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칙함으로 내달리다 뭉클함으로 끝맺은 <좀비의 시간> 작가 이경석
[매거진Esc] 도대체 누구야?
발칙함으로 내달리다 뭉클함으로 끝맺은 <좀비의 시간> 작가 이경석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특집호가 나오나 에서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연재물이 딱 하나 있다. 만화 <좀비의 시간>이다. 간판 연재물이었던 만화 <좀비의 시간>이 이번주 39회로 끝을 맺었다. 1회 때 몇 해 만에 떠났던 가족여행에서 지지리 운도 없이 좀비에게 물렸고, 더 지지리 운 없이 자기 한 몸 다칠까 열심히도 피해다니던 가족들과 툭닥대던 준수는 결국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을 확인하면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또 하찮고 소중한 일상을 일궈나간다.
거침없는 비(B)급 상상력의 발칙함으로 내달렸던 만화의 끝은 뜻밖에 뭉클했다. <좀비의 시간>이 연재되기 시작할 때부터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의 하나. “이 만화가, 도대체 누구야?” 단정함과는 거리가 먼 독특한 그림체와 잘려진 손이 걸어가는 괴상한 모양에 ‘뽈뽈뽈’이라는 귀여운 의태어를 붙여주는 유머감각, ‘막나가는’ 캐릭터의 선과 어울리지 않게 손작업으로 입혀진 부드러운 색감 등 뭐 하나 평범하지 않은 이 작품에 이런 질문이 따르는 건 당연하다. 그동안 은막, 아니 종이 뒤에 숨어있던 만화가 이경석(37)씨를 만났다.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좀비의 시간>의 부록인 셈이다.
지금까진 손작업… 컴퓨터 익힐 계획
예전부터 작품을 관통하던 B급 감성에 비하면 이렇게 뭉클한 감동이 오히려 의외인데?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게 결말이다. 약이 개발돼서 준수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버전, <새벽의 황당한 저주>처럼 준수가 인간화된 좀비로 잘 살다가 우연히 죽는 버전 등을 생각하다가 비장하게 갔다. <화려한 휴가>를 봐서 그런가?(웃음) 그리면서도 좀 우울해지더라. 신문 독자층의 연령대 폭이 넓은 것도 어느 정도 고려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나이가 들면서 변한 것도 있다, 이를테면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 말이다. <좀비의 시간>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록음악을 좋아해서 <록커의 향기>와 <속주패왕전>을 그렸던 것처럼 좀비영화를 좋아해서 언젠가 좀비 만화를 그려보고 싶었다. 특히 <좀비오>처럼 좀비의 사랑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 그러던 차에에서 연락이 와서 두 가지를 제안했다. 좀비 이야기와 하숙집 이야기였다. 당연히 후자가 채택될 줄 알았는데 좀비 이야기를 그려달라고 하더라. 특이한 사람들이다.(웃음)
<좀비의 시간>으로 작가 이경석을 처음 만난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를….
어릴 적에 <소년중앙>의 ‘로봇 찌빠’만화를 베껴 그리다가 중고등학교 때는 이현세, 허영만 만화를 보고 자랐다. 디자인을 전공하던 대학시절부터 취미로 만화를 그리다가 93년 만화잡지 <댕기>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그런데 다음달 가져간 원고가 잡지사에서 퇴짜를 맞은 뒤 <히스테리>, <펜진공> 같은 언더그라운드 만화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그러다가 웹툰도 연재하고, 어린이 만화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을식이는 재수없어’를 2003년부터, 만화잡지 <팝툰>에 ‘전원교향곡’을 지난해부터 그리고 있다.
전업작가를 하려고 광고회사 디자이너도 포기하고 신문배달 하면서 보급소에서 먹고 자며 만화를 그린 적도 있다는데, 이제는 보조자만 둘이다. <좀비의 시간> 끝나면 월급은 안 주나?
못 주는 거지!(웃음) 농담이고, <좀비의 시간>은 색채 작업까지 거의 다 내가 했기 때문에 별 차이는 없다. 또 각자들의 작업을 하고 있고.
요즘 드물게도 손작업으로 원고를 완성하는 데 손작업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너무 오랫동안 손으로 하다보니 익숙해져서 바꿀 생각을 안 한 것도 있고, 컴퓨터로 작업하면 내 작품의 느낌이 잘 안 살아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색채 프로그램도 손작업과 흡사한 효과를 내는 것들이 나와서 컴퓨터 작업을 해보려고 준비는 다 해놨다. 그런데 그것도 새로 익혀야 하니까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이다.
차기작은 강아지와 남자의 러브스토리?
좋아하는 만화작품이나 영향을 받은 만화가는?
어린시절에는 <소년중앙> <어깨동무>의 길창덕, 신문수 만화를 좋아했고, <이나중 탁구부>나 <비비스와 버트헤드>, <심슨> 같은 작품도 좋아한다. 좀 시니컬한 유머를 좋아한다고 해야 하나? 또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일러스트를 그리는 안자이 미즈마루의 일부터 아이처럼 그린 그림도 좋다. 개인적으로는 고우영 작가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칸을 촘촘히 사용하고, 빠르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툭툭 떨어뜨리듯 유머가 나오는 거나 글도 직접 손글씨로 쓰는 것들도 그렇고.
앞으로 해 보고 싶은 작품은?
사랑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왜 웃나?(웃음). 이번에는 좀비에서 개로 대상을 바꿔, 개로 변한 여자 친구와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 (그러니까 강아지와 남자의 러브 스토리?) 그렇게 볼 수도 있고(웃음), 암튼 내식대로의 경쾌한 러브 스토리를 그리고 싶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예전부터 작품을 관통하던 B급 감성에 비하면 이렇게 뭉클한 감동이 오히려 의외인데? 가장 고민을 많이 했던 게 결말이다. 약이 개발돼서 준수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버전, <새벽의 황당한 저주>처럼 준수가 인간화된 좀비로 잘 살다가 우연히 죽는 버전 등을 생각하다가 비장하게 갔다. <화려한 휴가>를 봐서 그런가?(웃음) 그리면서도 좀 우울해지더라. 신문 독자층의 연령대 폭이 넓은 것도 어느 정도 고려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나이가 들면서 변한 것도 있다, 이를테면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 말이다. <좀비의 시간>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록음악을 좋아해서 <록커의 향기>와 <속주패왕전>을 그렸던 것처럼 좀비영화를 좋아해서 언젠가 좀비 만화를 그려보고 싶었다. 특히 <좀비오>처럼 좀비의 사랑 이야기가 매력적이었다. 그러던 차에

스케치부터 채색까지 손으로 완성한 〈좀비의 시간〉의 원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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