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물방울>이 추천한 배추김치와 이탈리아 와인 그라벨로 마리아주 테이스팅
한식과 와인의 궁합, 즉 마리아주 찾기가 유행이다. 한식 세계화가 음식업계의 화두로 부상하며 생긴 현상이다. 이런 노력은 한식을 세계로 수출하려면 와인과 짝을 이뤄야 한다는 논리에 근거한다. 와인 수입사뿐 아니라 언론도 거든다. 아기 다다시 남매가 2007년 ‘매운 김치와 어울리는 와인’이라는 주제로 <신의 물방울> 13권을 한국 특집 편으로 만든 것은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매는 넘치는데 실제로 어울리는지 따져 본 결혼상담은 없다. 1급 소믈리에와 요리사는 <신의 물방울>에 소개된 와인과 김치의 궁합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까? 나아가 김치와 와인, 한식과 와인의 궁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리츠 칼튼 호텔의 은대환 소믈리에(‘더 가든’ 부지배인, 수석 소믈리에)가 직접 <신의 물방울>에 소개된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 레드와인 ‘그라벨로’와 김치를 함께 맛봤다. 은대환 소믈리에는 2006년 1회 한국 국제 소믈리에 경진대회 1위 등 여러 차례 입상하고 교육받은 전문가다. 이탈리아 요리학교에서 공부한 박찬일 요리사도 함께 의견을 주고받았다.
만화에 언급된 제품은 2001년산이지만 수입사인 두산와인은 현재 백화점 와인매장에서 2006년산을 판다고 밝혔다. 정가는 9만2000원이지만 와인 할인 행사중인 강남의 한 백화점에서 5만7000원에 샀다. 은대환 소믈리에가 테이스팅한 내용을 표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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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대상 : 그라벨로 2006년산(알코올 도수 14도)과 배추김치
⊙ 평가 장소 : 리츠 칼튼 호텔 레스토랑 ‘더 가든’
⊙ 테이스팅 노트 : 프랑스 남부 지역 와인의 특징을 가졌다. 사전 정보 없이 맛봤다면 프랑스 남부 와인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농축된 과일 맛은 산지가 더운 지중해 연안 지역임을 짐작하게 한다. 포도주만 맛본다면 타닌(와인에서 떫은맛이 나게 하는 성분)이 두드러지지 않고 적절하다. 산도는 높다. 그러나 김치와 같이 먹으면 와인의 매운맛이 입안에 불을 지른다. 이는 이 와인만의 개성은 아니고 레드와인 일반의 나무향(우디) 맛이 김치의 매운맛을 더 살리기 때문이다. 또 김치의 신맛 때문에 타닌 맛이 줄어든다.
김치랑 같이 먹으니 타닌 맛이 더 고급스러워지거나 강조되는 게 아니라 수그러들며 매운맛만 난다. 김치에는 매운맛뿐 아니라 마늘, 젓갈 등 양념 맛과 신맛 등 다양한 맛이 있다. 입에 불을 내서 다른 맛을 죽일 필요가 있을까? 김치 맛을 매운맛으로만 이해해 와인과 맞추는 것은 김치를 깊이가 없는 단순한 음식으로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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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과 김치의 매운맛, 입에 불을 지르네
그는 매콤한 골뱅이에 맥주가 어울리는 것처럼, 김치의 매운맛을 누그러뜨리는 와인이 나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찬일 요리사의 평가도 부정적이었다. 그는 그라벨로와 김치를 함께 맛본 뒤 “예상대로 혀가 마비돼 와인이 질 좋은지 아닌지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펴낸 <박찬일의 와인셀렉션>(예담)에서 “일본인들은 김치를 반찬이 아닌 요리로 생각한다”며 “숙성시켜 밥에 곁들여 먹는 반찬의 개념을 모른다”고 주장했다. 일본인인 저자 다다시가 김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탓에 이런 조합을 내놨다는 것이다.
와인 자체의 품질 대비 가격에 대해서도 둘 다 9만2000원의 정가는 너무 비싸다고 평했다. 그라벨로 2006년산 수준의 레드와인으로 프랑스 론 지역의 코트 뒤 론 와인을 국내에서 3만원대에 살 수 있다고 밝혔다.
레드와인과 김치의 궁합에 대해 3명의 소믈리에는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리츠 칼튼 호텔 은대환 소믈리에(사진 위)가 <신의 물방울>에 소개된 레드와인과 김치를 맛봤다.
