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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김어준·임경선씨 만나서 얘기하죠!
〈esc〉 100호를 맞아 김어준·임경선씨가 대면 상담에 나섭니다. 평소 상담 글을 읽으면서도 해결되지 않았던 궁금증을 직접 만나 풀어보세요. 신청하신 분들 가운데 20대 남성 독자 3명, 여성 독자 3명을 추첨해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상담 주제는 ‘20대, 남과 여’로 대한민국 이십대로 살아가면서 겪는 일과 사랑, 남녀 역할과 갈등문제 등을 자유롭게 묻고 토론할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고민 메일로 신청하세요.
⊙ 신청 자격 : 대한민국 20대 남성과 여성
⊙ 신청 방법 : 고민 메일(gomin@hani.co.kr)로 이름, 나이, 현재 하는 일, 상담하고 싶은 고민, 연락처를 정확하게 적어서 보내주세요.
⊙ 신청 마감 : 4월 23일까지
⊙ 당첨자 발표 : 4월 24일 개별 통지
⊙ 상담 일자 : 4월 마지막주 중 추후 결정
⊙ 대면 상담 내용은 5월 7일치 〈esc〉 100호에 게재됩니다. 비밀 상담을 원하거나, 얼굴 노출을 원치 않는 분들은 신청이 어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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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에 목매지 않고 연애에 시큰둥한 이 남자, 어떻게 연애를 걸어야 할까요?
Q 저는 올해 29살의 싱글 여성 직장인입니다. 얼마 전 워크숍에서 또래의 한 남자분을 만났고 호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자도 주고받아 봤고 메신저도 연결하게 되었구요, 따로 밥 먹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부서가 달라 이제 일부러 약속을 만들지 않으면 보기 힘들죠. 문제는, 이 남자가 꽤나 ‘초식성’인 듯하다는 것입니다. 초식성 남자의 주요 특징은 연애의 필요성을 별로 못 느낀다는 거죠. 매너가 좋지만 나쁘게 말하면 선이 분명한 사람. 자기 코드가 분명하고 일과 취미에 대한 욕심도 있고, 친구도 많고, 감각도 좋고 등 한마디로 이미 자기 생활이 바쁘고 충만하기 때문에 굳이 애인에 목매지 않는 겁니다. 그걸 잘 아는 건 제가 바로 그런 초식성 여자이기 때문이에요. 저도 이미 제 생활이 만족스러운지라 일부러 찾아서 연애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 남자와 저는 둘 다 적당히 활달한 타입이자 취향, 관심사, 스타일, 환경 등 비슷한 점도 많아요. 비슷하다는 건 장점이지만 서로에게 발견할 의외성이 없어서 단점 같기도 하고, 같이 만났을 때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던 것도 정말 말이 통해서라기보다는 둘 다 그저 사교 토크에 능해서가 아닌가 싶네요. 그의 초식성을 고려해,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도 같지만 저 역시 유혹의 기술 같은 건 발휘할 줄 모르는 초식성 여자. 어찌할까요?
A 요즘 날로 증가한다는 화제의 초식성 남자! 일단 들이대고 보자는 개기름과가 주춤하더니 몸 사리는 올리브오일 같은 남자들이 출현했다죠. 여자에게 몰두하진 않지만 특유의 자상함과 고감도 센스에 여자 마음 설렙니다. 사랑해도 될까요, 싶어도 그들은 들이대는 동물적 기질이 부족해 어떤 의미에선 여자가 가장 공략하기 힘든 상대. 성욕은 감퇴했고 리스크는 회피하니까요. 상대에게 나를 맞추고 희생하는 것도 싫지만 상대가 나를 위해 애쓰는 것도 버겁고 귀찮답니다. 질퍽한 게 싫은 거지요. 초식성 남자는 계파도 가지가지 - 마마보이과, 오타쿠과, 연하남과, 깔끔이 엘리트과 등. 이 남자분의 경우엔 마지막 깔끔이겠군요.
