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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김연아

등록 2009-01-14 21:43수정 2009-01-17 11:18

경기를 보며 열광만 하지 말고 당장 가까운 스케이트장을 찾아 김연아 선수 흉내를 내보는 건 어떨까요?
경기를 보며 열광만 하지 말고 당장 가까운 스케이트장을 찾아 김연아 선수 흉내를 내보는 건 어떨까요?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보는 것과 하는 것은 다릅니다. 조기 축구회에 한번이라도 나가 본 사람은 압니다. 전·후반 90분을 뛰어 다닌다는 게 얼마나 초인적인 능력을 필요로 하는지를요. 일반인들이 뛰는 조기 축구회 경기는 전·후반 30~40분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발재간이나 슛을 쏘는 건 고사하고 뛰어다니는 것조차 힘듭니다.

오늘은 내가 김연아
오늘은 내가 김연아
복싱 신인왕전을 보며 “저게 무슨 프로 경기냐”고 비웃는 친구도 봤습니다. 막싸움에 가깝다는 거지요. 권투를 직접 해본 친구 말에 따르면, 양팔의 가드를 올린 자세를 3분 1라운드 동안 유지하는 것만도 힘들다더군요. 1라운드가 지나면 어깨근육이 마비될 정도로 힘듭니다. ‘가드를 올려야 한다’는 뇌의 명령과 달리 손은 자꾸만 내려갑니다. “가드 올려”란 말이 인터넷에서 유행이지만, 실제로 가드 올리는 건 힘듭니다. 직접 경험해 보면, 그 다음부턴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그 경기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가끔은 보는 데 그치지 말고 해봐야 합니다.

스포츠를 보며 즐기는 자와 하며 즐기는 자 사이에 갈등을 조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무 자르듯 갈리지도 않습니다. 보다 보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하게 됩니다. 하게 되면 더 많이 보게 되지요. 그러므로 〈esc〉는 하며 즐기는 게 우월하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며 즐기는 ‘생활 스포츠’에는 다른 종류의 재미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이기는 재미보다 노는 재미입니다.

그래서 제안합니다. 경기를 보며 열광만 하지 말고 당장 가까운 스케이트장을 찾아 김연아 선수 흉내를 내보는 건 어떨까요? 우연히 성공해도 즐겁고, 실패해서 넘어져도 재밌지 않을까요? 놀이와 운동이 섞인 스케이트는 가족이 즐기기에 그만입니다. 스케이트는 시내 곳곳에 탈 곳이 많아 스키보다 대중적입니다. 스케이트에 얽힌 추억부터 전국의 스케이트장 정보와 타는 법까지 스케이트의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

스케이트는 시내 곳곳에 탈 곳이 많아 스키보다 대중적입니다.
스케이트는 시내 곳곳에 탈 곳이 많아 스키보다 대중적입니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촬영협조 그랜드하얏트서울 아이스링크·맘모스스케이트장



몸은 머리보다 오래 기억한다. 어린 시절은 ‘유년기’라는 개념어로 기억되지 않는다. 다섯 살 때 담을 타다 넘어져 생긴 생채기, 일곱 살 때 어머니가 직접 구워준 빵 냄새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어린 시절은(또는 인생의 어떤 순간은) 스케이트 날을 지치기 위해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대퇴이두근(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을 수천 번 수축·이완했던 기억이다. 인생의 한 시절을 스케이트로 떠올리는 두 남자의 추억담을 싣는다. 한 남자에게 스케이트는 강원도에서 보낸 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다른 한 명에게는 돌아갈 수 없는 이북의 고향을 떠올리게 했다. 스케이트는 그들의 몸에 시간을 새겼다.

중동부 지역의 육군 병사들이 스케이트를 즐기고 있다. 육군 제공
중동부 지역의 육군 병사들이 스케이트를 즐기고 있다. 육군 제공

완전군장 얼음판 삼십육계 줄행랑

몽둥이찜질 도망다니며 맹훈련했던 군대 스케이트 선수의 추억

나도 한때 스케이트 선수였다. 까맣게 잊고 있다가도 겨울올림픽 중계방송을 볼 때면 내가 합숙훈련을 했고 릴레이 경기에 임했던 스케이트 선수였음을 떠올린다. 운동이라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내가 선수였다니 …. 나를 아는 누구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선수였다는 건 내 성씨가 김씨라는 사실처럼 되돌릴 수 없는 진실이다.

