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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미’ 가방 들어보실래요?

등록 2008-10-29 17:19수정 2008-10-29 17:29

헌 소파 가죽을 재활용한 ‘에코파티 메아리’의 지갑.
헌 소파 가죽을 재활용한 ‘에코파티 메아리’의 지갑.
[매거진 esc]
착한 소비에서 세련된 유행으로 확산되는 재활용 디자인,
뉴욕현대미술관에서도 러브콜

거리는 오늘도 수없이 많은 현수막들로 넘쳐난다. 쓰임이 다한 뒤 썰물처럼 빠져나간 현수막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폐기처분 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까. 대학원생 남정희(29)씨는 최근 파란 현수막을 재활용한 가방을 선물로 받았다. 그는 “처음엔 디자인이 약간 허름해 보여 쓰던 걸 받았나 싶었지만, 글자가 박힌 천을 그대로 잘라 만들었다는 점에서 묘한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최근 재활용 디자인은 사용자와 디자이너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다. 낡은 것에서 새것을 이끌어내고, 새 사용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색다른 의미가 발생한다. 특히 가방·노트·가구와 같은 일상용품은 접근이 쉬워 소비자들의 체감온도가 높다.

딱딱한 캐치프레이즈를 넘어 개성의 반영으로


(위) 현수막으로 만든 가방은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다.<br>(아래) 쌀포대 자루로 만들어진 ‘쌈지’의 가방.
(위) 현수막으로 만든 가방은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다.
(아래) 쌀포대 자루로 만들어진 ‘쌈지’의 가방.
재활용 디자인은 다른 제품에 비해 저렴한 가격과 환경 친화적인 특성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몇해 전부터 ‘그린 디자인’, ‘환경 디자인’이 강조되었고 패션·공간·일상용품의 영역에서 재활용 소재나 공정을 활용했다는 ‘녹색 라벨’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배경 속에 재활용 디자인은 이제 딱딱한 캐치프레이즈를 넘어 천차만별의 개성과 욕구를 반영한다.

젊은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문구회사 ‘mmmg’는 디자인 과정에서 생긴 작은 질문을 통해 재활용의 강점을 찾았다. 2007년 달력을 꼬깃꼬깃 접으면 정사각형 편지봉투가 되고 불량 인쇄된 노트에 새 그래픽을 입히면 ‘신상’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재고 상품을 버리지 않고 어떻게 다시 쓸 수 있는지 고민한 결과다. 이렇게 시작한 ‘해피 리사이클링’ 라인은 가방의 경우 4천원 안팎이라 특히 반응이 좋다. ‘mmmg’의 김수경 기획자는 “철 지난 달력을 랜덤으로 잘라 디자인하기 때문에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첩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재활용 디자인은 강압적인 슬로건이 아니라 디자인을 대하는 하나의 태도다. 프랑스 그룹 ‘5.5 디자이너스’는 망가진 의자나 서랍장 등을 쓸 만한 것으로 재활용하는 ‘소생 프로젝트’를 진행해 디자인의 치유 효과를 말한다. 빳빳한 트럭 포장천을 활용해 가방을 생산한 스위스의 ‘프라이탁’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미지로 자리 잡았고 미국의 ‘에코이스트’는 잡지로 만든 핸드백이나 캔디 봉지로 엮어낸 액세서리 등 놀이에 가까운 디자인 작업을 내놓고 있다. 마크 제이컵스의 딥 다이드 토트백이나 ‘녹색은 나의 믿음’이라고 쓰인 ‘베네통’ 에코백은 실용적이면서도 트렌디한 ‘완소제품’으로 각광받는다.

2006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재활용 디자인 브랜드를 시작한 ‘에코파티 메아리’(www.mearry.com)의 경우는 어떨까? 이들의 고군분투를 들여다보면 디자인과 재활용의 랑데부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쌈지’, ‘아름다운 재단’과 의기투합한 ‘에코파티 메아리’의 작업공방에는 재활용의 변신 전과 변신 후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한쪽에는 기증받은 물품이 상자에 분류되어 있고 그 옆에선 직원들이 물품에 묻은 때를 손질한다. 재단사는 소파천을 새롭게 탄생할 가방 크기에 맞게 가위질한다. ‘에코파티 메아리’는 “수거, 분류, 디자인 과정에서 자활공동체나 여러 작가들과의 협업”을 강조한다. “재활용에 대한 인식 변화에 일조하는 사회적 디자인을 꿈꾸는” 그들은 재활용을 위해 사회적 관계망을 이용하고 또 만들어낸다.


