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레일 경주 자전거여행’ 참가자들이 첨성대 부근 주황색 코스모스꽃길을 달리고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당일치기 경주행 기차-자전거 연계여행 체험기…코레일, 10~11월 전국 자전거 열차 운행
당일치기 경주행 기차-자전거 연계여행 체험기…코레일, 10~11월 전국 자전거 열차 운행
지난 12일 아침 6시 서울역. 날씬한 라이딩복에 헬멧을 쓴 자전거 애호가들이 자전거를 끌고 승강장에 몰려 장사진을 쳤다. 경주행 ‘에코레일 자전거여행 열차’ 참가자들이다. 220여명의 참가자들은 자전거 거치대가 설치된 네 량의 전용차량에 자전거를 실은 뒤 네 량의 객차에 나눠타고 신라 고도 경주를 향해 달렸다.
참가자 대부분은 수도권 각 지역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 간간이 가족과 쌍쌍의 연인 참가자들이 섞였다. “내 자전거의 페달을 밟아 이름난 경주의 유적들을 둘러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표정들이다. 인천에서 아내 이정인(43)씨, 아들 태호(11)군과 함께 온 공병용(47)씨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달려왔다”며 “온 가족이 자전거여행을 하기는 처음이어서 무척 기대된다”고 말했다. 공씨는 인천 당하동에서 서울시청까지 4년째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있는 마니아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캔맥주를 꺼내 들고 권하는 모습이 보인다. 강북의 한 자전거 동호회 회원으로 참가했다는 50대 남성은 “자전거 타러 가면서 함께 술 마시기는 처음”이라며 “장거리 열차여행만이 가진 매력”이라고 즐거워했다. 웃고 마시고 떠들고 잠자는 동안 열차는 5시간 가까이 달려 경주역에 도착했다. 승객들은 역을 나서며 ‘신종 플루’에 대비해 체온을 재고, 소독약으로 손을 씻었다. 역 앞에서 열린 기념행사를 마치고 첨성대 옆까지 함께 행진한 참가자들은 잔디밭에 모여 선택한 일정 설명을 들었다.
인천서 새벽 4시에 온 열성 가족도
코스는 두 가지. 초보자들을 위해 시내 중심부 평탄한 지역을 도는 15㎞짜리 코스와, 하천길을 따라 좀더 외곽을 도는 30㎞짜리 중급자 코스다. 경주는 시 전체가 박물관으로 일컬어지는 유적 도시다. 어느 코스를 택하든 모두 즐비한 신라 유적을 거치게 돼 있다.
중급자 코스를 택한 서울 성북·도봉구 지역 동호회 ‘둘다섯’의 회원 여섯이 잔디밭 감나무 그늘 아래 둘러앉아 준비해 온 도시락을 펼쳤다. 자전거를 여러 해씩 즐겨온 60~70대 남녀 어르신들이다. 앞다퉈 자전거 예찬론을 쏟아냈다.
“자전거를 타면 정말 젊어져요. 날 보라구.” “좋은 점이야 말도 못하죠. 우리 신랑보다 더 좋아.”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차 운전대 잡기가 싫어지더라고.” “난 한 50년 탔지. 세발자전거까지 하면 60년이고.”
총회원이 15명인 둘다섯 동호회는 2002년 결성 이래 “강화도 왕복 150㎞, 임진각 왕복 160㎞에다, 양평·동두천 등 서울 근교로 거의 매주 당일 자전거여행을 해왔다”고 했다. 회원 김영우(71·서울 미아동)씨가 말했다. “덤프트럭이 제일 겁나지. 이것들은 자전거만 보면 그냥 밀어붙여요. 하루빨리 큰길마다 자전거도로를 만들면 좋겠어.”
점심식사 뒤 참가자들은 두 코스로 나뉘어 문화유적 탐방에 나섰다. 경주의 자전거 이동로는 대체로 잘 정비된 편이다. 경주엔 문화유적지를 중심으로 한 총 95㎞에 이르는 6개의 자전거 코스가 만들어져 있다. 코스들엔 모두 25개의 자전거 보관대(30~50대 보관)를 설치해 이용자들이 자전거를 세워두고 주변 유적을 둘러볼 수 있게 했다.
초급자 코스 참가자들을 감동시킨 건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동행한 문화유산해설사의 해설이었다. 초보인 아내와 아들을 배려해 초급자 코스를 둘러본 공병용씨는 “경주 유적을 자전거로 둘러본 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라며 “해설사의 상세한 설명이 특히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에서 온 김경훈(30)·김현정(27) 연인 짝도 “4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낄 정도로 재밌고 유익한 시간이었다”며 한목소리로 즐거워했다.
오후 6시 넘어 참가자들은, 가을 들녘 풍경과 신선한 공기, 신라 유적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득 품고 서울행 열차에 몸과 자전거를 실었다.
처음 선보인 장거리 열차 자전거여행이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많은 참가자들은 열차내 프로그램 부재를 불만사항으로 꼽았다. “왕복 10시간 동안 식당칸도 없는 열차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갈 땐 기대감으로 몰랐지만, 돌아올 땐 정말 지루했다.” “고객 서비스도 좋지 않았다.” “현지에서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다. 밤에 출발해 여유있게 둘러보는 방식이 좋겠다.”
기차 안 프로그램도 개발됐으면
유적지 코스로 자전거가 수십대씩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일부에선 차량 주차장에 자전거를 세워두는 데 따른 통행 불편 문제, 유적 주변 환경 훼손 문제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코레일은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해 10월초부터 11월말까지 경주를 포함한 전국 각 지역으로 자전거 전용 열차를 운행할 계획이다. 코레일 이천세 여객사업본부장은 “경치가 빼어난 자전거도로가 있는 곡성 기차마을, 김제 코스모스길 등으로 자전거 열차를 운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주=글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인천서 새벽 4시에 온 열성 가족도
경주 유적 자전거 여행에 나서기 전 자전거동호회 ‘둘다섯’ 회원들은 첨성대 부근 잔디밭 감나무 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끌렀다. 60~70대 남녀 어르신들이다.
경주역에 도착한 참가자들이 열차에서 자전거를 내리고 있다.
경주로 가는 자전거열차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 자전거동호회 ‘자전거와 캠핑’ 회원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