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제 그거 봤어?
[매거진 esc] 너 어제 그거 봤어?
오래 사귄 친구처럼 편해진 <전설의 고향>
<크크섬…> <워킹맘>은 별미 코믹드라마 박태환이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장면은 봐도 봐도 즐겁기야 하지만 그래도 너무했다. 방송3사가 매일 같은 경기, 같은 장면을 주구장창 중계하는 걸 보면서 올림픽 시청이 국민의 5대 의무로 제정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시청 불복종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나. 그래도 틈새를 비집고 비집다 보면 할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다. 여전히 문화방송 <크크섬의 비밀>의 김 과장과 윤 대리는 땡볕 아래 삽질을 멈추지 않고, 2008년 버전의 한국방송 <전설의 고향>은 시청자의 뒷목을 섬뜩하게 스쳐간다. 올림픽 기간에 문득 우리 사회의 약자로 탈바꿈하는 드라마 팬 정석희(사진 왼쪽)씨와 조진국씨가 오랜만에 요즘 드라마 이야기를 나눴다. 정석희 오랜만에 ‘돌아온’ <전설의 고향>을 보니 반갑다. 어릴 적 친구 같다. 어릴 때는 덩치도 크고 무서웠지만 지금은 편하고 귀엽기까지 한 친구랄까? 옛날에는 엄청 무섭게 봤는데 이번엔 왜 그런지 별로 무섭지 않게 봐서 말이다. 흑백 시절의 귀신이 더 무서운 걸까?(웃음) 조진국 난 되게 무섭던데? 2회였던 ‘아기야 청산 가자’는 사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은 무섭다기보다 슬픈 내용인데 조은숙의 무당 연기가 정말 무서웠다. 귀신이 등장할 때보다 훨씬 더 공포스럽더라. 애꿎은 사람들 좀 죽이지 말았으면 정 맞다. 1회 ‘구미호’에서도 처녀 귀신이 너무 예쁘니까 하나도 안 무서웠다. 옛날에 귀신은 흰 소복 입고, 가발 티 팍팍 나는 머리 풀어헤치고 입가에 가짜 피 묻히고 분장인 거 뻔히 알고도 무서웠는데 이런 게 익숙해서 그런지 시지(CG)로 정교하게 만든 꼬리 같은 게 더 실감이 안 난다. 조 누구나 머릿속에 어린 시절 봤던 <전설의 고향>에 대한 기억이 있어서인지 <전설의 고향>의 느낌은 핸드메이드여야 한다. 세련되게 잘 뽑아내서는 오히려 어린 시절 느꼈던 공포와 연결이 안 된다. 이번 구미호도 전체적인 이야기 짜임새는 좋았지만 옷차림부터 스타일리시하니까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정 ‘아기야 청산 가자’를 보면 자기 아이 구하려고 귀신이 돼 남의 아이를 죽이는데 내 핏줄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건 한국 공포담에서 반복되는 이야기다. 귀신이 원한에 사로잡혀 다른 누군가를 죽이고, 그 피해자는 또 귀신이 돼 누군가를 죽이다 보면 귀신이 무한 증식되는 거 아닌가?(웃음)
조 1, 2화에서 귀신의 등장이 특별히 무섭지 않았던 건 이런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스토리 자체가 귀신을 공포의 대상으로 그리기보다 인간의 욕망이 보여주는 무서움이랄까 이런 데 초점을 맞추니까 귀신은 주인공이 아닌 거다. 그래서 한 편 정도는 진짜 단순하게 무서운 귀신을 봤으면 좋겠다. 심리적 공포도 좋지만 정말 무서운 귀신이 주는 공포의 쾌감을 느껴본 지 너무 오래됐다. 영화에서도 그렇고.
정 1, 2화 시청률이 꽤 높게 나왔다. 뭐라 뭐라 해도 <전설의 고향>이라는 타이틀이 뜨면 티브이 앞에 사람들이 모이나 보다.
조 맞다. 스타 배우나 작가, 연출가의 파워가 없어도 <전설의 고향>이라는 작품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 같아서 좋다.