형 스케이트 빌려 신었던 경험으로 대표선수 발탁

1968년의 겨울은 유달리 추웠다. 갓 훈련소에 입대한 신병이라 더 그랬을까? 6주간의 기본훈련 뒤 추가로 4주간의 통신교육을 받은 뒤 강원도 홍천의 11사단 포병대대로 배속받았다. 칼바람을 맞으며 굳은 표정으로 동기 몇 명과 포대 정문을 들어선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침상에 나란히 앉아 겁먹은 표정으로 대기하고 있을 때 주번 완장을 찬 소위가 앞에 섰다. 그는 쉬어 자세로 편히 앉으라고 하더니 묻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스케이트 타 봤던 사람, 손들어 봐!” 모두 잠잠했다. 소위는 서류를 뒤적였다.

“김삼진이 누구야?” “옛! 이병 김삼진, 접니다.” 그는 시원찮은 체격의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집이 서울이야?” “넷, 서울입니다!” “대학을 다녔구먼.” “넷! 다녔습니다.” “근데 스케이트는 안 탔어?” “타긴 … 조금 탔습니다!” 소위의 갑작스러운 질문이 뭔가 ‘나쁘지는 않은 일’이라고 직감했다.

초등학교 때 외가가 있던 화양리엔 그때만 해도 논이 있었고 논바닥은 겨울철엔 동네 아이들에겐 좋은 놀이터였다. 논에서 썰매도 지치고 스케이트도 타곤 했다. 그 논바닥에서 중고 스케이트 하나를 가지고 삼형제가 돌아가면서 타던 걸 떠올리며 한 대답이지만, 사실 그 정도를 가지고 ‘탔다’고 하기엔 좀 민망했다. 삼형제가 같이 탔으니 어디 막내인 내게 차례가 오겠는가. 형 둘이 번갈아 타다 지쳐서야 내게 스케이트를 벗어줬고 그땐 이미 날이 어둑해진 뒤였다. 조금 지치다 보면 형들이 “집에 가자”고 닦달했다.

소위는 눈을 번쩍이며 다시 물었다. 당시 그에게는 동계 사단 대항 스케이트 대회에 출전할 선수를 차출할 중차대한 임무가 맡겨져 있었다. “얼마나 탔어?” 이미 거짓말을 한 몸. 더한 거짓말이라고 못할까? “삼사 년은 탄 것 같습니다!” “최근에도 탔어?”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 그를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나중에 어떻게 되더라도 집에 갈 수만 있다면 무슨 거짓말이라고 못하랴’ 하는 생각뿐이었다.

“넷! 탔습니다.” 나는 깡으로, 악으로 소릴 질렀다. 그는 마지막으로 확인하듯 질문을 날렸다. “그럼 스케이트도 있겠네?” “넷! 있습니다.”(있긴 뭐가 있어?) 소위는 당장에 행정실로 데리고 가서 사흘짜리 휴가증을 끊어줬다. 예기치 않던 아들의 휴가를 집에서 대환영해 주었음은 물론이고, 나는 내리 이틀을 친구들을 만나 먹고 마셨다. 어머니는 귀대 하루 전날, 나를 데리고 나가 중고 스케이트를 사 주셨다.

귀대 후 나는 바로 선수단에 합류했다. 첫날 소위는 내가 타는 모습, 엎어지고 자빠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러더니 군수과 선임하사를 전담코치로 붙였다. “책임지고 선수로 만들라”는 말과 함께. 특명을 받은 선임하사의 훈련방법은 딴게 없었다. 기본만 가르쳐 주고 나서는 무조건 몽둥이를 들고 뒤를 쫓아다니며 후려 팼다. 한겨울에 그 몽둥이 한 번 제대로 맞으면 며칠은 고생해야 했다.

나는 폼이고 뭐고 따질 틈도 없이 오로지 맞지 않기 위해 무조건 도망가야 했다. 선임하사도 나 때문에 고생을 했다. 안 쫓아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보면 그는 얼음판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며 “계속해! 계속해!”라고 소릴 질러댔다. 보름 이상 얼음판에서 도망 다니다 보니 폼은 개판이지만 제법 속도가 붙었던지 쫓아오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한숨 쉬는 선임하사 앞으로 얼음아 날 살려라

선수단 감독인 소위는 훈련기간 중 선수들을 지켜보며 출전할 종목을 정해줬는데, 처치곤란이던 나는 대회 3일을 앞두고서야 완전군장 단체 경기 선수로 뽑혔다. 빈약한 내가 완전군장이라니! 나는 당연히 꼴찌였고 결국 팀도 꼴찌였다. 종합 성적은 3등에도 들지 못했다. 이듬해 겨울이 돌아왔지만 나는 다시 차출되지 않았다. 그로부터 40년 가까이 지났지만 겨울올림픽이 돌아오면 난 누구라도 붙잡고 꼭 한마디 해야 직성이 풀린다. “나도 군 시절 스케이트 선수였다구!” 그러나 누구도 믿는 기색이 없다.