공략법으로는 대개 이런 게 있다고 합디다. ‘그의 관심사에 동조하면서 자주 만나 자연스레 익숙해지고 가까워져라. 속박 안 하는 공기처럼 부담 없는 ‘무해’한 여자가 되어라. 만나면 그가 내게 해줬으면 하는 걸, 그냥 당신이 해버려라. 엎드려 절 받기 식으로 부담을 줄 바에야 차라리 화끈한 공세가 낫다. 밀고 당기기 같은 건 생각도 하지 말아라, 안 먹힌다. 분위기가 대충 무르익을 타이밍에 그가 뜬금없이 혼자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릴 수 있다. 쫓아 들어가서 족치지 말고 냅둬라. 동굴 밖에서 인내심 가지고 기다리다 보면 좋은 일 생긴다. 친구 이상 애인 미만의 애매모호한 과도기의 답답함과 결정적 관계를 가지지 않으려 하는 남자의 짜증나는 언동을 담대함으로 감내하라. 그의 무반응 작전에 도중에 항복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그런데 이거 적다보니 왜 내가 속 터지지?
흠. 초식성 남자, 그거 애초에 존재하는 개념 맞긴 맞나요? 본래 20대 때는 동물성이었는데 너무 놀아서 기름이 쫙 빠져 서른 넘어 식물성이 된 걸 수도 있고, 지금은 일에 올인하고 서른 중반쯤 돼서 세상 때 안 묻은 젊은 여자 챙기겠다는 심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당신이 이 남자를 편의상 ‘초식성’으로 규정짓는 걸 수도 있다는 의심이 듭니다. 과거의 ‘내게 반하지 않은 남자 = 관계기피증 배드가이’가 현재 ‘내게 반하지 않은 남자 = 관계기피증 초식성 남자’로 연해진 것뿐? 격하게 욕하는 대신 ‘생겨먹은 게 그런데 뭘 바라’ 식으로 쉽게 포기하는 게 더 웰빙스럽기도 하고.
연애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초식성 남자라며 좀 억울해하는 것도 같은데, 필요성을 많이 느끼는 남자라고 막상 연애를 더 할까요? 꼭 그렇진 않죠. 연애는 개인이 적극적이고 부지런하다고 신속히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원맨 프로젝트가 아니라 남녀간의 우발적인 감정 접선일 뿐이니까요. 연애를 ‘필요로’ 한다면 그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외로움을 만회하기 위해, 나잇값 하기 위해서인데 그럴 바엔 그 남자처럼 자신을 돌보는 게 차라리 더 필요할 듯. 연애는 사랑에 ‘빠지면서’ 비로소 시작하고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저마다의 때와 장소와 방식으로 언젠가는 다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누나, 전 혼자인 게 좋아요”라며 찧고 까불던 주변의 식물성 만년 소년들도 하나둘씩 다 장가가 버리던걸요? 다시 말해 얼음 왕자 같은 이 남자에게도 감정과 욕망이 내재한다는 겁니다. 초식성이라 자칭하는 당신도 지금 꿈틀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는 초식성 남자, 난 초식성 여자, 고로 우린 평행선을 탈 확률이 높아라며 먼저 한 발짝 물러서는 건 겁먹어서 내뱉는 방어적 핑계일 뿐, 초식성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이고 상황적인 개념일 개연성이 더 크다는 겁니다. 실상 와일드해 보여도 막상 뚜껑 열어보면 허당인 남자가 있고, 식물성처럼 보여도 마냥 짐승인 남자도 있듯이 인간은 어찌나 복잡한 변덕꾸러기들인지요.
유혹의 기술이요? 심플하죠. 최고의 기술은 그 사람 자체의 매력입니다. 나머지 잔챙이 기술들은 일말의 성적 긴장감의 힌트라도 있어야 먹히고 작용한답니다. 삼세번 만나봐서(그는 매너남이고 당신은 쾌적한 상대니 만나줄 것임) 그때도 평행선 타는 느낌이면 ‘초식 남녀 = 소 닭 보듯’으로 해석하고 장렬히 관둡시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