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남편과 대화하는 법. 일러스트레이션 최수연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회사 고충 말하면 화부터 내는 그에게 실망했어요…달콤한 위로보다 쓴소리가 몸에 좋은 약이죠
결혼 3년차인 31살 여성입니다. 양가 부모님의 결혼 반대에 부닥쳤을 때도 남편과는 문제가 없었는데, 저의 회사 문제 때문에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작년 초에 장기적으로 하고 싶은 일과 관련한 이력을 쌓기 위해 팀을 옮겼는데 막상 옮기고 보니 추진하는 사업도 잘 안되고 팀내 불화도 생기면서 팀원들이 하나둘 빠져나갔죠. 그러면서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는 높아지고 졸지에 막내가 되어 자질구레한 일까지 떠맡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목표했던 이력을 쌓을 수 없는 것이 확실해져 저도 이직을 결심했지만 쉽지 않군요. 더 힘든 건 이 상황을 남편과 상의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회사에서의 고충을 얘기하면 남편은 일단 화부터 내요. 해결점보다는 문제의 원인을 찾아 저를 질책하죠. 그러게 팀 옮기기 전에 왜 잘 알아보지 않았냐, 그동안 자격증을 따거나 영어 점수 올려놨어야 이직 쉬운데 왜 안 그랬냐, 확실한 대안도 없으면서 왜 고민만 하냐 등. 결국 저는 울고, 남편은 화나서 방에 들어가면 상황 종료. 회사 관련 힘든 얘기는 아예 하지도 말고, 확실한 해결책을 가지면 얘기하라 하더군요. 저도 포기하고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만 고민을 공유합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과는 꼭 필요한 얘기만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죠. 문제는, 그가 아주 싫지는 않지만, 앞으로 생사고락을 함께하고 싶다든지, 함께 아이를 낳고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는 겁니다. 뻥 터뜨려서 해결 봐야 할까요, 아니면 걍 덮고 살아야 하나요?
A 결혼 반대에 부닥쳤을 때 커플의 결속력이 강해지는 건 외부에 공통의 적이 있으니까 그랬던 것뿐. 그게 아니고서야 남녀간에 ‘같은 인간끼리 말하면 통할 거다’ ‘나를 사랑하니까 이해해줄 거다’는 어디까지나 희망사항! 하지만 난 당신의 남편 이해할 수 있어요. 왜냐, 내 남편이 아니니깐요.
남편은 서운했던 겁니다. 우리의 사랑스런 남편들은 ‘내가 아무리 얘기해줘 봤자 내 말 듣지도 않는다’며 속상한 거죠. 분명히 그는 전에 당신과의 대화 중에 자기 의견을 성의껏 피력했을 테지만 당신은 진심으로 듣고 있질 않았을 확률이 커요. 남편은 ‘어차피 지 마음대로 할 거 그럴 거면 왜 묻냐’ 싶은 마음을 꾹 눌렀을 테고. 남자의 본능 중에 무시할 수 없는 게 ‘지배욕’인지라, 가정에서 아내를 향한 의견이 영향력을 끼칠 것을 기대하다가 반영이 안 되면 자신의 존재가 무의미하게 느껴지죠. 그런 시무룩한 기분을 맛보게 한 와이프도 좀 미운 거구요. 또한 자기 문제 열변하는 사람은 잘 모릅니다. 자신이 한때 지금 하는 소리와 얼마나 모순된 얘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는지를. 처음부터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에겐 이 변덕스런 징징댐은 참 지치는 노릇입니다. 남편은 짜증도 났을 겁니다. 회사생활에 임하는 여자들의 태도에 대해서요. 어차피 기분 나쁘면 확 때려칠 수 있을 것 같은 제스처에 화가 난 것이죠. ‘말 안 한다고 나라고 힘든 것 하나 없는 줄 알아?’라며 치사하고 더러운 꼴 보더라도 일단 최선을 다해 붙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본인의 비장함에 비해 조직보단 개인의 논리가 우선시되고 스트레스와 힘든 일을 쉽게 버거워하는 여자들의 불안감이 못마땅하고 그저 호르몬 불균형 탓으로 매도하고 싶어집니다.
“그래,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이 마법처럼 달콤한 말, 우리 모두 듣고 싶어하죠. 상의한다고 해도 결국 내 심란한 마음에 공감해주고 나의 주장에 대한 달콤한 긍정을 해주길 바라고, 더 나아가서는 현재의 골칫거리를 해소해주거나 현실도피를 도와주는 특효약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죠. 언뜻 나를 이해해주고 내 편이 돼주는 것 같지만 친구나 동료가 립서비스로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 무책임한 얘기들입니다. 정말 가까운 사람, 나에게 책임 있게 관여하는 사람이라면 되레 상처가 되는 얘기를 해줄 줄 압니다. 오래오래 같이 살 사람이니 감기약 바로바로 먹이기보다 평소 감기 안 걸리게 체질을 튼튼히 만들어주고 싶었던 것. 그런데 그 속뜻보다 격앙된 남편의 목소리에 서러워서 왕~ 하고 귀엽게 울음을 터뜨리다니!
여자들은 참 희한해요. 왜 남자가 자기 입맛대로 딱딱 반응 안 해주면, 조금이라도 소통단절 사태가 벌어지면 그걸 못 참고 파르르 떨며 ‘이 남자 혹시 날 더이상 사랑 안 하는 것 아닐까’라며 어떻게든 물집 터뜨려 긁어대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요? 이성적으로 접근한답시고 곧잘 남편들을 부엌 탁상으로 불러들여 밤새도록 공론(일명 허심탄회한 대화)을 펼치다가 더이상 말 안 통한다 싶어(말발 꿀린다 싶어) 앙하고 울며 퇴장했을 때 그가 뒤따라 방으로 들어와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며 꼭 껴안아 줬더라면 또 얘기가 한결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남편은 마누라의 눈물을 닦아주며 ‘넌 내 마누라인데, 어디 갈 여자도 아닌데’ 왜 알기 쉬운 저렴한 사랑 표현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자상한 남편? 물론 좋죠. 그 못지않게 쓴소리 해주는 남편, 훌륭합니다. 쓴소리를 해준다는 것은 적어도 당신을 ‘내 밑에서 보호할 여자’가 아니라 ‘독립적으로 한 보 진전해주길 바라는 나의 파트너’로 보고 있다는 것이죠. 말발과 기합에 져서 혹은 찔려서 울며 도망가지 말고, 괜히 지금 심란해서 애먼 남편 잡을 생각 말고(어차피 또 당신이 울고불고하며 끝날 것을), 해결책 플랜을 치밀하게 작성해서 남편에게 치열하게 프레젠테이션해 봅시다. 그게 그를 섹시하게 긴장시킬 ‘상의’이자 ‘성의’이자 ‘구애’의 방법입니다.
임경선 칼럼니스트
※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임경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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