(위) 대기업 ‘이케아’ 가구를 재활용한 ‘해킹이케아’ 프로젝트. <br>(아래) 디자인문구회사 ‘mmmg’의 ‘해피 리사이클링’ 가방.
(위) 대기업 ‘이케아’ 가구를 재활용한 ‘해킹이케아’ 프로젝트.
(아래) 디자인문구회사 ‘mmmg’의 ‘해피 리사이클링’ 가방.
세상에서 하나뿐인 수첩

‘에코파티 메아리’에게는 기증받은 헌 제품들이 귀한 자산이다. ‘메아리’의 진재선 기획자는 “마니아들은 꽤 있지만 이들이 재활용이라는 명분 때문에 제품을 구매하리라 생각하진 않는다”며 “버려진 천을 활용해 특이한 디자인의 옷도 만들어봤지만 수작업 때문에 고가의 제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시행착오 끝에 의류제품 생산을 보류했지만 반가운 성과도 있다. 최근 뉴욕현대미술관 모마(MOMA)에서 ‘메아리’의 제품을 기념품점에서 팔고 싶다고 제안해온 것이다.

아직 재활용 디자인은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값싼 제품이라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근래에는 재활용을 통한 ‘착한’ 디자인을 꿈꾸는 패션기업도 있을 만큼 소비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재활용(리사이클) 브랜드인 ‘고맙습니다’ 라인을 출시한 ‘쌈지’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헌옷을 엮은 빈티지한 느낌의 의상과 우산, 자투리 가죽을 이은 조각보 모양의 가방 등을 내놓았다. 조각보 가방을 만든 디자이너 서동희씨는 “낡은 가죽 소재를 이렇게 저렇게 배치해 보다 우연히 발견한 형태”라고 했다. 새 가죽과 헌 가죽을 섞어 “낡은 것과 새 느낌의 조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기계 냄새 나는 새 디자인보다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일반미’라는 문구를 살린 쌀포대 자루 가방은 디자인적 재미를 극대화한 사례다.

이렇듯 재활용 디자인은 예측불허, 무한상상의 영역이다. 각종 디자인 작업을 종횡무진하는 ‘가슴시각개발연구소’의 최미경 대표에게 재활용 디자인은 쓰던 것을 다시 쓰는 ‘재사용’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일상용품뿐 아니라 공간의 용도를 변경하는 건물 디자인 등 다양한 재활용을 적용해 온 그는 “사물에도 사람의 인격과 같은 물격이 있고 제품을 쓴 사람의 손때에서 나름의 정서가 살아 숨쉰다”고 주장한다.


(왼쪽) 청바지, 가죽 재킷 등 헌옷을 재활용한 가방들. <br>(오른쪽) 철 지난 달력으로 디자인된 수첩과 편지봉투.
(왼쪽) 청바지, 가죽 재킷 등 헌옷을 재활용한 가방들.
(오른쪽) 철 지난 달력으로 디자인된 수첩과 편지봉투.
21일부터 예술의 전당 전시도

30일 막을 내리는 ‘서울 디자인 올림픽’의 한 섹션 ‘어어어;마을대회’에서도 산업 부산물이나 쓰레기로 새 제품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정도로 근래 재활용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높다. 재활용 디자인 작품을 보고 싶다면 국내외 디자이너들이 모인 전시회가, 직접 익명의 디자이너가 되어보고 싶다면 아파트 분리수거함이나 후미진 골목을 눈여겨보는 것이 좋다. 다음달 21일부터 서울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디자인 메이드 2008’은 ‘세이빙 바이 디자인(Saving by Design)’을 주제로 재활용 디자인의 다양한 사례를 볼 수 있는 기회다. 네덜란드의 프로젝트 ‘해킹 이케아’는 이케아 제품을 다른 용도로 변형해 거대 기업에 저항하고, 스페인 작가 나다도라는 버려진 도자기를 조합해 예술과 상품, 헌것과 새것 사이를 자유자재로 항해한다.

글 현시원 기자 qq@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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