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타 마사유키 조리장이 돼지고기에 빵가루를 묻히고 있다.
[매거진 esc] 도쿄 백년 맛집 이야기 호라이야
날씬한 긴자 렌가테이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 3㎝ 두께에도 이토록 부드럽다니
날씬한 긴자 렌가테이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 3㎝ 두께에도 이토록 부드럽다니
일본은 불교국이었으므로 육식을 즐기지 않았다. 그러나 1868년 메이지 유신은 일본인의 식생활도 ‘유신’시켰다. 서양인의 큰 체격이 육식 덕분이라고 생각한 당시 일본 정부는 적극적으로 육식을 장려했다. 한국인도 흔히 먹는 전골(스키야키)과 돈가스가 이때 탄생했다. 이 때문에 일본 사가들은 메이지 유신을 ‘요리 유신’이라고 비유한다. 포크가쓰레쓰는 일종의 ‘1세대 돈가스’다. 돈가스는 포크가쓰레쓰가 나온 뒤 20여년이 지난 1910년대에 등장한다.
육즙이 흥건한 딤섬을 먹는 기분
이번 〈esc〉 취재 대상에는 돈가스 시니세가 두 곳 포함돼 있다. 렌가테이(연와정)와 호라이야(봉래옥)다. 긴자의 렌가테이는 최초로 포크가쓰레쓰를 선보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렌가테이 돈가스는 원형인 프랑스 요리 커틀릿과 닮은 포크가쓰레쓰의 특징을 그대로 고수한다. 나이프와 포크로 먹으며 된장국(미소시루)은 서비스하지 않는다. 고기도 좀더 얇다.
그러므로 렌가테이 돈가스를 먼저 맛본 독자라면 혀가 그리 예민하지 않아도 호라이야 돈가스와의 차이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호라이야의 히레가스를 처음 본 순간 두께에 놀랐다. 렌가테이 돈가스와 달리 미리 잘려 나온 3㎝ 가까운 돼지 살코기를 베어 물자 육즙이 터져나왔다. 부드러운 식감에 두 번 놀랐다. 육즙이 흥건한 딤섬을 먹는 것과 비슷할 정도였다. ‘저토록 두꺼운 고기를 속까지 익히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의문이 단박에 솟아올랐다. 빵가루는 입자가 고왔고, 튀김옷은 그리 두껍지 않았다. 젓가락이 나오고 된장국이 함께 곁들여졌다.
호라이야는 1915년 실패한 사업가인 야마오카 마사토루가 도쿄에 와 먹고살기 위해 문을 연 포장마차(야타이)에서 유래한다. 현재 위치 바로 근처다. 그때도 주력 요리는 돼지 살코기로 만든 히레가스였다. 3대손인 야마오카 요시타카(山岡吉孝·72) 사장은 창업자인 야마오카 마사토루의 손녀사위에 해당한다. 64년 도쿄 올림픽의 흥분 속에서 결혼식을 올린 야마오카 요시타카도 스시코 혼텐이나 이즈에이 혼텐의 후손들처럼, 가업을 잇고자 부인의 성인 야마오카로 바꾸고 장인의 양자가 됐다.
야마오카 요시타카는 요리와 무관한 인생을 살았다. 그는 진공관을 생산하던 전자기기 회사의 영업사원이었다. 결혼 뒤에도 직장일을 계속하던 야마오카 요시타카는 가업을 잇기로 마음먹은 72년 주방 문을 열고 10평 남짓한 ‘성공과 실패의 세계’로 들어왔다. “원래 이 세계는 엄청나게 엄격하다. 못하면 혼난다. 그러나 내게는 요리를 딱히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주방에서 장인이 하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며 배웠다. 보는 것이 큰 공부였다. 창업자의 부인 야마오카 미코시는 내게 항상 ‘돈가스 만드는 걸 지켜보라’고 말했다.” 깡마른 학자풍의 야마오카 요시타카는 처음 봤을 때 무척 온화해 보였지만, 대화를 조금 나누자 날카로운 ‘의식의 날’이 느껴졌다. 스스로에게 엄격했다. “얼굴이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며 끝까지 사진 촬영을 거부한 탓에 기자에게 그 엄격함은 불편하기도 했다.
그 엄격함은 특히 맛에서 단호했다. “맛의 유행을 따르고 싶은 유혹은 없었냐”고 물었다. 그는 “그런 것은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걸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차분하지만 단호한 말이 이어졌다. 그는 “중요한 것은 좋은 재료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가게와 상관없이 우리들의 방식으로 열심히 하는 것이다. 나는 손님과 함께 우리의 맛을 지켜왔다. 다른 곳에서 어떻게 하건 우린 우리 방식으로 해 왔다. 외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재료 엄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다음은 애정이다. 열심히 만드는 애정.” 야마오카 요시타카 사장은 아키야마라는 업체로부터 50년째 돼지고기를 공급받고 있다. 취재했던 시니세들은 모두 오랜 기간에 걸쳐 식재료를 공급받는 곳을 두고 있었다. 신뢰는 시니세의 힘이다.
튀김요리인 만큼, 기름의 중요성도 무시할 수 없다. 기름에 대해서 묻자, 대뜸 야마오카 요시타카 사장은 냉장고에서 소기름 부위가 가득 담긴 그릇을 보여줬다. 질 좋은 기름 부위를 사와서 매일 필요한 만큼 기름을 직접 녹여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렌가테이와 공통점이다. 호라이야는 쇠기름과 돼지기름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만든다.
야마오카 요시타카 사장은 70대지만 가업을 잇는 문제에서만큼은 ‘청년’이다. 자식이 없는 탓도 있겠지만, 호라이야의 맛만 유지할 수 있다면 누가 후계자가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간판을 내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그 역시 호라이야의 명성이 계속되길 바란다. “지금 이 상태로 해 나갈 수 있다면 직원 가운데 한 사람이 후계자가 될 수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자이니치’는 물론 촛불시위에도 큰 관심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은 외부인에게 너그럽다. 그 너그러움이 일본 사회의 사회적 소수자인 자이니치(재일동포)에 대한 후원사업으로 이끌었던 것일까? 그래서 재일동포 가운데서도 이 가게의 단골이 많다. 자연스레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다. “정치에 관심 없다”면서도 그는 “‘투쟁하는 신문’ <한겨레>를 잘 알고 있다. 지금의 촛불시위에 대해서도 감명받았다. 반면 일본인의 정치의식은 죽었다”고 말해 취재진을 놀라게 했다. 미식학적으로 올바른 사람.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 취재진은 지난 1일 저녁 7시께 인터뷰를 마치고 문을 나섰다. 갓등이 매달린 일본풍의 고즈넉한 호라이야 건물에서 엄격함과 푸근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호라이야 전경.
두툼한 히레가스.
esc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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