다른 소믈리에 2명도 그라벨로와 김치의 궁합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와인바 ‘까사델비노’ 상민규 소믈리에는 “그라벨로를 마셔보았는데 저자가 표현한 느낌은 전혀 없었다. (작가가) 어떻게 그렇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라고 답했다. W서울워커힐 테리 김(김제읍) 소믈리에도 <신의 물방울>에 그라벨로가 소개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마셔보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신의 물방울>이 그 와인의 모든 것을 표현해 주지는 않는다”며 “평소 와인과 김치는 먹지 않는다. 김치도 와인과 마찬가지로 발효음식이다. 와인과 마리아주를 맞출 수 있는 건 서양음식”이라고 덧붙였다.
평가자들은 김치와 와인, 한식과 와인의 일반적인 궁합에 대해서도 “대체로 쉽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박찬일 요리사는 한식이 주재료의 맛과 향을 보존하는 요리법보다 자극적인 소스를 곁들이는 점, 한 상 차림이 많은 점, 거의 모든 주요리에 김치가 반찬으로 나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은대환 소믈리에도 “흔히 한식이 스파이시(자극적)하므로 타닌이 강하고 스파이시한 시라즈 품종 와인과 어울린다지만, 우리 음식이 다 스파이시한 것은 아니다. 섬세한 맛, 식재료 자체의 맛 등 한식의 맛은 다양하다”고 말했다.
은대환 소믈리에는 단순한 사고법도 꼬집었다. 그의 설명을 종합하면, 와인과 음식의 궁합에는 식재료·조리법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궁합은 매운맛을 더 살릴지 누그러뜨릴지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 김치에 와인을 매치해 입에 불을 낼 수도 있지만, 발포성 와인 등을 마셔 매운맛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또 한식에는 간장을 많이 쓰는데 간장의 짠맛이 타닌의 풍미를 약화시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테리 김 소믈리에도 “한식에는 한국 전통주나 소주가 잘 어울린다”고 답했다.
상민규 소믈리에가 유일하게 김치와의 조합 가능성을 인정했지만, 이 역시 ‘김치 일반’의 조합은 아니었다. 그는 “짜지 않고 맵지 않은 서울 김치와 부르고뉴의 마르사네 와인(피노누아 품종)이 어울렸다. 마르사네의 상큼함과 과일향이 아삭거리는 김치의 산미와 조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굴과 젓갈이 들어가는 전라도 김치나 강원도 김치와 와인의 조화는 연구 대상”이라고 밝혔다.
한식 세계화를 포기하자는 말인가? 기자는 은대환 소믈리에에게 “미국·유럽의 구매력 있는 소비자들에게 한식을 팔려면 와인과 궁합을 맞춰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은대환 소믈리에는 일식 세계화는 와인이 아니라 사케와 함께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에 사케는 화이트와인에 비해 풍미가 너무 섬세해 서양인에게 인기가 없었지만 결국 지금은 최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에서도 사케 리스트를 제공할 정도다. 섬세한 프랑스 음식과 섬세한 사케의 어울림이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식의 세계화는 세계에 내놓을 만한 전통주를 만드는 데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억지 궁합 맞추지 말고 사케 세계화에서 배워라
그럼 한식에는 와인을 절대 먹으면 안 되는 걸까? <박찬일의 와인셀렉션> 중 한 구절이 설득력 있는 답변이 될 것 같다. “드시라. 그저 편하게 마시면 좋다 … 가급적 비싸지 않은 것이 더 조화로울지 모른다. 비싼 와인은 그 특유의 복합적인 맛과 향의 가치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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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 와인 마리아주 팁
박찬일 요리사가 음식과 와인을 맞출 때 적용할 만한 요령을 <박찬일의 와인셀렉션>(예담)에서 조언했다. 한식의 경우 음식과 충돌하지 않는 비싸지 않은 와인이 어울린다고 한다.
⊙ 매운맛에 놀란 혀를 진정시키는 발포성 와인이나 화이트와인은 대부분의 한식에 어울린다. 무난한 맛의 레드와인도 좋다.
⊙ 신맛 와인은 기름진 음식을 중화한다.
⊙ 신맛 와인은 신 음식과, 단맛 와인은 단 음식과 맞춘다. 식초를 친 샐러드에 상큼한 화이트와인을 마시는 이유다.
⊙ 신 음식에 단 와인을 마시면 상쇄작용을 해 서로 특유의 맛을 덜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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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