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조진국의 24년 지기 스타일리스트 김성일 인터뷰, 2009년엔 둘 다 연애 좀 하자
[매거진 esc]
작가 조진국의 24년 지기 스타일리스트 김성일 인터뷰, 2009년엔 둘 다 연애 좀 하자
겨울이 아니고 봄이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너무 겨울다운 게 문제다. 날씨도, 경제도, 사람들의 표정도. 이렇게 차가운 날엔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좋다. 재미있고 가볍고 독특한 사람일수록 좋다.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사진 오른쪽), 어김없이 기분 좋게 손을 흔들며 카페 안을 들어선다. 앉자마자 커피를 시키고 담배를 문다. 나는 노트를 펴고 녹차를 시킨다. 그러고 보면 우린 크게 공통점이 없다. 커피와 녹차, 서울말과 부산말, 청담동과 홍대 앞. 그래도 중학교 동창으로 만나 가끔 연락하며 잘 지내는 걸 보면 신기하다.
진국 : 일만 하지 말고 얼굴도 자주 보자. 넌 정말 일에 중독된 사람 같다.
성일 : 일이다 생각하면 힘들어서 못 하지. 시간도 일정하지 않아서 동창들 만나기 힘드니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동료이자 내 친구가 됐어.
진국 : 어떤 일을 할 때 그렇게 행복하냐?
듀란듀란, 프린스 백판 구하러 같이 다니던 추억 성일 : 특히 내가 정말 해보고 싶었던 콘셉트의 촬영이 잡히면 흥분돼. 온 힘을 다 쏟으니까 결과가 좋게 나와서 뿌듯하고. 너 말대로 중독되는 것 같아. 너는 드라마, 영화, 책 다 하잖아. 어떤 게 가장 좋아? 진국 : 내가 작가구나 하고 느끼는 건 책을 쓸 때지. 온전히 나 혼자만의 일이니까. 가장 재미있는 일은 드라마를 할 때, 영화 작업은 완성도를 배우게 되더군. 성일 : 이번에 나온 네 책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읽었어. 내가 모르는 네 모습이 참 많이 보이더라. 제목과는 반대로 지금 사랑하지 않지만 사랑하고 싶어졌어. 진국 : 20년 후에도 지금처럼 난 작가로, 넌 스타일리스트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성일 : 멋진 노년의 스타일리스트도 나쁘지 않지만 좀 힘들겠지. 그래서 지금 홍익대 대학원 문화예술 엠비에이(MBA) 과정에 다니고 있어. 오랜만에 두꺼운 책 들고 학교에 가는 기분도 색다르더라. 20년 후쯤에는 교외에 이층집을 짓고 살면서 강의도 나가고 책도 써보고 싶다. 진국 : 음, 네가 교수가 된다면 학생들을 무지 편애할 텐데?(웃음) 성일 : 사람들 많이 상대하면서 좀 고치긴 했는데 그래도 별로인 사람과 같이 있기 싫은 마음은 표시가 나나봐. 나 지금도 표시 나냐?(웃음) 진국 : 우리 중 3 때 같은 반이었지. 어떻게 친해졌더라? 1학기 때까지는 서로 한마디도 안 하고 지냈는데 말이야. 성일 : 2학기 때 어느 날 네가 나한테 와서 ‘워즈’(Words)를 부른 에프 아르 데이비드를 아냐고 물었지. 내가 설명해주면서 책상에 있던 <월간 팝송>을 빌려주었는데, 너 감동받은 눈치였어.
진국 : 빌려 달라는 말도 안 했는데, 선뜻 네가 그 잡지를 주니까 당연 고마웠지. 이 녀석하고 친구 먹어도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성일 : 그때부터 유리드믹스, 듀란듀란, 프린스 백판 구하러 같이 다녔던 거 기억나? 지금도 난 멜로디가 쉬운 차트 팝이나 일본 음악을 좋아하지만, 넌 안 알려진 음악 쪽을 파는 것 같아.
진국 : 숨겨진 좋은 노래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소울메이트> 쓸 때도 일부러 누벨 바그나 라세 린드의 노래들을 깔았던 거지. 그런데 가만 보면 넌 참 유쾌하고 재미있게 사는 거 같다. 행복하냐?
성일 : 자꾸 고민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그러면 뭐해. 그냥 오늘 하고 싶은 거 있으면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만나고. 단순하게 살면 행복해지는 거라고 생각해.
진국 : 그러다가도 어쩔 수 없는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잖아?
성일 : 슬럼프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슬럼프가 시작되는 거야. 지금은 잠깐 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돼. 난 긍정의 힘을 믿어.
진국 : 난 <소울메이트> 하면서 시청률이 안 나와서 힘들었어. 그때 어떤 다른 드라마를 봤는데, 뭘 해도 뜻대로 안 될 때는 그냥 하느님이 주신 긴 휴식이라고 생각하면 좋아진다는 대사를 들었지. 그 말이 참 많은 힘이 됐다. 오늘 인터뷰 끝나고 뭐하냐?
