에 흰색 물감을 타듯이 색이 달라진다. 이때 주의할 것은 카메라를 피사체에 너무 가까이 놓고 찍으면 검은 그림자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검은 그림자는 맛없는 음식처럼 보이게 만든다. 자신이 가진 플래시가 외장 플래시라면 더 많은 방법이 있다. 음식의 한쪽에 흰색 종이(없으면 냅킨이라도)를 세우고 플래시를 종이 방향으로 꺾어 터뜨리면 음식의 색과 입체감이 산다. 디지털카메라 안에 있는 ‘화이트 밸런스’ 모드를 선택한 후 렌즈 앞에 흰색 종이를 놓고 색을 맞추어도 된다. 색온도의 기준을 바꾼 것이다. 우리 눈에는 흰색으로 보이지만 사진을 찍으면 붉은색으로 나오는 피사체의 색이 흰색으로 나온다. 때때로 전문 사진가들은 요리의 따스한 느낌을 만들기 위해서 카메라에 내장된 색온도 수치를 변경해서 붉은색을 넣기도 한다.

음식을 톡톡 튀는, 살아 있는 ‘놈’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입체감도 살려야 한다. 전문 사진가들은 일반적으로 둘 이상의 조명을 쓴다. 음식의 머리 위에서 넓게 비추는 조명과 측면이나 뒤에서 좁고 강하게 비추는 조명. 꼭대기에서 비추는 넓은 조명은 음식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측면 강한 조명은 한마디로 ‘엣지’를 만든다. 측면광이나 역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다. 휴대하기 편한 작은 반사판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반사판을 들이댄 쪽은 확실히 더 밝아져서 다른 쪽과 노출 차이가 생긴다. 노출 차이는 입체감을 만든다.


빛을 선택하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구도다. 이차원의 세계인 사진은 점, 선, 면으로 구성된 그림과 같다. 눈으로 보고 있는 피사체를 제한된 프레임 안에 어떤 점, 선, 면으로 오밀조밀 그려 넣을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흔히 사람이 식탁에 앉았을 때 눈에 들어오는 음식의 모습을 앵글에 넣는 것이 좋다. 하지만 때로 음식이 고흐의 작품처럼 화려하고 아름답다면 식탁 위로 과감하게 올라가서 찍어도 좋다. 마이크로렌즈나 클로즈업 필터 등을 사용해서 식재료의 극단적이고 미세한 표면을 찍어도 멋진 음식사진이 나온다. 이렇게 찍은 양파는 때로 잠자는 아내의 굴곡진 등으로 보이고, 울퉁불퉁한 귤껍질은 어린 시절 얼굴에 난 종기로 보인다. 음식의 친구들, 젓가락, 주전자, 물컵, 식탁 등을 프레임에 넣어 찍어도 분위기가 있다.

1. 조명(빛) 앞에 소주병을 세운다. 2. 소주병 모양으로 종이를 오린다. 3. 오린 종이를 병 뒤에 붙이고 사진을 찍는다. 4. 왼쪽 사진은 뒤 반사판을 만든 소주병, 오른쪽 사진은 반사판이 없는 소주병.
1. 조명(빛) 앞에 소주병을 세운다. 2. 소주병 모양으로 종이를 오린다. 3. 오린 종이를 병 뒤에 붙이고 사진을 찍는다. 4. 왼쪽 사진은 뒤 반사판을 만든 소주병, 오른쪽 사진은 반사판이 없는 소주병.

에스에프(SF) 영화에만 특수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요리사진이야말로 영화감독 팀 버튼처럼 각종 특수효과를 사용하면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온다. 한 병의 소주가 있다고 하자. 단순히 셔터 몇 방 누르면 녹색의 맑은 소주는 검은 둔기로 보일 수도 있다. 이때 소주병 뒤에 병 모양으로 만든 흰 종이를 살짝 붙이고 병의 앞쪽에서 빛을 비춰 찍으면 우리 눈으로 본 소주가 찍힌다. 뒤에 붙인 흰 종이가 반사판이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원색의 음료를 찍을 때 ‘푸드 컬러스’나 ‘옐로 푸드컬러’ 같은 식용염료를 몇 방울 떨어뜨려 색을 더 진하게 만들기도 한다. 음료수가 담긴 병에 글리세린(끈기가 있는 투명 액체)을 바르고 물을 뿌려 시원한 느낌도 만든다. 특수재질로 만든 얼음은 단골 소품이다. 맥주의 거품이 잦아들 때면 적은 양의 소금만으로도 금세 거품을 만든다. 이때 시간을 놓치지 말고 셔터를 눌러야 한다. 시간과의 싸움이다.

눈으로 맛보는 음식황홀경
눈으로 맛보는 음식황홀경

담배 연기·다리미 수증기로 국물 김 만들기도

국물요리 사진은 하얀 김이 압권이다. 사진을 찍을 때 눈에 들어온 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경우가 있다. 이때도 특수효과를 쓴다.

김의 배경은 어두워야 하고 김의 뒤나 옆에서 빛이 들어올 때 찍는다. 연기를 만들기 위해 전문가는 특수 액체를 국 안에 넣기도 한다. 원시시대(?) 사진가의 조수는 열 개 이상 담배를 한꺼번에 피우고 입안에 연기를 머금은 채 국 안에 빨대를 꽂아 뿜기도 했다. 당시 조수들의 수난은 여러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한 스튜디오의 조수는 국물 안에서 뽀글뽀글 올라오는 물방울을 만들기 위해서 주사기를 사러 갔다가 ‘마약쟁이’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다리미도 유용하게 쓰인다. 쉭쉭 김이 나는 다리미를 촬영 직전에 국그릇 위에 두었다가 빼면 제대로 된 김 사진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연기는 하늘하늘 천상으로 오르는 선녀의 날개처럼 묘한 감동이 돈다.

요리에는 5가지 미각과 5가지 법칙, 5가지 감을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이 있다. 5감 중에는 색과 향이 있다. 맛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고 후각을 자극하는 능력도 요리에서는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을 한 장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 음식사진이다. 음식사진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로 이끈다. 이전에 맛보지 않은 음식은 분명 새로운 세계다. 음식사진은 그 지침서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