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esc] 너 어제 그거봤어?
<남자 이야기>(한국방송·이하 <남자>)와 <카인과 아벨>(에스비에스·이하 <카인>)은 최근 드라마가 선호하는 세련된 느낌의 제목들과는 다르다. 남자 이야기와 카인과 아벨이라~ 묵직한 소설책 이름 같기도 하고 고전적인 영화 제목 같기도 하다. 이 두 드라마 안에선 험난한 현실을 배경으로 돈과 명예와 사랑과 우정에 목숨 건 남자들이 움직인다. 방송 칼럼니스트 정석희씨(사진 오른쪽)와 시나리오 작가 신광호씨가 선 굵은 두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완성도 좋지만 무거운 진지함 주목 못받는 <남자 이야기>
강렬한 눈빛 연기도 반복되면 약발 떨어져 <카인과 아벨> 정석희 지상파 3사의 월화드라마 모두 수작이다. 뭘 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장르도 다양하고 개성 넘친다. 코믹 스타일인 <내조의 여왕>이 시청률이 높은 건 시청자들이 그만큼 밝은 이야기를 원한다는 의미다. 현실의 암울함에 신물이 난 시청자들이 정치·경제 문제로 치고받는 걸 보고 싶진 않은 거지. 나도 ‘돈많은 ×’ 소리 한번 듣고 싶구나 신광호 <남자>는 송지나 작가가 <태왕사신기> 이후 현대극에 컴백한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볼수록 꽤 공들여 만들어진 드라마 같다. 극과 극인 캐릭터의 남자를 투톱으로 등장시키는 것부터 송 작가의 시각이 느껴진다. 한 명은 너무 잘나가고 빈틈없어 보이는 반면, 다른 한 명은 밑바닥 인생에 언제나 감옥신이 나오는 거지.
정 이 드라마가 유난한 게 아니라 잘 나가는 남자들과 아닌 남자들은 현실에서도 대비되기 마련이잖아. 신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이 중요한 행동을 한다는 콘셉트가 재밌다. 그런데 <남자>의 박용하도 그렇고 왜 그리 감옥 갔다 오면 남성들 내공은 ‘이빠이’ 쌓이는 걸까? 정 무협지에서도 그렇다.(웃음) 신 감옥만 다녀오면 왕마초가 되어서 나오는데, 송 작가에게 이런 식의 남성 판타지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남자>에서는 박시연이란 여자 캐릭터도 눈여겨보게 된다.
정 박시연은 박용하 빚을 갚기 위해서 움직이잖아. 자기 때문에 박용하의 형수 거처가 발각된 책임을 지겠다며 텐프로의 길을 가는 건데. 자기 미모를 활용해서 부를 얻으려는 의지도 있단 점에서 좀더 복합적인 인물이다.
신 돈이 절박할 때였잖아. 그 당시 말을 뱉을 때는 어느 정도 마음이 있었던 거 아닌가? 어쨌든 난~ 순간 박시연이 됐나봐. 드라마에 너무 몰입했다.(웃음) 박시연이 “나 더럽고 나쁜 년이라도 좋으니까, 돈 많은 년 할래”라는 대사가 정말 절절하더라고.
정 김강우가 박용하 면회 갔을 때도 비슷했다. “지가 모자라서 궁상떨고 살면서, 수치스럽지 않냐?”고. 이 말에 박용하가 버럭 화낼 줄 알았더니, “니 말이 맞다”고 하잖아. 이게 박용하의 자세를 말해주는 게 아닐까 싶더라구.
신 지금 같은 세상에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게 슬프다. 한쪽에는 부정축재하는 사람이 있고, 또 한쪽에서는 월세방 때문에 사채를 빌려쓰고.
정 이야기를 끌어가는 박용하 연기도 기대 이상이다. 지금까지 그의 연기가 크게 인상깊었던 적도 없지만 특별히 기대이하였던 적도 없다. <겨울연가>에서도 무덤덤한 역이었고, 예전의 <보고 또 보고>에서부터 편안한 연기를 보였다.
