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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호, 나도 비난해 줘요

등록 2008-10-15 17:55수정 2008-10-19 17:26

너 어제 그거 봤어?
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안상태, 박휘순의 일품 연기에 반함
최강 파워 강유미여 속히 돌아오라~

<개그콘서트>(한국방송)는 이제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다. <개콘>은 실력 있는 개그맨, 각종 유행어,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현란한 보물섬이다. 〈매거진 t〉의 백은하 편집장(사진 오른쪽)과 최지은 기자가 <개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현실의 난국은 오리무중이지만, 그들이 팡 터뜨려주는 폭죽 같은 웃음에 위로받는다는 거. 완전 소중한 우리의 개그맨들은 알까?

백은하 <개그콘서트>는 약간의 부침이 있었지만 10년 동안 늘 인기 있었다.

최지은 요새 개그 프로그램이 침체다, 힘이 빠졌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럴수록 <개콘>의 저력을 느낀다. <개콘>의 인기는 뭐니 뭐니 해도 개그맨들의 연기력 덕분이다.

장수 코너인 ‘대화가 필요해’만 봐도 단순한 구도다. 아버지는 무식하고 아들은 사고뭉치에, 엄마는 4차원 발언을 한다. 이 틀을 제외하면 특별할 게 없는데 꽤 긴 시간 웃긴다.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보기 힘든 수준의 연기력을 구사하는 거지.

대포동 예술극단, 놀라운 자기 패러디

수준 높은 시트콤에 가깝다. 개그맨들을 만나면 이 사람들은 희극배우구나 싶을 때가 있다. 눈에 띄는 사람은 안상태다. ‘뜬금뉴스’는 어찌 보면 산만한 코너인데 안상태 특파원이라는 캐릭터가 코너를 볼만하게 만들었다. ‘∼했을 뿐이고, ∼일 뿐이고.’ 이것만 해도 웃음이 터지는 건 대체 뭘까? 실제로 만나보면 얌전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던데, 연기할 땐 여러 인격체로 변신하더라. ‘내 이름은 안상순’에서 이상한 성격의 여자 캐릭터도 잘 소화했다. 누렁이처럼 버림받은 캐릭터까지 말이다. 안어벙은 거의 전설이었고.

안상순, 그 캐릭터 너무 사랑하잖아.(웃음) ‘뜬금뉴스’ 유행어는 쉬워 보여도 내가 따라하면 통 비슷해지지 않더라.

성대모사에서 끝나는 연기력이 아니어서 그럴 거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연기 같은 거? 목소리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뼛속까지 그 캐릭터가 박혀 있으니까. 억울하면서도 뻔뻔한 체하는 연기는 따라잡기 힘들지.

<개콘>의 캐릭터들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는 이들이다. ‘대포동 예술극단’에서 박휘순은 대사 하나 없이 나오는데, 내 눈엔 그가 최고다. 줄곧 빈민이나 사회 낙오자를 연기했다.

박수 하나만으로도 웃기잖아. 그가 보여줬던 고뇌하는 지식인 청년이나 시대와 불화한 남자, 요샌 더 가슴에 와닿는다. 박휘순 캐릭터는 환영받지 못하는 투사랄까. 80년대의 음울한 느낌도 난다. 독립영화를 보고 있는 착각이 순간 들 정도다. 연극 집단 같은 호흡을 보여주니까.


다양한 콘텐츠를 패러디해 새로운 웃음을 선사하는 <개그콘서트>. 한국방송 제공.
다양한 콘텐츠를 패러디해 새로운 웃음을 선사하는 <개그콘서트>. 한국방송 제공.
이런 연기력은 <개콘>에서만 보기 아깝다. 개그맨들이 예능 프로에 나오는 걸 봐도 그렇게 재밌진 않고. 그들의 연기력을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활하면 좋겠다. 예전 <테마게임>처럼.

그 연기력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 성격 유별난 조연, 웃긴 애 이런 식의 캐릭터로 소비되는 건 너무 아깝다. <테마게임>의 김국진이나 김진수가 했던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다.

안상태나 박휘순은 드라마 감초로 나올 사람들이 아니다. 자기 스토리를 가지고 소시민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비장의 연기력이 있다. ‘대포동 예술극단’을 보면서 <개콘>은 이제 스스로를 패러디할 만큼 엄청난 콘텐츠를 쌓았구나 싶었다. 참 명작 프로다.

<개콘>은 오랫동안 이걸 봐온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과거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한다. ‘봉숭아학당’은 포맷부터가 그렇고. ‘예술극단’은 가장 적극적으로 과거 소스를 재활용했다. <개콘>의 기억들이 여전히 우리를 웃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지. 한민관, 박지선, 안영미가 기존 캐릭터들을 새롭게 비트는데 뒤집어진다. 삐쩍 마른 한민관이 준 교수 패러디를 했는데 딱 붙는 옷에 깡마른 몸에 다리가 앙상∼,(웃음) 북한 사투리를 접목시키니까 풍부해지더라. <사랑과 전쟁>을 패러디하면서도 ‘4주 후에 아오지 탄광에서 뵙겠다’고 했을 때는 또 어떻고.

<개콘> 안엔 다양한 콘텐츠를 소화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이런 재능 있는 개그맨들을 제일 먼저 데려가는 곳이 <개콘>이다. 공채 개그맨들의 프라이드도 엄청나고 그들도 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무대라 믿는다. 노장들은 노련한 연기를 보여주고 새로운 인물들은 또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니까.

