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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림의 풍경을 이웃으로 만나다

등록 2009-09-09 21:35수정 2009-09-09 21:36

초가을 통의동 일대를 산책하다 보면 좁은 골목길마다 익숙한 듯 정겨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초가을 통의동 일대를 산책하다 보면 좁은 골목길마다 익숙한 듯 정겨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인왕산 아랫동네 서촌에 터잡은 젊은 예술인 2인 인터뷰
“동네 커뮤니티는 나의 힘”
‘갤러리 팩토리’ 홍보라 디렉터

경복궁 서쪽 돌담길 옆의 작은 동네 창성동에 있는 ‘갤러리 팩토리’. 안이 들여다보이는 깨끗한 통유리 안으로 최승훈, 박선민 작가의 사진 작업이 눈에 들어온다. 2005년 삼청동에서 이전해 올 때만 해도 이곳은 갤러리와는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민물장어집 건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통의동의 맑고 정갈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아이콘이 됐다.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핫(hot)한’ 공간이라는 소란스러운 애칭은 어울리지 않지만, 이곳 전시와 워크숍 등을 잊지 않고 참여하는 튼실한 커뮤니티가 생겼다. 옆 디자인 사무소 ‘워크룸’, 가구 카페 ‘MK2’를 운영하는 이웃들과 함께 예사롭지 않은 헌책방 ‘가가린’을 꾸리기에 이르렀다.

‘갤러리 팩토리’의 홍보라 디렉터.
‘갤러리 팩토리’의 홍보라 디렉터.
홍보라 디렉터는 이곳에서 현대미술 작가의 장르 구분 없는 실험적인 기획들을 선보이고, 효자동 및 다양한 지역과 관계된 공공미술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통의동에 별탈 없이 안착한 듯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만도 않았다. “2005년 삼청동에서 갤러리를 옮길 때는 거의 쫓겨난 거나 다름없었어요. 대학로나 홍대의 에너지와 ‘갤러리 팩토리’의 성격이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사 장소를 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숨어 있는 듯 조용한 공간을 찾다가 통의동으로 오게 됐죠. 동네가 좋긴 했지만 처음 이 주변이 너무도 황량해서 아~ 처음부터 어떻게 생각하지 싶었어요. 작가들 몇을 불러서 여기 괜찮은지 좀 봐달라고 하고 시작했죠. 다행히 이곳 기운이 너무 좋다는 작가들의 눈을 믿었어요.”

작가들의 눈을 믿었다는 홍 디렉터의 말에서 느낄 수 있듯 ‘갤러리 팩토리’는 작가들, 이웃과의 협업으로 굴러가는 예술 공장이다. “지금까지 억지로 뭔가 하기보다는 사람들의 기운을 모은다는 기분으로 많은 일들을 했어요. 갤러리 계단이나 갤러리 홈페이지도 모두 작가들이 도네이션(donation) 개념으로 만들어준 거예요. 비영리 공간이지만 연말에 하는 팩토리 옥션도 서로 다른 사람들의 취향과 기운이 모아져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시카고에서 예술행정을 공부하고,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해 온 홍 디렉터는 갤러리에서 온전한 취향을 보여주는 것과 예술의 사회적 소통이라는 두 가지 일의 균형을 맞추는 데 관심이 많다. “소비하는 것만 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소비해서 돈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생산하자는 의미에서 갤러리 이름도 팩토리예요.”

