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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도 제철 있다

등록 2009-06-10 20:52수정 2009-06-10 20:58

맥주도 제철 있다
맥주도 제철 있다
[매거진 esc] 고 기자의 수제 맥주 도전기
잡균 들어갈라, 발효통 온도 올라갈라, 진땀 뺐다네

1. 영화를 두 번 본다. 2.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토론한다. 3. 영화를 만든다.

프랑스의 영화비평가이자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가 얘기한 ‘영화광의 3단계’를 맥주광에게 적용해도 틀리지 않는다. 맥주 좀 좋아한다는 이들은 맥주가 맛있는 호프집이나 외국 맥주를 싸게 마실 수 있는 펍을 ‘발굴’한다. 여러 맥주에 대해 블로그나 인터넷에 맛을 품평하고 논쟁한다. 그러다 만든다.

맥주광 3단계는?

고 기자의 수제 맥주 도전기
고 기자의 수제 맥주 도전기
맥주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 마시는 애호가들이 뜻밖에 많다. 다음카페 ‘맥주 만들기 동호회’(맥만동)는 이런 열혈 애호가들의 모임 가운데 유명하다. 회원이 1만495명이며, 해마다 가을이면 ‘맥만동 옥토버페스트’를 연다. 지난해 축제에는 100여명이 참여했다. 집에서 맥주를 양조할 수 있는 맥주 자가양조 키트를 판매하는 굿비어는 지난해 약 1000세트를 팔았다. 굿비어 외에도 판매회사가 3곳 이상 있다. 굿비어의 김욱연 사장은 “발효통 등 양조 도구를 직접 만드는 경우도 많아 실제로 맥주를 직접 담가 마시는 사람은 더 많다”고 말했다. 다양한 세계 맥주가 수입되는 시대에 이들이 굳이 직접 맥주를 담가 마시는 이유는 수입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낮은 ‘특이한’ 맥주를 비교적 싼 비용으로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여과, 살균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병맥주보다 맛도 좋다. 지난 11일 맥주 자가양조 키트를 구입해 직접 담가봤다. 발효통, 1.5ℓ 용량의 페트병 16개, 온도계, 비중계 등 홈브루잉 세트(6만원)와 인디아 페일 에일 맥주원액캔 2통(5만1500원)을 구입했다. 성공한다면 23리터의 맥주를 만들 수 있다.

오후 2시: 집에서 맥주 담글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첫째도 소독, 둘째도 소독이다. 우선 발효통을 주방세제로 씻은 뒤 통 안에 주방용 락스를 풀어 비커, 계량스푼, 플라스틱 국자 등 모든 양조 도구를 20분간 담갔다. 또 약국에서 소독용 에틸알코올을 사서 물과 일대일로 섞어 분무기에 넣었다. 발효통을 소독하는 사이 발효통 뚜껑과 온도계는 분무기로 소독했다. 온도계를 맥즙에 담가야 하기 때문에 역시 소독해야 한다. 이처럼 철저하게 소독해야 하는 이유는 맥즙에 잡균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맥주는 발효 음식이다. 곡물인 보리를 술로 바꾸어주는 마법사는 효모다. 오직 맥주 효모만 활성화되어야 하므로 공기 중의 다른 효모나 균이 들어가면 안 된다. 국에 간을 할 때 간장이나 소금만 써야지, 설탕, 고수, 민트, 후추 등 온갖 조미료를 넣으면 외려 맛이 안 좋은 것과 마찬가지다. 소독에 실패하면 식초처럼 시큼한 맛이 난다. 에일 맥주는 발효 과정에서 효모가 발효통의 윗부분에서 활동하는 상면발효 맥주로 도수가 8~9도에 이른다. 인디아 페일 에일은 영국 맥주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시절, 인도 주둔 영국군에 맥주를 보급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오랜 항해와 더운 날씨로 보통 맥주는 금방 상했다. 쌉쌀한 풍미를 내고 부패도 막는 홉을 보통 맥주보다 훨씬 많이 넣어 문제를 해결했다. 쌉쌀하고 높은 도수의 인디아 페일 에일은 제국주의의 역사 가운데서 탄생했다.

1. 가장 중요한 것은 소독이다. 효모 외에 잡균이 들어가면 안 된다. 2. 뜨거운 물에 잠시 담근 원액캔을 따서 발효통에 붓는다. 3. 여름에 맥주를 만들 땐 생수를 미리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 좋다. 4. 효모는 곡물을 술로 만들어주는 마법사다. 자가양조 키트에는 효모가 라면수프처럼 작게 포장돼 있다. 5. 18~25도 사이일 때 효모를 넣어야 한다.
1. 가장 중요한 것은 소독이다. 효모 외에 잡균이 들어가면 안 된다. 2. 뜨거운 물에 잠시 담근 원액캔을 따서 발효통에 붓는다. 3. 여름에 맥주를 만들 땐 생수를 미리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 좋다. 4. 효모는 곡물을 술로 만들어주는 마법사다. 자가양조 키트에는 효모가 라면수프처럼 작게 포장돼 있다. 5. 18~25도 사이일 때 효모를 넣어야 한다.


