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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음반 부문 상 받은 직장인 밴드 ‘할로우 잰’
[매거진 Esc] 도대체 누구야?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음반 부문 상 받은 직장인 밴드 ‘할로우 잰’
오른쪽 사진을 먼저 보고 ‘아, 멤버가 두 명인 밴드구나’라고 지레짐작해 버린다면, 오산이다. 밴드 멤버 다섯 명 중에 이날 인터뷰 장소에 출석한 사람이 두 명일 뿐이다. 40%의 출석률이라 할 만하다. 출석률이 낮은 이유는 출장과 개인사정 등. 밴드 멤버가 출장도 가느냐고 되물으면, 밴드 멤버 모두 직장을 다녀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사정이야 어찌 됐든 기자 처지에서 저조한 출석률이 기분 나쁠 법도 하지만, 조금도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바빠서 올 수 있는 사람만 왔어요”라고 편하게 말하는 게 더, 훨씬, 매우 이들다워 보였으니까. 아, 이들은 지난 5일 열린 ‘한국대중음악상’에서 1집 ‘러프 드래프트 인 프로그레스’로 최우수 록 음반 부문에서 상을 받은 록밴드 ‘할로우 잰’이다.
1집 내기까지 3년 “하드코어 신의 성취”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회로부터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어법으로 매우 보편적인 감동을 이끌어낸 이 음반은 개별 밴드의 성과일 뿐만 아니라 하드코어 신의 성취’라는 평을 받으며 상까지 받은 이들이지만, 아직 이름은 낯설다. ‘스크리모’ 혹은 ‘이모코어’라고 분류되는 이들의 음악도 처음에는 낯설지 모르지만, 조금만 듣고 있으면 금세 강렬한 보컬과 강력한 기타에 마음 한구석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임환택(보컬·28)·이승민(기타·28)·이광재(기타·28)·정동진(베이스·31)·박상철(드럼·28) 다섯으로 구성된 할로우 잰은 도프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여러 밴드들이 모며 만든 크루 ‘유니온웨이’의 일원으로도 활동한다. 인터뷰에는 제과업체에서 일하는 임환택씨와 자동차부품 업체에서 일하는 이승민(28)씨가 참석했다.
할로우 잰은 2003년 10월 결성된 뒤 2004년 데모 음반을, 2005년 이피(EP)를 냈고 2006년 12월 1집을 발매했다. 1집을 내기까지 3년이 걸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느려 보일지 모르지만, 이들에게는 이 일정마저도 버거웠다. 이들이 ‘직장인 밴드’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직장인 밴드란, 회사에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결성된 30∼40대 중심의 ‘즐거운 인생’식 밴드가 아니라 밴드를 쭉 하다가 직장을 다니며 계속 음악을 하는 ‘투잡’ 밴드에 가깝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밴드를 시작해 ‘드로리안’, ‘쇠파이프’, ‘비욘드 에이지’ 등 여러 밴드에서 따로 또 같이 음악을 해 왔던 이들은 군에서 제대하면서 좀더 ‘현명하게’ 음악을 하자는 쪽으로 뜻을 모으며 밴드를 결성했다.
“각자 직장 등 자기 생활을 하면서 음악을 하기로 한 거죠. 스무살 때는 밴드를 장난식으로 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할로우 잰을 결성하면서 ‘이왕 하는 거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자’고 한 거죠. 제대로 한다고 꼭 전업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시간을 쪼개서 음악을 하는 게 진짜 좋아하는 음악, 그거 하나만 보고 할 수 있으니까요. 멤버들 중 기혼자도 두 명이고, 한 명은 지난주에 아들이 돌을 맞기도 했어요. 저희는 서로 일 때문에 못 오거나 해도 다 이해해요. 요즘에 인디 음악 쪽에 저희 말고도 회사를 다니면서 밴드를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일종의 트렌드죠.(웃음)”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어서 5명이 모두 모여 연습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공연도 자주 하기 어려운 처지다. 1집도 물론 쉽지 않았다. “막판 작업을 할 때도 다들 바쁘니까 퇴근하고 밤을 세우면서 믹싱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아쉬운 게 무척이나 많은 음반이에요. 특히 사운드 면에서요. 시간만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많아요. 1집으로 받은 한국대중음악상도 고마우면서 불안하기도 하고 그래요. 1집 음반 제목처럼 저희는 ‘진행 중인 미완성의 초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2집은 사운드적인 면에서 더 꽉 차고, 더 꼼꼼한 음반으로 만들고 싶어요. 또 곱씹는 것 같은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여러모로 힘든 상황임에도 명반에 가까운 음반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뭘까? “5명이 모두 다르고, 서로 잘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하드코어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빼고는 성격부터 세밀한 음악적 취향까지 모두 달라요. 그래서 다른 점을 인정하려는 편이에요. 한 명의 취향에 쫓아가거나 한 밴드를 놓고 따라 하려고 하지 않아요. 곡을 쓸 때는 함께 모여 앉아서 살을 붙이고 뜯어고치면서 작업하죠. 그래서 익스페리멘털, 프로그레시브, 포스트록, 앰비언트까지 각자의 세밀한 취향과 성격이 음반에 다 녹아들었어요. 그게 장점이자 원동력이라면, 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성격부터 세밀한 취향까지 모두 달라
결과적으로 할로우 잰의 선택은 꽤 괜찮았다. 어쨌든 전업 음악인이 아니기에 생활고에 시달릴 필요 없이 취업과 결혼, 출산 등 인생의 단계를 자연스럽게 넘기는 중이고, 그렇다고 음악을 포기하지도 않았기에 우리에게도 좋은 음악을 들려준다. 물론 동시에 2집이 언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고, 여전히 퇴근 시간이 정확하지 않으며 승진이라도 하면 곡을 만드는 것 조차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들이 계속 음악의 길을 가기만 한다면, 문제될 것은 없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조금은 촌스러운 명언이 있지 않은가. 3년마다 음반을 한 장 내든, 2년마다 이피를 내든, 어떻게든 ‘진행’하기만 한다면 할로우 잰이 무척이나 강한 자가 될 것이라는 예감, 틀리지 않기를 바란다.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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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직장 등 자기 생활을 하면서 음악을 하기로 한 거죠. 스무살 때는 밴드를 장난식으로 하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할로우 잰을 결성하면서 ‘이왕 하는 거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자’고 한 거죠. 제대로 한다고 꼭 전업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시간을 쪼개서 음악을 하는 게 진짜 좋아하는 음악, 그거 하나만 보고 할 수 있으니까요. 멤버들 중 기혼자도 두 명이고, 한 명은 지난주에 아들이 돌을 맞기도 했어요. 저희는 서로 일 때문에 못 오거나 해도 다 이해해요. 요즘에 인디 음악 쪽에 저희 말고도 회사를 다니면서 밴드를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일종의 트렌드죠.(웃음)”
‘할로우 잰’의 공연 모습. 이들은 공연에서 앨범과는 또다른 감동을 준다. 할로우 잰 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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