성일 : 포토그래퍼, 디렉터 만나서 남성복 광고 콘셉트 회의하고, 의상 세팅하고, 협찬 받으러 다녀야지. 해외 촬영이라도 잡히면 한 달에도 몇 번씩 나가기도 해. 남들은 부럽다고 하는데, 막상 일하게 되면 개인적인 시간은 갖기 힘들어.
진국 : 스타일리스트는 어떻게 보면 육체를 다루는 직업이잖아. 넌 사랑할 때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의 비중을 어떻게 생각해?
성일 : 50 대 50. 육체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에 비해 절대 소홀히 되면 안 된다고 봐.
진국 : 정말 사랑한다면 눈동자를 보는 만큼 가슴에도 눈이 가고 머릿결도 만지고 싶어야 한다?
성일 : 맞아, 아무리 괜찮은 여자가 눈앞에 있어도 섹스어필이 되지 않는다면 그건 존경이지 사랑은 아니거든.
진국 : 휴, 2008년도 며칠 안 남았다. 올해 일어난 가장 기쁜 일과 슬픈 일은 뭐였어?
성일 : 내가 흠모하는 <러브 레터>의 주인공 나카야마 미호를 직접 만나 영화 스타일링을 맡게 된 것과 세계적인 디자이너 폴 스미스를 인터뷰하게 돼서 너무 기뻤어. 슬픈 일? 시상식 때 배우 이하나씨 스타일링을 해줬는데, 워스트로 뽑혔어.ㅠㅠ 드레스는 어울렸는데, 헤어랑 메이크업이 내가 스타일링해준 대로 안 나와서 안타까웠어.
나카야마 미호와의 작업은 2008년 최고의 성과
진국 : 난 진행 중이던 영화 두 편이 중간에 중단됐다. 내가 올해 뭘 했나 싶어서 허탈했지. 다행히 두 번째 책이 연말에 출간돼서 위안이 되고 있다.
성일 : 잘됐으면 좋겠다. 일도, 연애도 내년엔 더 대박 나야지 우리 둘 다.
우리는 그렇게 또 웃는다. 사람들은 성일을 그저 독특하고 재밌는 사람으로 생각하겠지. 하지만 난 그가 가볍기 위해서 무거운 시간을 얼마나 아프게 통과해 왔는지, 웃기기 위해서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를 안다. 내년이면 다가올 우리들의 40대를 서로 응원하며 또다른 시간을 지나도록 하자. 힘내라, 내년에는 더 멋지고 실력 있는 스타일리스트로 우뚝 서 다오!
정리 조진국/<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작가,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듀란듀란, 프린스 백판 구하러 같이 다니던 추억 성일 : 특히 내가 정말 해보고 싶었던 콘셉트의 촬영이 잡히면 흥분돼. 온 힘을 다 쏟으니까 결과가 좋게 나와서 뿌듯하고. 너 말대로 중독되는 것 같아. 너는 드라마, 영화, 책 다 하잖아. 어떤 게 가장 좋아? 진국 : 내가 작가구나 하고 느끼는 건 책을 쓸 때지. 온전히 나 혼자만의 일이니까. 가장 재미있는 일은 드라마를 할 때, 영화 작업은 완성도를 배우게 되더군. 성일 : 이번에 나온 네 책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읽었어. 내가 모르는 네 모습이 참 많이 보이더라. 제목과는 반대로 지금 사랑하지 않지만 사랑하고 싶어졌어. 진국 : 20년 후에도 지금처럼 난 작가로, 넌 스타일리스트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성일 : 멋진 노년의 스타일리스트도 나쁘지 않지만 좀 힘들겠지. 그래서 지금 홍익대 대학원 문화예술 엠비에이(MBA) 과정에 다니고 있어. 오랜만에 두꺼운 책 들고 학교에 가는 기분도 색다르더라. 20년 후쯤에는 교외에 이층집을 짓고 살면서 강의도 나가고 책도 써보고 싶다. 진국 : 음, 네가 교수가 된다면 학생들을 무지 편애할 텐데?(웃음) 성일 : 사람들 많이 상대하면서 좀 고치긴 했는데 그래도 별로인 사람과 같이 있기 싫은 마음은 표시가 나나봐. 나 지금도 표시 나냐?(웃음) 진국 : 우리 중 3 때 같은 반이었지. 어떻게 친해졌더라? 1학기 때까지는 서로 한마디도 안 하고 지냈는데 말이야. 성일 : 2학기 때 어느 날 네가 나한테 와서 ‘워즈’(Words)를 부른 에프 아르 데이비드를 아냐고 물었지. 내가 설명해주면서 책상에 있던 <월간 팝송>을 빌려주었는데, 너 감동받은 눈치였어.
작가 조진국의 24년 지기 스타일리스트 김성일 인터뷰, 2009년엔 둘 다 연애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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