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연애 등에 고민이 많은 20~30대는 매체의 고민상담이나 대중심리학 책을 가장 많이 찾는 층이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불안한 청춘 34살 6년차 직딩 고씨, 심야 라디오에 고민을 털어놓다
서른 살은, 삼십대는 위험하다. 월요일 마감을 마치고 마지막 버스에 오를 때마다 나는 종종 시인 최승자의 ‘삼십세’를 떠올린다. 그는 얼마나 야근을 많이 했길래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 우리 철판깔았네”라고 서른 살을, 삼십대를 저주한 걸까?
최승자 시인이 김혜남씨의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읽었더라면 좀 위안을 받았을까. 김씨는 꿈에서 현실로 내려오는 삼십대를 ‘미지의 시기’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한국의 삼십대는 멘토도 없다. 부모와 스승의 권위는 떨어졌고 노인들은 삼십대를 이해하지 못한다. 평소 매체 상담 코너를 보며 ‘만약 나를 정신분석하겠다는 상담자를 만난다면 그 상담자를 정신분석해 주마’라고 자의식을 앞세워왔던 나도 결혼과 사랑 문제에 대해 ‘옆집 언니형’ 상담가에게 조언을 들어보고 싶었다. 한국방송 라디오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한국방송 2에프엠)에 지난 15일 사연을 보냈다. 이 프로그램에는 ‘이기적인 상담실’의 임경선씨가 ‘헉소리 상담소’ 꼭지를 진행한다. 17일 밤늦은 시간 다시듣기를 눌렀다. 운 좋게 내 사연을 읽는 진행자 유희열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34살의 6년차 직장남입니다. 사귄 지 2년 된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여자친구가 워낙 좋고 저도 나이가 있어 결혼 생각을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 문화 코드 등 대부분 잘 맞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앞두고 요새 스스로 ‘정말 결혼이 절박한가’를 자주 묻습니다. 저는 감각적인 즐거움이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성생활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결혼한 친구 가운데 몇몇은 “부부 사이 섹스는 어차피 2, 3년이니 친구 같은 사이가 최고”라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이런 말 듣노라면 결혼이라는 제도에 몸을 던질 필요가 있는 것인지 우울해집니다. 이 고민도 어느 정도 제가 알아서 결정해야 할 고민이라는 거 잘 압니다. 다만 상담자님은 이런 고민 안 하셨는지, 만약 했다면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들려주세요. 또 이 여자친구가 처음 만났을 때 기업체를 잘 다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다른 직종을 준비중입니다. 새 직장에 들어간 뒤 여자친구한테 혹시 차이지 않을까, 차이지 않더라도 환경의 변화에서 생기는 이런저런 변수로 헤어지면 어쩌나, 찌질한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못난 거겠죠?”
임씨의 조언은 명쾌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혼 자체를 해야 되느냐 아닌가는 하등의 고민이 되지 않아요. 누구랑 하느냐에 따라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천국이 될 수도 있죠. 결혼의 절박성이 애매하다는 것 아닌가요? 인생의 재미를 좀 아는, 노는 오빠들의 특징이 막상 결혼의 문턱 앞에서 잡생각이 많아진다는 거에요. 괜히 뭔가 아쉽고 아까운 거죠. ‘결혼해도 그 이상은 얻어지지 못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때 보통의 여자친구들은 불안에 빠져 “오빠에게 난 뭐야?”라고 압박하면 남자는 도망갑니다. 그래서 노는 오빠들은 정면 압박이 아니라 간접적 계기가 필요해요. 공기 같았던 그녀의 존재가 없어질 때 패닉이 되면서 청혼하게 되죠. 다른 남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결혼을 결심하기에는 아주 ‘왓다’에요. 두 분 상황이 무르익는 거 같아요. 그리고 ‘결혼해서 부부관계가 즐겁지 않다’고 말 많은 유부남 친구들이 한소리 하는 거 틀린 말은 아닌데, 본인이 노력하면 돼요. 노력하기 나름이죠.”
놀랐다. 이게 내 진짜 속마음인가? 나는 신뢰와 애정이 맥반석처럼 단단하고 뜨거워 관계가 맥반석 계란처럼 익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행자 유희열씨가 옆에서 거들었다. “관계는 한 사람의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고 노력한 만큼이죠. 노력 안 하면 멀어지게 돼 있어요. 이 사연은 결혼만이 아니고 깊게 오래 사귄 분들에게도 적용돼요. 둘의 관계는 결혼이라는 제도만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거든요.”
임씨는 “결혼은 슬슬 하는 게 아니라 확 하는 거 같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에 진행자가 던진 말은 마음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벌써부터 이런 생각을 미리 하고 들어가는 거 자체가, 만약 이 친구가 제 후배라면 ‘진짜 개념 없다’고 막 뭐라 할 거 같아요, 하하!”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진로, 연애 등에 고민이 많은 20~30대는 매체의 고민상담이나 대중심리학 책을 가장 많이 찾는 층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불안한 청춘 34살 6년차 직딩 고씨, 심야 라디오에 고민을 털어놓다
불안한 청춘 34살 6년차 직딩 고씨, 심야 라디오에 고민을 털어놓다
서구에서는 전문가 상담도 대중화됐다. 영화 〈프라임 러브〉(왼쪽). 직접 상담을 하는 건 아니지만 〈섹스 앤 시티〉에서 여주인공 캐리의 직업은 연애 심리 칼럼니스트다(오른쪽).
매주 상담 코너를 운영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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