신 드라마 소재를 깊이있게 조사한 후 접근한 흔적이 보인다. 취재력에 근거한 현실감각이 돋보인다.
정 송 작가는 드라마에 사회성을 제대로 담는 이야기꾼으로 유명하잖아. “5·18 광주 이야기나 빨치산 소재를 드라마에서 해도 되나?” 할 때 모두 끄집어냈다. <남자>에도 만두파동이라든지, 석궁 테러, 미네르바 등의 현실 사건을 에피소드로 투입시켰다. 김강우의 아역 연기도 사이코패스를 섬뜩하게 보여줬고. 현실을 강타하는 여러 문제들을 막 투입시키는 거다. 정치인들이 알바 풀어서 여론 조정 하는 것도 까놓고, 자연스럽게 보여줬다. 사회에 분명하게 빌미를 던지는 작가다.
신 <남자>는 소름 돋게 느껴지는 살아있는 대사뿐만 아니라 영상도 탁월하다. 주가 떨어지는 장면이나 벽제원, 여러 화면이 분할돼 등장하는 식의 영상편집이 ‘한국방송 맞아? 웬일이야?’ 싶을 정도였다.
정 구성도 탄탄하고, 카메라 디테일도 좋다. 박용하와 김강우가 서로 처음 만날 때 감옥 유리창에서 오버랩되는 장면 압권이더라. 김강우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나선형 계단이라든지 눈에 남는 장면이 많다.
신 <남자>가 영화 같은 편집을 보여줬다면, <카인과 아벨>은 소재가 영화 같다. 사막신을 비롯해서 초창기에 큰 스케일의 장면들은 눈에 쏙 들어왔는데, 2시간이면 끝낼 이야기를 늘여놓은 것 같다. 시청률은 꽤 높았지만 뭔가 늘어진 테이프 같은?
정 형제간 질투를 중심에 두고 새터민이 등장하고, 북한 끌려가는 식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카인>은 남자들만의 이야기를 표방한 건 아니었지만 결국 남자들만의 이야기가 됐다. 여자가 나오지만, 여자들 이야기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래된 삼각관계의 중심에 서 있는 채정안은 울거나 한숨 쉬거나 아프거나 걱정하는 식이었다. 한지민은 중국에서는 온 집안의 여권을 자기가 만들며 억척스럽던 또순이였는데, 서울 오더니 소지섭만 바라보는 수동적인 여성으로 돌변했다. 여주인공을 왜 그렇게 재미없게 그렸을까?
울기만 하는 여주인공 몰입 방해
신 중반 이후 징징대고 우는데, 몰입이 잘 안 되더라. 왜 그럴까 싶었는데 <카인>은 인물들 간의 대사가 맞선 보는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같더라구. 웃어도 울어도 비슷한 대사 내용에, 정제되어 있지가 않다. 새터민이 이북 사투리 강렬하게 쓰긴 하는데 이들이 나누는 대사 흡인력이 약했다.
정 그 대사 가지고 연기 잘하는 것도 참 용했다.(웃음)
신 신현준 연기를 진지하게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카인> 보면서 신현준의 연기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란 걸 알았다. 예전엔 클로즈업하면 늘 충혈된 눈밖에 안 보였건만.
정 <카인>에선 병원 직원들부터 새터민 최치수까지 버릴 연기가 없었다. 그중 소지섭의 눈빛 연기가 정말 백미였지. 죽을 고비 넘고, 형제 때문에 남몰래 가슴앓이하고. 우울하고 암울한 역 하는 거에선 <미안하다, 사랑한다>와 겹치는 부분도 있었다.
신 눈빛 연기 정말 가슴 관통했지~. 반면 너무 우울함이 남발된 측면도 있어서 드라마가 무거웠다.
정 그럴 수밖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카인>처럼 혈육간의 질투를 처참하게 겪는 인물을 표현하는 건데.
