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완벽한 남자를 만났는데 불안해요

등록 2009-03-04 19:02수정 2009-03-07 09:57

완벽한 남자를 만났는데 불안해요
완벽한 남자를 만났는데 불안해요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Q 30대 중반의 재혼녀입니다. 10년여의 직장생활도 지치고 이혼녀라는 주홍글씨 가슴에 달고 한국에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누군가를 만나 기대고 싶은, 아니 솔직히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완벽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제 연봉을 월급으로 받는 이 남자는 멋진 펜트하우스에 베라왕 웨딩드레스, 차 한 대 가격의 다이아 반지와 속옷 빨래까지 해주는 도우미, 신용카드를 제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제 남편은 정말 자상한 사람이고(제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할까봐 일주일에 하루만 출근하며 저와 함께 있어 줍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사랑한다고 말해 줍니다. 제가 행복에 겨워 주제파악을 못하는 걸까요? 또한 남편이 저를 너무 사랑해 주어서 걱정입니다. 부부관계를 아주 자주 갖는데 솔직히 체력적으로 지치고 이거 하려고 여기 시집왔나 싶은 생각까지 듭니다. 40대 후반의 남편은 저에게 지금의 미모와 젊음을 간직하라는 은근한 압력도 행사합니다. 가끔은 제가 그 사람의 인형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솔직히 기분이 안 좋아요. 친정어머니는 세상에 네 남편 같은 사람 없다며 충성(!)하면서 살라 하시고 저도 남편을 사랑하지만 왜 행복하지 않고 자꾸만 불안할까요? 저 계속 사랑받고 사랑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습관이 된 불안은 인생을 대하는 자기방어적 태도에 불과할 뿐입니다

A 이건 혹시 배부른 염장질? 아뇨, 나름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셨습니다. 어디 다각도로 살펴볼까요.

1.행복의 조건: 당신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행복의 조건들을 온전히 누리고 있는데 왜 정작 본인은 배은망덕하게 정신 못 차리고 있냐며 자학하고 있는데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남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행복의 조건들이 반드시 당신도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요. 인생 2막 로또 당첨된 것처럼 방방 뛰지 않는다고 죄의식 느낄 것도 없구요. 남들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이 어떤 사람들에겐 그저 숨막히는 새장일 수도 있구요, 이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게 쇼핑이라고 말하는 여자들도 있답니다. 돈이 정말 진짜 많지 않은 한 실질적인 가치관이나 라이프스타일을 어설프게 바꾸려 했다간 되레 어색하고 불편하고 불행해질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 주어진 그 이상을 기대해서는 벌 받을 것 같은 ‘완벽’이라는 단어를 당신의 남편과 신혼생활에 적용해 놓고 괴로워하지 마세요. 당신 남편, 참 기특한 양반이지만 그렇다고 완벽하진 않으니까.

2. 불안의 습관: 그렇다고 당신이 <인형의 집>의 ‘노라’일 것 같진 않구요,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 때문인지 ‘불안’에 길들여진 것 같습니다. 고됨이 주는 흥분을 알게 되면 ‘안정’되었을 때 거꾸로 ‘불안’을 느끼거든요. 너무 모든 게 잘 풀리면 의심만 가득해지고 불행의 반전을 내심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의기소침하게 보내는 거죠. 만사형통 행복 편안해도 그거 불안하다고 징징대고, 힘들 때도 물론 힘들다고 징징대지요. 그건 상황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인생을 대하는 일관된 자기방어적 애티튜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잘될 것을 기대했다가 안 풀리면 그 간극의 쇼크에 먹힐까봐 선수 쳐서 미리 불안해하는 것,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을 지키려 해보지만 별 영양가 없지요. 인생은 즐겁게 사는 사람이 이기는 장산데, 나중에 망할 것 미리 생각해서 현재 우울해하면 애초에 지고 있는 거잖아요. 세상일의 대부분은 잘될 건 잘될 것이고 안될 건 안될 것이니, 그저 결판나기 전에 힘닿는 한 해보고 아님 말고지,의 마음가짐으로 임하면 되는 겁니다. 왜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미리 불안감에 쩌는 건지요. 행복은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내적인 관점에서 시작해야 할 듯합니다.

3. 늦게 만난 남녀: 사실 당신, 정작 묻고 싶었던 건 “전 정말로 제 남편을 사랑하는 것 맞나요?”가 아니었는지? 하지만 그 질문 하는 것에 죄책감 느껴서 못했겠고, 혹여 “아뇨, 그거 사랑이 아니라 ‘필요해서’ 결혼한 거야”라는 소리 들을까봐 두려웠겠죠. 아마추어처럼 우리 ‘하루에 수십번 사랑해’ 멘트에 연연하지 말고 남녀관계의 불완전한 본질을 얘기해 봅시다.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아무리 서로 사랑하는 남녀인들 저마다의 마음 한구석엔 ‘악마’적 감정 덩어리가 숨어 있답니다. 어려서 만나면 ‘굴복’, 나이 들어서 만나면 ‘경멸’이라는 감정 덩어리가요. 젊은 남녀는 사랑이라는 미명 아래 상대를 내 입맛에 맞게 뜯어고치고 굴복시키려 애씁니다. 신혼 초 부부싸움 다 이거죠, 뭐. 한편 인생 쫌 살아본 남녀는 굴복의 무의미한 쓴맛을 알기에 상대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주면 그저 고마워서 잘해주고 싶어지죠. 그런데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선 경멸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봉사하는데 이 여자가 행복해하지 않고 배기겠어?”라고 남자는 오만해지고, 무아지경으로 눈감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며 여자는 “이 남자, 내게 단단히 빠졌군”이라며 문득 아스라한 역겨움을 느낍니다. 이런 마음이 있기에 또 미안해서 잘해주려고 노력하기를 반복, 또 반복. 그렇게 세월은 흘러가는 것이지요. 남자와 여자, 별거 없습니다. 경멸과 연민, 연민과 사랑, (그리고 까딱하면 경멸과 증오) 이것들이 다 한 끗 차이인 관계이지요.

결론 : 당신의 상황은 특별히 행복할 것도, 특별히 불안할 것도, 특별히 변태적일 것도 없다는 겁니다. 주어진 상황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조금 심심하게 사는 것, 그게 진정한 후천적 사모님의 애티튜드 되시겠습니다. (몸 될 때) 걍 즐겨.

임경선 칼럼니스트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한겨레 주요기사]
▶ 신영철 대법관 ‘촛불재판’ 수차례 압력 메일
▶ 법원, ‘인수위원 지냈다’ 빚 52억 탕감 결정
▶ ‘도요타’마저 “구제금융”…자동차산업 이미 ‘공황’
▶ 의정부 초등생 남매 엄마가 살해
▶ 고영재PD “‘워낭소리’ 동영상 유포는 ‘디지털 악마’”
▶ 침체된 시장…‘기름 덜 먹는 차’가 대세
▶ ‘무릎팍’ 이제는 패가 다 보여
▶ 완벽한 남자를 만났는데 불안해요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1.

70년간 갈비 구우며 신화가 된 요리사, 명복을 빕니다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2.

만찢남 “식당 창업? 지금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하고 싶다면…”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3.

내가 만들고 색칠한 피규어로 ‘손맛’ 나는 게임을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4.

히말라야 트레킹, 일주일 휴가로 가능…코스 딱 알려드림 [ESC]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5.

새벽 안개 헤치며 달리다간 ‘몸 상할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