정 ‘아기야 청산 가자’에서 귀신이 엄한 행랑채 어멈의 애기를 죽이는 게 나오는데 나는 공포영화 같은 데서 이런 게 참 싫다. 애꿎은 사람을 그냥 왜 죽이나? <크크섬의 비밀>에서도 난파선에 탔던 직원이 죽어서 시체로 발견되는데 그냥 죽고 끝이다. 아직도 별 복선도 없는 것 같은데 왜 굳이 보여주려고 하지?
조 난파됐는데 다 살아남으면 이상하니까 그냥 한 명 죽인 거 아닐까?
정 스토리 전개를 위해 허무하게 희생되는 캐릭터에 대해 항상 분통이 터진단 말이다!
조 선생님이 너무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웃음) 어쨌든 아무리 <로스트>의 패러디라지만 닫혀 있는 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풀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닐 것 같다.
송재정 작가의 실험, 김현희 작가의 디테일
정 보통 가족 시트콤이나 청춘 시트콤에 비해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사고들이 한정돼 있으니까 인물들의 관계망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윤 대리, 심형탁, 알바생 김시후까지 세 명의 남자가 한 여자(이다희)를 좋아하는 이유다.(웃음)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서민정을 두고 삼각관계가 벌어질 때는 왜 그녀를 두고 두 남자가 경쟁하는지 공감이 되는데 여기서는 왜?라는 게 빠졌다.
조 윤 대리나 김 과장, 신 과장 같은 남자 캐릭터는 잘 잡혀 있는데 아직 여자 캐릭터들이 선명하지 못하고 밋밋한 게 아쉽다. 그나마 김 부장이 신 과장의 ‘王자’에 반하면서 자꾸 말실수를 하는 등 캐릭터의 생기가 조금씩 보이기는 하는데 그래도 여자 캐릭터들은 아직 재미가 부족하다.
정 그래도 인물들의 관계가 바뀌어나가는 모습을 보는 건 재밌다. 대표적으로 서로 웬수 같던 신 과장, 김 과장이 서로 테리우스, 람세스를 외치며 공생하는 관계로 바뀌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우리 네 식구만 있어도 서로간의 애정이 단순하지 않은데 이 사람들을 모아놓으니까 진짜 다각적 인간관계 속에서 사람들의 본질이 드러나는 것 같다.
조 기사에도 많이 나왔지만 윤상현에 대한 재발견도 빼놓을 수 없다. <겨울새>에서 찌질남으로 눈길을 받기 시작했을 때는 그 찌질함이 윤상현의 매력으로까지 발전할지는 몰랐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확실한 장기로 굳혔다.
정 찌질하다고는 말하지만 윤 대리 캐릭터도 매력이 있다. 자격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좋아하는 여자에게 자신의 진심을 숨기고 괴롭히는 것 같지만 그녀가 힘들 때는 도와주고, 보호해주고, 그런 게 또 남자의 매력 아닌가.
조 아무래도 같은 제작진이 만든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과 비교하게 되는데 등장인물 나이대가 20대 중반 이상으로 넘어가서 그런지 확실히 비주얼적으로 보는 맛은 떨어진다. 그래도 송재정 작가진의 실험이 대단해 보인다. 이야깃거리를 다양하게 제공하는 가족 시트콤의 안전함을 벗어난 것도 그렇고. 시트콤에서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성공했으면 좋겠다.
정 윤대리의 로또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교환 기한이 이십여 일 남아 있는데 그 전에 나가서 이걸로 떼돈을 벌면 코미디가 성립이 안 될 테니 최소한 그 안에 구조되지는 못 하겠지?
조 에스비에스의 <워킹맘>도 <남자셋, 여자셋> 등 시트콤을 오래 해온 김현희 작가의 작품이다. 작년에 <강남엄마 따라잡기>로 처음 정극을 썼는데 한번 해봐서 그런지 이번 작품에서는 한결 부드러워지고 작가의 힘이 드러나더라.
정 본인이 일하는 엄마라서 드라마의 디테일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우는 아이 떼어놓고 출근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이라든가, 애 아플 때 야근하는 모습 같은 게 사실적이다.
