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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들이여, 구자명을 보라

등록 2009-02-04 18:25수정 2009-02-07 16:44

고우영의 원작에 대한 경외가 느껴지는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문화방송 제공
고우영의 원작에 대한 경외가 느껴지는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문화방송 제공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사뭇 비장한 일지매는 이렇게 말한다. “이러고 있지 않겠다!” ‘팔도강산을 좀먹는 도적패’, ‘나라를 넘기려는 음모’에 대항하는 영웅 드라마가 이유를 찾는 순간이다. 영웅을 바라기에는 벅찬 2009년 대한민국에, 황인뢰판 일지매가 찾아왔다. <10 아시아>(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최지은 기자가 <돌아온 일지매>(문화방송)와 드라마 고수 황인뢰 감독에 집중했다.

황인뢰와 고우영이 환상적으로 손잡은 <돌아온 일지매>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난 한국적 아름다움 제대로 보여줘

너 어제 그거 봤어?
너 어제 그거 봤어?
백은하(이하 백) <돌아온 일지매>는 황인뢰 감독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다렸던 드라마다. 지난해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기억에서 채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했다. 게다가 신인 정일우를 톱으로 캐스팅해서 기대와 동시에 걱정도 컸다.

최지은(이하 최) 1회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 ‘왜 이래, 이거 이상해’라는 평이었다. 기존 사극과 달리 실험적인 부분이 많았다. 사극이면 흔히 누가 태어나는 옛날 장면이나 최후의 순간, 아니면 결정적인 전투 장면에서 시작한다. <…일지매>는 놀랍게도 2009년 서울이라는 조선시대의 ‘미래’에서 시작했다.


책녀, 상투적 만화 원작 드라마와 구별되네

<…일지매>엔 당황스런 요소가 많다. 원작이 만화라는 걸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원작 만화를 텍스트로 삼지만, <…일지매>는 만화를 형식적으로 들고 온 측면이 크다. 지금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극중 ‘책녀’의 내레이션만 봐도 그렇다. 사뭇 진지한 톤으로 내비게이션, 하이킥 등 지금 우리가 쓰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재밌고 코믹하다.

원작 만화에도 워낙 내레이션이 방대하고 문장마다 의미가 담겨 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양한 장치들 상당수가 원작 만화에서 나온 게 많다. 만화 <일지매>는 한장 한장 쉽게 넘어가는 작품이 아니다.

극중 내레이션의 비중이 큰 게 기존 정통 사극이나 세련된 퓨전사극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어딘가 괴상하게 보일 수 있다. 드라마 전개에서도 회상, 현재, 미래가 섞여 있으니까. ‘이제 배선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포도청 구자명의 이야기로 가볼까?’라는 식으로 한명 한명에 대한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데려다 놓는다.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니라, 세련된 방식으로 각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내는 거다.

만화라는 장르가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 만화 단물만 쏙~ 빼먹고 싹~ 버리는구나 싶어 아쉬울 때가 많았다. 만화라서 가능했던 엄청난 상상력이 있는데, 드라마에선 줄거리와 캐릭터만 평면적으로 가져왔으니 말이다. <…일지매>는 원작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있다는 게 만화 팬으로서 반갑다.

난세에 나타나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도 반갑다. 어떤 문화나 어떤 나라 상관없이 시대마다 슈퍼히어로에 대한 갈망이 있기 마련이다. 첫 회에서 일지매는 언뜻 보면, 하늘도 날고 손에서 갑자기 거미줄도 튀어나오는 스파이더맨 식 영웅처럼 보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내가 왜?’를 묻는다. 나도 몰랐는데, 나 하늘을 날 수 있잖아? 하는 식의 슈퍼히어로는 아닌 거다.

일지매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은 인물이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첫사랑이었던 달이도 잃을 것 같고. 하지만 상실에서 오는 것들에서 힘을 찾는다. 자기 앞의 힘든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다가 힘을 갖게 되는 거다.

