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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디푸른 청산도에서 롱테이크를

등록 2008-08-13 19:17수정 2008-08-17 15:10

청산도 서편제 언덕을 걷는 동안 저절로 영화배우가 된다. 넓게 펼쳐진 초록의 잎들은 푸른 바다가 육지로 올라온  듯하다.
청산도 서편제 언덕을 걷는 동안 저절로 영화배우가 된다. 넓게 펼쳐진 초록의 잎들은 푸른 바다가 육지로 올라온 듯하다.
[매거진 esc] 한국관광공사와 함께하는 대한민국 끌리는 여행 2 - 패키지편
역사·토속 기행의 멋을 덤으로 안겨주는 나주에서 완도까지 1박2일 뱃길 남도여행
사전적 정의로 남도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일컫는다. 하지만 남도 여행은 전라남도 나주의 이남, 즉 해남·영암·강진·장흥·보성·순천·여수와 진도·완도 등을 말한다. 남도 여행은 북도의 삼엄한 겨울을 탈출해 이른 봄을 맞으려는 이들과 남해의 잔잔한 바다에 몸을 맡기는 한여름 피서객들의 목적지다. 하지만 역사학자 유홍준이 ‘남도 답사 1번지’부터 답사 여행의 정초를 닦았듯, 남도에는 민중성과 토속성의 이야기가 절절히 흐른다. 남도의 서부, 영산강 나주와 진도, 완도를 이어도 풍족한 역사·토속 기행이 된다. 강에서 바다, 그리고 섬으로 이어지는 1박2일 남도 여행이다.

아이들은 청산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 마냥 즐겁다. 맑은 해풍이 친구가 된다.
아이들은 청산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 마냥 즐겁다. 맑은 해풍이 친구가 된다.
청산도를 둘러싼 방파제와 등대는 때로 거칠어지는 바다로부터 섬을 지켜준다.
청산도를 둘러싼 방파제와 등대는 때로 거칠어지는 바다로부터 섬을 지켜준다.

30여년 만에 영산강 물길을 살린 황포돛배

“영산강에 마지막 배가 다닌 게 1973~75년이었을 거예요. 무안·함평에서 고구마를 싣고 삼학소주 공장에 들어가는 길이었죠.”

황톳빛 광목을 펼친 황포돛배가 거북이처럼 영산강을 가른다. 영산강 하굿둑으로 막혀 잔잔한 물길에는 백로와 왜가리가 쉬엄쉬엄 날아든다. 절벽 아래로는 노란 원추리가 드문드문 피었다. 양반들이 뱃놀이를 즐기던 곳이라 석관정·금강정·창주정 등 차례로 누각이 나타난다.

이성자 문화유산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황포돛배는 30여년 만에 영산강 물길을 살린 ‘역사적인 배’다. 전라남도는 지난 5월 목선 두 척을 건조해 나주시 왕곡면 삼한지 테마파크 근처 영산강에 띄웠다. 황포돛배는 관광객 10명을 태우고 다야나루(다야뜰)에서 석관정까지 7.2㎞ 구간을 왕복한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영산강은 강이자 바다였다. 밀물 때면 목포 앞바다의 짠물은 광주에서 반나절 걸음인 영산포까지 밀려들어왔다. 고깃배도 바닷물을 타고 올라왔다. 젓갈배는 다도해의 짠내를 몰고 왔고, 곡식을 실은 수송선에는 나주평야의 흙냄새가 번졌다. 양반들은 영산강을 따라 줄지어 선 정자에서 노닥거리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뱃사람들은 정자 앞을 지나갈 땐 뱃노래도 그쳐야 했다고.

삭힌 홍어의 고향도 영산강이다. 이강자 문화유산 해설사의 설명. “고려 말 공도 정책으로 흑산도 등 남해의 섬 주민들이 영산강을 따라 이주했어요. 지금도 그 흔적이 땅 이름으로 남았죠. 장산도 사람이 모였다 해서 장산리, 영산도 사람이 산다 해서 내영산 ….”


이때 섬사람들이 가져온 게 홍어다. 바다에서 먹던 홍어 맛을 잊지 못하다가 새로운 보관 방법과 조리 방법을 깨달았으니, 그게 삭힌 홍어다. 그래서 나주 사람들은 칠레산 홍어를 삭혔다고 하더라도 ‘영산포 홍어’라고 자랑한다. 홍어의 진정한 맛은 삭히는 기술에서 비롯되니까. 지금도 강 주변 여러 토굴에서 홍어가 발효된다.

