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김주옥씨
[매거진 esc] 여성 금기시하는 초밥 요리 인정받은 요리사 김주옥씨…
“체온 조절 방식은 남자나 여자나 똑같아요”
“체온 조절 방식은 남자나 여자나 똑같아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여자에게 초밥은 맞지 않는다니까!” 만화 <초밥아가씨 사치>의 시작 부분이다. 기어코 초밥요리사가 되려는 딸 사치에게 아버지가 버럭 지른 소리다. 일식집에서 초밥을 만드는 여자 요리사를 만나기는 어렵다. 일본에 있는 초밥집을 가본 이라면 쉽게 짐작이 간다. 한국도 비슷하다. 초밥이 맛있다고 소문난 일식집이나 유명 호텔 초밥바에서도 여자 요리사를 보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어렵다. 왜일까?
요리사 교체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일본인들이 전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체력, 힘이다. 주방은 무림 고수들이 실력을 겨루는 강호다. 강호에서는 칼 잘 쓰고 힘센 놈이 최고다. 집채만한 생선 덩어리를 단 몇 분에 옮겨야 하고 양쯔강만큼 출렁거리는 솥을 들어 올려야 한다. 내 몸만한 참치가 식당에 들어오면 짧은 시간 안에 모든 부위를 도려내야 한다. 그래서 요리사 박찬일은 주방은 ‘남성호르몬이 불끈거리는 곳’이라고 그의 책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에 적었다. 이른 아침부터 각종 식재료를 다듬고 옮기고 걸레질하는 수련 기간을 거친 뒤에도 고된 노동은 끝나지 않는다. 길게는 12시간 이상 초밥바에 서서 손님들에게 맛난 초밥을 선보여야 한다. 하루 종일 서 있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둘째 이유로 여성의 배란을 든다. 흔히 초밥은 온도가 미묘한 맛의 차이를 만든다고 말한다. 사람의 체온(36.5℃)일 때 가장 맛있다고 알려져 있다. 여성은 배란이 시작되면 황체호르몬(LH)이 분비된다. 이 호르몬은 체온을 1℃ 정도 올린다.
하지만 그 1℃가 얼마나 맛에 영향을 미칠까? 그렇다 하더라도 체온을 조절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으면 그만이다. 한국의 초밥왕으로 유명한 안효주 선생은 “그런 이야기를 일본 요리사들에게 전해 들었지만 모두 편견이다. 훌륭한 요리사의 조건은 본인의 의지와 열정, 품성이다. 정성을 가득 담은 음식은 누가 만들어도 맛있다”고 말한다.
스시효 서초점에는 여자 초밥요리사가 있다. 김주옥(28·사진)씨는 경력 5년의 요리사다.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에 배시시 웃을 때마다 반달 모양으로 변하는 얼굴은 예쁜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여느 젊은 아가씨와 다를 바 없다. 그의 초밥요리사 고군분투기는 케이블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의 좌충우돌 드라마와 닮았다.
그는 강원도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다. “낮이고 밤이고 머리에서 요리가 떠나지” 않아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요리학원으로 향했다. 3개월 만에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1년 뒤에는 일식조리기능사도 땄다. 23살 그는 강원도에 있는 한 일식집에서 초보 요리사 생활을 시작했다. “일단 일해보라” 허락받고 첫 문을 여는 순간, 8명의 시커먼 남자 요리사들이 빤히 그를 보고 있었다. 도끼눈들 사이에서 그는 냄비 닦기, 설거지, 청소를 시작했다. 샤리(초밥밥)을 비빌 때면 팔이 마징가제트처럼 떨어졌다 붙었다 하는 것처럼 아팠다. 큰 도마가 들어오면 죽었다 생각이 든다. 막내 요리사가 하는 일 중에 대패질이 있다. 칼이 도마 사이에 박히지 않게 목수처럼 죽도록 사포질을 해야 한다. 족히 1시간이 넘는다. 이것도 팔이 빠지는 일이다. 자신의 몸 둘레의 두 배가 되는 드럼통도 옮겼다. “제가 일이 늦기에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질질 끌면서 옮겼어요”라고 말한다. “열심히 하다 보니 이 모든 일에 요령이 생겼다”며 웃는다.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막상 고된 노동보다는 다른 요리사들과의 인간관계였다. “마치 군대처럼 ‘~그랬습니다’, ‘~이랬습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어딘가 어색하게 저를 대하는데 힘들었어요”라고 말한다. 덩치 크고 거칠기로 소문난 영국의 유명한 요리사 고든 램지 같은 요리사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주방 불판 위로 거친 욕설이 고공비행을 했다. 하지만 그의 부드러운 성품이 주방의 분위기를 바꾸었다. 그가 그곳을 떠날 때쯤에는 언제 욕설을 뱉었던 사람들인가 싶을 정도로 순해졌다.
