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의 원작에 대한 경외가 느껴지는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문화방송 제공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사뭇 비장한 일지매는 이렇게 말한다. “이러고 있지 않겠다!” ‘팔도강산을 좀먹는 도적패’, ‘나라를 넘기려는 음모’에 대항하는 영웅 드라마가 이유를 찾는 순간이다. 영웅을 바라기에는 벅찬 2009년 대한민국에, 황인뢰판 일지매가 찾아왔다. <10 아시아>(www.10asia.co.kr)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최지은 기자가 <돌아온 일지매>(문화방송)와 드라마 고수 황인뢰 감독에 집중했다.
황인뢰와 고우영이 환상적으로 손잡은 <돌아온 일지매>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난 한국적 아름다움 제대로 보여줘
백은하(이하 백) <돌아온 일지매>는 황인뢰 감독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다렸던 드라마다. 지난해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기억에서 채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했다. 게다가 신인 정일우를 톱으로 캐스팅해서 기대와 동시에 걱정도 컸다.
최지은(이하 최) 1회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 ‘왜 이래, 이거 이상해’라는 평이었다. 기존 사극과 달리 실험적인 부분이 많았다. 사극이면 흔히 누가 태어나는 옛날 장면이나 최후의 순간, 아니면 결정적인 전투 장면에서 시작한다. <…일지매>는 놀랍게도 2009년 서울이라는 조선시대의 ‘미래’에서 시작했다.
책녀, 상투적 만화 원작 드라마와 구별되네 백 <…일지매>엔 당황스런 요소가 많다. 원작이 만화라는 걸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원작 만화를 텍스트로 삼지만, <…일지매>는 만화를 형식적으로 들고 온 측면이 크다. 지금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극중 ‘책녀’의 내레이션만 봐도 그렇다. 사뭇 진지한 톤으로 내비게이션, 하이킥 등 지금 우리가 쓰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재밌고 코믹하다. 최 원작 만화에도 워낙 내레이션이 방대하고 문장마다 의미가 담겨 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양한 장치들 상당수가 원작 만화에서 나온 게 많다. 만화 <일지매>는 한장 한장 쉽게 넘어가는 작품이 아니다. 백 극중 내레이션의 비중이 큰 게 기존 정통 사극이나 세련된 퓨전사극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어딘가 괴상하게 보일 수 있다. 드라마 전개에서도 회상, 현재, 미래가 섞여 있으니까. ‘이제 배선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포도청 구자명의 이야기로 가볼까?’라는 식으로 한명 한명에 대한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데려다 놓는다.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니라, 세련된 방식으로 각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내는 거다. 최 만화라는 장르가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 만화 단물만 쏙~ 빼먹고 싹~ 버리는구나 싶어 아쉬울 때가 많았다. 만화라서 가능했던 엄청난 상상력이 있는데, 드라마에선 줄거리와 캐릭터만 평면적으로 가져왔으니 말이다. <…일지매>는 원작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있다는 게 만화 팬으로서 반갑다. 백 난세에 나타나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도 반갑다. 어떤 문화나 어떤 나라 상관없이 시대마다 슈퍼히어로에 대한 갈망이 있기 마련이다. 첫 회에서 일지매는 언뜻 보면, 하늘도 날고 손에서 갑자기 거미줄도 튀어나오는 스파이더맨 식 영웅처럼 보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내가 왜?’를 묻는다. 나도 몰랐는데, 나 하늘을 날 수 있잖아? 하는 식의 슈퍼히어로는 아닌 거다. 최 일지매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은 인물이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첫사랑이었던 달이도 잃을 것 같고. 하지만 상실에서 오는 것들에서 힘을 찾는다. 자기 앞의 힘든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다가 힘을 갖게 되는 거다. 백 난국을 돌파해 가는 일지매의 모습에서 우리가 찾고 있는 21세기형 슈퍼히어로형 모습이 보인다. 일지매는 모든 걸 단번에 해결해주고 짠 사라지고는, 미녀와 편안한 여생을 보낼 것 같진 않은 거다.(웃음) 무술을 배우다가 ‘꽃동작’을 버리라는 말이 나오는데, 꽃동작을 다 제거한 후 ‘정수’를 얻게 될 거라고 본다. 영웅이 무엇을 위해서 자기의 힘을 쓸 것인가 지켜보고 싶다. 최 일지매는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미성숙한 인물이다. 정일우도 아직 완성된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일지매와 어울린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모르고 절반은 백지상태의 인물이다. 정일우란 배우도 그런 상태에서 시작한 듯하고 황 감독도 그런 부분에 흥미를 느꼈다고 들었다. 백 <거침없이 하이킥> 윤호가 어떻게 정극을 할까 몹시 궁금했다. 아직 사극 대사 처리가 완전히 매끄럽지는 않지만 속에 있는 감성적인 지점을 보여주는 부분에서는 기대 이상이었다. 일지매를 중심으로 한 캐릭터들도 비중이 크다. 김민종은 사랑하는 여인을 앞에 놓고 안타까워하며 다가가지 못하는 눈빛을 어찌 그리 잘 표현하는지. 순정파 그 자체다. 최 김민종의 구자명이란 캐릭터는 톱이 아니다. 일지매의 뒤를 따라다니고, 어찌 보면 일지매의 엄마인 백매에게 연정을 품는, 뭐라고도 말하기 힘든 캐릭터다. 하지만 일지매를 지켜주고 뒤에서 받쳐주는 역을 택했다는 게 그다운 선택 같다. 백 구자명은 이 시대 경찰이라는 자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고민들을 끊임없이 한다. 조선시대 수사관으로 계속해서 고민하고 변화해가는 매력적인 남자다. 이건 드라마 제작진들이 모든 캐릭터들을 만들어내는 태도인 것 같다. 각각의 인물들이 누구를 위해서 종사하기보다 본인을 위해서 살아간다. 백매 역의 정혜영은 너무 예쁘다. 최 그럼 안 되는 거 아닌가, 아이 둘 낳고. 보고 있으면 황홀경에 들게 한다.(웃음) 정혜영, 그렇게 예뻐도 되는 건가
백 일지매의 엄마라는 캐릭터는 그간 정혜영이 만들어왔던 사적 이미지와 만나면서 굉장한 시너지를 낳고 있다. 강남길이 연기하는 배선달도 일지매의 행적을 기록하는 일지매 마니아로, 요즘으로 치면 딱 오타쿠다.(웃음)
최 과거 급제한 선비인데 차돌이란 인물 데리고 다니면서 일지매 따라 전국 일주한다.
