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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수고 다시 세워? 촌스럽기는

등록 2009-06-03 19:29수정 2009-06-11 10:56

배영환 작가가 제작한 ‘컨테이너 도서관’.(경기도 미술관 제공)
배영환 작가가 제작한 ‘컨테이너 도서관’.(경기도 미술관 제공)
[매거진 esc] 기존 건축물 재활용·컨테이너 이용 등 친환경·실용성 화두 된 건축 디자인
지난달 17일 경기도 미술관 잔디마당에는 특이한 건축물이 설치됐다. 미술 작가 배영환씨가 컨테이너를 도서관으로 제작한 것으로 배 작가의 설치작품 ‘도서관 프로젝트 내일(來日)’을 실제 도서관으로 실현한 것이다. 작가가 골판지와 목재로 만들었던 설계 모델을 실제 컨테이너에 적용해 실물로 만들었다. 기증받은 책들로 채워진 도서관은 미술관과 작가의 협업으로 경기도의 문화소외지역으로 확산, 이동할 계획이다.

움직이는 건축물, 컨테이너

유럽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1:1로 대응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가볍게 설치하고 해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컨테이너 기숙사와 호텔 등 컨테이너형 주거가 실용화되어 있다. 배영환 작가의 컨테이너 도서관을 비롯해 최근 국내에서도 효과적인 건축 디자인이자 문화예술 공간으로 컨테이너의 쓰임이 각광받는다. 하얀 벽의 기존 갤러리와 다르다는 점에서 컨테이너에 담기는 내용물이 공공성을 획득할 뿐 아니라 실제로 이동 가능한 성격(mobility) 때문에 얻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기증받은 책들로 채워진 컨테이너 도서관은 여러 지역을 이동할 예정이다.
기증받은 책들로 채워진 컨테이너 도서관은 여러 지역을 이동할 예정이다.

2개의 중고 컨테이너로 제작된 ‘백남준아트센터’의 아트 스토어.(백지원 제공)
2개의 중고 컨테이너로 제작된 ‘백남준아트센터’의 아트 스토어.(백지원 제공)

배영환 작가의 ‘컨테이너 도서관’이 컨테이너가 가진 이동성으로 문화운동적 성격을 드러낸다면, 건축가 백지원씨는 컨테이너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건축 디자인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플라툰 쿤스트할레’의 건축에도 참여했던 백지원씨는 ‘백남준 아트센터’의 아트 스토어를 2개의 중고 컨테이너를 활용해 만들었다. 수명이 다한 낡은 컨테이너 박스가 투명 우레탄으로 도장된 엠디에프(MDF)의 세련된 벽과 높이 2.6m의 시원한 천장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백지원씨는 “미술관 개관을 불과 몇 주 앞둔 상황에서 적은 예산으로 아트샵을 건축해야만 했다. 컨테이너 최고의 장점은 아무리 커도 쪼개서 이동할 수 있고 시간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고 컨테이너는 한계상황을 돌파하는 실험인 동시에 실용적인 대안이었던 셈이다. 서울 통의동에 위치한 ‘쿤스트독 갤러리’도 지난달부터 별도의 컨테이너를 이용해 통의동 골목의 틈새 공간을 전시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연 문화공간 ‘플라툰 쿤스트할레’도 28개의 군수용 컨테이너를 연결해 구조를 만들고 바닥은 거친 아스팔트로 채워 화제를 모았다. 원래 주차장이었던 곳이 지금은 둔턱이 낮은 입구에 유리문까지 활짝 열려 있어 온몸으로 개방성을 드러낸다. 젊은 아티스트들이 독립적 방으로 변한 컨테이너 속에 입주해 있고, ‘쇼케이스 리부트’에는 다양한 작품이 전시된다. 위압적인 기둥이나 중간 벽이 없어서 파티, 콘서트, 회의 성격에 맞춰 공간의 내부 구조가 변한다. ‘플라툰 쿤스트할레’의 톰 뷔셰만 대표는 “내부를 벽 없는 오픈 스페이스로 만들었다. 컨테이너를 집적시켜 그리 넓지 않은 땅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했다. 생동감 넘치는 하위문화를 상징하는 건축물로도 최적격”이라고 말했다.