홍 디렉터는 통의동은 “삼청동의 들썩거리는 느낌에 비해 신선하고 다들 열심히 살고, 집이나 공간 면면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요. 잘 가꿔진 화분만 봐도 느낄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도 이곳에 살면서 괜찮은 이웃들을 만났다. “동네 커뮤니티가 있다는 게 큰 힘이 되더라고요. 도움을 딱히 구하는 건 아닌데, 결국 다 연결이 되죠. 전시 도록을 만들 때 옆집 워크룸에 가고, 아침마다 MK2 커피를 마시고. 헌책방 가가린을 만든 것도 어느 날 갑자기 이웃들에게 돈 모으자고 제안해서 가능했던 거죠. 건물 세가 나왔다는데, 누가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나 옷집을 낼까봐 덜컥 겁이 났거든요.” ‘갤러리 팩토리’는 새로운 작업들을 꾸준히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좋은 친구들과 꽤 괜찮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계속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작업실 겸 전시공간인 ‘류가헌’을 만든 사진가 이한구씨.
작업실 겸 전시공간인 ‘류가헌’을 만든 사진가 이한구씨.

“들뜨지 않고 은근하게 정착했죠” ‘류가헌’ 사진가 이한구

류가헌. 토박이 노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손바닥 들여다보듯 통의동을 거니는 그들에게 서예를 하던 사람이 이사를 간 뒤 그 자리를 대신해 이사 온 젊은 남자들의 동네 아침청소는 새마을운동 이후로 보는 낯설고 정겨운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건 간판이 ‘류가헌’. 지난 5월 문을 연 아담하고 깨끗한 한옥 중정 가운데에는 싱싱한 알로카시아 화분이 놓여 있다.


자신의 작업실이자 사진 갤러리인 ‘류가헌’의 안주인인 사진가 이한구(42)씨는 말한다. “잘 놀자는 생각 하나로 했어요. 들뜨지 않게 조용하고 은근하게 만나고 정착하고 싶었죠. 지하 작업실이나 도심의 작업실은 재미없잖아요. 두루두루 다니다가 원래 한옥을 일부 보수하는 수준에서 ‘류가헌’을 개방하기로 맘먹었죠. 첫 전시 공간을 찾는 젊은 사진가나 프로젝트성 전시를 꿈꾸는 동료 선후배들에게 이 공간을 열어놓고 싶어요.”

‘소소풍경’이라는 사진 전시가 열리고 있는 ‘류가헌’ 내부.
‘소소풍경’이라는 사진 전시가 열리고 있는 ‘류가헌’ 내부.

한옥 안채에서는 ‘소소풍경’이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그의 표현을 따르면 “치밀한 듯 호방한 우리 땅의 진경을 새벽과 밤, 산의 안팎에서 찍은 소소한” 자신의 사진들이다. 사진을 보고 동료들과 “놀았던 흔적”은 하얀 전시장 벽에 그대로 남아 있다. “글쓰는 친구, 건축하는 친구 다 불러다가 사진도 감상하고 한옥에서 놀았죠. 다들 방에 누워서 자신의 누워 있는 몸통 옆선을 벽에다가 대고 그렸어요. 낙서처럼 한 건데 안 지워지더군요.” 보통 갤러리와 다른 건 어린애가 한 듯한 낙서가 있는 벽만이 아니다. 사진 액자도 전시가 끝나면 다음 작가가 쓸 수 있도록 다양한 크기로 리폼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작업실을 작게 쓰고 근사한 한옥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전시도 합리적인 방법으로 하고 싶어요.”

‘물 흐르듯 놀자’는 공간 명칭처럼 이씨의 삶도 물 흐르듯 여러 곳을 옮겨왔다. 잡지 <사람과 산>의 사진팀장, 프리랜서 건축 사진가 등으로 활동했던 그는 “국내 오지마을, 백두대간 등 산줄기를 따라 이 땅이 품고 있는 인문학적인 매력에 푹 빠져 살아왔다”고 했다. 그가 통의동 한옥에 터를 잡은 이유도 그 궤적과 다르지 않다. “이 동네는 조선시대 문화부흥기에 무척이나 탄력받았던 곳이죠. 겸재 정선 같은 재미난 분들도 살았던 곳이고요. 부암동 집에서 통의동까지 넘어올 때면, 옛 그림에 있는 시공간들이 지금의 풍경 위로, 제 카메라 안으로 시뮬레이션 되는 것 같아 설레요.”

글 현시원 기자 qq@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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