백 오타쿠임에도 사회에 섞여서 여러 가지 이야기 해주고 싶어 하는 귀여운 지식인이다. 조연들의 배치가 경제적으로 꼼꼼하게 되어 있다.
최 청나라 첩자인 왕횡보 역의 박철민만 해도 옆걸음으로 걷는데 그걸 무용수한테 배운 거라고 한다. 대상이나 표정 하나하나에서 고민의 결과가 느껴진다.
백 <…일지매>를 말하면서 황인뢰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도시라는 삶의 형태, 공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고독과 그들 사이의 관계에 그 누구보다 집중했던 감독이다. 그가 본격 사극을 한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됐었다. 하지만 현재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구나 싶다.
최 수출용 드라마나 안전빵 드라마를 만드는 환경에서 <…일지매>는 위험부담을 갖고 시작한 드라마다. 보통 황 감독 급 되면 사업을 한다든가 하잖아. 황 감독은 자기 스타일을 연마해가는 과정이 보인다.
백 <…일지매> 첫 장면은 빡빡한 도시에서 건물들을 걷어내고, 몇 백 년 전 한양의 모습으로 들어가는 거였다. 어떤 사극들은 마치 한복 코스튬을 입은 듯 현재와 단절된 극을 보여준다면, <…일지매>는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지점을 탁탁 짚어준다. 내레이션이 ‘청나라 첩자 왕횡보가 떨어진 곳이 송파구 석촌동인데 간첩용 내비게이션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라고 말해주니까. 옛사람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대목에선 묘한 다큐멘터리적인 느낌도 있다.
최 황 감독의 영상미를 놓칠 수 없다. 지루하지 않은 서정성을 보여준다. 기술적으로 그림을 잘 찍는 게 아니라 이 테크닉이 전체에 어떻게 조화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백 황인뢰 미장센의 기본은 액션, 멜로 등 다른 감정 신들이 잘 연결된다는 거다. 다른 드라마들 보면, 각 장면마다 펑펑 튈 때가 있거든.(웃음) 벼락치기 감독이 아니기 때문에, 각 장면이 연출을 통해 튼실한 근육으로 되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다.
최 <…일지매>는 한국의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도 보여준다.
백 과도한 오리엔탈리즘으로 꾸미고 과장하고 색칠하지 않는 거다. 각 구성요소가 가진 디테일들을 놓치지 않고 재배치하는 방식으로 전체 미장센을 꽉 채워 보인다. 그게 황인뢰 감독의 큰 특질이다. 아름다운 액션신이 유독 많다. 특히 검을 연마하던 일지매가 날이 어두워지면 실루엣이 보이는데, 단순히 잘 싸우는 액션신의 쾌감이 아니라 하나의 아름다운 동작이다.
최 황 감독이 처음 사극을 할까 고민했을 땐 갓 쓴 옛날 이야기는 못한다 생각했다더라. 그러다가 원작을 읽고 나서 이걸 꼭 만들어야겠다 싶었다고. 1970년대 연재했던 만화 <일지매>엔 사회비판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이야기가 지금 2009년 드라마 안에서 소화된다는 건 그 안에 보편적인 통찰력이 있기 때문이다.
원작에 대한 경외가 느껴지는 황인뢰식 연출
백 두 작가가 지금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다. 원작을 베껴 오는 게 아니라, 원작에 대한 경외가 느껴진다. 일지매 눈앞에서 탐관오리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뇌물을 받는 등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지금 상황과 크게 다르진 않다. 하지만 지금은 의적이 없다는 게 큰 차이지.(웃음)
최 황인뢰가 드라마 <궁>으로 새로운 세대와 호흡하는 법을 배웠고, <궁 S>라는 큰 실패를 거치면서 결국은 도달한 지점이 이번 작품이 아닌가 싶다.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난 한국적 아름다움 제대로 보여줘
너 어제 그거 봤어?
