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쿠터로 출근하는 김남희씨.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하루 기름값 1300원이면 땡이라는 스쿠터 전문기자의 스쿠터 출근노트
하루 기름값 1300원이면 땡이라는 스쿠터 전문기자의 스쿠터 출근노트
아침 7시 반, 휴대폰 알람이 잠든 나를 깨운다. 난 매일 아침이 여유롭다. 아침식사를 하고 깨끗이 단장을 하고도 시간이 남는다. 예전엔 엄두도 못 내던 일들인데, 아침 한 시간을 스쿠터가 선물해 줬다. 8시가 되면 난 헬멧과 글러브, 그리고 보호대 친구들을 데리고 곤히 잠든 스쿠터를 깨워 회사로 향한다. 경쾌한 엔진 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달리면 이보다 더 상쾌할 순 없다.
잠시 정차한 내게 보이는 건 버스정류장을 가득 메운 양복차림의 회사원들과 긴 생머리 정장을 빼입은 언니들이다.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다. 만원버스 탈 생각을 하니 저런 표정이 나올 만도 하지.
옆에 가는 자전거가 안쓰럽구나
사뿐히 달려가는 내 차선 옆으로 페달을 부리나케 굴려대는 자전거 탄 아저씨가 보인다. 언뜻 보기에 출근길 같은데, 이렇게 더운 날 몸에 꽉 끼는 자전거 복장을 하고 땀줄기를 흘리는 걸 보니 괜스레 나도 더워진다. 저렇게 힘들게 달려 회사 가서 일이나 제대로 하려나. 사실 다섯 달 전까지도 나도 그들 속에서 살았다. 손바닥만한 지하철 노선도에 내 몸을 의존해 흡연보다 더 심각하다는 지하 공기를 마셔가며 땀을 흘렸다. 부대끼는 사람들과의 마찰, 번지는 쾨쾨한 냄새… 더는 견디기 힘들어 ‘스쿠터’라는 친구를 맞이했다.
난 서울 신촌에서 강남구 개포동까지 매일 왕복 30㎞를 스쿠터를 타고 달린다. 신촌 집을 떠나 공덕오거리, 녹사평을 지나 반포대교로 한강을 건넌다. 그리고 국립중앙도서관, 예술의 전당, 포이동 네거리를 거쳐 개포동 회사에 도착한다.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지만 하루에 쓰는 기름값은 불과 1300원. 리터당 45㎞를 가는 스쿠터의 괴력 때문이다.(8월 초 리터당 1820원대로 계산) 거기에다 45분이면 도착이다. 50㏄ 미만인 내 스쿠터는 최고 시속 60㎞를 내는데, 출퇴근 때 결코 느린 속도가 아니다.
하지만 똑같은 거리를 지하철 두 번 갈아타고 마을버스를 타고 집과 회사를 오가면 2400원이 든다. 길에서만 한 시간을 넘게 보낸다. 편도 비용으로 하루 한 시간 이상을 단축하니, 스쿠터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고유가 시대지만 난 전혀 걱정이 되지 않는다. 자동차의 평균 연비는 10㎞를 웃돈다. 하지만 내 스쿠터는 1리터를 넣으면 45~50㎞는 거뜬히 간다.
예쁜 아가씨들은 하늘하늘한 치마를 못 입게 된다며 스쿠터에 올라탈 생각도 안 하는데, 모든 게 패션 때문이라면 숨겨진 비법을 알려주겠다. 시트 밑 트렁크에 치마를 챙기자. 스쿠터들은 20~30리터의 넉넉한 수납공간이 있어 치마뿐 아니라 커다란 헬멧, 잔뜩 부풀린 가방, 무거운 서적 등 잡동사니를 다 넣고도 여유가 있다. 자전거처럼 무겁게 가방을 메고 달릴 필요가 없으니, 가벼운 내 몸 하나만 스쿠터에 올라타면 된다.
비가 올 땐 영화 속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출퇴근을 하다 보면, 조그마한 녀석을 시샘이라도 하듯 택시와 버스 아저씨가 경적을 울려댄다. ‘왜 이러세요, 아저씨. 전 시속 60㎞로 달리고 있다고요.’ 저배기량 스쿠터는 시내 주행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내가 출퇴근에 이용하는 거리의 평균 제한속도는 60㎞ 안팎이다. 거기에 출퇴근 정체를 고려하면 난 흐름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동차들이 규정 속도를 어긴 채 질주하는 것일 뿐. 더욱이 스쿠터는 사륜차보다 초반 가속력이 좋기 때문에 시야를 더 확보하고 방어운전만 해준다면 위험에서 한 발짝 물러설 수 있다.
때때로 비가 오면 난 비옷을 입고 나선다. 발군의 방수성능을 보여주는 초특급 우의다. 빗방울이 표면에 닿기도 전에 미끄러져 버리는데, 빗속 주행도 나름 운치가 있다. 우산을 쓰고 걸을 때 빗물이 바짓단을 적셔 온종일 찝찝하지 않았던가. 오히려 빗속을 주행한 뒤 비옷을 벗으면 언제 비가 오기나 했냐는 듯 물기 하나 머금지 않은 새옷이 나타난다.
사람들은 스쿠터를 탄다고 하면 무조건 위험하다는 말부터 꺼낸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두려운가 보다. 늘 가던 길을 한번 바꿔 보라. 한 걸음만 내디디면 스쿠터라는 새롭고 자유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글 김남희/ 월간 <스쿠터 앤 스타일> 기자·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스쿠터로 출근하는 김남희씨.
스쿠터로 출근하는 김남희씨.
하지만 똑같은 거리를 지하철 두 번 갈아타고 마을버스를 타고 집과 회사를 오가면 2400원이 든다. 길에서만 한 시간을 넘게 보낸다. 편도 비용으로 하루 한 시간 이상을 단축하니, 스쿠터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고유가 시대지만 난 전혀 걱정이 되지 않는다. 자동차의 평균 연비는 10㎞를 웃돈다. 하지만 내 스쿠터는 1리터를 넣으면 45~50㎞는 거뜬히 간다.
스쿠터로 출근하는 김남희씨.
자전거-스쿠터 출퇴근 비교
김남희 기자 출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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