난국을 돌파해 가는 일지매의 모습에서 우리가 찾고 있는 21세기형 슈퍼히어로형 모습이 보인다. 일지매는 모든 걸 단번에 해결해주고 짠 사라지고는, 미녀와 편안한 여생을 보낼 것 같진 않은 거다.(웃음) 무술을 배우다가 ‘꽃동작’을 버리라는 말이 나오는데, 꽃동작을 다 제거한 후 ‘정수’를 얻게 될 거라고 본다. 영웅이 무엇을 위해서 자기의 힘을 쓸 것인가 지켜보고 싶다.

일지매는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미성숙한 인물이다. 정일우도 아직 완성된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일지매와 어울린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모르고 절반은 백지상태의 인물이다. 정일우란 배우도 그런 상태에서 시작한 듯하고 황 감독도 그런 부분에 흥미를 느꼈다고 들었다.

<거침없이 하이킥> 윤호가 어떻게 정극을 할까 몹시 궁금했다. 아직 사극 대사 처리가 완전히 매끄럽지는 않지만 속에 있는 감성적인 지점을 보여주는 부분에서는 기대 이상이었다. 일지매를 중심으로 한 캐릭터들도 비중이 크다. 김민종은 사랑하는 여인을 앞에 놓고 안타까워하며 다가가지 못하는 눈빛을 어찌 그리 잘 표현하는지. 순정파 그 자체다.

김민종의 구자명이란 캐릭터는 톱이 아니다. 일지매의 뒤를 따라다니고, 어찌 보면 일지매의 엄마인 백매에게 연정을 품는, 뭐라고도 말하기 힘든 캐릭터다. 하지만 일지매를 지켜주고 뒤에서 받쳐주는 역을 택했다는 게 그다운 선택 같다.

구자명은 이 시대 경찰이라는 자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고민들을 끊임없이 한다. 조선시대 수사관으로 계속해서 고민하고 변화해가는 매력적인 남자다. 이건 드라마 제작진들이 모든 캐릭터들을 만들어내는 태도인 것 같다. 각각의 인물들이 누구를 위해서 종사하기보다 본인을 위해서 살아간다. 백매 역의 정혜영은 너무 예쁘다.

그럼 안 되는 거 아닌가, 아이 둘 낳고. 보고 있으면 황홀경에 들게 한다.(웃음)

정혜영, 그렇게 예뻐도 되는 건가

고우영의 원작에 대한 경외가 느껴지는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문화방송 제공
고우영의 원작에 대한 경외가 느껴지는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문화방송 제공
일지매의 엄마라는 캐릭터는 그간 정혜영이 만들어왔던 사적 이미지와 만나면서 굉장한 시너지를 낳고 있다. 강남길이 연기하는 배선달도 일지매의 행적을 기록하는 일지매 마니아로, 요즘으로 치면 딱 오타쿠다.(웃음)

과거 급제한 선비인데 차돌이란 인물 데리고 다니면서 일지매 따라 전국 일주한다.

오타쿠임에도 사회에 섞여서 여러 가지 이야기 해주고 싶어 하는 귀여운 지식인이다. 조연들의 배치가 경제적으로 꼼꼼하게 되어 있다.

청나라 첩자인 왕횡보 역의 박철민만 해도 옆걸음으로 걷는데 그걸 무용수한테 배운 거라고 한다. 대상이나 표정 하나하나에서 고민의 결과가 느껴진다.

<…일지매>를 말하면서 황인뢰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도시라는 삶의 형태, 공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고독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그 누구보다 집중했던 감독이다. 그가 본격 사극을 한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됐었다. 하지만 현재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구나 싶다.

수출용 드라마나 안전빵 드라마를 만드는 환경에서 <…일지매>는 위험부담을 갖고 시작한 드라마다. 보통 황 감독 급 되면 사업을 한다든가 하잖아. 황 감독은 자기 스타일을 연마해가는 과정이 보인다.