책녀, 상투적 만화 원작 드라마와 구별되네 백 <…일지매>엔 당황스런 요소가 많다. 원작이 만화라는 걸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원작 만화를 텍스트로 삼지만, <…일지매>는 만화를 형식적으로 들고 온 측면이 크다. 지금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극중 ‘책녀’의 내레이션만 봐도 그렇다. 사뭇 진지한 톤으로 내비게이션, 하이킥 등 지금 우리가 쓰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재밌고 코믹하다. 최 원작 만화에도 워낙 내레이션이 방대하고 문장마다 의미가 담겨 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양한 장치들 상당수가 원작 만화에서 나온 게 많다. 만화 <일지매>는 한장 한장 쉽게 넘어가는 작품이 아니다. 백 극중 내레이션의 비중이 큰 게 기존 정통 사극이나 세련된 퓨전사극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어딘가 괴상하게 보일 수 있다. 드라마 전개에서도 회상, 현재, 미래가 섞여 있으니까. ‘이제 배선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포도청 구자명의 이야기로 가볼까?’라는 식으로 한명 한명에 대한 이야기로 시청자들을 데려다 놓는다.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니라, 세련된 방식으로 각 인물을 주인공으로 만들어내는 거다. 최 만화라는 장르가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 만화 단물만 쏙~ 빼먹고 싹~ 버리는구나 싶어 아쉬울 때가 많았다. 만화라서 가능했던 엄청난 상상력이 있는데, 드라마에선 줄거리와 캐릭터만 평면적으로 가져왔으니 말이다. <…일지매>는 원작에 대한 예우를 다하고 있다는 게 만화 팬으로서 반갑다. 백 난세에 나타나는 영웅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도 반갑다. 어떤 문화나 어떤 나라 상관없이 시대마다 슈퍼히어로에 대한 갈망이 있기 마련이다. 첫 회에서 일지매는 언뜻 보면, 하늘도 날고 손에서 갑자기 거미줄도 튀어나오는 스파이더맨 식 영웅처럼 보였다. 하지만 끊임없이 자기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내가 왜?’를 묻는다. 나도 몰랐는데, 나 하늘을 날 수 있잖아? 하는 식의 슈퍼히어로는 아닌 거다. 최 일지매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은 인물이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첫사랑이었던 달이도 잃을 것 같고. 하지만 상실에서 오는 것들에서 힘을 찾는다. 자기 앞의 힘든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다가 힘을 갖게 되는 거다. 백 난국을 돌파해 가는 일지매의 모습에서 우리가 찾고 있는 21세기형 슈퍼히어로형 모습이 보인다. 일지매는 모든 걸 단번에 해결해주고 짠 사라지고는, 미녀와 편안한 여생을 보낼 것 같진 않은 거다.(웃음) 무술을 배우다가 ‘꽃동작’을 버리라는 말이 나오는데, 꽃동작을 다 제거한 후 ‘정수’를 얻게 될 거라고 본다. 영웅이 무엇을 위해서 자기의 힘을 쓸 것인가 지켜보고 싶다. 최 일지매는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미성숙한 인물이다. 정일우도 아직 완성된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일지매와 어울린다.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모르고 절반은 백지상태의 인물이다. 정일우란 배우도 그런 상태에서 시작한 듯하고 황 감독도 그런 부분에 흥미를 느꼈다고 들었다. 백 <거침없이 하이킥> 윤호가 어떻게 정극을 할까 몹시 궁금했다. 아직 사극 대사 처리가 완전히 매끄럽지는 않지만 속에 있는 감성적인 지점을 보여주는 부분에서는 기대 이상이었다. 일지매를 중심으로 한 캐릭터들도 비중이 크다. 김민종은 사랑하는 여인을 앞에 놓고 안타까워하며 다가가지 못하는 눈빛을 어찌 그리 잘 표현하는지. 순정파 그 자체다. 최 김민종의 구자명이란 캐릭터는 톱이 아니다. 일지매의 뒤를 따라다니고, 어찌 보면 일지매의 엄마인 백매에게 연정을 품는, 뭐라고도 말하기 힘든 캐릭터다. 하지만 일지매를 지켜주고 뒤에서 받쳐주는 역을 택했다는 게 그다운 선택 같다. 백 구자명은 이 시대 경찰이라는 자가 과연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고민들을 끊임없이 한다. 조선시대 수사관으로 계속해서 고민하고 변화해가는 매력적인 남자다. 이건 드라마 제작진들이 모든 캐릭터들을 만들어내는 태도인 것 같다. 각각의 인물들이 누구를 위해서 종사하기보다 본인을 위해서 살아간다. 백매 역의 정혜영은 너무 예쁘다. 최 그럼 안 되는 거 아닌가, 아이 둘 낳고. 보고 있으면 황홀경에 들게 한다.(웃음) 정혜영, 그렇게 예뻐도 되는 건가
고우영의 원작에 대한 경외가 느껴지는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 문화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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