신 나중엔 이야기에 너무 힘을 주니까 약발이 안 서더라구. 소지섭 눈빛 같은 비장의 무기를 드라마에서 잘 숨겨놓으면 좋은데, 눈 부라리고, 죽을 뻔한 후 또 눈 부라리고, 처음에는 눈 표정에서 내가 받은 임팩트가 무지 컸는데 점점 사그라들더라구.
정 안 그러는 게 이상하지. <카인>의 테마는 용서와 화해가 아니라 복수극이다. 신현준·김해숙 모자가 초인에게 복수하고, 끝내는 초인이 다시 복수하는 상황이잖아.
신 복수의 시작은 형제간의 질투였고.
정 복수든 질투든 그걸 어떻게 개연성 있게 만드느냐가 중요한데 <카인>은 점점 복수를 가운데 두고 표류했다. “이렇게 당했으니까 응징해야지” 하는데 이해가 잘 안 되는 거지. 김해숙(엄마 역)이 눈엣가시 같은 초인을 죽이려고 하고, 응급의학센터와 뇌의학센터 건설을 두고 싸움하면서 남편까지 결국 쓰러뜨렸잖아. 그럼 좀 미안해해야 하는데, 그런 마음도 없고 이건 뭐~.
신 그 부분은 정말 이해가 잘 안 되더라. 사람을 죽이려는 시도가 그리 쉽나?
정 김해숙도 소지섭이 남편 소생의 아들인 걸로 오해해서 악질 짓을 한다고 하는데, 이유가 너무 무모했다. 잘못을 저지른 모자의 심리를 합리화하는 데 시간을 너무 들였고.
남편까지 죽이는 복수 이유가 약하네
신 <카인>에서 필요했던 건 설득력과 스피드였다.
정 시청자들은 애인 같다. 진지하게 솔직하게 잘해주려고 해도, 잘해줬다고 해서 그게 전부는 아닌 거지. 까다로운 애인인 시청자에게 <남자>나 <카인>처럼 암울한 상황을 진지 모드로 보여주고 재확인시켜 준다면, 쉽게 사랑에 빠지긴 힘든 게 사실이니까.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강렬한 눈빛 연기도 반복되면 약발 떨어져 <카인과 아벨> 정석희 지상파 3사의 월화드라마 모두 수작이다. 뭘 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장르도 다양하고 개성 넘친다. 코믹 스타일인 <내조의 여왕>이 시청률이 높은 건 시청자들이 그만큼 밝은 이야기를 원한다는 의미다. 현실의 암울함에 신물이 난 시청자들이 정치·경제 문제로 치고받는 걸 보고 싶진 않은 거지. 나도 ‘돈많은 ×’ 소리 한번 듣고 싶구나 신광호 <남자>는 송지나 작가가 <태왕사신기> 이후 현대극에 컴백한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볼수록 꽤 공들여 만들어진 드라마 같다. 극과 극인 캐릭터의 남자를 투톱으로 등장시키는 것부터 송 작가의 시각이 느껴진다. 한 명은 너무 잘나가고 빈틈없어 보이는 반면, 다른 한 명은 밑바닥 인생에 언제나 감옥신이 나오는 거지.
정 이 드라마가 유난한 게 아니라 잘 나가는 남자들과 아닌 남자들은 현실에서도 대비되기 마련이잖아. 신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이 중요한 행동을 한다는 콘셉트가 재밌다. 그런데 <남자>의 박용하도 그렇고 왜 그리 감옥 갔다 오면 남성들 내공은 ‘이빠이’ 쌓이는 걸까? 정 무협지에서도 그렇다.(웃음) 신 감옥만 다녀오면 왕마초가 되어서 나오는데, 송 작가에게 이런 식의 남성 판타지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남자>에서는 박시연이란 여자 캐릭터도 눈여겨보게 된다.
돈에 의한 비극을 그리는 드라마 <남자이야기>(한국방송). 한국방송 제공
두 형제의 갈등과 복수를 다룬 <카인과 아벨>(에스비에스).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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