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자동차의 부사장이자 디자인 총괄 책임자인 피터 슈라이어.
[매거진 esc]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유리창 형상과 계기반 느낌 통일하는 등 오랫동안 지속될 DNA 수립
기아자동차의 디자인 대장, 피터 슈라이어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나고 왔다. 거의 두 시간을 인터뷰 했고, 그 와중에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가장 끝내주는 소식은 기아자동차에도 베엠베(BMW)나 벤츠, 아우디 식의 작명법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니까 모닝, 쏘렌토, 오피러스 등의 분리된 이름대신 숫자와 영문자 등으로 조합된 이름으로 재편될 수도 있다는 암시였다.
그는 인터뷰 중에 기아자동차에 역사와 유산이 부족함을 지적했고, 이와 함께 기아자동차 각 차종들의 흩어진 이미지를 아쉬워 했다. 모닝과 쏘렌토는 이렇게 생겼는데, 오피러스는 저렇게 생겨서 한 곳에 응집되는 저력이 부족하다는 의미였다. 이어 ‘기아’라는 발음을 들었을 때의 똑 떨어지는 느낌, 단순하고, 강렬하며, 어디론가 활짝 열려있는 느낌 등을 토대로 ‘직선의 단순화(The simplicity of the straight line)’라는 개념을 만들게 됐으며, ‘직선의 단순화’는 단순히 차에 직선이 많이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직선처럼 심플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에 관한 총체적인 느낌으로 바로 잡았다.
로체 이노베이션에 최초로 적용된 피터-슈라이어 라인, 그러니까 호랑이의 코와 입처럼 돌출된 전면 라디에이터 그릴에 대해서는 ‘마케팅 이펙트’라는 단어를 쓰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것처럼) 처음부터 호랑이 코와 입을 형상화해서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래토록 지속될 수 있는 기아만의 DNA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된 앞모습이며, ‘호랑이 코’라는 발상은 마무리 과정에서 떠오른 매우 흥미로운 비유라 했다.
어찌되었건, 이렇게 생긴 얼굴이 앞으로 탄생될 모든 기아 차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물론, 측면 유리창 형상과 실내 계기반의 느낌도 통일될 것이다. 앞으로 나올 모든 기아자동차의 계기반에는 모두 붉은색 조명이 들어간다는 거다. 피터 슈라이어를 비롯한 기아자동차 디자이너들은 다음 세대에 귀하게 물려 줄 기아만의 유산을 세심하게 디자인하고 있었다.
기아자동차의 부사장이자 디자인 총괄 책임자인 피터 슈라이어는 이전에 폭스바겐 그룹에서 26년간 디자인하면서 세계가 주목하는 자동차를 디자인했다. 특유의 기하적인 라인으로 한 세대를 뛰어넘는 디자인으로 추앙받았던 원형 아우디 티티(TT)와 난폭할 정도로 역동적인 직선으로 디자인된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가 모두 그의 역작이다. 슈라이어와의 인터뷰 전문은 <지큐>(GQ) 9월호에서 볼 수 있다.
장진택 〈GQ〉 편집 차장
피터 슈라이어의 디자인이 적용된 기아자동차 로체 이노베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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