조 그런데 여기서도 하나 이해가 안 되는 게 왜 여자들이 봉태규를 좋아하는 건가.(웃음)
왜 여자들은 봉태규를 좋아하는 걸까
정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표정 하나로 여자를 녹인다는데 시청자의 마음은 전혀 안 녹는 거지.(웃음)
조 봉태규가 연기는 잘하는데 여자들이 빠질 만한 매력이 안 보이고 철없게만 그려진다.
정 염정아가 내 딸이라면 진짜 당장 이혼시킨다. 반면 김자옥-윤주상 커플의 러브 스토리가 재미있다. 보통 드라마에서 그레이 로맨스는 발만 담갔다 빼는 식으로 끝나는 데 둘이 결혼까지 가는 게 좋더라.
조 맞다. 염정아-봉태규 커플보다 김자옥-윤주상 커플의 스토리가 더 매력적이다. 대체로 재미있게 볼 수는 있는데 가끔씩 툭툭 불편한 장면이 등장하는 건 시어머니나 시누이나 캐릭터들은 쉽게 용서가 되지 않을 만큼 독한데 상황은 시트콤적이니까 아귀가 잘 안 맞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이 좀더 조율되면 괜찮은 코미디 드라마가 될 것 같다.
정 워킹맘이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뭔가 발칙하고 유쾌한 해결책도 보여준다면 좋겠다.
정리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크크섬…> <워킹맘>은 별미 코믹드라마 박태환이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장면은 봐도 봐도 즐겁기야 하지만 그래도 너무했다. 방송3사가 매일 같은 경기, 같은 장면을 주구장창 중계하는 걸 보면서 올림픽 시청이 국민의 5대 의무로 제정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시청 불복종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나. 그래도 틈새를 비집고 비집다 보면 할 이야기가 없는 건 아니다. 여전히 문화방송 <크크섬의 비밀>의 김 과장과 윤 대리는 땡볕 아래 삽질을 멈추지 않고, 2008년 버전의 한국방송 <전설의 고향>은 시청자의 뒷목을 섬뜩하게 스쳐간다. 올림픽 기간에 문득 우리 사회의 약자로 탈바꿈하는 드라마 팬 정석희(사진 왼쪽)씨와 조진국씨가 오랜만에 요즘 드라마 이야기를 나눴다. 정석희 오랜만에 ‘돌아온’ <전설의 고향>을 보니 반갑다. 어릴 적 친구 같다. 어릴 때는 덩치도 크고 무서웠지만 지금은 편하고 귀엽기까지 한 친구랄까? 옛날에는 엄청 무섭게 봤는데 이번엔 왜 그런지 별로 무섭지 않게 봐서 말이다. 흑백 시절의 귀신이 더 무서운 걸까?(웃음) 조진국 난 되게 무섭던데? 2회였던 ‘아기야 청산 가자’는 사실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은 무섭다기보다 슬픈 내용인데 조은숙의 무당 연기가 정말 무서웠다. 귀신이 등장할 때보다 훨씬 더 공포스럽더라. 애꿎은 사람들 좀 죽이지 말았으면 정 맞다. 1회 ‘구미호’에서도 처녀 귀신이 너무 예쁘니까 하나도 안 무서웠다. 옛날에 귀신은 흰 소복 입고, 가발 티 팍팍 나는 머리 풀어헤치고 입가에 가짜 피 묻히고 분장인 거 뻔히 알고도 무서웠는데 이런 게 익숙해서 그런지 시지(CG)로 정교하게 만든 꼬리 같은 게 더 실감이 안 난다. 조 누구나 머릿속에 어린 시절 봤던 <전설의 고향>에 대한 기억이 있어서인지 <전설의 고향>의 느낌은 핸드메이드여야 한다. 세련되게 잘 뽑아내서는 오히려 어린 시절 느꼈던 공포와 연결이 안 된다. 이번 구미호도 전체적인 이야기 짜임새는 좋았지만 옷차림부터 스타일리시하니까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올림픽 중계로 도배질된 텔레비전에서 드라마 시청자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는 지상파 3사의 드라마들. <전설의 고향>. 한국방송 제공.
<크크섬의 비밀>. 문화방송 제공.
<워킹맘>. 에스비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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