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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침을 돌게 하라 전화기를 들게 하라

등록 2008-07-16 21:24수정 2008-07-20 13:37

먹거리 홈쇼핑 채널의 생방송 촬영 현장은 전쟁터다. 쟁취할 것은 시청자의 식욕이다.
먹거리 홈쇼핑 채널의 생방송 촬영 현장은 전쟁터다. 쟁취할 것은 시청자의 식욕이다.
[매거진 esc]
불꽃·기름·땀이 마구 튀는 먹거리 홈쇼핑 생방송 현장
준비부터 촬영까지 요리와 과학이 뒤섞인 3시간의 승부

식욕을 자극해야 성공하는 승부의 세계가 있다. 0.5초 안에 전화기를 들게 하느냐, 마느냐 하는 승부다. 영화 <식객>과 <타짜>가 뒤섞인 공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먹거리 홈쇼핑 생방송 현장에서는 불꽃·기름·땀이 마구 튀고 있었다. 본방송과 본방송 사이의 짧은 시간에 쉴 새 없이 ‘리모컨질’을 하는 주부들이 실제로 전화기를 들어 먹거리를 주문하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농수산 홈쇼핑의 7월12일 오후 옥수수 판매 생방송 촬영 현장을 찾아가 봤다. 준비부터 촬영까지 2시간 남짓한 시간을 스케치해 재구성했다. 식욕을 자극하느냐 마느냐 하는 찰나의 승부가 거기 있었다. 그 승부의 공간에는 요리와 과학이 뒤섞여 있다.

맛있어 보이게 하는 ‘색감의 요령’


농수산 홈쇼핑 방송 제품, 옥수수.
농수산 홈쇼핑 방송 제품, 옥수수.
⊙ 3시: 생방송은 오후 5시30분이지만 최소 2시간 전부터 준비해야 한다. 목동 기독교방송 건물 1층에 있는 스튜디오. 미리 출근한 푸드스타일리스트 이학주(37)(아래)씨의 손놀림이 벌써 분주하다. 이씨는 농수산 홈쇼핑의 모든 식재료 준비를 총괄하는 푸드스타일리스트다. 촬영을 위해 미리 옥수수를 삶아야 한다. 스튜디오 옆 부엌이 그의 작업실이다. 이씨 옆에는 다른 스태프들이 4시10분에 방송할 만두를 준비하느라 바쁘다. 농수산 홈쇼핑의 경우, 상품선정위원회에서 방송할 음식·식재료를 선정한다. 상품선정위원회는 임원과 고객평가단등 10여명으로 구성된다.


푸드스타일리스트 이학주씨가 농수산홈쇼핑에서 방송 촬영을 위해 옥수수를 굽고 있다.
푸드스타일리스트 이학주씨가 농수산홈쇼핑에서 방송 촬영을 위해 옥수수를 굽고 있다.
⊙ 4시15분: 옥수수가 제법 먹음직스런 색을 내기 시작한다. 이씨의 ‘화두’는 색이다. 티브이는 시각과 청각은 전달할 수 있지만 후각은 전달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식욕을 자극하는 데 색감이 중요하다. 4년째 이곳에서 일하는 이씨는 이미 계절마다 다양한 식재료를 스타일링하는 데 도가 텄다. 그런 이씨에게도 유난히 표현하기 어려운 식재료가 있다. 다시마나 미역같이 색 자체가 거무튀튀해 먹음직스럽지 않은 색을 가진 식재료가 특히 그렇다. 자연광이 아닌 탓에 어려움이 더 커진다. 그래서 통조림 같은 완제품이 가장 표현하기 쉽다. 그러나 이마저도 꽁치 통조림처럼 먹음직스럽지 않은 모호한 색의 완제품일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이씨에게 ‘맛있어 보이게 하는’ 요령을 슬쩍 물었다. 몇 가지 요령이 있었다. 가령 오이나 당근의 경우 실제 눈으로 볼 땐 생생한 게 구미를 돋우지만, 스튜디오에서 촬영하기 위해서는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야 한다. 그래야 외려 색감이 생생하게 살기 때문이다. 야채의 풋풋함을 죽여줘야 한다.

전체 콘셉트를 잡는 일은 전체를 기획하는 연출자의 몫이다. 신미경(26) 피디는 “계절의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똑같은 식재료라도 계절에 따라 촬영의 콘셉트를 변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똑같은 만두라도 여름에 촬영할 땐 더운 날씨를 고려해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모습은 피한다. 대신 신선한 만두소를 보여줘 재료의 싱싱함을 강조한다. 시간대도 중요하다. 밤 11시에 진행하는 생방송의 경우 장황한 설명과 코멘트 대신 무조건 모델들이 신나게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 4시25분: 이씨가 솥에서 잘 익은 옥수수를 건져 올렸다. 적당히 노란색을 띠고 있다. 먹기 좋게 보이도록 만드는 노하우를 두고 ‘트릭’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트릭’은 맛을 오로지 눈으로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생겨난 궁여지책이다. 그러나 이씨가 어쩔 수 없이 트릭을 사용할 때도 결코 넘지 않는 선이 있다. 그는 “못 먹는 트릭은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색소를 타거나 터무니없이 태우는 행위 등이다. 요리 기술만큼 카메라 앵글도 구미를 돋우는 데 중요하다. 먹거리 홈쇼핑에서 유독 접사(클로즈업)가 많이 사용되는 이유다. 음악도 중요하다. 보통 업 템포의 트로트가 선호된다. 푸드스타일리스트는 현란한 표현으로 방송을 이끄는 쇼핑호스트와 의사소통도 해야 한다.

