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라멘이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다. 그들에게 라멘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일본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문화 상품이다. 하카다분코의 내부 모습.
[매거진 esc] 줄서서 먹는 홍대 앞 돈코츠라멘집 ‘하카다분코’김연훈 사장 인터뷰
일본 라멘은 문화다. 젊은이들은 단순히 ‘돼지뼈로 우린 일본식 국수’를 사 먹는 게 아니다. 일본풍으로 장식된 식당에서 그곳의 공기와 분위기를 함께 먹는다. 돈 되는 먹을거리라면 잽싸게 창업하는 프랜차이즈 업계의 동향을 봐도 일본 라멘은 붐이라 할 만하다. 일본 라멘 프랜차이즈는 5개가 넘는다. 일본 라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첫째로 손꼽는 가게가 홍대 부근 하카다분코다. 맛집 사이트 윙버스에는 하카다분코와 관련해 181개의 평가 글이 올라와 있다. 호불호를 떠나 평가 글의 숫자는 하카다분코가 라멘 마니아들 사이에서 얼마만큼 관심의 대상인지 보여준다. 일본 라멘광인 특급호텔 지배인 등에게 추천을 부탁하자 둘 다 하카다분코를 추천했다.
일본 라멘은 전쟁이 아니라 교류와 어울림이 낳은 음식이다. 19세기 일본에 거주하는 중국인이 먹던 음식에서 시작했다는 게 유력설이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 탄생한 음식이 지금 한국에서 유행이다. 하카다분코의 김연훈(34) 사장이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라멘집을 낸 과정은 문화의 경계를 넘는 일본 라멘의 역사와 닮았다. 굳이 한 요리사의 인터뷰를 1개 면에 걸쳐 게재하는 이유다. 언론 인터뷰를 꺼려 거듭된 부탁 끝에 전자우편으로 질문을 주고 답변을 받았다.
고나무 기자(이하 고) : 하카다분코 돈코츠라멘은 규슈(일본 남부)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규슈식은 닭뼈를 사용하지 않고 돼지뼈만으로 우린다고 알고 있습니다. 육수는 돼지뼈만으로 우리는 것인가요?
김연훈 사장(이하 김) : 맞습니다. 규슈라멘 중에도 ‘하카타라멘’은 돼지뼈만을 이용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 하카타라멘에도 근래에는 딱히 재료에 경계선을 두지 않고 닭뼈, 돼지뼈, 가쓰오부시(가다랑어 말린 가루로 일본에서 국물을 만들 때 널리 이용한다) 등을 쓰는 식당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하카다분코 ‘인라멘’은 돼지뼈를 우려낸 육수로, ‘청라멘’은 돼지뼈, 닭뼈, 야채를 우린 육수를 섞어 만듭니다. 6개월 된 국내산 돼지뼈의 사골과 두골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간장, 청주(정종), 소금, 표고버섯, 가쓰오부시 등을 사용하여 만든 ‘타레’도 육수의 비결입니다.
하카타라멘은 직구 승부의 맛
고 : 하카다분코가 문 연 2004년에는 아직 라멘 붐이 없을 때입니다. 규슈 스타일의 진한 돈코츠라멘이 한국 젊은이들에게 통할 것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인가요?
김 : 이미 한국의 음식 문화에는 뼈를 우려내서 먹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설렁탕, 곰탕, 순댓국, 감자탕 등이죠. 이 중 순댓국과 감자탕은 돼지뼈를 우려낸 국물입니다. 안될 리가 없었습니다. 또 저는 ‘맛은 유니버설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나라의 음식은 △△나라 사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말은 난센스라고 봅니다. 맛있는 것은 국경을 넘어 맛있다고 생각합니다.
고 : 일본 라멘에는 동북 지역의 미소(된장)라멘, 관동 지역의 쇼유(간장)라멘도 있습니다. 하필 규슈 지역의 라멘 스타일을 배운 계기가 있을까요?
김 : 저는 미소라멘은 맛이 미소(된장)에 가려져 라멘의 맛을 판단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했고, 쇼유라멘은 진정으로 맛있다고 느낀 집이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하카타라멘은 ‘직구 승부’처럼 감추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 솔직한 라멘이라고 느꼈습니다. 또 대학 때 후쿠오카 출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요리뿐만 아니라 인생관 등 많은 것을 같이 공유하고 영향을 주고받은 친구입니다. 라멘에 대한 저의 철학은 첫째도 식재료, 둘째도 식재료, 셋째도 식재료입니다. “좋은 재료 가지고 누가 맛있는 거 못 만드나?”라고 할지 모릅니다만, 그만큼 어떤 비법보다 식재료가 중요합니다.
김연훈 사장은 도쿄에서 태어났고 대학까지 일본에서 다녔다. 부모가 한국인이고 국적도 대한민국이지만, 서로 다른 문화를 접하고 자란 ‘경계인’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요리사인 그는 서로 다른 전문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었다는 의미에서도 경계인이다. 일본에서 직장을 잡고 편한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그는 고국에 돌아왔다. 오스카 와일드와 <노르웨이의 숲>까지의 무라카미 하루키, 시인 이상을 좋아한다는 그는 그러나 영문학도나 학자가 아니라 일본 라멘 요리사로 변신해 돌아왔다. 라멘집에 ‘분코’(문고)라는 이름을 붙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고 : 분코라는 이름을 굳이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 : 분코(문고)가 책방임은 다 아시는 이야기입니다만, ‘문’은 글뿐만 아니라 문화도 상징합니다. ‘문고’는 ‘문화의 창고’라고 생각해 음식뿐만 아니라 그에 담긴 문화를 전파하고 싶어 이름을 지었습니다. 주제넘습니다만, 서브컬처(하위 문화)의 발신지가 되고 싶다는 취지입니다.
고 : 한국에서 왜 일본 라멘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김 : 첫째, 언제나 한국 젊은이들은 일본에 관심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문화 개방과 더불어 최근 ‘일본’이 트렌드가 되었고 주류 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화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하나가 음식 문화고, 일본 음식 문화를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라멘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라면=라멘, 즉 라면은 이미 한국에서 익숙한 메뉴였기 때문입니다. 셋째, 많은 한국인이 일본을 여행했으며, 그때 라멘을 대부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고 : “맛있는 라멘이 없어서 라멘집을 냈다”는 말씀이 농담에 가깝게 들립니다. 요리를 직업으로 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식당하는 사람이나 먹는 사람이나 왜 우습게 보나
김 : 농담같이 들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지인이 “새로운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해 “일본 라멘집을 하라”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만,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더군요. 결과적으로 그것을 계기로 제가 하게 된 것입니다. 또 한국의 잘못된 식당 문화에 반기를 들고 싶다는 욕구도 상당히 강했습니다. 식당을 찾는 사람,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 식당을 상당히 우습게 알고 있더군요. 식당을 찾는 사람은 “식당인 주제에…”,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은 “구멍가게 운영하는데 대충 하면 되지…”,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은 “내가 왜 이런 곳에서 이런 일 하고 있지?”라는 인식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요리보다 멋진 것은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직업으로 가질 수 있는 사람 또한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요. 식당도 기업과 똑같습니다. 하지만 일반 기업보다 멋진 것은 생산, 판매, 영업 등이 한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죠. 이보다 배울 것 많고 멋진 직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하카다분코의 인라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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