황포돛배는 이런 물길의 역사를 듣는 풍취 나는 여행이다. 황포돛은 ‘액세서리’인지라 야마하 엔진 소리가 웅웅거리지만, 그마저도 좋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옛날의 풍속사가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청산도 서편제 돌담길은 길 따라 사뿐사뿐 걷는 재미가 있다.
청산도 서편제 돌담길은 길 따라 사뿐사뿐 걷는 재미가 있다.
해무가 낀 완도 앞바다 부둣가는 한 폭의 동양화처럼 여행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해무가 낀 완도 앞바다 부둣가는 한 폭의 동양화처럼 여행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서편제> 언덕 위에는 <봄의 왈츠> 촬영지가

나주에서 목포, 진도를 거쳐 완도에 간다. 다도해 섬사람들이 뭍으로 올라가는 뱃길을 거꾸로 되밟는 코스다. 전남 완도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이면 닿는 청산도는 전형적인 어촌 풍경이 매력이다. 섬 속에 어촌 풍경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완도발 배가 드나드는 도청리 항구를 제외하면 관광지처럼 부산스럽지도 않다.

겨울에도 푸른빛을 띠어 청산도다. 청산도의 푸름은 여름이면 절정에 이른다. 특히 ‘서편제 언덕’은 푸름이 휘도는 곳이다. 여기서 내려다보이는 도락리 해변의 바다가 푸르고 고구마를 심은 밭도 푸르다. 파랑과 초록의 푸른 대비다. 영화 <서편제>에서 소리꾼 김명곤과 오정해는 이 언덕의 에스(S)자 돌담길을 걸으며 “사람이 살면 몇 백 년을 사나 개똥 같은 세상에 나와 둥글둥글 사세 …” 하며 ‘진도 아리랑’을 불렀다. 5분20초 롱테이크로 잡힌 명장면이다.

서편제 언덕 위에는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였던 아담한 2층 집이 있다. 지금은 서울의 한 여행사가 인수해 카페로 운영한다. 여기서 내려다보이는 도락리 해변은 안온한 섬 풍경의 전형을 보여준다. 만조 때가 되면 파도가 잔잔해 더욱 포근하다. 사실 서편제 언덕은 4월 중순에 더 좋다. 초록 밭과 푸른 바다에 덧대어 해변 쪽으로 노란 유채밭이 펼쳐지는데, 녹청황의 대비가 그림 같다.

청산도 사람들은 이런 아름다운 풍경에서 영혼을 바람에 실어 보냈다. 청산도에 사는 김미경 문화유산 해설사는 “아직도 청산도 사람들은 초분을 짓는다”고 말했다. 새마을운동 시대까지 계속되던 남해의 초분 문화권에선, 사람이 숨지면 바로 주검을 땅에 묻지 않는다. 돌이나 통나무 위에 관을 얹고 지푸라기나 이엉으로 초가집을 만들어 관을 덮는다. 망자의 몸이 바람에 실려 하늘로 떠나가고 다 없어졌을 때, 비로소 후손들은 탈육된 뼈를 땅에 묻었다.

김씨는 “올 초에도 청산도에 살던 지관이 숨졌고, 그의 유언에 따라 자식들이 초분을 쌓았다”고 말했다. 서편제 언덕 아래에도 초가집처럼 생긴 ‘모형 초분’이 바람을 기다린다.

서편제 언덕에서 화랑포를 돌아 나오는 숲길은 청산도 주민들의 아침저녁 산책길이다. 시멘트길이라 발바닥의 탄력이 아쉽지만, 숲과 숲 사이로 드러나는 다도해는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도락리 해변과 조약돌 해변 그리고 보길도와 완도로 이어지는 육지의 끝자락들, 그리고 사수도를 넘어 멀리 한라산이 흘러내린 제주도로 이어지는 섬길이 펼쳐진다. 화랑포를 도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나주 영산강을 유유히 흐르는 황토돛배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의 길잡이다.
나주 영산강을 유유히 흐르는 황토돛배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의 길잡이다.
밀려오고 나가는 파도가 아이들의 놀이기구다. 청산도 지리해수욕장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밀려오고 나가는 파도가 아이들의 놀이기구다. 청산도 지리해수욕장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한적함과 이국성 느끼려면 신흥리로 가라

청산도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다 보면 신흥해수욕장에 닿는다. 이 섬의 대표 해수욕장은 도청리 항구에서 한달음인 지리해수욕장이지만, 아는 사람들은 한적한 신흥리 해변을 찾는다. 신흥리 해변은 밀물 썰물의 차가 커서, 썰물이 되면 해변에서 바다까지 자그마치 1㎞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 ‘고난의 해수욕장’이다. 하지만 썰물이 그치고 물이 차기 시작할 때 신흥리 해변은 기묘함을 자아낸다. 모래사장과 개펄의 굴곡 때문에 바닷물이 앞뒤에서 동시에 차는 것이다. 뭣 모르고 자동차를 개펄에 끌고 갔다가 사방으로 들어차는 바닷물 때문에 구조 요청을 한 사람들이 한 해 서넛이라고 한다. 한적함과 이국성을 느끼려면 신흥리 해변에 가라.

