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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권투왕

등록 2009-08-19 19:59수정 2009-08-23 10:33

지난 8월 8일 강원도 동해시 망상해수욕장에서 열린 제 5회 전국생활체육복싱 토너먼트에서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고 있다.
지난 8월 8일 강원도 동해시 망상해수욕장에서 열린 제 5회 전국생활체육복싱 토너먼트에서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고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입관 2년차 음주훈련 병행 고나무 기자,
전국생활체육복싱대회 출전을 위해 망상행 버스를 타다
지난 10일치 <한겨레> 스포츠면에는 7~9일 강원도 동해시 망상해수욕장 백사장 특설링에서 열린 10회 전국대학복싱동아리 선수권대회와 5회 전국생활체육복싱토너먼트 기사가 실렸습니다. 평소 “네 달리기 속도의 절반만 머리 회전 속도가 따라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는 〈esc〉 고나무 기자가 이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기사를 쓰려고 출전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링 안에서 보고, 듣고, 맞은(?) 기록을 남기기로 했습니다. 링 바깥에서 쓴 기사는 55㎜ 렌즈로 찍은 사진입니다. 링 안에서 겪은 권투를 내시경 사진으로 전합니다. 출전 과정과 결과는 물론 요새 인기 많은 복싱 다이어트 트렌드까지 생활인 권투의 이모저모를 알려드립니다.

조깅의 진실은 오직 멈췄을 때 기분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에릭 시걸(<갈매기의 꿈>을 쓴 미국 작가)과 조지 길더를 제외하면 달리기를 좋아하는 작가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누가 정신의 명민함이 발목을 통해 방전되기를 바라겠는가?(<파이트> 노먼 메일러)

조깅도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작가 노먼 메일러가 볼 때, 작가가 권투 시합을 직접 나간다는 건 더 미친 짓일 게다. 하루키나 김연수처럼 조깅을 좋아한 일급 작가가 있음을 떠올리면 노먼 메일러가 딱히 옳은 것 같진 않지만, 작가가 자신이 쓰는 모든 소재를 직접 경험할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그렇다면, 살인에 대한 소설은 죄다 거짓말일 테니까.

“한방이 중요하다”는 체육관 선배의 조언


“고 기자님! 뒷걸음질치지 마세요, 물러서면 안 돼요!” 지난 7일 오후 6시. 아직 텅 빈 체육관 링에서 김현일(29) 선수의 잽에 연방 고개가 뒤로 꺾이며 스파링을 한 이유는 권투에 대해 기사를 쓸 목적이 아니었다. 정규 링은 4.9m~6.1m이하 정방형이지만, 마포수년복싱체육관 간이 링은 그보다 작다. 김현일 선수는 미들급(71~75㎏)이지만, 평소 체중은 그 이상이다. 키도 크고 체중도 무거운 김현일 선수가 압박하면 도저히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프로 선수다. 물론 대부분의 다른 한국 프로 권투선수들처럼 먹고살기 위해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강한 경상도 억양만큼 가르치는 손이 맵다. 30대 초반의 내 나이나 아마추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살살 할 법한데, 그의 훈련은 정석이다. 오른손 가드가 조금만 내려오면 왼손 훅이 날아온다.

김 선수는 마수년(56) 관장의 ‘자식’이다. 관장님은 주니어 플라이급 국가대표였던 엘리트 선수 출신이다. 물러설 줄 모르고, 기본이 잡혔다 싶으면 위빙(상반신을 좌우로 움직여 펀치를 피하는 동작)과 복부 어퍼컷(가까운 거리에서 올려치는 공격) 타격을 연습시키는 전형적인 인파이터다. 김현일 선수도 스승을 빼다 박았다. 복싱에 대한 고집스런 태도도 똑같다. 마 관장님은 직장인이든 선수든 자세가 틀리면 불호령을 내렸다. ‘불호령 때문에 혹시 관원이 그만둘까’ 염려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체육관 고객’에 대한 ‘배려’는 좀체 염두에 두지 않는 그의 태도는 무뚝뚝함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조선 백자를 만드는 무형문화재 장인이나 판소리 명창 같은 장인의 태도를 닮았다.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앞뒤 재지 않고 진지하게 대하는, 좋은 의미의 고지식함이다. 김현일 선수도 똑같다. “원투, 원투, 원투, 원투~ 원투 칠 때 팔 내리지 말고!” 10온스(약 283g)의 글러브를 끼고 원 투 스트레이트 연타를 반복하자 금세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지난해 초 입관해 1년이 지났지만, 동작은 형편없다. 링에 올라 1분만 지나면 왼쪽 눈과 오른쪽 뺨을 방어해야 할 두 손은 마치 10㎏ 아령을 양 손목에 매단 듯 팔이 늘어진다. 권투는 때리는 기술이다. 안 맞고 잘 때리는 게 이 스포츠의 목적이다. 속도가 중요하다. 오른발 뒤꿈치를 바닥에서 떼야 한다. 오른발이 엔진처럼 몸을 움직인다. 주먹도 오른발 뒤꿈치에서 나간다. 오른발 뒤꿈치에 힘을 주면서 리드미컬하게 앞손인 왼손을 뻗어야 한다. 그게 잽이다. 케이투(K2) 소총의 공이가 탄환을 치지 않으면 총알이 나가지 않는 것처럼, 발이 정지하면 주먹도 정지한다. 그러므로 오른발은 푸앵트 슈즈(발레리나용 신발)를 신은 발레리나가 사뿐히 발끝으로 선 것처럼 탄력 있게 공중에 떠 있어야 한다. 그러나 1분만 지나면 오른발도 10㎏ 아령을 발목에 매단 것처럼, 용수철이 빠진 케이투 소총의 노리쇠처럼 정지했다. “오른발 떼고! 오른발 떼고!” 6일 스파링 때 김 선수는 소리치며 자신의 발로 내 오른 종아리를 걷어찼다.