2시20분: 발효통을 소독하는 사이, 큰 냄비와 바닥이 넓은 냄비 등 2개에 물을 끓였다. 원액 캔을 뜨거운 물이 담긴 바닥 넓은 냄비에 5분간 담갔다. 끈적한 원액을 녹이기 위해서다. 다른 냄비에 끓인 물 3.5ℓ를 발효통에 붓고 원액 캔을 따 맥주 원액을 부었다. 캔을 따자 물엿이나 조청 같은 달착지근한 냄새가 풍겼다. 에일 맥주 효모는 18~25도에서 활동한다. 이보다 온도가 높으면 효모가 작용을 멈춘다.

지구온난화가 나의 도전을 막는구나

2시30분: 예기치 못했던 난관에 부닥쳤다. 미리 냉장고에 넣어 시원하게 만든 생수를 23.5ℓ가 될 때까지 섞었는데 여전히 온도가 높았다. 25도 이하로 온도를 낮추어야 했다. 그러나 6월의 한낮 기온은 25도가 넘었다. 에일 맥주이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라거 스타일 맥주는 더 낮은 온도에서 발효시켜야 한다. ‘맥주 만들기 동호회’에서 본 자료가 도움이 됐다. 큰 대야에 물을 받아 발효통을 담갔다. 여기에 발효통 주위를 젖은 수건으로 감쌌다. 기화작용을 이용해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맥주 효모가 활동하기 좋은 25도 이상으로 기온이 올라가는 여름에 맥주를 담글 수 있는 요령이다. 발효통을 젖은 수건으로 감싸면서 ‘음식과 자연’에 대해 생각했다. 공업적으로 맥주가 대량생산되는 현실은 맥주도 엄연히 음식이며 봄가을이 가장 담그기 좋은 때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한다. 김장철이 있는 것처럼, 맥주철이 있었다.

4시: 1시간30분 동안 대야에 얼음을 집어넣고 선풍기까지 틀어 기화작용을 강화한 끝에 겨우 온도가 26도로 내려갔다. 냉장고에서 잠시 음식과 김치 등을 꺼내고 발효통을 집어넣을까 생각했다 접었다. 냉장고는 잡균이 너무 많아 좋지 않다는 글이 떠올랐다. 온도를 26도에 맞추고 효모를 넣기 전에 국자로 맥주 원액을 힘껏 저었다. 거품이 일 정도로 저어야 한다. 그래야 효모가 활동하는 데 필요한 산소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다. 라면수프처럼 포장된 효모를 뜯었다. 비 오는 날 흙냄새가 올라오듯 특이한 풍미가 올라왔다. 약간 변질한 빵 냄새 같았다. 뚜껑을 닫고 공기차단기(에어락)를 끼웠다. 이제부터 일주일 동안 18~25도 사이에서 발효시켜야 한다. 방 한쪽을 치워 대야를 놓고 물을 담아 발효통을 담갔다. 젖은 수건도 둘렀다. 일주일 뒤 병입한 뒤 다시 2주 정도 숙성해야 비로소 맥주가 완성된다.

3주 뒤 맛볼 수 있어

6시: 작업이 다 끝나니 6시가 훌쩍 넘었다. 잡균 강박증이 걸릴 정도로 소독에 신경을 썼다. 온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대야에 얼음을 놓고 선풍기를 틀었다. 맥주는 와인과 함께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술이다. 원시적인 맥주는 오늘날 마시는 맥주와 맛이 달랐을 것이다. 쌉쌀한 맛을 내는 홉도 없고 탄산도 거의 없어 마치 보리식혜와 같은 맛이 아니었을까?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하나 꺼냈다. 직접 맥주를 담가보니 캔맥주가 달리 보였다. 상품이나 제품이라기보다 요리로 다가왔다. 맥주도 사람 손으로 만든 먹을거리라는 사실을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

맥주 정보수첩

자가양조 여기서 배우세요

◎ 다음 카페 ‘맥주 만들기 동호회’(cafe.daum.net/microbrewery)에 자가양조 정보가 많다. 특히 초보자를 위한 정보가 잘 정리돼 있다. 2002년 미국·유럽에서 어학연수를 하거나 유학하며 다양한 맥주 맛을 본 사람들이 주축이 돼 만들었다. 회원이 1만495명이며 현직 브루마스터(맥주 양조 전문가)도 많다. 2002년 소규모 맥주 양조가 법적으로 허가되면서 활동이 가속도를 얻었다. 최근 가입한 회원 가운데는 캠핑이나 야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든 맥주를 야외에서 즐기는 것이다. 1년에 4차례 정기모임을 가지며, 가을에는 ‘맥만동 옥토버페스트’를 열어 회원들이 각자 만든 맥주를 가져와 우열을 가린다.

◎ 맥주 자가양조 키트를 판매하는 업체는 굿비어(www.good beer.co.kr, 031-963-9094), 비어스쿨(www.beerschool.co.kr, 070-8246-8410), 메이크비어(www.makebeer.co.kr, 02-982-9994), 와인킷코리아(www.winekit.co.kr, 02-2282-1523)가 대표적이다. 발효통, 병, 온도계 등으로 구성된 양조도구를 사고 입맛에 맞는 맥주 원액을 추가로 구입하면 된다. 맥만동의 ‘고수’들은 맥주 원액 캔으로 맥주를 만드는 초보 단계를 인스턴트 라면 끓이기에 비유한다. 그만큼 쉬운 것으로 여긴다. 이 단계가 지나면 직접 맥주 원액을 만드는 경지에 오른다. 맥아를 사서 집에서 직접 빻고 걸러 맥주 원액을 만든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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