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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블루, 붉은 색은 너무하잖아

등록 2008-06-18 22:47수정 2009-06-19 14:40

단호한 모양을 지녔던 초기 ‘블루’(맨 아래). 그러나 디자인에 변화를 주면서 둥근 모서리를 가진 ‘블루’(맨 위). 전혀 블루하지 않은 빨간색 ‘블루’(가운데)도 등장했다.
단호한 모양을 지녔던 초기 ‘블루’(맨 아래). 그러나 디자인에 변화를 주면서 둥근 모서리를 가진 ‘블루’(맨 위). 전혀 블루하지 않은 빨간색 ‘블루’(가운데)도 등장했다.
[매거진 Esc] 장진택의 디자인 옆차기
베엠베·아이팟이 지닌 이미지 자산과 비교해 보니…
삼성전자는 디자인을 잘한다. 국내 디자인 상은 물론, 국외 디자인 어워드에서도 올림픽 대표팀만큼이나 자주 승전고를 울린다. 그래서 삼성전자 디자이너들의 솜씨가 세계 정상이라는 걸 우리 어머니도 익히 아신다. 하지만 삼성이라는 발음에 이어 머리에 떠오르는 건 파란색 타원이 전부다. 수많은 제품들이 전세계 디자인 상장을 싹쓸이하는 동안, 평민들 뇌 속에 버튼 하나 그리지 못했다는 얘기다. 애니콜로 통하는 사람이 많고, 싱크마스터로 접속하는 인구가 그리 많았으면서도, 남긴 게 달랑 타원 하나다. 반면 베엠베(BMW)에 앉은 경험이 전무한 이들도 베엠베 하면 떠올리는 게 있다. 사등분된 원형 로고와 함께 콩팥처럼 둘로 나뉜 라디에이터 그릴이 그것이다. 베엠베가 디자인 상을 많이 받은 것도, 쏘나타처럼 익숙하게 시야에 출현했던 것도 아닌데도 베엠베만의 연속된 이미지를 방정식처럼 연산해내는 거다. 이런 게 바로 세인들의 뇌세포 속에 기록된 이미지 자산이라는 거다.

베엠베가 가진 국보급 이미지 자산인 키드니 그릴 속에는 오랜 세월을 두고 점철된 갖가지 경험들이 가득하다. 그걸 보고 매끄럽고 날랜 주행, 고성능, 드림카, 무슨 영화에 누가 타고 나왔던 차, 섹시한 배기음, 멋진 스타일, 비싼 가격, 돈 많은 사람, 부잣집 자식 등을 떠올리는 거다. 아이팟도 굉장한 이미지 자산가다. 물방울 맺힌 생수처럼 청아한 외모도 그렇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쉽게 접근하는 터치휠 인터페이스 역시 꽤 비싼 자산이다. 하지만 아이팟 디자이너들은 이런 이미지 자산이 모두 가방 속이나 주머니 속에 감춰진다는 걸 먼저 알았다. 제아무리 아이팟이 예쁘다고 해서 가슴팍에 붙이고 다닐 일은 없을 테니까. 그래서 흰색 이어폰이라는 이미지 자산을 디자인했다. 모두가 더러워질 게 겁나서 검은색 이어폰만 끼워넣고 있을 때, 빛 고운 흰색 이어폰을 넣어 판 거다. 흰색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다니면 ‘내 속에 아이팟 있다’고 말하지 않아도 안다. 검은색 아이팟 터치에도 고집스럽게 하얀 이어폰이 들어 있다.

이제 삼성으로 돌아와서, 이미지 자산을 만들 것 같았던 디지털카메라 ‘블루’(VLUU)를 보자. 처음 나왔을 땐 삼성이 뭔가 깨달은 걸로 생각했다. 단호한 모양에 이름처럼 푸른 링을 중앙에 박고 뒷면에 아이팟에 필적하는 특제 인터페이스까지 넣었다. 이대로 10년만 쭉 가면 훌륭한 이미지 자산가가 되겠군, 이라 기대했건만 벌써부터 삼성스러운 짓을 한다. 공들여 만든 블루 이미지가 조급한 대기업 논리에 휩쓸려 삼성전자의 그렇고 그런 카메라 브랜드로 전락한 거다. 이미지 자산을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다. 현재 삼성 블루에는 푸른 링 없는 블루, 우유부단한 모서리를 가진 블루, 심지어 하나도 블루하지 않은 붉은 블루까지 있다. 블루(VLUU)라서 블루(BLUE)해야 하는 건 아니라지만, 그래도 레드는 너무했다.

장진택/ 〈지큐〉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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