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적인 유통망 때문에 서울에서도 여러 지역 막걸리를 사 마시기는 쉽지 않다.
[매거진 esc]
일본 미식가·맛기자들의 막걸리 품평 한국 나들이…
가볍고 상쾌해서, 부드러워서, 좋아하는 이유도 제각각
일본 미식가·맛기자들의 막걸리 품평 한국 나들이…
가볍고 상쾌해서, 부드러워서, 좋아하는 이유도 제각각
우리의 아름다움을 외국인이 먼저 발견하고 규정할 때가 있다. 한국 막걸리의 다양한 맛과 스타일을 일본인들이 먼저 즐기기 시작했고, 이런 현상이 되레 ‘종주국’에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음식문화 역사를 보면, 이들의 기막힌 개방성과 창조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000년 넘게 육식이 금지됐던 불교국가였지만, 19세기 말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 음식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돈가스, 일본식 커리, 쇠고기 전골(스키야키)을 즐기는 한국인들 가운데 이 음식의 역사가 수백년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게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역수출된 막걸리 인기
일본 술에도 막걸리같은 탁주가 존재하는 탓에 일본의 한국 막걸리 바람이 더욱 궁금하다. 이론적으로 막걸리와 청주는 이란성 쌍둥이다. 발효가 끝난 술의 밑부분이 탁주고, 위에 뜬 맑은 부분이 청주(사케)다. 사케가 발달한 일본에 일본식 탁주가 없을 리 없다. 일본식 막걸리인 ‘니고리자케’나 ‘도부로쿠’가 그것이다.
지난 6일 강남 국순당 ‘백세주 마을’에서 일본인 기자, 미식가 10여명이 한국의 여러 지역 막걸리를 품평하는 행사에 가면서, 도착하면 가장 먼저 “당신들도 막걸리 비슷한 술이 있는데 왜 유독 한국 막걸리가 인기인가”를 묻기로 했다. 이들은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강남캠페인 및 인천세계도시축전에 초청받은 언론인들이다. 둘쨋날 행사로 국순당이 협찬하는 막걸리 시음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직 서울에 공급되지 않는 여러 지역 막걸리가 긴급 공수됐다. 디카를 들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일본 기자단 앞으로 생 막걸리, 포천이동 막걸리, 서울장수 막걸리, 참살이 탁주, 세왕주조 막걸리, 부산 생탁, 강진 병영 막걸리, 전주 비사벌 막걸리, 고양 탁주, 부자 막걸리(배혜정 누룩 도가), 부산 산성 막걸리, 국순당 막걸리 이화주가 올라왔다.
전통술 품평가 허시명씨가 한국 막걸리의 특징에 대해 설명을 마치기가 무섭게 질문이 쏟아졌다. “동동주와 막걸리의 차이는?” “한국 막걸리를 아직도 밀로 만드나?” 통역사들은 막걸리 맛도 못 볼 만큼 질문이 쏟아졌다. 간략한 질의응답 뒤 시음이 시작됐다. 대부분 취재수첩에 시음한 막걸리 이름을 적고 향과 맛을 꼼꼼히 적었다. 기자들은 모순적이다. 취재가 직업이면서 자신이 취재당하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한다. 가장 구석 자리에 앉은 것도, 품평 1시간이 지나기 전까지 섣불리 명함을 건네 취재를 시도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1시간쯤 지나 가장 가까이에 앉은 구도 리쓰코에게 명함을 건넸다. “와타시와 <한겨레>노 고 데스.”(저는 <한겨레>의 고입니다) 구도 리쓰코는 생활정보지 <바우하우스>의 기자답게 취재수첩에 꼼꼼히 적은 품평을 보여줬다. “참살이 탁주의 발포하지 않은 느낌이 좋았다. 이화주도 좋았다”고 그는 답했다. “일본 탁주가 있는데 왜 한국 막걸리가 인기냐”는 질문에 그는 “도부로쿠가 있지만 일반적인 술이 아니다. 잘 유통되지 않는다. 한류 붐이 일어서 덩달아 한국 막걸리가 인기인 것 같다”고 답했다.