다른 수준의 실력과 개성들이 만드는 하모니

각자 다른 수준의 개그맨들이 모일 때 나오는 시너지를 십분 활용하는 거다. 여러 요소를 뒤틀고 섞고 하면서 신나게 노는 게 보인다. 이미 놀이의 경지에 이른 건데. 이건 센 콩트 하나 올리고 유행어 밀고 하는 1차원적인 것에서 벗어난 거다. 대인배랄까(웃음).

시사 개그를 하는 황현희도 이미 중진급이고, 4차원 말 개그를 한 박영진도 하나의 장르를 끌고 들어왔다. 사실 <개콘> 피디들은 프로그램 하나가 개그맨들 생활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에 코너를 없애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과감하게 코너를 조율하는 과정에 공을 들인다. 스타 개그맨을 팔아서 코너를 띄우려는 게 아니라 코너의 완성도를 보고 성패를 거는 거다.

사실 개그맨들 사이에선 군대식 선후배 관계가 여전히 존재할 거다. 그런데 티브이에서 보이는 그들 관계는 서로 좋은 자극제 같다. 건강한 세대적 순환이나 이동 같은 게 느껴지는 거지.

혹독한 방식의 트레이닝을 각자가 거쳤고 이게 <개콘>의 경쟁력이 된 것 같다.

황현희의 냉담하면서도 어이없어하는 무표정은 과거 다른 코너에서도 비슷했다. 약간씩 다른 방식으로 새 멤버들과 여러 시도를 하며 자리잡은 것 같다. 캐릭터나 유행어를 쟁여놨다가 다시 푸는 아이템 풀도 풍부한 것 같고. 코너 사이의 ‘달인’ 때문에 <개콘> 전체가 생기를 얻는 것도 있다.

달인 김병만 선생은 남자가 키가 작아도 참 멋질 수 있구나 알게 해줬지.(웃음)

그 당당함? 용암 흐르는 데서 라면 끓여 먹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는 식이잖나. 달인에게 적절하게 경의를 표해 주다가 어느 순간 과감하게 잘라내는 류담과 노우진의 호흡은 적재적소의 콤비 플레이다. 요새 <개콘>에선 여자 외모를 희화화하는 데서 끝나는 코너도 없다. 신봉선, 안영미, 박지선은 혹 얼굴로 웃긴다 해도 이 부분에 당당하다. 박지선이 보여주는 캐릭터는 심형래 이후 동급 최강이지. 여자 개그맨들의 연기가 돋보인다.

그런 점에서 안영미나 유세윤이 최고 파트너인 강유미를 잠시 잃은 건 안타깝다. 강유미가 ‘정말 나 이제 개그 안 하고 연기하고 싶어!’ 했던 건 아닐 텐데. 그를 다뤘던 몇 기사가 좀 과장된 것 같다. 쉽지만은 않겠지만 본인의 노력과 타이밍만 잘 따라준다면 그의 개그는 건재할 거다.


안티 캐릭터를 넘어 개그 권력(?)으로 떠오른 <개그콘서트>의 윤형빈(왕비호). 한국방송 제공.
안티 캐릭터를 넘어 개그 권력(?)으로 떠오른 <개그콘서트>의 윤형빈(왕비호). 한국방송 제공.
강유미가 돌아왔을 때 또 어떤 코너가 생길지 기대된다. 강유미의 이탈, 아니면 휴식? 난 그녀를 기다린다.(웃음)

재밌는 건 개그맨이 코너를 안 하고 있다고 해서 기다린다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라는 거지.

<개콘>은 예능 프로로 가기 위한 발판이 아니다. 엠시(MC) 되면 개그맨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 않나. 그런 면에서 개그 무대에 집중하는 김대희와 김준호가 존경스럽다. 이들이 계속 <개콘>을 지켜준다. 연예인이 되기 위한 중간무대가 아니라 정말 그들이 뛸 무대인 거지. ‘봉숭아 학당’에서도 인물들의 힘이 돋보인다. 본격 코너화하긴 그렇고 묻히긴 아까운 캐릭터들의 집합 같다. <개콘> 메커니즘 안에서 꼭 필요한 무대다.

<개콘>의 인큐베이터인 셈이지. 그 안에서 왕비호는 이제 하나의 개그 권력이라지? 가수들이 앨범 내면 왕비호에게 비난받지 못해서 안달이라는.(웃음)

80년대 영구, 90년대 맹구, 2008년엔 상구 있~다

정면 돌파가 성공한 케이스다. 그런 캐릭터들이 팡 터져주니까 또 시선을 모은다. 왕비호 혼자 해서 3~4분 무대에 섰더라면 지금보다 약했을 거다. 지들끼리 노는 친구들이 야유를 퍼붓고 웃고 하는 모습이 왕비호와 잘 어우러진 거다.

<개콘>은 다음날 아침 출근해야 하는데도 신나게 보게 된다. 노련한 기술자의 쇼를 보는 것 같다.

<개콘>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상구 없다’에서 80년대엔 영구, 90년대엔 맹구, 2008년엔 상구가 있다고 하는데, 내 말이 딱 그거다. 버릴 게 없는 프로다. 개그맨들의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여러 방식으로 나태해진 사람들에게 채찍질이 된다.

정리 현시원 기자 qq@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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