“한번은 펄떡 뛰는 생선을 잡으라고 주방장이 시키는 거예요.” 동료 요리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생선은 꼬리를 잡고 한 번에 칼로 내리쳐서 머리를 잘라야 한다. 피가 퍽 하고 튀는 것은 당연한 일. ‘여자인데 피 볼 수 있을까’ 속으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김씨는 파팍 단박에 해치워버렸다. 무덤 앞에서 간을 베어 먹고 피 질질 흘리는 ‘전설의 고향’ 구미호처럼 엽기적이었지만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팔딱팔딱 뛰는 큰 도미는 정말 힘들었어요. 선배들은 도미의 눈을 가리면 안 움직이니깐 그때 잡으라고 했는데 저는 저만의 비법을 만들었어요.” 그가 개발한 비법은 이렇다. 움푹한 개수대 안에 도마를 놓고 도마와 접하는 개수대 바닥면과 도마 사이에 꼬리를 끼워 넣고 난 다음에 내리치는 것이다. 잡다가 놓치는 날에는 야단을 맞기 일쑤였다. “도미에 피멍드는데, 손님에게 어떻게 내냐”며 군밤을 맞았다. 생선의 뼈를 발라내는 일은 더욱 힘든 작업이다. 당시 김씨는 큰 사고를 쳤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서 들어온 생선을 모두 뼈와 살을 분리했다. 느닷없이 주방 대장이 들어와서 보자마자 욕설을 퍼부었다. 예약된 것들만 먼저 잡아야 하는데 모두 잡아버렸으니 화가 폼페이 화산처럼 터져 치솟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 결과는 좋았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뼈에는 생선살이 넝마처럼 붙어 있고 생선살에는 가출한 가시들이 콕콕 박혀 있었다. 모두 끓는 탕으로 쓸려 들어갔다. 그날 영업 대차대조표는 엉망이었다. “다음부터는 오로시(식재료를 다듬는 방법)하지 마! 다시는!” 거친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그는 다음날 ‘오로시’를 또 했다. ‘덕만이’처럼 용감하다. 그는 “야단맞을 각오를 했는데 주방장님이 웃으시면서 기가 죽어 안 할 줄 알았는데 잘했다고 칭찬”을 들었다.
주방 풍경이 이렇다 보니 김씨의 부모님은 반대가 심했다. 좀더 편한 직업을 찾으라고 강압과 회유의 채찍질을 했다. 하지만 ‘사치’의 아버지가 딸의 열정을 꺾을 수 없었듯이 그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 오히려 서울 서초동 ‘구레스시’로 직장을 옮길 때는 아예 전 가족이 이사를 해서 그를 격려했다. 이곳도 요리사 9명 중에 여자 요리사는 그녀 혼자.
그는 ‘구레스시’ 초밥바에 처음 섰을 때를 잊을 수 없다. “힘들지 않냐”, “왜 하게 되었냐”고 물어보는 남자 손님들이 많았다. 아예 흉한 표정을 지으면서 남자 요리사를 찾는 이도 있었다. 가슴이 아팠지만 더 정성껏 초밥을 만들었다. 신기한 눈초리로 그의 초밥을 선택했던 이들은 지금 그의 팬이 되었다. 그는 몸의 온도를 어떻게 관리할까? 초밥을 만드는 이는 빚기 전에 차가운 물에 손을 담가서 손 온도를 차게 한다. 초밥이 손바닥에 머무는 시간이 짧을수록 좋다. 얼마나 빠른 시간에 매끄럽고 부드러운 초밥을 만드느냐가 그 요리사의 수준을 결정한다. 그는 데스(물과 식초를 7 대 3으로 섞은 물. 초밥 빚기 전에 담그는 물)에 일부러 얼음을 넣었다. 손의 온도가 올라가면 밥알이 손에 붙는다. 지금은 냉동행주를 옆에 두고 손에 잡았다가 초밥을 빚는다. “이런 방법은 여자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많은 남자 요리사들도 이 방법을 쓴다. 체온은 결국 사람이 관리하기 나름이다. 화장품도 기초화장만 얼굴에 바르고 손에는 어떤 것도 바르지 않는다.
독일에서 일식집 열고 싶어
2008년 그는 안효주 선생이 운영하는 ‘스시효’에 입사했다. 그의 첫째 꿈이 이루어졌다. 강원도에서 일할 때 안효주 선생이 쓴 책 <이것이 일본요리다>를 들고 사인을 받기 위해 안씨가 일하는 호텔로 무작정 찾아갔다. 안씨는 그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었다. 그의 다음 꿈은 독일에 일식집을 여는 것이다.
지금 그는 천하장사다. 질질 끌고 가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어렵지는 않다. 큰 무 10개가 든 상자도 너끈하게 옮긴다.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일상에서 따스한 마음과 흥겹게 일하는 열정,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성실로 자신도 모르게 투사가 됐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요리사 안효주씨는 자신의 키와 몸무게에 맞는 칼을 일본의 칼 장인에게 주문제작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