기자단 안에서도 나이에 따라 입맛이 달랐다. 구도가 한번 시도하고 포기한 삭힌 홍어를 건너편에 앉은 60대의 <후쿠시마 민유> 지사장이 거의 다 먹고 단 석 점만 남겼다. 갑자기 통역사가 한국어의 ‘웰빙’을 뭐라고 번역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일본에는 웰빙이란 단어가 없다고 한국관광공사 채우리씨가 설명했다. 그는 최근 일본에서는 웰빙보다 슬로푸드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인다고 덧붙였다.
구도와 말을 트자 다른 여기자들의 대화에 자연스레 끼어들 수 있었다. 20대 중반의 프리랜서 기자 니시모토 지사코에게 일본 탁주가 있는데 왜 한국 막걸리가 인기냐고 물었더니, 구도처럼 “도부로쿠는 유통이 잘 안 되고 주로 겨울에만 판다”는 답이 돌아왔다. <시즈오카 신문>(시즈오카는 혼슈 중부에 있는 현)의 우노 모모코 기자는 한국 막걸리의 가볍고 상쾌한 맛을 장점으로 꼽았다. “칵테일처럼 만들면 더 맞을 거 같다”고 그는 말했다. 반면 <홋카이도 신문>의 30대 초반 남성 기자 쓰노 게이는 걸쭉하고 도수가 13도에 가까운 이화주에 대해 “맨 처음 마셨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호평했다. 그는 “오늘 한국 막걸리 맛이 다양함을 알았다. 일본 젊은이들이 점점 술을 기피하는데, 이들에게 한국 막걸리가 성공할 것 같다”고 호평했다.
반면 일본의 60대에게 막걸리는 한류 붐 전에 ‘자이니치’를 연상시키는 사물이었다. <가호쿠(하북)신보>의 마나카 지로는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오늘 마신 막걸리가 다 좋았다”며 말을 걸어왔다. 언제 처음 막걸리를 마셔 봤는지 물었다. “이번 방문 전에 일본에서는 한국 막걸리를 안 마셔 봤다. 도부로쿠는 마셔 봤다. 올해 내 나이 예순아홉이다. 미야기현(도호쿠 지방 태평양 연안에 있는 현)에서 태어난 1940년대 고향 마을에 있던 재일동포들이 가가호호 담그던 막걸리 냄새가 아직도 기억난다. 어릴 적 같은 마을의 재일동포 친구들이 ‘할아버지가 만들었다’며 막걸리를 갖다줘 자연스럽게 한국 막걸리를 처음 마셨다. 도부로쿠와 큰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막걸리도 브랜드별로 고르는 때 왔으면
이들 기자단이 가장 놀란 것은 한국 막걸리의 다양함이었다. 일본에 수출하는 막걸리는 일본에서 대략 700엔(약 1만원)으로, 한국 막걸리는 적당한 가격에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술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다. 달고 탄산이 강한 가벼운 막걸리 외에 단맛이 덜하고 도수가 좀더 높은 이화주나 부자 막걸리, 단맛보다 특유의 개성적인 누룩 향이 인상적인 강진 병영 막걸리, 참살이 탁주 등 개성 있는 막걸리가 호평받는 것으로 보아, 한국 막걸리의 다양성을 키우는 게 중요해 보였다. 한 지역 막걸리가 다른 지역에 판매되지 못하게 막는 법은 없어졌으나, 후진적이고 복잡한 주류 유통망 때문에 여전히 서울에서도 여러 지역 막걸리를 만나기 어렵다. 홍대 막걸리 레스토랑 ‘막걸릿집 친친(02-334-1476)’의 장기철 사장은 “20종류의 막걸리를 제공한다. 우리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들은 ‘막걸리 주세요’라는 말 대신 ‘△△막걸리 주세요’라고 특정 브랜드를 말한다. 이게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기자단이 품평했던 주요 막걸리 구입처는 다음과 같다. 강진 병영막걸리(061-432-1010), 고양 탁주(031-963-9220), 국순당(080-0035-100), 부산 생탁(051-865-5961), 부자 막걸리(02-3462-7328), 진천 세왕주조 막걸리(043-536-3567), 참살이 탁주(080-500-3422)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일본 기자들은 막걸리와 안주의 궁합에도 관심을 보였다.
전통술 품평가 허시명(오른쪽)씨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일본 기자들은 한국 막걸리의 다양함에 놀랐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