쇼핑호스트가 가장 까다로워하는 품목은?

⊙ 5시: 이씨는 두 상자째 옥수수를 삶고 있다. 30분 방송을 위해서 두 상자 정도 삶아야 한다. 모델들이 쉴 새 없이 먹어야 하므로 많은 양이 필요하다. 그는 식욕을 자극하는 전문가다. ‘달인’을 주제로 한 어느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씨에게 취재 섭외가 들어왔다. 요리부터 세팅까지 이씨의 작업을 지켜본 프로그램 관계자는 “당신은 달인이라기보다 ‘잡인’”이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물론 방송엔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일분에 수천 개의 무를 써는 요리사나 한 번에 쟁반을 50개 나르는 종업원만 달인일까?


농수산홈쇼핑 쇼호스트(사진왼쪽)과 제품 판매자.
농수산홈쇼핑 쇼호스트(사진왼쪽)과 제품 판매자.
⊙ 5시30분: “카메라 들어갑니다!” 순간 스튜디오 안을 정적이 감싼다. 방송이 시작되면 떠들어선 안 된다. “오늘만 기다리셨죠?” 쇼핑호스트 2명이 말문을 열었다. “에…”나 “또…” 같은 감탄사 하나 없이 깔끔한 진행이 막힘없이 이어지지만, 놀랍게도 이 코멘트는 전부 애드리브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조그만 소형 이어폰이 쇼핑호스트의 귀에 꽂혀 있다. 그 이어폰을 통해 피디의 지시가 실시간으로 내려온다. 막힘없이 얼마나 맛을 잘 표현하는지에 따라 일급의 쇼핑호스트와 풋내기가 가려진다. 그래서 베테랑 쇼핑호스트는 경력을 쌓은 뒤 프리랜서가 된다. 쇼핑호스트는 담당 피디와 그날 방송에서 어떤 방향으로 맛을 표현할 것인지 콘셉트를 공유한다. 콘셉트만 정해지면 구체적인 멘트는 쇼핑호스트의 몫이다.

4년차 쇼핑호스트인 황경희(29)씨는 “그래서 방송 전에 반드시 방송할 음식을 미리 맛보고 인터넷을 통해 그 음식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황씨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날 방송하는 옥수수나 제철 과일이 가장 방송하기 까다롭다. 30분 동안 말을 이어가야 하는데, 조리된 음식에 비해 과일이나 옥수수는 맛에 대한 표현이 단순한 까닭이다. 생방송인 탓에 곳곳에 엔지의 함정이 도사린다. 황씨는 해물 철판요리 방송을 잊지 못한다. 100도가 넘는 기름이 마구 튀는 바람에 입에서는 현란한 표현이 나오고 카메라를 보며 얼굴에는 웃음을 지었지만, 화상을 입을까 겁나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꼬맹이부터 울상… 모델들의 먹는 괴로움

⊙ 5시45분: 모델들이 옥수수를 먹기 시작한다. 이날 모델은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로 분장한 30대 남녀와 7살쯤 된 여자 꼬맹이다. 마치 ‘이런 옥수수를 먹을 수 있다면 세계평화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무서운 속도로 옥수수를 먹는다. 가장 먼저 나가떨어진 건 아직 경력이 짧은 여자 어린이 모델이다. 옥수수 두 개째를 배어 물자 벌써 울상이다. 신미경 피디는 “특히 어린이 모델의 경우 잘 먹는 모델이 진짜 베테랑”이라고 귀띔했다.

음식이 맛없을 땐 모델들의 표정에 곧바로 싫은 기색이 뜬다. 물론 카메라가 정지할 때다. 쇼핑호스트와 모델들 사이에 이학주씨가 앞치마를 두르고 옥수수 버터구이를 요리한다. 카메라는 접사로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익는 옥수수를 비춘다. 이씨는 요리할 때와 달리 흰색이 아닌 검은색 앞치마를 두른다. 음식물을 부각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푸드스타일리스트 이학주씨가 농수산홈쇼핑에서 방송 촬영을 위해 옥수수를 삶고 있다.
푸드스타일리스트 이학주씨가 농수산홈쇼핑에서 방송 촬영을 위해 옥수수를 삶고 있다.
⊙ 6시: 촬영이 무사히 끝났다. 먹거리 홈쇼핑에도 ‘프라임타임’이 있다. 보통 저녁식사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기간에 가장 인기 많은 공중파 드라마가 끝나는 시간이 먹거리 홈쇼핑 채널의 황금시간대다. 비 오는 날에는 평소보다 주문량이 는다. 상대적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이다.

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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