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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폰이 다르게 노는 법을 알려주마

등록 2008-08-06 18:27수정 2008-08-10 10:12

한대리의 터치 LIFE!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만져라, 뜨겁게 반응하리라
10년 넘게 휴대폰을 사용해왔지만 도대체 휴대폰에 돈 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엠피스리(mp3)가 된다고? 왜 휴대폰으로 음악을 들어? 디엠비(DMB)가 된다고? 휴대전화로 티브이 보면 눈 버린다구. 카메라 없이 좀 싸게 팔면 안 되나? 한마디로 휴대폰은 나에게 통화를 위해, 사실상 업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전자 기기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만지면 반응한다는 그 휴대폰을 만나게 되었다. 군살 하나 없이 잘 빠진 몸매처럼 단 하나의 평면으로 쭉 빠진 이 휴대폰을 켜니 깜찍한 아이콘들이 왼쪽에 정렬해 수줍게 나의 손길을 기다렸다. 눌러서 끌어 오고, 손가락을 샤르르 미끄러뜨리니 화면이 자유자재로 바뀐다. 옆으로 슬쩍 밀면 책장 펼치듯 새로운 화면이 나타난다. ‘니가 그래봤자 휴대폰이지’라고 내 머리는 외치고 있었지만 내 손과 마음은 어느새 이 감미로운 움직임에 매료되고 말았다. 디지털 기계문명을 혐오하던 나는 어느새 아이폰의 한국 출시마저 궁금해하는 ‘유저’(이럴 땐 꼭 유저라는 말을 써줘야 한다)가 됐다.

게임이라면 수년 전 1억원대의 놀음을 일삼던 인터넷 고스톱 이력이 전부였다. 아이들에게 닌텐도 디에스(DS)를 사준 직장 선배를 보면서 ‘쯧쯧… 게임기나 사주고… 애들 교육 제대로 시키는 거야?’라고 속으로 비웃었다. 기사를 쓰기 위해 닌텐도 디에스와 위(Wii)를 빌렸다. 기사 쓰려고 게임까지 해야 하나? 투덜거렸다. 한번 여니, 멈출 수가 없었다. 누르고, 부비고, 호호 불면서 밤을 새웠다. 색색깔 볼펜으로 연습장에 짝꿍과 줄긋기 게임을 하며 놀던 중학교 때가 떠올랐다. 가상의 테니스 라켓과 골프채를 휘두르며 뻐근해진 어깨를 두들기면서 내일은 상급 레벨에 도전하리라 투지를 불태웠다. 내 안의 헝그리 정신이 30년 만에 깨어났다.

닌텐도는 디에스의 게임소프트 시리즈를 출시하면서 ‘터치 제너레이션’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휴대폰과 게임에 터치 바람이 부는 요즘, 터치 제너레이션이란 브랜드 이상의 특별한 의미로 들린다.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호언장담하던 차가운 디지털 세상을, 체온과 손길과 입김까지 동원한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에 대한 갈망이 바꿔가고 있다. 터치 제너레이션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물리적·심리적 공간이 점점 벌어지는 시대에 ‘만지면 반응하는’ 접촉에 대한 또다른 열망이 표출되는 하나의 방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역시 가상의 접촉이다. 그럼에도 터치의 매력은 직접적이면서도 생생한 촉감으로 지금, 살아 있는 손과 몸의 감각을 깨우고 있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일러스트레이션 김윤재


터치폰이 다르게 노는 법을 알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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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정화면에 맥주 거품까지 보글보글…
흥미진진 첨단기능으로 키패드폰 사라지게 할 듯

‘촉각의’라는 뜻을 지닌 삼성전자 햅틱폰은 올 4월 출시돼 40만대 넘게 팔렸다. 한 달에 10만대 가량 팔린 셈이다. 하나의 모델이 월 3, 4만대 팔리면 좋은 실적으로 평가되는 휴대폰 시장에서 이 정도 성적이면 “없어서 못 판다”고 말해도 호들갑은 아닌 셈이다. 특히나 이 제품이 80만원을 호가하는 프리미엄 휴대폰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기대 이상의 성공이다.

엠피3·디엠비폰 때와 새로움의 차원이 달라

지난해 초 전면 터치스크린 휴대폰인 프라다폰을 출시하면서 휴대폰 제조업체 가운데 가장 먼저 터치폰 시장에 뛰어든 엘지전자는 지금까지 터치 기능과 키패드를 혼합한 디스코폰이나 시크릿폰, 전면 터치스크린폰인 뷰티폰, 터치웹폰 등 10여 가지 모델을 선보이며 누적 판매량이 700만대를 넘어섰다. 지난 2월에는 “국내 출시되는 모든 프리미엄 제품에 터치 기술을 적용하겠다”고 공식 발표하며 싸이언의 브랜드 구호를 ‘터치 더 원더’로 아예 바꿨다.