김삼진/한자지도사·수필가


압록강 빙판의 한중 스케이트전

한반도 가장 추운 동네 중강 출신 탈북자의 그리운 고향 얼음지치기 추억

‘중강’(中江)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압록강의 시발점에서도 1000리요, 신의주에서도 1000리 떨어져 있어 중간에 있다고 붙여진 지명입니다. 이북의 행정구역상으론 자강도 중강군. 지금은 갈 수 없는 고향입니다.

중강은 이북에서, 아니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곳입니다. 겨울 평균 기온이 영하 5도입니다. 대한(음력 12월 중순으로 가장 추운 날로 꼽히는 절기)·소한 등 추울 땐 영하 20~30도까지 떨어집니다. 남쪽의 겨울 추위는 추위도 아닙니다. 물론 지금은 제가 어릴 적보다 조금 따뜻해졌습니다. 지구 온난화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젠 겨울에도 따뜻한 날엔 도로의 눈이 녹는 날도 있다고 합니다. 제가 어릴 적엔 겨울에 눈이 한번 쌓이면 녹는 일이 없었습니다. 추위가 어느 정도였느냐면, 어릴 적 유달리 추웠던 해가 있었습니다. 입김으로 성에가 하얗게 만들어져 바로 떨어졌습니다. 오줌을 싸자마자 기둥처럼 얼어붙기도 했습니다.

학교마다 스케이트부·스키부 있어

중강에서 보낸 어린 시절 스케이트는 겨울에 즐기는 ‘귀한’ 운동이었습니다. 주로 인민학교(초등학교)에서 스케이트를 탔습니다. 북한에서도 스케이트는 함부로 구할 수 있는 물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마다 스키부와 스케이트부가 있었고 저도 학교에서 스케이트를 탔습니다. 인민학교는 8살에 입학해 3년 동안 다니고, 그 뒤엔 6년 동안 고등중학교를 다닙니다. 저는 코를 훌쩍이던 중강인민학교 3학년쯤부터 스케이트를 탔습니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수십 번 반복하다가 한 발 두 발 배웠습니다.

이북에서 1월17일은 큰 경사입니다. 민주청년동맹(현재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창립절입니다. 이날 각 학교에서 겨울철 운동 경기가 많이 열립니다. 중강인민학교 학생들도 이날 단체로 스케이트를 지칩니다. 스케이트장은 바로 옆에 있는 압록강입니다. 겨울이 되면 압록강이 꽁꽁 얼어붙습니다. 그 위로 차가 다닐 정도입니다. 제가 인민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엔 중국이 ‘사회주의 우방’이었습니다. 중강인민학교 학생들이 소리를 지르며 스케이트를 타고 있노라면 건너편에서 중국 사람들이 같이 와서 스케이트와 썰매를 함께 탔습니다. 말은 안 통했지만 재미있었습니다. 스케이트를 타는 애들 옆으로는 트럭이나 차가 왕래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는 압록강에서 함부로 스케이트를 탈 수 없었습니다. 중국이 80년대부터 개혁개방을 시작하면서 북한 당국이 압록강에 일반 주민들이 나가는 것을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중강은 또한 눈이 많이 내리기로도 유명합니다. 스키도 아주 대중적이었습니다. 물론 모두 뒷동산에서 나무를 잘라 만든 스키였지만 말입니다. 사실 중강에서는 스케이트보다 썰매가 훨씬 대중적이었습니다. ‘외발이’라는 게 인기였습니다. 나무판자에 스케이트날이나 철근을 잘라 붙여놓고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얼음을 지치는 겁니다. 남한에는 ‘외발이’가 없습니까? 외발이나 스케이트 모두 2000년 탈북한 뒤로 다시 찾아갈 수 없는 고향을 떠올리게 합니다. 2005년 남한에 오기 전까지 중국·캄보디아·타이를 떠돌 때도 잊히지 않던 고향 중강 말입니다.

박건하/북한민주화위원회 총무

정리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전국 아이스링크 정보

전국의 스케이트장 정보를 간추렸다. 스케이트장마다 평일과 주말 개장시간이 다르고, 장갑·안전모가 있어야 입장이 가능한지 여부, 표를 끊은 뒤 이용 가능한 시간도 다르므로 방문 전에 문의 전화를 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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