3분 2라운드 스파링이 끝나자마자 헤드기어와 마우스피스를 벗긴 뒤 던지다시피 했다. 숨찼다. 8일 대회를 앞두고 2주 동안 몸을 만들었지만, 저질 체력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취재원과의 약속을 미룰 수는 없었고, 대신 저녁 약속 때도 꼭 운동을 하고 갔다.(그게 더 문제였을까?) “오늘은 많이 좋아지셨네요.” 그 전날까지만 해도 스파링을 마친 뒤 “지금 나가면 다친다”며 혹평을 넘어 걱정을 한 김현일 선수는 “지금처럼만 하면 내일 시합에서 1승은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체육관 선배는 6일 “한방이 중요하다”며 온 체중을 실어 오른손 스트레이트를 던지라고 필살기를 충고했다.

사각의 링, 그곳에 뭐가 있을까

작가가, 기자가 자신이 쓰는 것을 직접 경험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연습 더 하고 9월 대회에 나가라”는 관장님의 말을 어기고 출전을 강행한 동기는 ‘강해지고 싶다’거나 ‘인간 개조의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와보고 싶다’거나 ‘스포츠맨십을 기르겠다’거나 ‘운동 잘하는 화이트칼라가 멋지지 않을까’ 하는 따위의 욕망과는 무관했다. 그곳엔 뭐가 있을까, 그게 전부였다. 마포수년복싱체육관에서 다른 2명이 함께 출전할 예정이었다. 마지막 스파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 7일 밤늦게까지 어떤 긴장도 느끼지 못한 건 다음과 같은 마음의 백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료가 있다는 안도감 50%+‘뭐든 괜찮다’는 마음 40%+약간의 자신감 10%.

복싱 체육관, 경기 정보 어떻게 알아볼까

⊙ 체육관은 어디를? 김광선 한국방송 권투 해설위원은 권투 팬들에게 잊히지 않는 이름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플라이급 금메달을 땄다. 콧수염과 ‘라이터돌’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그럼에도, 김광선 체육관 관원의 90%가 취미로 권투를 즐기는 일반인이다. 프로복싱의 몰락으로 선수가 적은 탓이다. 반대급부로 김광선 관장 같은 ‘레전드’의 지도를 일반인이 받아볼 기회도 생겼다. 많은 옛 스타 권투 선수들이 체육관을 운영한다. 대부분 복싱 다이어트, 복싱 에어로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집 근처에서 고르되, 관장이 권투선수로 활약했는지 살피는 게 좋다. 한국권투위원회 누리집(www.koreaboxing.co.kr, 02-980-3440~2)에 체육관 정보가 정리돼 있다. 대한생활체육복싱협회 누리집(cafe.daum.net/boxingtop)에는 아마추어 복싱 전파에 특히 적극적인 체육관들이 소개돼 있다.

⊙ 아마추어 대회 정보는? 학생, 직장인 등이 참여하는 생활인 권투 대회는 여러 지역에서 비정기적으로 열린다. 대한생활체육복싱협회는 내년에도 망상 해수욕장에서 동해시의 지원을 받아 전국대학복싱동아리 선수권대회와 전국생활체육 복싱토너먼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단 8월이 아닌 7월이다. 국민생활체육회 누리집(www.sportal.or.kr) ‘알림마당’에서 지역별로 개최되는 크고 작은 아마추어 권투 대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다니는 체육관에 문의하는 것도 좋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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