<…일지매> 첫 장면은 빡빡한 도시에서 건물들을 걷어내고, 몇 백 년 전 한양의 모습으로 들어가는 거였다. 어떤 사극들은 마치 한복 코스튬을 입은 듯 현재와 단절된 극을 보여준다면, <…일지매>는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지점을 탁탁 짚어준다. 내레이션이 ‘청나라 첩자 왕횡보가 떨어진 곳이 송파구 석촌동인데 간첩용 내비게이션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라고 말해주니까. 옛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대목에선 묘한 다큐멘터리적인 느낌도 있다.

황 감독의 영상미를 놓칠 수 없다. 지루하지 않은 서정성을 보여준다. 기술적으로 그림을 잘 찍는 게 아니라 이 테크닉이 전체에 어떻게 조화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황인뢰 미장센의 기본은 액션, 멜로 등 다른 감정 신들이 잘 연결된다는 거다. 다른 드라마들 보면, 각 장면마다 펑펑 튈 때가 있거든.(웃음) 벼락치기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각 장면이 연출을 통해 튼실한 근육으로 되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다.

<…일지매>는 한국의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보여준다.

과도한 오리엔탈리즘으로 꾸미고 과장하고 색칠하지 않는 거다. 각 구성요소가 가진 디테일들을 놓치지 않고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전체 미장센을 꽉 채워 보인다. 그게 황인뢰 감독의 큰 특질이다. 아름다운 액션신이 유독 많다. 특히 검을 연마하던 일지매가 날이 어두워지면 실루엣이 보이는데, 단순히 잘 싸우는 액션신의 쾌감이 아니라 하나의 아름다운 동작이다.

황 감독이 처음 사극을 할까 고민했을 땐 갓 쓴 옛날 이야기는 못한다 생각했다더라. 그러다가 원작을 읽고 나서 이걸 꼭 만들어야겠다 싶었다고. 1970년대 연재했던 만화 <일지매>엔 사회비판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이야기가 지금 2009년 드라마 안에서 소화된다는 건 그 안에 보편적인 통찰력이 있기 때문이다.

원작에 대한 경외가 느껴지는 황인뢰식 연출

두 작가가 지금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다. 원작을 베껴 오는 게 아니라, 원작에 대한 경외가 느껴진다. 일지매 눈앞에서 탐관오리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뇌물을 받는 등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지금 상황과 크게 다르진 않다. 하지만 지금은 의적이 없다는 게 큰 차이지.(웃음)

황인뢰가 드라마 <궁>으로 새로운 세대와 호흡하는 법을 배웠고, <궁 S>라는 큰 실패를 거치면서 결국은 도달한 지점이 이번 작품이 아닌가 싶다.

■ 아름답다, <… 일지매> 그 장면

“‘매화는 눈 속에 피어 추위에 떨고 어미는 어려서 되어 이별에 우네.’ 백매가 아들 일지매에게 보냈던 편지가 화면을 채울 때, 절절한 감정 노출 없이도, 느낌이 확~ 다가왔다. 함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시 구절에 매화꽃까지 어우러져. 이것이야말로 한국적인 좋은 느낌이구나 싶었다.”(백은하)

“대만에서 찍은 청나라 신, 특히 아름다웠다. 구름다리 위에서 싸우는 신은 원작 만화 장면의 매력을 최대한 살려냈다. 70% 정도 사전제작된 드라마라 음악, 시지 작업에 공들인 게 느껴진다. 날로 먹지 않은 영상미가 돋보여!”(최지은)

■ 궁금하다, <… 일지매> 그 장면

“‘책녀’의 내레이션이 전지적 시점에서 이야기를 계속 설명해주는 동시에, 배선달이라는 또다른 전달자 캐릭터가 나온다. 드라마가 전개될수록, 이 전달자들의 역할이 어떻게 진행될지 흥미롭다. 일지매 이야기에 어떤 방식으로 몰입하게 될까 궁금하다.”(최지은)

“드라마 첫 시작 장면이 일지매가 보기엔 먼 미래인, 2009년 지금의 서울이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도시를 내려다보던 일지매, 그가 보는 마지막 풍경은 뭐가 될지 궁금하다. 현대와 과거의 고민, 우리가 원하는 영웅상의 모습들이 일지매를 통해 어떻게 만나게 될지, 포문은 열려 있다.”(백은하)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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