휴대폰의 터치 바람은 국내 생산 제품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최근 대만의 스마트폰 업체인 에이치티시(HTC)가 에스케이텔레콤과 제휴해 ‘듀얼터치폰’을 선보였으며, 확정된 시기는 없지만 애플의 아이폰까지 한국에 수입되면 컬러폰이 흑백폰을 사라지게 했듯이 터치폰이 키패드폰을 사라지게 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터치폰의 대세를 성급히 점칠 일은 아니겠지만 터치폰(풀터치스크린폰)의 새로움은 카메라폰이나 엠피3폰, 디엠비폰 등이 등장했을 때 보여줬던 새로움의 질감과 다르다. 그동안 새로운 휴대폰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려줬다면 터치폰은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알려준다. 다르게 노는 법을 가르쳐준다. 키패드 12개를 열심히 누르면서 통화도 하고, 문자도 보내고, 음악도 듣고, 게임도 하던 예전의 방식을 벗어나 ‘드레그 앤 드롭’으로 캘린더와 시계 같은 위젯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손가락을 옆으로 밀어퉁기는 플릭으로 앨범을 넘기듯 사진들을 이어서 본다. 음악을 들을 땐 리모컨이 없던 시절 라디오 볼륨채널을 돌리듯 손가락으로 화면 위의 원판그림을 돌려서 소리를 조절한다. 기술의 발전을 통해 잊었던 오래된 습관들을 기술 발전으로 다시 돌려받은 것이다.

이 편안함은 편리함과 상충되는 말이 아니다. ‘터치’가 제공하는 편안함은 가장 진보된 기술이 선사하는 편리함과 사실상 같은 말이다. 삼성전자의 장동훈 상무는 “통화뿐 아니라 음악 듣기, 티브이 보기, 사진·비디오 찍기와 인터넷 검색까지 다양한 기능이 핸드폰과 함께 컨버전스되면서 복합적 기능을 편리하게 사용하도록 터치 기술이 적용됐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기술적 편리함은 터치폰의 출발점이고 감성적 편안함은 도착점이다.

터치 방식은 키패드로 세부 항목에 들어갈 때 거치던 여러 단계를 줄였다. 그뿐만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아이콘을 끌고 오는 건, 특정 기능을 부호화시킨 것과 같은 키패드를 누르는 것보다 직관적이다. 휴대폰과 피시가 접목되면서 현재 휴대폰 업계의 최고 화두인 풀브라우징을 간편하게 실행하는 데서도 직관적인 터치스크린 방식은 유용하다. 엘지전자의 하정욱 책임 연구원은 “풀브라우징이 제대로 쓰이려면 원하는 항목에 바로 갈 수 있도록 간편하게 작동돼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터치 방식은 더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인터페이스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난달 출시돼 3일 만에 21개국에서 100만대가 팔리며 세계적인 화제가 된 애플의 아이폰은 터치 인터페이스의 매력을 최대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찬사를 얻었다. 풀브라우징의 편리함과 더불어 두 손가락으로 화면 크기를 줄였다 늘였다 할 수 있는 멀티 터치 기능, 애플 특유의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이는 커버 플로, 터치 센서뿐 아니라 지(g) 센서, 조도 센서, 근접 센서 등 다양한 센서를 적용시킨 앞선 기능들로 소비자들을 매료시켰다.

4월 출시 이후 40만대 이상 팔린 삼성애니콜 햅틱폰. 고가의 제품임에도 터치 방식이 주는 편리함과 재미로 큰 호응을 얻었다.
4월 출시 이후 40만대 이상 팔린 삼성애니콜 햅틱폰. 고가의 제품임에도 터치 방식이 주는 편리함과 재미로 큰 호응을 얻었다.

지 센서 이용한 주사위·매직볼·다트 게임…

아이폰의 장점 중 하나인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은 터치폰의 무궁무진한 재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 예로 지난 7월 한국에 계정을 오픈한 앱스토어에서 판매 순위 2위에 오른 아이비어(ibeer)를 보자.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화면에 큰 버튼이 뜨고 이걸 터치하면 마치 휴대폰(또는 아이팟터치)이 맥주잔인양 화면에 맥주가 채워진다. 휴대폰을 술잔처럼 들고 마시는 시늉을 하면 화면 속 맥주의 양이 줄어든다. 이걸 다시 흔들면 거품이 보글보글 일어난다. 모션 센서의 일종인 지 센서를 적용한 이 놀이는 단순하지만 아기자기하고 유쾌한 재미를 준다. 햅틱폰의 주사위 놀이나 시크릿폰에 내장된 매직볼, 다트 등의 게임도 지 센서를 활용한 게임들로 손가락으로 누르는 것뿐 아니라 흔들고 위아래, 가로세로로 움직이며 말 그대로 ‘만지는’ 즐거움과 재미를 준다. 휴대폰이 고화질의 카메라가 되기도 하고, 첨단의 컴퓨터가 되기도 하면서 어린 아이 소꿉장난처럼 가짜 맥주잔이 되거나, 주사위나 다트처럼 한없이 단순한 장난감도 된다는 걸 보여주는 게 터치폰이다. 터치의 시대에 휴대폰은 단지 휴대폰이 아니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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