나주·완도=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협찬 한국관광공사

남도 여행 쪽지

청산도 당일치기는 택시가 편리

남도 여행 지도
남도 여행 지도
◎ 아름여행사(arumtr.co.kr)에서 ‘영산강 황포돛배와 완도·청산도 섬 일주’ 상품을 운영한다. 아침 7시20분 서울 용산역에서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나주에 내려간 뒤, 버스로 갈아타고 진도 울돌목, 운림산방 등을 구경한다. 이튿날 아침 완도항을 출발해 청산도를 둘러보고 오후에 나주 황포돛배를 타고 돌아오는 1박2일 일정이다. 현지에 사는 문화유산 해설사가 명소마다 나와 향토사에 기반한 설명을 들려준다. 한국관광공사 추천 상품. 2인1실 기준 19만1천원(일~목), 19만6천원(금~토·공휴일). 문의 (02)722-0419.

◎ 자동차로 여행할 경우 1박2일도 될 수 있지만 2박3일 이상이 여유롭다. 일단 나주까지 간 뒤, 나주~진도~완도를 잇는다. 나주에서 진도까지, 진도에서 완도까지 각각 1시간30분~2시간이 걸린다.

◎ 나주 황포돛배 체험장은 드라마 <주몽> 촬영지인 삼한지 테마파크 후문 근처의 안내판을 따른다. 황포돛배 승선료는 어른 5천원, 어린이 3천원.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시 운항한다. 매주 월요일과 날씨가 나쁠 때는 운항하지 않으니, 미리 문의할 것. 나주시청 문화관광과 (061)330-8114.

◎ 청산도는 완도 여객선터미널에서 들어간다. 청산고속훼리와 신한훼리가 약 한두 시간 간격으로 운항한다. 50분 걸린다. 청산도 일주버스가 여객선 도착 시간에 맞춰 도청리 항구에서 신흥리까지 운행한다. 하지만 자유롭게 다니려면 자동차가 편하다. 자동차 승선 비용이 4만원이 넘으므로 당일 여행일 경우 현지에서 택시를 대절하는 게 경제적이다. 1시간 2만원. 완도항에서 자동차를 승선하려면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한다. 도청리 항구와 지리해수욕장을 중심으로 여관·민박촌이 형성됐다. 청산도 여행정보 사이트(sanbada.net)에 민박 리스트가 올라 있다. 완도군청 문화관광과 (061)550-5224.

운림산방은 휴가를 맞은 연인들에게 색다른 데이트 장소다.
운림산방은 휴가를 맞은 연인들에게 색다른 데이트 장소다.

나주곰탕 먹고 ‘스캔들’ 음미하고…

운림산방에선 그림 감상, 울돌목에선 계곡 같은 바다 구경

나주에서 청산도 가는 길에 진도의 운림산방을 들른다.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촬영지로 최근 발길이 잦다. 배용준과 전도연, 이미숙이 푸른 연못에서 조각배를 타고 노는 장면이다. 영화에서는 꽤 큰 연못 같지만, 실제 보면 작다. 하지만 아담한 게 운치 있다.

운림산방은 조선 말기 서화가 소치 허련의 고택이다. 허련은 해남의 녹우당을 오가며 공재 윤두서 가문의 3대에 이르는 명화첩으로 그림을 터득하고 추사 김정희 아래에서 공부했다. 허씨 집안은 2000년대까지 총 4대 동안 화가 5명을 배출했는데, 이들의 작품을 전시한 미술관 또한 들를 값어치가 있다.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열리는 토요경매에는 쏠쏠한 남도 예술품이 나온다. (061)543-0088.

진도대교 건너 돌아오는 길에 울돌목을 구경한다. 울돌목은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지로 알려진 곳으로, 바다 폭이 좁은 곳이 294m 정도다. 이곳 물길은 시속 11노트(시속 20㎞). 바다라기보다는 계곡 같다. 거품과 함께 물살이 일고 물소리가 들릴 정도다.

나주에서는 나주곰탕을 놓치지 말 것. 나주곰탕은 오일장에서 상인들에게 팔던 국밥요리에서 유래됐다. 다른 지역에 비해 곰탕국물이 맑은 편이다. 언뜻 보면 갈비탕 같은 풍미를 드러내지만 밥알이 도톰하게 불어서 사르르 녹는 맛이 있다. 고명처럼 들어가는 고기는 다른 지역보다 양이 많고 쫄깃하다. 씹을 때마다 육질의 결이 살아 있다. 나주곰탕의 양대 산맥은 남평식당(061-334-4682)과 하얀집(061-333-4292).

남종영·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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