곧 오픈하는 씨제이(CJ) 문화재단의 창작공간 ‘아지트’(azit)도 창고였던 기존 공간과 어울리도록 골강판으로 디자인했다.(씨제이 문화재단 제공)
곧 오픈하는 씨제이(CJ) 문화재단의 창작공간 ‘아지트’(azit)도 창고였던 기존 공간과 어울리도록 골강판으로 디자인했다.(씨제이 문화재단 제공)

컨테이너를 활용한 건물들은 ‘기존의 지루하고 위압적인 모뉴먼트는 가라’고 외치는 듯 보인다. 뭔가 ‘있어 보이는’ 건축물의 과시욕과는 거리가 멀다. 근래 주목받는 컨테이너를 활용한 건축 디자인뿐만이 아니다. 기존 구조물이나 건물을 재활용하는 방법은 건축에 오래되고 중요한 키워드다. 20세기 초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프랑스의 ‘오르세 미술관’이나 영국 템스강의 발전소를 개벽한 ‘테이트 모던 뮤지엄’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특히 새로운 구조 방식만이 건물의 형태와 의미를 결정한다는 모더니즘의 강령에서 탈피한 20세기 후반에 건축의 재활용은 더욱 빈번해졌다. 옛것을 헐어 흔적을 없애고 새것을 짓는 것, 또는 과거와 동떨어진 완전히 다른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것의 한계를 많은 이들이 지적한 후의 변화다. 전통적인 건축과 유물로 유명한 터키 이스탄불도 최초의 현대 미술관인 ‘이스탄불 모던’을 2004년 개관할 때 오래된 창고 건물을 개조했다.

국내에서도 2000년 정수장 건축물을 재활용한 ‘선유도 생태공원’의 성공 사례를 시작으로 전시공간으로 활용되는 옛 서울역,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작업공간으로 변모한 서울 문래동 공장지대, 기무사 터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분관 건립 결정도 넓게 보면 건축물의 재활용이다. 최근에는 물리적으로 낙후되었거나 기능을 상실한 건축물을 ‘재생’하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늘고 있다. 쓸모없어진 폐공간이 다시 활용될 수 있는 문화예술적 프로젝트의 장소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28개의 컨테이너로 만든 문화공간 ‘플라툰 쿤스트할레’.(플라툰 쿤스트할레 제공)
28개의 컨테이너로 만든 문화공간 ‘플라툰 쿤스트할레’.(플라툰 쿤스트할레 제공)

‘플라툰 쿤스트할레’는 기둥이나 중간 벽이 없어서 파티, 콘서트, 회의 성격에 맞춰 공간의 내부 구조가 변한다.
‘플라툰 쿤스트할레’는 기둥이나 중간 벽이 없어서 파티, 콘서트, 회의 성격에 맞춰 공간의 내부 구조가 변한다.

지루하고 위압적인 모뉴먼트는 가라

동 통폐합으로 잉여공간이 될 뻔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사무소는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이뤄지는 홍대의 특색을 살려, 오는 19일 ‘서교예술실험센터’로서의 새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동사무소로 설계했던 공간을 폐휴지처럼 없애 버리는 대신 기존의 구조와 인테리어 등을 살려 공방과 극장, 갤러리 등이 들어왔다. 〈다문화방송국 샐러드TV〉 등의 문화단체나 예술가들이 현재 일부 입주해 있거나 입주 예정이다. 박수진 총괄기획자는 “어떤 부분에서는 신축을 하는 게 훨씬 더 쉽고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불편한 공간이 예술가들에게 상상력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 한계가 문화공간의 특이성을 만들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6호선 광흥창역 앞에 곧 오픈하는 씨제이(CJ) 문화재단의 창작공간 ‘아지트’(azit)도 창고 건물이 자리했던 공간의 의미를 강조한다. 골강판 패널을 활용해 일견 공장처럼 보이도록 설계했고 내부도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는 가변형 공간이다.

한번 완성되면 버리는 건축 설계도는 이제 무의미해 보인다. 건축의 재활용 개념도 다양하게 뻗어간다. 세계적 건축가 헤어초크 드 뫼롱처럼 옛 건물 껍데기를 유지하면서 그 위에 새로운 재료를 얹기도 하고, 재활용품·재고품만을 활용해 건물을 만드는 페터 춤토어도 있다. 한 건축가는 “기존 리노베이션이 건물 골조 위에 새로운 무언가를 덮는 결과 중심이었다면, 이젠 리노베이션 과정이 가지는 의미가 중요해졌다”고 덧붙였다.

글 현시원 기자 qq@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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